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권 제 1장
일천년의 승부
열국십팔무존의 비학이 감춰져 있던 절벽과 마주 서 있는 암산의 정상,
그곳에 두 사람이 대치해 섰다.
바로 소연황과 환가의 지존 일천미조였다.
일천미조의 신형은 안개인 양 흐릿해 전혀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저 허공 한곳에 희미한 어떤 윤곽이 서 있을 뿐이었다.
구대제가 후예들의 격돌,
그렇다.
이것은 곧 일천년 만에 다시 전개되고 있는 숙명의 격돌이 아니겠는가.
소연황,
그의 손에는 어느새 원월섭선이 쥐어져 있었다.
문득 원월섭선이 가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원월섭선에서는 무수한 월영(月影)이 안개인 양 주위로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소연황은 이미 강호출도 이후 최고의 강적을 만났음을 짐작하고 있어
처음부터 전신의 공력을 모조리 끌어올린 상태,
그 상태에서 소연황은 원월섭선의 끝을 수평으로 세워 일천미조를 겨
누었다.
[ 본인이 먼저 공격하겠소. ]
[ ......! ]
일천미조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인 듯 했다.
그 역시 이미 반월처럼 휘어진 기형검을 뽑아들었다.
우----웅!
소연항은 잠시 동안 지그시 반쯤 눈을 감은 채 원월섭선의 끝만 응시했다.
그의 이런 자세는 곧이어 무서운 공세가 발동되리라는 것을 의미하는
기도....
아니나 다를까.
어느 한 순간,
[ 차----아! ]
소연황의 입에서 맑은 기합성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원월섭선의 끝이 크게 원을 그렸다.
[ 원월책----십이선법! ]
촤촤----촤----
우르르르....
무서운 파공음이 귓청을 찢을 듯 울려 퍼졌다.
부----웅!
원월섭선이 부러질 듯 진동하며 무서운 달그림자를 쏟아냈다.
순간,
[ 단(斷)----선(扇)----! ]
일천미조 역시 우렁찬 장소를 터뜨리며 검을 쳐냈다.
카----앙!
그것은 시작이었다.
쏴----아!
일천미조의 기형검이 가공스러운 검영을 일으켰다.
꽈르르르릉----
좌우에서 마치 검은 용(龍)과 같은 기류가 수십 장 방원을 뒤덮으며
소용돌이 쳤다.
소연황의 눈에 놀람이 스쳐갔다.
일천미조의 검초가 자신의 원월책을 전문적으로 차단하며 밀려왔다.
( 괴이하지 않은가. 마치....원월책을 잘 알고 있는 듯한 초식이다. )
소연황은 무엇인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전력을 다해 다시 원월섭선을
휘둘렀다.
[ 원월책----제삼선법, 월영만천아---! ]
장소가 터지고,
꽈릉!
원월섭선이 용트림했다.
동시에 천공에 실로 엄청난 달그림자가 어렸다.
소연황이 전력을 다해 쏟아낸 선법(扇法),
그 기세는 가히 상상을 불허하는 것이었다.
허나 일천미조의 검세는 실로 괴이했다.
카----앙!
놀랍지 않은가.
기이하게도 일천미조는 이미 원월책 십이선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듯
그 공세를 차단시키며 검을 쳐내는 것이었다.
꽈꽝----!
[ 응? ]
두 사람이 엇갈렸다.
소연황의 어깨에 혈흔이 비쳤다.
그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 그대가 어찌....원월책을 알고 있는가? ]
[ 흐흐흐....한 가지만 알려주지. 본 환가가 지난 일천여 년 동안 모습
을 드러내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음이다. 환가의 선조께서는.....구
대제가의 이차격돌 이후 본가에 봉문령을 내리셨다. 구대제가의 다른
가문의 무공을 완벽하게 파해할 자신이 없는 한 절대 강호에 나서지 말
라는 유시였다. ]
[ ......! ]
[ 그 뒤로 일천여 년....본가의 선조들은 대대로 다른 가문들의 무공을
파해하는 일에만 평생을 보내셨다. ]
[ 으음....그렇다면 이제 나머지 제가들의 무공을 파해할 자신이 있다
는 것인가? }
[ 흐흐흐....물론이다. 유가일맥의 원월책 팔초식 역시 완전히 파해할
자신이 있음이다. ]
( 원월책 팔초식...? 원월책은 십이선법인데....? )
일순,
소연황의 눈 깊은 곳에 한 가닥 이채가 스쳐갔다.
이때였다.
씨----이!
팟!
괴이한 음향과 함께 무서운 검기가 또다시 덮쳐왔다.
파파파----
지면이 마구 패여 나가고 바람을 타고 흙먼지가 하늘 끝까지 올라갔다.
[ ......! ]
소연황이 난감한 표정으로 물러나고 있었다.
와르르르릉....
태양과 같은 검은 기류가 수십여 장을 뒤덮으며 그에게 덮쳐왔다.
일천미조의 신형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검은 돌풍만이 소연황을 향해 덮쳐올 뿐이었다.
[ 원월책, 제 칠선법----월영뇌----! ]
일순,
거대한 만월의 그림자가 검은 구름을 뚫고 승천하는 용인 양 치솟았다.
[ 흐흐흐흐....원월책 제 칠초식인 월영뇌 역시 본좌가 이미 알고 있는
초식이다. ]
쓰----읏!
일천미조의 신형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기이한 기(氣)의 흐름이 기괴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과연 소연황의 월영뇌는 허공만 스치고 있었다.
쏴아아----
다시 일천미조의 기형검이 가공스러운 기세로 소연황의 온몸을 뒤덮었
다.
위기였다.
그 순간,
소연황이 몸을 비틀며 왼손을 쳐냈다.
우릉!
백색 강환이 마치 폭발하듯 수천 수만 개로 불어나며 사방을 뒤덮었다.
[ 흐흐흐....무영신벽? 어림없지! ]
흐릿한 일천미조의 모습 한 가운데에서 조소가 흘러나왔다.
까----까까-----카앙!
고막을 찌르는 듯한 듣기 역겨운 금속음이 미친 듯이 진동하더니 백광
이 사그라 들었다.
[ 음.... }
소연황의 입에서 당혹성이 터져 나왔다.
( 그렇다. 지난 일천년 동안 다른 팔대제가에서 놀고만 있었겠는가. 그
들은 이 환가처럼 다른 가문의 무공에 대해 철저하게 연구했을 것이 분
명하다. 헌데....원월책은 모두 십이선법이거늘 이 자는 어찌해서 팔초
식이라고 한 것일까? 그렇다면....? )
( 혹시 나머지 사초식은 백의종사 소단성 조사께서 말년에 새로이 창안
하신 절초가 아니었을까? )
[ 유가의 후예여, 이제 목을 내놓아라! ]
일천미조가 광오하게 외치며 허공에서 연달아 칠검을 쳐냈다.
검영이 가공무쌍한 강기가 되어 사방 수십 장을 덮었다.
스치기만 해도 박살이 날 무서운 기세였다.
[ 원월책 제팔선볍, 월영폭----!]
꽈르----릉!
번----쩍!
낭랑한 외침과 함께 뇌성이 진동했다.
다음 순간,
꽝!
까----앙!
가공할 굉음이 터져 나왔다.
우드드득----
암산의 정상에 서 있던 고송들이 뿌리째 뽑혀 날아가고,
이십여 장 밖에 서 있던 암석들이 마구 터져나갔다.
정녕 놀라운 광경이었다.
그들의 격돌로 암상의 정상 오십여 장 범위가 초토가 되어버린 것이었
다.
먼지가 가라앉고, 두 사람의 신형이 드러났다.
( 으음....이 자는 과연 원월책 십이선법의 대부분 초식을 알고 있다.)
소연황의 안색이 약간 창백해져 있었다.
허나 그의 두 눈만큼은 오히려 더욱 무표정했다.
( 허나....마지막 사초식과...그리고 또 하나....환가의 후예들이 모르
고 있는 것이 있다. )
이때,
[ 흐흐흐흐....유가일맥의 후예....이제 그대의 목을 베겠다. 허나 억
울해하지 마라. 나머지 제가의 후예들 역시 너와 같은 길을 걸을 것이
니.... ]
일천미조가 음침히 외치며 한 걸음 나섰다.
[ ......! ]
무서운 기세가 폭풍 쳤다.
찰나,
[ 단----선----류----! ]
지옥의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일천미조의 신형이 허공에 둥실 떠오르며 수십 배로 불어나지 않
는가.
착각이련가?
일천미조의 보이지 않는 흐릿한 신형이 화악하고 허공에 번져가는 듯
하다가 종내에는 허공 자체가 되어버렸다.
일순 소연황의 눈에 기광이 스쳤다.
[ 원월책----제 구초, 흑월천광----! ]
[ 가거라! 칠십이단천수리표-----! ]
원월섭선이 한가닥 아미월을 폭발시키며 주위를 암흑으로 뒤덮고,
그 속에서 한 가닥 섬광이 소연황의 허리로부터 폭발했다.
채----앵!
[ 왁----악! ]
날카로운 금속성과 함께 비명이 터졌다.
일천미조의 가슴에서 피분수가 솟구치며 그의 몸이 광풍에 휘날리는
낙옆인 양 오장 밖으로 물러났다.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그의 손에는 반 토막 난 기형검이 들려 있었다.
[ 이, 이럴 수가....원월책은 팔초만 있는 줄 알았는데....그, 그리고...
네가...네가 어찌 용문성의 절기를....? ]
불신과 경악의 음성,
당연한 일이었다.
그로서는 소연황의 손에서 최후로 폭발한 두 가지 절초 모두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뿐이었다.
일천미조는 경악과 공포, 그리고 불신의 눈으로 소연황을 쳐다보았다.
분명 그가 먼저 발초하지 않았던가.
더구나 완전한 승기를 잡고 있던 상태,
허나 오히려 소연황이 더욱 빨랐고,
일천미조는 그 섬광을 막았으나 그의 검이 반토막이 되고 만 것이었다.
그의 동작이 조금만 늦었더라며 두토막 난 것은 그의 검이 아니라 바로
그의 몸이었을 상황이었다.
이렇게 되자 한시도 형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흐릿하기만 하던 그의 형
체가 확연히 드러나 있었는데....
삼십대 초반의 혈의청년이다.
얇디 얇은 입술은 더할 나위 없이 비정해 보이고,
죽은 자의 그것인 양 창백한 안색은 또한 너무도 무감정해 보인다.
[ 흐흐....흐흐흐....좋다. 오늘은 본좌가 이만 물러가지만....다음에
는 반드시 네놈의 수급을 베어버릴 것이다. ]
일천미조가 비틀거리며 입을 열었다.
[ 나의 목을 베겠다고? 무슨 끔찍한 소리를.... ]
소연황이 고개를 저었다.
익살기가 섞인 태도였다.
이는 곧 그가 이미 완전히 자신감을 되찼았음을 의미하지 않는가.
[ 흐흐흐흐.... ]
스스스슷....
음침한 장소성과 함께 일천미조의 신형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의 신형은 허공중에 완전히 흩어져 버렸다.
진정 가공스러운 신법이 아닐 수 없었다.
이때였다.
긴장이 풀렸음인가?
일천미조가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순간 당당히 서 있던 소연황의 몸이
비틀거리지 않는가.
울컥하고 한모금의 선혈이 그의 입으로부터 뿜어져 나왔다.
안색이 창백해져 있는 것이 그 역시 무사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었다.
[ 으음...일천미조! 그는 이미 환가의 절대신학을 완벽하게 이은 무서
운 인물이었다. 원월책 십이선법에 대해 경시하지만 않았더라면....패
한 것은 오히려 나였을 것이다. ]
소연황은 입술을 문지르며 고개를 내저었다.
실로 두 번 다시 떠올리기 싫은 악전고투였던 것이다.
휘---이익!
이때였다.
돌연 미미한 경풍과 함께 한 인영이 그의 전면에 내려서지 않는가.
소연황은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자신은 이미 일천미조와의 격돌로 기력이 탈진되어 있는 상태,
헌데 이런 상태에서 또다른 고수가 등장한 것이었다.
[ 그, 그대는....으음...그대 역시 무사히 빠져나왔구려. ]
긴장의 눈을 들던 소연황의 눈이 다시 풀려갔다.
아아....소연황의 전면에 내려선 인영,
그녀는 바로 옥수환령 녹여령이 아니겠는가.
[ 네놈은 바로 유가일맥의 후예였더군. ]
옥수환령 녹여령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소연황은 그녀의 태도가 굳어있음을 대하고 긴장을 머금었다.
[ 본녀는 종횡가의 후예....어차피 네놈과는 숙명적으로 일전을 겨루어
야할 처지였다. 게다가....비록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는 하나...네
놈은 본녀을 능욕했으니 더 이상 살려둘 수 없다. ]
[ ......! ]
어느새 옥수환령 녹여령의 우수가 새파랗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 청옥수! ]
소연황이 고개를 저었다.
실로 난감하지 않은가.
그는 일천미조와의 격돌로 당분간은 서 있을 기력조차 없을 지경이었
다.
헌데 이런 상황에서 옥수환령 녹여령이 살기를 드러내고 다가오고 있었
음이니....
( 빌어먹을....호랑이와의 대결을 여우가 지켜보고 있었음을 모르고 있
었다니....이거 영락없이 목숨을 내놓아야 할 상황이 아니겠는가. )
( 으음....단 삼성의 진력이라도 끌어올릴 수 있다면 어떻게 해볼 수도
있었을 것이건만.... )
소연황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상황은 실로 절망적이었다.
[ 자....이만 죽어라. 그래야 네가 지니고 있는 열국십팔무존의 비학들
이 본녀의 것이 되지 않겠느냐! ]
퍼----억!
쏴아아아아아!
새파란 옥수가 돌연 허공을 장악했다.
예의 청옥수는 어찌해 볼 틈도 없이 이미 소연황의 가슴에서 폭발하고
있었다.
[ 크아아아아---악! ]
소연황의 입에서 피분수가 뻗어 나왔다.
옥수환령 녹여령의 몸이 튕겨 나가고 있는 소연황을 향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 흥! 네놈은 본녀의 청백지신을 빼앗고도 살아남을 줄 알았더냐! ]
꽈----앙!
또다시 그 무서운 청옥수가 소연황의 가슴에서 작렬했다.
[ 아아----악! ]
소연황의 신형이 다시 가랑잎처럼 날아갔다.
헌데,
그가 날아가고 있는 지점,
그곳은 바로 아득한 단애 쪽이 아니겠는가.
휘----이익!
가랑잎처럼 날아가던 소연황의 몸이 축 늘어진 채 아득한 단애 아래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 광경에 옥수환령 녹여령의 눈에 놀람이 떠올랐다.
[ 앗! ]
그녀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그녀는 허공을 밟으며 떨어져 내리고 있는 소연황의 몸을 잡으
려 했다.
만약에 소연황이 떨어져 버린다면 열국십팔무존의 비학들을 그녀가 취
하지 못하는 수도 있었던 것이다.
허나....
[ 이, 이런....! ]
그녀의 손은 허공만 움켜쥐고,
소연황의 몸은 이미 아득한 단애 아래쪽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으니..
단애의 아래쪽은 안개와 구름이 뭉쳐져 있었다.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도저히 내려다 볼 수도 없었던 것이다.
옥수환령 녹여령은 단애 아래쪽으로 내려갈 수 있는가 살펴보았다.
허나 예의 단애는 너무도 험해 그야말로 날개가 있지 않는한 도저히 내
려갈 수가 없을 듯 했다.
[ ......! ]
옥수환령 녹여령은 망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진정한 목적은 열국십팔무존의 비학을 취하는데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그녀는 오랫동안 단애의 정상에서 서성거리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허나....
결국 긴 한숨을 내쉰 그녀는 표표히 사라져 갔다.
한 명의 기린아를 삼켜버린 아득한 단애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침묵하고....
멀리 천공 저쪽으로는 서서히 여명이 준비되고 있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