But what about the bodhisattva vow? It is a term that we should think of in the plural. In the Tibetan tradition we find 18 root vows and 46 secondary vows. (In keeping with the model of the monastic code, these are presented in the form of infractions, thus as 18 root infractions and 46 secondary infractions.) If social action is to be found in the Mahayana, it likely will be found here. And it is, often in fascinating forms. Still, we find a reference to charity in only one—in fact, only half of one—of the 18 root infractions, “not giving the dharma or wealth.” That is, it is an infraction of the bodhisattva vow not to provide the teaching of the dharma or one’s material possessions to those who request it.
그러나 보살의 서원은 어떤 한가? 복수(단수, 복수할 때 그 복수)로서 그 단어를 생각해봐야 한다. 티베트 전통에 18가지 근본서원과 46가지 부차적 서원이 있다. ( 승단의 계율에 맞게 이야기 하면 18근본 범계 46 부수적 범계로 제시된다)
*참고: 한국과 중국에서 말하는 보살계는 10중 대계와 48경구계이다. 로페즈는 티베트 전통 보살계를 말하는 것 같다.
대승에서 사회적 행동을 찾으려면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거 같다. 그리고 가끔 놀랄만한 형태로 나타난다. 18개의 범계 가운데 유일하게 하나, 그 하나의 반은 ‘다르마나 재물을 주지 않음’ 을 보시와 관련하여 언급한다. 그것은 보살의 서원을 어긴 행동이 다르마의 가르침을 제공하지 않거나, 재물을 요청한 사람에게 그 재물을 주지 않는 것이란 점이다.
We need to dig deeper, moving to the secondary infractions to find more. Here we find the initially shocking statement that it is an infraction of the bodhisattva vows not to kill, not to steal, not to engage in sexual misconduct, not to lie, not to speak divisively, not to speak harshly, and not to speak senselessly in order to benefit others. This secondary vow, particularly the requirement that the bodhisattva kill, steal, and lie for the benefit of others, raises a host of ethical issues pertinent to our question.
만일 더 깊이 파내려 가면 부수적 범계에서 더 많은 걸 발견할 것이다. 여기서 처음으로 놀랄만한 언명을 발견한다. 그것은 죽이지 말라, 훔치지 말라, 성적인 교섭을 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이간질하는 말을 하지 말라, 욕설을 하지 말라,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무분별하게 말하지 말라는 보살의 서원을 어긴 것이다. 이 부수적인 서원은 특히 보살이 죽이거나, 훔치거나, 타인을 위해 거짓말할 조건이 우리의 질문과 관련된 많은 윤리적 문제를 제기한다.
As we move through the 46 secondary infractions, we find that it is an infraction for a bodhisattva not to help those in need, not to help the sick, not to alleviate suffering, not to console the bereaved, not to help the poor, not to stop those engaged in harmful deeds, and, if you have magical powers, not to use them for the benefit of others. Several of these are elaborated by the 4th-century Indian scholar Asanga in a moving passage:
46가지 부차적인 범계 항목을 훑어보면 보살이 곤경에 처한 사람과 아픈 사람을 도와주지 않거나, 고통을 덜어주지 않거나, 가족을 잃은 사람을 위로해주지 않거나,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지 않거나, 해로운 일을 하려는 사람들을 멈추게 하지 않는 것은 보살의 범계에 해당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만일 당신이 신통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중생을 위해서 쓰지 않는다면 이것도 보살의 범계에 해당한다. 이 가운데 몇 가지를 4세기 인도 학자 아상가(무착존자, 4c, 인도 유식학파의 개조)가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문장에서 상세히 밝히고 있다.
Furthermore, the bodhisattva attends the suffering. He nurses sentient beings beset by sickness. He leads the blind and shows them the way. He causes the deaf to understand using sign language by teaching them the symbols for words. Those without arms or legs he carries himself or transports them by a conveyance….
나아가 보살은 타인의 고통을 돌보아야 한다. 보살은 병든 중생을 간호해야 한다. 보살은 눈 먼 사람을 인도하여 길을 보여야 한다. 보살은 귀먹은 사람에 단어를 나타내는 손짓을 가르쳐서 수화로 알아듣게 해야 한다. 보살은 팔이나 다리가 없는 사람을 데려다 주거나 혹은 운송수단으로 옮겨 주어야 한다.
Furthermore, the bodhisattva protects sentient beings from fear. He protects sentient beings from fear of being harmed by beasts of prey. He protects them from fear of whirlpools and sea monsters, from fear of kings, from fear of robbers and thieves, from fear of foreign enemies, from fear of masters and lords, from fear of being without livelihood, from fear of insult, from fear of being timid in public, from fear of nonhumans, and from fear of vampires. . .
나아가 보살은 공포로부터 중생을 보호해야 한다. 보살은 맹수에게 희생되어 해를 입을 지도 모르는 공포에서 중생을 보호해야 한다. 보살은 소용돌이나 바다 괴물의 공포로부터, 왕의 공포로부터, 강도와 도둑의 공포로부터, 외국군대의 공포로부터, 주인과 영주의 공포로부터, 생계가 없어질 공포로부터, 모욕을 당할 공포로부터, 군중속에서 겁먹는 공포로부터, 비인간(귀신)의 공포로부터, 흡혈귀의 공포로부터 중생을 보호해야 한다.
Furthermore, the bodhisattva takes away the grief of sentient beings who have suffered misfortune, beginning with misfortunes involving relatives and friends. That is, he takes away the grief at the death of parents. He takes away the grief at the death of a child or spouse, a male or female servant, an assistant or employee. [He takes away the grief upon] the death of a friend, a confidant, a kinsman, or a relative. [He takes away the grief at] the death of such people as masters, abbots, and teachers. . . .
나아가 보살은 친척과 친구들의 불행뿐만 아니라 자신의 불운으로 고통받는 중생의 고뇌를 없애 준다. 또 보살은 부모의 죽음으로 말미암은 중생의 슬픔을 없애 준다. 보살은 자식과 배우자, 남자 종과 여자 종, 조수와 고용인의 죽음으로 말미암은 슬픔을 없애 준다. 보살은 친구, 신뢰인, 동족 혹은 친족의 죽음으로 말미암은 슬픔을 없애 준다. 보살은 스승, 주지, 그리고 선생님들의 죽음으로 말미암은 슬픔을 없애 준다….
Furthermore, the bodhisattva provides necessities for those who want necessities. He gives food to those who want food. He gives drink to those who want drink, transportation to those who want transportation, clothing to those who want clothing, ornaments to those who want ornaments, vessels to those who want vessels, perfumes, flower garlands, and creams to those who want perfumes, flower garlands, and creams, a place to stay for those who need a place to stay, and light for those who need light.
나아가 보살은 생활필수품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생필품을 공급한다. 보살은 음식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준다. 보살은 마시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마실 것을, 운송수단을 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운송수단을, 옷을 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옷을, 장신구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장신구를, 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배를, 향수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향수를, 화환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화환을, 크림을, 머물 수 있는 곳을, 빛을 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빛을 준다.
This passage, as inspiring as it is, portrays the bodhisattva as a cosmic social worker (with a sideline in cosmetics). It does not portray the bodhisattva as a political organizer. And again, we do not find significant evidence in the premodern period of acts of charity performed by Buddhist monastics. Where real giving, in the real world, becomes important in Buddhism, it is not giving to the lay community; it is giving to the monastic community.
이런 문장은 영감을 불러일으키는데, 우주적cosmic 사회봉사자(화장품cosmetics과 선 하나 차이)로서 보살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조직가로서 묘사하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다시 근대 이전의 불교 승려들이 행했던 자선행에서 의미 있는 증거를 찾지 못한다. 현실 세상에서 실재로 이뤄지는 보시는 불교에서 중요하다. 그건 재가자 집단에 주어지는 게 아니라 승가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It is difficult to say much with certainty about the period of the Buddha’s lifetime; scholars continue to debate about his exact dates. It seems clear, however, that what we call Buddhism began as one of a number of ascetic movements that arose in northern India some five centuries before the Common Era. The phrase that occurs again and again in the sutras in reference to monks and nuns is “gone forth into the homeless life.” The term translated as “home” here carries all the connotations of domesticity, including property, profession, and family, and the responsibilities that they entail. Buddhist monks and nuns were supposed to leave that behind, with the monastic code preventing them from owning property, engaging in a profession, tilling the soil, and even touching money. We may recall that the words for “monk” and “nun,” bhikshu and bhikshuni, literally mean “beggar.” And as we know, beggars can’t be choosers. The sangha therefore depended upon the laity for sustenance and was subject to the laws of the king.
부처님의 생애에 대해 확실성을 가지고 말하기란 어렵다. 학자들은 그분의 정확한 연대에 관한 논쟁 중이다. 어쨌든 우리가 불교도라 불리는 집단은 기원전 5세기 전쯤 북 인도에서 일어난 몇 개의 고행자 모임 가운데 하나로 시작되었다. 경전에서 비구, 비구니들이 ‘집 없는 삶으로 들어가다’라는 말이 자꾸 자꾸 언급된다. 이때 ‘집’이란 말은 재산, 직업, 및 가족, 그에 따른 책임을 포함한 가정적인 것(domesticity)을 포괄한다. 비구, 비구니들은 이런 것들을 뒤로 두고 떠나기로 되어 있다. 승려의 계율은 그들이 재산을 소유하거나, 직업에 종사하거나, 땅을 간다든지, 돈에 손을 대는 것을 금한다. 비구, 비구니는 말 그대로 ‘거지’를 의미한다. 알다시피 거지들은 선택권이 없다. 그러므로 승가는 재가자에게 생계유지를 의존하며 왕 법에 종속된다.
Where real giving, in the real world, becomes important in Buddhism, it is giving not to the lay community but to monastics.
현실 세계에서 실재로 준다는 건 불교에서 중요한 일이 된다. 재가자 집단에게 준다는 게 아니라 승단에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The relation between sangha and state seems to have been important from the beginning, with kings figuring prominently in the sutras as friends and patrons of the Buddha. And we note that Buddhist monks often served as advisors to kings, even composing texts on the topic, such as Nagarjuna’s Precious Garland of Advice for a King. We can note here, however, that part of the advice offered by these advisors (who were often Buddhist monks) was the importance of supporting the sangha.
승가와 국가의 관계는 처음부터 중요한 문제였다. 그래서 경전에 보면 부처님의 친구였든지 후원자였던 왕들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승려들이 가끔 조언자가 되어 왕을 섬기든지, 그런 주제로 논을 짓기도 했다는 걸 주목한다. 예를 들면 용수존자(Nagarjuna, 150~250CE, 인도 중관학파의 개조, 중론의 저자)는 <왕을 위한 조언의 보배로운 화환>을 지었다. 우리는 여기서 이런 조언자들(종종 승려였는데)이 주는 조언의 일부는 승가를 지원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This is because as the sangha grew in size and became sedentary, it was increasingly difficult for local communities to provide food for the monks and nuns, making royal patronage all the more necessary. The sangha therefore came to protect the interests of the state, and it did so in a number of ways. Thus, in the interview that must precede the ordination of a monk the candidate is asked whether he is a soldier, a criminal, or in debt, ensuring that the sangha did not become a refuge for those seeking to escape from the rule of law. (We should note that ordination also included a physical examination for a lengthy list of physical and mental maladies that would prevent ordination. Despite the association we often make between monasticism and medicine, the monastery was not regarded as a place for the treatment of the sick.)
승가의 규모가 커지고 앉아서 받아먹는 생활이 되었기에 지역주민들이 비구 비구니들에게 음식을 공양 올리기가 점점 어려워지니까, 왕가의 후원이 더 필수적이게 되었다. 그렇기에 승가는 국가의 이익을 보호해야 했으며, 또 몇 가지 방법으로 그렇게 했다. 그래서 승려가 되는 계를 줄 경우 먼저 심사를 해야하는데 승려후보자가 병사인지, 범죄자인지, 빚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이는 승가가 국법으로부터 도망치려는 도피처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출가심사는 출가에 부적합한 긴 목록의 몸과 마음의 질병이 있는지 확인하는 검사과정을 포함한다는 걸 주목해야 한다. 사람들은 사찰과 의료시설을 서로 연관시켜, 사찰이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는 곳으로 잘못 알고 있는 수가 많다.)
In order for the monastery to survive, conforming to the laws of the state was not enough. The sangha had to contribute to its survival. It did so through the economy of karma. We know from a variety of sources that in the early tradition, laypeople were not instructed in meditation. This remained the case for centuries. Instead, the laity was taught the virtue of dana, giving, with karma theory specifying that the recipient of the gift figured in the calculation: the purer the recipient, the greater the good karma, with purity often measured by maintenance of the vow of celibacy. The Buddha also taught that the karmic effect of generosity is wealth in the future, especially the marvelous wealth of the six Buddhist heavens of the Realm of Desire.
사원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라의 법에 적응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게 아니다. 승가는 생존을 위해서 기여를 해야 했다. 그건 카르마(업)의 경제를 통하여 이뤄졌다. 초기불교 전통에서 재가자들은 명상하도록 가르쳐지지 않았다는 다수의 원전 기록이 있다. 이런 예는 수 세기동안 지속되었다. 그 대신 재가자에게는 다나 즉, 보시의 공덕이 가르쳐 졌다. 특히 보시를 받는 분이 누구냐에 따라 공덕의 크기가 특정되는 카르마(행위에 따른 보상) 이론이 있는데, 받는 분이 청정할수록 선업의 공덕은 더 커진다. 이 청정성이라는 것은 종종 독신계율을 지키는 것으로 측정된다. 부처님은 또한 보시의 결과는 미래의 부유함, 특히 욕계의 여섯 하늘 나라(즉 사천왕천, 도리천, 야마천, 도솔천, 화락천, 타화자재천)의 놀랄만한 풍요로운 삶이라고 가르쳤다.
~계속
첫댓글 오늘이 2023년 마지막날이고 또 계해일이네요.
스님과 이곳에 오시는 모든님들 새해에도 복혜구족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