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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장 남궁세가의 위기
1
자그마한 대전,
세 사람이 마주 대하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세 사람, 그들은 다름 아닌 마종사뇌, 혈성추혼마, 그리고 강시대마였다.
마종사뇌에게 혈성추혼마 등이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
마종사뇌의 얼굴이 미미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일을 실패했다고요?"
"그, 그렇소."
"육호법과 칠호법이 직접 갔는데…… 실패했단 말이오?"
거의 질책이 담긴 어투에 혈성추혼마와 강시대마는 쓴맛을 다시며 변명을 해야 했다.
"그것이, 난데없는 자가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그, 그렇소. 그 자 때문에 천룡보를 괴멸시키고 화룡보주를 얻으려 한 우리의 거사가 실패한 것이오."
"아니, 어떤 자이기에 육호법과 칠호법이 같이 갔는데 실패한단 말이오? 설마 천룡신검이라도 나타났단 말이오?"
질책보다는 어이가 없는 표정이었다.
천하의 혈성추혼마와 강시대마가 한 인물에게 패해 달아나다시피 도주를 한 것이니.
혈성추혼마가 이를 갈며 입을 열었다.
"그 자는 천룡신검보다 더한 놈이오. 대해제일인 무적해룡! 바로 그 놈이 우리 일을 방해했소."
"무적해룡―!"
마종사뇌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 자라면…… 일전에 마라천환검을 얻으려 할 때 방해했다는 그 작자 말이오? 그때 그는 바다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 죽었다고 하지 않았소?"
그랬다.
그 사실을 알기에 마종사뇌는 무적해룡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무적해룡은 버젓이 살아 있었고 자신들의 일을 방해했던 것이다.
"그는 죽지 않았던 것 같소. 그 놈 무적해룡 때문에 일을 그르친 것이오. 인정하기 싫으나 그자의 무공은 나를 능가하오."
마종사뇌는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듣기에 그 자는 그리 나이가 많지 않다고 알고 있는데 그런 어린놈이 그렇게 강하단 말이오?"
"그렇소. 어림잡아 그 놈은 이제 겨우 이십 정도밖에 되지 않았소."
"아니, 그렇게 어리단 말이오? 무적해룡이란 이름은 십 년 전에 들려 온 이름인데, 허면 그 자는 몇 살 때부터 이름을 날렸단 말인가?"
반문하는 마종사뇌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 자를 처리하는데 있어 신중을 기해야겠군.'
문득 마종사뇌의 눈빛이 사악한 기운을 흘렸다.
"그렇다면…… 남궁운령도 죽지 않았단 말이겠군. 그녀를 구한 무적해룡이란 자가 죽지 않고 살아 있으니."
혈성추혼마의 눈빛이 번뜩였다.
"요 근래 들어 남궁세가의 힘이 점점 커진다 해서 이상하다 여겼는데 그 배후에 남궁운령이 있다는 것이었군."
그의 눈빛이 사악하게 변했다.
"그 계집이 살아 있으면서도 무림에 전혀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는 것은, 설마……?"
마종사뇌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분명 그녀가 얻은 마라천환검의 무공을 비밀리에 익히고 있다는 얘기요."
"이런 발칙한 것이."
혈성추혼마는 대노했다. 자신들의 눈을 감쪽같이 속이고 마라천환검을 익히고 있는 남궁운령을 떠올린 것이다.
그에 못지않은 것이 무적해룡에 대한 분노였다. 거의 손에 들어온 고금십병의 하나를 그 때문에 놓치지 않았는가.
"골치 아픈 일이 계속 생기는군."
마종사뇌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남궁운령의 재지는 그 미모를 뛰어넘고도 남을 정도로 남다르오. 그녀가 마라천환검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그녀의 재능으로 보아 무공이 꽤 진전됐을 것이오."
혈성추혼마는 침음성을 터뜨렸다.
"음……."
돌연 마종사뇌의 눈빛에 살기가 어렸다.
"골치를 썩일 싹은 더 크기 전에 제거하는 것이 상책이지."
혈성추혼마가 나섰다.
"그 일은 내게 맡겨 주시오."
"좋소! 육호법에게 다시 전력을 보태 줄 것이니 이번에는 실패하지 마시오."
"알겠소."
"혹시 모르니…… 육호법에게 마령검사(魔靈劍士) 이십 인을 딸려 주겠소."
혈성추혼마의 얼굴에 기쁨이 떠올랐다.
"마령검사들을 이십 명씩이나, 그렇다면 무적해룡 그 놈이 다시 나타난다 해도 두렵지 않을 것이오."
혈성추혼마는 자신있게 대답했다.
그의 자신감은 마령검사란 것에서 오고 있었다.
"그럼 마령검사가 오는 내일 밤 남궁세가를 쳐서 마라천환검을 얻어 오시오."
"알겠소. 염려 마시오."
마종사뇌가 조용히 혼자 되뇌이였다.
"무적해룡! 아무래도 그 자에 대해서는 더욱 신중히 대처해야 할 것 같군."
마종사뇌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시선이 강시대마를 향했다.
"칠호법은 총단에서 잠시 기다리시오. 머지않아 정파의 연합체인 정천맹의 비밀총단을 알아낼 것이니 그때 다시 힘을 보태시오."
"알겠소."
"그리고, 육호법은 곧 남궁세가를 칠 준비를 해 주시오."
"알겠소."
삼 인의 신형이 대전에서 사라졌다.
2
고도(古都) 낙양(洛陽).
주나라 때는 낙읍(洛邑)이라 불렸고, 동한(東漢)의 고도였던 곳이라 일찍부터 교통(交通)과 문물(文物)이 발달해 번창일로를 달리는 대도시였다.
때는 신시가 다 지날 무렵이다.
거리의 여기저기에서 궁등(宮燈)이 밝혀지고 있었다.
어스름한 어둠이 거리에 깔리고 있고, 사람들의 발걸음은 분주해져 가고 있었다.
관도 위를 두 명의 인물이 걷고 있었다.
주위의 시선을 끌며 걸어가는 일남일녀는 마치 연인처럼 다정히 팔짱을 끼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용해린과 공손혜였다.
"해린 오빠! 여기가 낙양이예요."
"낙양이라…… 말로만 듣던 낙양을 비로소 보게 되는구나."
"호호! 이곳에서 개봉(開封)은 바로 지척이에요."
"그래."
공손혜는 용해린의 팔짱을 낀 채로 부지런히 입을 놀리고 있었다.
용해린은 오늘 아침 천룡보를 떠나왔다.
혼자 떠나올려고 했으나 공손혜가 길을 안내해 준다는 핑계로 그를 따라나선 것이다.
"해린 오빠! 저기 객점이 있어요. 배도 출출하니 식사부터 해요. 그리고 이곳에서 하루 묵은 후 개봉으로 가는 것이 좋을 거예요."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구나."
두 사람은 멀리 보이는 객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낙양객점(洛陽客店)이라 이름지어진 객점은 삼층 건물로 상당히 컸다.
용해린과 공손혜가 막 객점 안에 들어가려 할 때였다.
"공자님, 한 푼만 적선합쇼."
객점의 문간에 앉아 있던 거지 하나가 손을 내밀었다.
용해린은 고개를 돌려 거지를 바라보았다.
검은 얼굴에 땟국물이 주르륵 흐르는 추레한 옷을 걸친 중년의 거지였다.
전형적인 걸인의 모습으로 누가 보아도 애처로운 마음이 들 정도로 안쓰럽게 보였다.
"어머, 불쌍해라."
공손혜는 거지가 불쌍해 보이는지 은자(銀子) 하나를 거지의 구걸통에 던져 주었다.
"감사합니다."
거지는 은자를 확인하고는 연신 감사의 뜻으로 고개를 숙였다.
헌데 그때였다.
"용대협께서는 제 말을 듣기만 하십시오."
가는 전음성이 용해린의 귀로 파고들었다.
"……!"
누군가가 용해린을 알아보고는 전음성을 전하는 것이었다.
'누가 내게 전음을……?'
기이함을 느끼던 용해린은 바로 자신의 앞에서 연신 허리를 숙이는 거지를 내려다보았다.
'이 거지가 내게 전음을 보냈단 말인가?'
용해린은 거지의 입이 미미하게 달싹이는 것을 보았다.
문득 그의 시선이 거지의 허리로 향했다.
땟국물이 흐르는 거지의 옷을 둘러치듯이 감겨진 띠 줄 하나.
그 줄에는 기이한 매듭이 있었다.
'결이 매어진 띠 줄, 개방의 인물이었군. 결이 세 개면 분타주(分舵主)의 지위다. 이상하구나. 난 개방의 인물을 전혀 모르는데 이 자는 날 알고 있지 않은가?'
용해린이 괴이함을 느낄 때에도 걸인의 전음은 계속 이어졌다.
"전 개방의 낙양분타주 풍허운개(風虛雲 )입니다. 기이함을 느끼시겠으나 저를 의심하지 마시고 제 얘기를 마저 들어 주십시오."
"개방의 사람이 나를 아는 것이 이상하나…… 일단은 그대의 얘기를 들어 보겠소."
'헛!'
분타주는 내심 헛바람을 들이켰다.
그의 귀에 생생히 울리는 전음, 용해린은 전혀 입을 벌리지 않고 전음을 보내는 것이었다.
'혜광심어(慧光心語)! 으음. 그에 대한 소문은 전혀 과장이 아니군.'
그는 다시 전음을 날렸다.
"오늘밤 괴무리들이 남궁세가를 공격한다는 정보가 들어와 있습니다."
"남궁세가를? 그 이야기를 내게 해주는 이유가 무엇이오?"
"그 괴인들은 천룡보를 습격했던 자들이며 혈성추혼마가 지휘자라 합니다."
"혈성추혼마! 그 자가?"
용해린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또다시 혈성추혼마에 관한 얘기가 나온 것이다.
용해린의 귀로 전음성은 계속 들려왔다.
"그의 목표는 남궁세가의 남궁운령, 현 가주 비천홍검(飛天鴻劍) 남궁무하(南宮武河)의 손위 누이이며 무림에는 이미 죽은 것으로 소문난 여인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살아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녀는 고금십병의 하나인 마라천환검의 주인입니다."
'아……!'
용해린은 내심 탄성을 발했다.
'그럼, 내가 구한 여인이 남궁세가의 남궁운령이었단 말인가? 헌데 그런 그녀를 혈성추혼마가 다시 노린단 말인가?'
풍허운개의 전음은 계속 이어졌다.
"남궁세가는 중원 사대세가의 영수(領首)격이며 기둥이기에 그곳이 무너져서는 안 된다고 상부에서 연락이 왔고, 더불어 용대협께서 천룡보를 나와 낙양으로 향한다는 보고를 받고 도움을 얻으려고 지금껏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용해린은 말없이 그의 전음을 끝까지 들었다.
"지금 대협께서 의문이 많으실 줄은 아나 모든 의문은 접어 두시고 남궁세가를 도와 주십시오. 모든 의문은 내일 대협께서 본방의 개봉 총단으로 오시면 자연 아시게 될 것입니다. 그럼."
풍허운개는 연신 허리를 숙여 공손혜에게 감사를 표했다.
외형으로 본다면 용해린과 거지 풍허운개 사이에 전음이 오간 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풍허운개는 자리에서 일어나 좋아라 하며 저잣거리를 내달려 갔다.
그 모습은 오랜만에 횡재를 한 영락없는 거지의 모습이었다.
용해린은 그런 거지를 바라보다가는 공손혜를 향해 입을 열었다.
"혜매, 남궁세가를 알고 있소?"
"남궁세가요? 물론 잘 알지요."
대답을 하던 그녀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
"헌데 갑자기 남궁세가 얘기는 왜 꺼내세요? 마음 아프게……."
"마음이 아프다니?"
그가 의아해 하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남궁세가는 중원 사대세가의 대표로 전통과 힘을 갖춘 문파에요. 헌데 바로 얼마 전에 가주님을 비롯한 무수한 고수들이 목숨을 잃었어요. 바로 고금십병에 드는 마라천환검이라는 무기 때문이죠."
말을 하는 공손혜의 얼굴은 침울한 표정이 가득했다.
"마라천환검을 얻으러 남해에 갔던 남궁가의 인물들이 하나도 돌아오지 못하고 무수한 무림인들에게 죽음을 당했는데, 그 안에는 남궁운령 언니도 있었어요."
"남궁운령?"
"화 언니와 같이 무림오미에 드는 언니로 우리와는 오랜 친분 관계에 있었는데 그 언니도 돌아오지 못했어요. 아마도 죽었을 거예요."
"흠……."
"그 후로는 남궁세가에 가보지 못했는데, 다행히 요즘 들어 새로 가주가 된 남궁무하가 남궁세가를 잘 이끌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요."
"남궁무하는 또 누구지?"
"운령언니의 남동생으로 저와 동갑이예요."
용해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절친한 혜매도 남궁운령이라는 여인이 살아 있다는 것을 모르는군. 아마도 그녀는 생사를 숨긴 채 비밀리에 마라천환검의 무공을 연마하고 있었던 것이고, 그것이 암중 세력에게 들킨 것이겠군.'
그는 공손혜를 돌아보았다.
"어때, 혜매? 남궁세가로 가보는 것이."
"지금이요?"
"그래, 내 생각이지만 우리는 그녀를 보게 될 것 같은데."
"그녀라니요……?"
의아함을 보이던 공손혜가 놀람의 눈을 하며 용해린을 쳐다보았다.
"설마, 운령언니를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후훗! 가보면 알 것이다."
용해린은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자, 어서 가 보자꾸나. 남궁세가는 어느 쪽에 있지?"
"남서쪽이에요."
"그래? 어서 가자."
"알았어요."
용해린을 따라 공손혜도 신형을 날렸다.
공손혜는 의문이 나는 것을 참고 일단 그를 따라가기로 했다.
* * *
이경(二更)의 시각이다.
어스름한 달빛에 휩싸인 하나의 장원이 어둠 속에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보통의 장원보다도 규모가 훨씬 큰 이곳은 무림에서도 명망이 높은 전통 있는 곳이다.
-남궁세가(南宮勢家).
하남 제일의 명문으로 검학의 일가를 이룬 가문이다.
중원에는 세습으로 내려오는 네 개의 무림 가문이 있다.
-하남(河南) 남궁세가(南宮勢家).
-하북(河北) 하북팽가(河北彭家).
-사천(四川) 사천당가(四川唐家).
-호북(湖北) 위지세가(慰遲勢家).
이들 네 개의 가문은 저마다의 독특한 무공과 계율을 바탕으로 무림에서 그 전통을 꾸준히 이어 내려오고 있었다.
그 중 하남의 남궁세가는 사대세가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다.
남궁세가의 거대한 연무장.
지금 이곳은 두 패의 세력이 대치하고 있었다.
백의의 검수들과 흑의를 걸친 괴 무사들.
그들은 벌써 여러 번 격전을 치뤘는지 곳곳에는 죽고 쓰러진 자들이 무수히 많았다.
그들의 격전은 잠시 뒤로 미뤄졌고, 단 한 군데에서만 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두 패의 세력이 대치한 한 가운데, 중앙에서 두 사람이 격돌하고 있었다. 혈의를 걸친 잔혹한 인상의 노인과 그와는 대조가 되는 백의의 소년 검수.
혈의노인은 바로 혈성추혼마였다.
그리고 소년 검수, 그는 남궁세가의 새로운 가주인 비천홍검 남궁무하였다.
그들은 지금 대치한 양측 세력의 사이에서 치열한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비천홍검은 땀을 흘리며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로서는 십대고수에 드는 혈성추혼마가 너무 벅찬 것이다.
혈성추혼마는 여유롭게 남궁무하를 상대하고 있었다.
남궁무하의 검학은 강하고 날카로웠으나 상대는 천하의 혈성추혼마였다.
"흐흐, 남궁무하! 검학이 상당한 경지에 올랐군. 사오 년 만 지나면 제 아비보다 더 강해지겠는 걸?"
혈성추혼마는 여유롭게 남궁무하를 상대해 갔다.
남궁무하는 힘겨워 하면서도 굴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파파팟! 츠팟!
남궁무하의 검 끝에서 매서운 검기가 일어나며 무수한 검화(劍花)를 피워 올렸다.
약관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그러한 검의 경지를 보인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사실이나 상대가 너무 좋지 않았다. 상대는 너무도 강했다.
문득 남궁무하를 상대하던 혈성추혼마가 허공에 대고 일갈했다.
"흐흐, 이제 그만 나오는 것이 어떠냐?"
누구를 향한 외침인가?
사람들이 저마다 의아함을 느낄 때 혈성추혼마는 재차 소리를 질렀다.
"네 동생이 죽어도 상관이 없다는 것이냐?"
남궁무하를 상대하면서도 혈성추혼마는 장원이 울릴 정도로 크게 외침을 발했다.
"흐흐, 남궁운령! 네가 어디에선가 지켜보고 있음을 안다."
돌연한 혈성추혼마의 말에 남궁세가 인물들의 안색들이 바뀌었다.
혈성추혼마의 말대로 라면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남궁운령이 살아 있다는 것이 아닌가?
세가의 인물들 중 상부의 극소수만 제외하고는 나머지 대부분의 무사들이 사방을 둘러 보았다.
그러나 누구도 나타나지 않았다.
혈성추혼마의 두 눈이 잔혹하게 변했다.
"흐흐, 그래 네년이 동생이 죽고 난 후에도 나타나지 않는가 보겠다."
그의 공세가 돌연 독사의 그것처럼 신랄해졌다.
츠으으읏― 츠읏―!
그의 전신에 뭉클 핏빛 광채가 피어올랐다. 그 광채는 이내 손바닥으로 빨려 들어가며 다음 순간 그의 손바닥에서 가공할 장력이 뿜어져 나왔다.
지금까지의 공격보다 배는 날카롭고 무서운 공격이었다.
때문에 혈성추혼마의 공격에 남궁무하의 움직임이 점점 무뎌졌다.
더욱이 혈성추혼마의 장력은 검기를 해소시키는 한편 남궁무하의 몸을 스치듯 파고들며 그의 몸에 적지 않은 내상을 입혔다.
남궁무하는 금방이라도 혈성추혼마의 장력에 격중될 것처럼 보였다.
그때였다.
"멈춰라!"
돌연 한 소리 앙칼진 호통소리가 들리더니 두 사람이 대치한 사이로 한 여인이 떨어져 내렸다.
날렵한 백의경장을 걸친 이십대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녀의 손목에는 찬란한 빛을 뿌리는 기이한 물체가 들려 있었다.
황금빛이 나는 하나의 환(環)을 든 여인, 그녀는 바로 남궁운령이었다.
"와아!" 남궁대저(南宮大姐)다!"
"남궁대저께서 살아 계셨다니."
그녀가 모습을 보이자 남궁세가의 무사들이 환호했다. 당연했다. 남궁운령은 지금은 죽은 하남제일검 남궁태현에 버금가는 검학을 지녔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들의 함성을 뒤로 하고 남궁운령은 동생에게 다가섰다.
"괜찮으냐?"
"견딜 만합니다. 미안하오, 누님. 저 때문에 아직 무공도 완성되지 않은 상태의 누님을 불러내서 말이오."
"됐다!"
남궁운령은 혈성추혼마 쪽으로 돌아섰다.
"흐흐흐, 드디어 나타났군."
남궁운령을 바라보는 혈성추혼마의 눈은 진한 탐욕의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그녀의 손에 든 마라천환검만 들어올 뿐이었다.
그들은 잠시 서로를 주시하며 대치했다.
장내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하게 변했다.
그러한 두 사람의 대치를 지켜보는 두 쌍의 눈이 더 있었다.
연무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하나의 건물 위, 이 인이 어둠 속에 몸을 가리고 있었다.
"어머, 진짜 운령언니네. 정말로 살아 있었다니……"
"그것 봐라, 내가 뭐라 그랬느냐."
낮게 대화를 주고받는 이 인. 그들은 바로 용해린과 공손혜였다.
그들은 조금 전에 도착해 건물 위로 올라와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물론 남궁무하가 위기에 처하면 용해린은 재빨리 도울 참이었으나 혈성추혼마는 남궁운령을 끌어내기 위해 일부로 남궁무하에게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는 것을 간파했다.
남궁운령이 모습을 보이자 공손혜의 얼굴에 반색과 함께 조금은 원망이 담긴 투로 말을 했다.
"으음, 살아 있었으면서 연락 한 번 없었다니……"
"아마도 그녀에게 사정이 있었겠지."
"그래도 조금은 섭섭해요, 남궁세가가 남해에서 그런 참변을 당했을 때 내가 얼마나 울었는데."
"자자, 마음을 잡고 조용히 지켜보자꾸나."
"알았어요."
이내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는 장내를 주시했다.
"헌데, 괜찮을까요? 상대는 십대고수의 하나인 혈성추혼마인데."
"아마도 걱정은 없을 것이다. 그녀는 고금십병의 하나인 마라천환검의 무공을 익혔다. 익힌 지 이제 겨우 이 개월여 정도지만 능히 혈성추혼마를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전 걱정이 되요."
"염려 마라! 여차하면 내가 뛰어들 테니."
"헤헤, 그렇다면 걱정 없지요."
공손혜는 마음을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조용히 장내를 주시했다.
어느 순간 두 사람이 격돌하기 시작했다.
"하압!"
"찻!"
연무장은 남궁운령과 혈성추혼마의 대전만이 벌어지고 있었다.
두 패로 갈라진 장내의 무사들은 결전을 멈춘 채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창! 차앙― 치릿― 치리릿―!
병기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오며 금빛 광채와 핏빛 광채가 주위에 난무하기 시작했다.
어느 새 팔목에 차고 있던 마라천환검은 석 자 길이의 검으로 바뀌어 검기를 사방에 뿌리고 있었다.
남궁운령의 마라천환검과 혈성추혼마의 혈성비표가 부딪치며 섬칫한 불꽃을 만들어냈다.
"마라 제 이식 천층파(千層波)―!"
남궁운령의 마라천환검에서 수십 겹에 이르는 기이한 강기들이 혈성추혼마를 휘감았다.
"혈성비천(血星飛天)―!"
혈성추혼마도 혈성비표를 날리며 남궁운령을 상대했다.
이내 두 사람은 금빛 광채와 핏빛 광채로 둘러싸여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극소수의 인물들만이 그 안의 광경을 지켜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그 만큼 안력(眼力)과 내공이 뒷받침된다는 뜻이리라.
두 가지 색의 광채 속, 어딘지 모르게 남궁운령이 밀리는 듯한 형상이었다.
병기와 초식면에서는 남궁운령이 많이 앞서 있지만 내력과 경험에서는 그녀가 오히려 뒤지고 있기 때문이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용해린의 눈이 의아함을 보였다.
'초식과 병기의 우위에도 남궁소저가 밀리는 것은 그녀의 내공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는 내심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군. 내 생각과는 많이 차이가 난다. 본래 대로라면 남궁소저의 내공은 삼 갑자가 넘어야 되는데 그녀는 이제 이 갑자를 조금 넘는 수위가 아닌가?'
용해린이 이상함을 느낄 때 남궁운령은 막바지에 몰리고 있었다.
입가에 실낱 같은 핏줄을 흘리며 남궁운령은 계속 뒤쪽으로 밀렸다.
"흐흐, 마라천환검을 얻어 네년이 그 새 많이 강해졌다만 내게는 아직 어림도 없지."
"으음."
남궁운령은 신음을 토했다.
'내력과 초식의 운용, 그리고 경험까지 모든 면에서 너무 처진다.'
"이것도 한 번 받아 봐라."
혈성추혼마의 핏빛 광채가 더욱 짙어졌다. 이내 그것은 남궁운령의 가슴으로 폭사되었다. 여인의 치부를 공격하는 비겁한 수법이었으나 목숨을 건 싸움에서는 적지 않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콰아앙!
"으윽!"
남궁운령은 한 줄기 피를 뿜어내며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이번 공세에 그녀는 크게 내상을 입은 듯했다.
그런 그녀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혈성추혼마는 재차 공세를 펼치려 손을 들었다.
"누님!"
남궁무하는 안타깝게 소리치며 혈성추혼마에게 달려들었다.
그때,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공손혜가 다급히 용해린의 팔을 흔들며 소리쳤다.
"어머, 운령 언니가 위험해요!"
다급함에 크게 외친 그녀의 목소리는 연무장 전체를 울릴 정도로 컸고, 장내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귀에 크게 들렸다.
손에 땀을 쥐고 격전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모든 시선이 한 곳으로 쏠렸고, 막 남궁운령에게 다시 일격을 가하려던 혈성추혼마도 순간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용해린 등이 있는 건물 지붕으로 향했다.
좌중들의 시선이 모아질 때였다.
"어, 내 목소리가 그렇게 컸나?"
"당연하지. 난 너의 목소리가 그렇게 큰 줄은 미처 몰랐구나. 저녁도 먹지 않은 녀석이 기력도 좋구나."
다음 순간, 용해린과 공손혜는 장내로 떨어져 내렸다.
혈성추혼마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언제나 자신의 일을 방해했던 용해린을 발견한 것이다.
"또, 네놈이냐?"
"후훗! 우리는 꽤나 인연이 있구려."
용해린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혈성추혼마를 바라보았다.
"으으으, 전생의 무슨 원한이 있기에 사사건건 내 일에 방해를 하는 것이냐?"
"그게 무슨 섭섭한 소리요? 내가 가는 곳에 항상 당신이 먼저 와 있었을 뿐이지."
"끄응……!"
혈성추혼마는 앓는 신음을 흘렸다.
"자, 어떻소? 그녀 대신 나하고 놀아 보는 것이."
"좋다. 나도 네놈을 결단코 요절내야 하겠다."
혈성추혼마의 콧김이 제법 뜨거워졌다.
"호오, 용기가 가상하구려. 진작 그렇게 나왔어야 했소."
"흐흐흐! 자만하지 마라. 오늘만은 너도 성치 못할 것이니."
"꽤나 자신만만하군."
"당연하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특별한 구원군(救援軍)을 항시 데리고 다녔다."
"구원군?"
"그렇다! 바로 이들이다."
말과 함께 혈성추혼마의 신형이 뒤로 쭉 물러났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수십여 명의 괴인들이 용해린의 주위를 포위해 버렸다.
전신에 하얀 천을 두른 정확히 이십 명의 괴인들.
마치 죽은 시신을 무덤에서 꺼내 온 듯 그들의 얼굴은 희다 못해 창백했다.
그들은 각기 손에 검 하나씩을 들고 기이한 검진을 형성한 채 용해린을 압박해 오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확인한 남궁운령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전, 전설의 마령검사다! 아아, 저들이 나타나다니……!"
남궁운령이 공포로 전신을 떨었다.
"마령검사라니? 언니, 저들이 그렇게 무서운 가요?"
어느 새 그녀 곁으로 다가선 공손혜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저들은 인성(人性)이 말살된 악마의 검사들로 특수한 약물로 신체를 단련한 뒤 오직 한 가지씩의 악마검식을 연성해 가히 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
"백여 년도 더 된 과거, 열 명의 마령검사들이 대소림을 쑥대밭으로 만든 적이 있었다. 헌데 그런 자들이 이십 명씩이나 나타날 줄이야."
남궁운령은 공포감으로 전신을 떨었다.
그러나 공손혜는 태평스런 표정을 지으며 남궁운령의 손을 꼭 잡았다.
"운령언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해린 오빠는 천하의 그 누구도 당할 수 없어요."
"오빠라니……?"
"호홋! 저기 있잖아요."
"음, 저 사람의 무공이 어떠한지는 모르나 힘들 것이다. 마령검사들은 도검불침의 신체인 데다 그들이 펼치는 검식을 맞받을 수 있는 사람은 십대고수들 정도일 것이다. 헌데 그런 그들이 이십 명씩이나 나타난 것이다."
"호홋. 언니도 참, 두고 보기만 하세요. 곧 멋지게 끝내 버릴 테니."
자신에 찬 공손혜의 말에 남궁운령의 시선이 비로소 용해린을 자세히 주시했다.
마령검사들의 검에서 발산되는 검기가 용해린을 휘어 감고 있었다.
하나 천하의 마령검사들이 내뿜는 검기에도 전혀 동요됨 없이 우뚝 서 있는 용해린의 모습은 그대로 하나의 태산(泰山)이었다.
'아아! 마치 태산을 대하는 것 같지 않은가!'
남궁운령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그러고 보니 천하의 혈성추혼마가 저 공자를 피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조금 전의 혈성추혼마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기이함을 느꼈다. 십대고수의 일인인 혈성추혼마가 용해린을 피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흠, 일단 두고 보면 알겠지.'
그녀의 시선이 마령검사들과 대치하고 있는 용해린을 주시했다.
마령검사들에게 둘러싸인 용해린은 그들을 주시했다.
'어떻게 단련했는지 하나같이 도검불침(刀劍不侵)의 몸들이군.'
그랬다.
그를 포위한 마령검사들은 모두 도검불침의 몸들이었다.
검도의 고수들을 특수한 약물로 가사 상태로 만들어 이지를 상실케 한다. 일 년여를 약물에 몸을 담그게 한 후 도검불침의 몸을 만든다.
그런 후 그들에게 검식을 가르친다.
오직 상대를 쓰러뜨려야만 하는 악마의 검식을 익힌 그들 마령검사들에게 적수는 없었다.
과거 백여 년 전, 소림을 비롯한 중원의 무수한 방파들이 이들에게 피를 흘렸다.
그런 마령검사들이 다시 이렇게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용해린은 창룡노를 쥔 채 조용히 마령검사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마령검사들의 검기가 그의 전신을 휘감으며 스치고 있었다.
그가 아닌 다른 고수가 그런 상황에 놓였다면 피를 토하고 쓰러졌겠으나 용해린은 마령검사들의 검기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너무도 태연한 용해린의 모습에 오히려 혈성추혼마가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으음, 마령검사들의 날카로운 검기를 전혀 개의치 않고 있다니.'
아무리 고수라 해도 마령검사들이 발산하는 검기에 갇히면 대부분 심맥이 손상될 텐데 용해린은 전혀 아무런 이상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 모습에 혈성추혼마는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으나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저놈이 아무리 무공이 강해도 이십 명의 마령검사들이라면 일황이나 일마라도 상대할 수 있다. 저놈이 마령검사들에게 죽는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어 그는 명령을 내렸다.
"검진(劍陣)을 발동시켜라!"
스스슷― 파파팟―!
마령검사들의 신형이 빠르게 움직이며 용해린을 중심으로 원진을 형성한 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들의 검에서는 사악한 기운의 검기들이 뻗어 나와 용해린 쪽으로 폭사해 갔다.
삽시에 용해린의 신형은 마령검사들의 검기에 휩싸였다.
용해린의 형상은 마치 검기로 만들어진 둥근 공에 갇힌 형상이었다.
그때였다.
"우우우우―!"
돌연 용해린의 입에서 한 소리 외침이 울려 퍼졌다.
콰우우우……!
날카로운 음향이 장내에 울려 퍼지며 무언가가 마령검사들의 막강한 검기를 뚫고 하늘로 치솟았다.
바로 용해린이었다.
마령검사들의 검막을 뚫고 공중으로 치솟은 것이다.
그 순간 삼 장여의 공중에 둥실 떠 있는 용해린의 주위에는 기이한 기류가 휘돌고 있었다.
다음 순간 사람들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용!
용해린의 전신을 휘돌고 있는 기운은 용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경악성을 터뜨릴 때였다.
"해룡창천(海龍蒼天)―!"
다시 그의 외침이 터졌다.
콰우웅― 콰우우우웅―!
기이한 음향이 장내에 울려 퍼짐과 동시에 용해린의 전신을 휘돌고 있던 용의 형상이 마령검사들을 휩쓸어 갔다.
기이한 빛살들을 내뿜으며 날아가는 용의 형상은 검기를 뿌리듯 용해린이 자신의 내공을 형상화해 창룡노로 폭출시킨 것이다.
콰콰쾅- 콰쾅―!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지며 사방으로 자욱한 먼지가 일었다.
굉음이 한 번 들린 이후 다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궁금증을 참으며 먼지가 가라앉기만을 기다렸다.
잠시 후, 먼지가 가라앉자 장내의 상황이 드러났다.
"아아……"
"어찌, 저럴 수가……!"
장내의 상황이 드러나자 모든 이들의 입에서 부지중 탄성이 새어나왔다.
연무장 한가운데 아주 커다란 구덩이가 하나 만들어져 있었다.
깊이가 일 장이 넘고 사방 십여 장에 가까운 구덩이, 아니 무덤이라고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 구덩이가 용해린의 일격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용해린은 서서히 허공에서 내려서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처음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마령검사들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혈성추혼마가 악을 썼다.
"이, 이놈 마령검사들을 도대체 어떻게 했느냐?"
"후훗, 그들 말이오? 여기 있지 않소."
용해린은 구덩이 쪽으로 손을 한 번 휘저었다.
그러자 먼지가 한 번 휘날렸고 구덩이 바닥의 모습이 드러났다.
"아, 마령검사들이다."
"돌 벽에 깊숙이 들어가 있는 꼴이라니!"
마령검사들의 모습을 확인한 자들이 한 마디씩 경악성을 토했다.
그렇다. 용해린의 공격에 격타당한 마령검사들은 그의 엄청난 공력을 못 이기고 구덩이의 바닥 돌에 전신이 박히고 만 것이다.
"으으……! 이럴 수가…… 모두 내부가 부서진 채 죽어 버렸다."
그들의 모습을 확인한 혈성추혼마의 전신이 부들부들 떨렸다. 마령검사들의 내부가 완전히 박살난 채로 죽었음을 안 것이다.
"으으으, 마령검사들마저 간단히 죽다니."
혈성추혼마의 신형이 그대로 하늘로 솟았다.
"으아아아―! 네, 네놈은 인간도 아니다."
주체할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십대고수에 드는 절대 고수인 그가 도주를 한 것이다.
지휘를 하던 혈성추혼마가 도주하자 흑의인들도 분분히 몸을 날렸다. 경황없이 도망가는 그들은 혹여 용해린이 따라올세라 꽁지가 빠져라 도망가고 있었다.
그들에게 용해린은 지옥의 염왕보다도 무서운 존재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삽시에 장내에서 그들의 신형이 사라져 버렸다.
"와아―!"
"와아아……!"
적들이 도망치듯 사라지자 남궁세가의 사람들은 모두 일제히 환호했다. 죽었다고 여겼던 남궁운령이 나설 때 내심 안도했던 그들은 그녀까지 혈성추혼마에게 밀려 절망했었다.
남궁세가의 무사들은 죽기를 각오했었다.
하나 적들은 너무도 쉽게 물러났다.
환호하는 사람들은 모두 용해린에게 경이감과 존모(尊慕)의 시선을 던졌다.
"대협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어느 새 남궁운령이 다가와 용해린에게 포권을 취했다.
용해린이 무어라 하려 할 때 남궁무하도 그에게 예를 취했다.
"대협이 아니었다면 본 세가는 큰 화를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무하가 대협께 감사를 드리오이다."
"가주께서는 예를 거두시오. 치하 받고자 도운 것이 아니니."
"어찌 그럴 수 있습니까? 대협이 아니었다면 천 년 전통의 남궁세가는 오늘 붕괴되었을 것입니다."
"후훗, 됐소이다. 난 그저 혈성추혼마와 대전하고 싶어 나섰을 뿐이오. 정 치하를 하고 싶으면 개방 사람들에게 하시오."
"개방 사람들이라니요?"
"난 중원에 들어온 지 이제 겨우 십여 일밖에 되지 않은 사람이오. 그런 내가 어찌 남궁세가를 알겠소?"
의아하게 생각하는 그들을 향해 용해린이 설명했다.
"원래 난 이곳에 들릴 일이 없었으나 낙양에 들어섰을 때 개방의 낙양분타주라는 인물이 혈성추혼마가 남궁세가를 공격한다고 하더이다. 그래서 와 본 것이오."
"아! 그럼 그 거지가 개방의 낙양분타주?"
공손혜가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이 낙양의 객점에 들어가려 했을 때 자신들에게 구걸하던 걸인이 개방의 낙양분타주였던 것이다.
"어쩐지 용가가가 남궁세가의 이름을 알고 있다 했었지."
"그래, 중원에 들어온 지 며칠 되지 않은 내가 어떻게 남궁세가를 알겠느냐?
개방 사람이 알려 주지 않았다면 전혀 몰랐을 것이다."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남궁무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용해린은 한 줄기 햇살 같은 미소를 머금었다.
"후훗, 그러니 나를 이곳에 오게 한 낙양분타주가 제일 큰 공로자라 할 수 있소."
남궁무하는 문득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런 그의 눈빛이 아버지의 그리움으로 물들고 있었다.
"생전에 아버님께서는 항시 개방 사람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으음, 그러한 일이 오늘 대협이 이곳으로 오게 하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된 것이구려."
"개방을 한 번 찾아가 정식으로 인사를 드려야겠군요."
남궁무하는 새삼 개방에 진한 감사의 마음이 우러나왔다.
3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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