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과 바람의 조화 그 시적 진실 --박흥우 시집 『온종일 바람 속에서』 1. ‘불면의 언어’가 승화한 ‘나’의 단면 현대시의 지향점은 대체로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삶의 궤적(軌跡)에서 상상력으로 재생하는 이미지가 투영되는 시적 소재나 주제가 다양하게 전개하는 양상을 많이 접하게 된다. 이는 어쩔 수 없이 시간과 동행한 인생 체험에서 발양(發揚)하는 미적(美的)인 내면 의식이 시 속에서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체험에는 다변적인 사회적인 현상과 동시에 영위하는 삶에서 창출하는 인생론이 시의 중심축을 형성하는 통념적인 시법(詩法)을 대하게 되는데 이는 시적 상황 설정이나 전개가 세월과 더불어 살아온 인간의 칠정(七情)이 바로 ‘나’라는 자아의 긍정이며 수용이라는 외연(外延)의 중대한 변전(變轉)으로 심중(心中)에 흡인(吸引)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박흥우 시인의 첫 시집 『온종일 바람 속에서』를 일별해 보면 초기 작품들의 경향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나’에 대한 집념은 바로 자아의 인식이다. 이 인식이 성찰을 거쳐서 어떤 가치관으로 발전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는데 박흥우 시인도 역시 이러한 경로를 통해서 광활한 시세계를 구축하려는 정서의 단면을 엿보게 하고 있다. 그는 ‘나’라는 화자(話者-persona)를 시의 언어로 자주 등장시키고 있는데 이 일인칭 화자가 근본적으로 시인 자신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론에서 말했듯이 어차피 ‘나’를 중심으로 한 심적인 한 흐름(의식의 흐름)에서 현현되는 것이므로 자칫하면 넋두리나 독백이 되지 않도록 유념해야 한다. 붉은 노을이 파도 속에 잠기면서 하루가 저물어 간다 저문다는 것은 일상을 내려놓는 것이다 소리 없이 흘러가는 시간 잡을 수 없는 회한 짧은 오늘의 아쉬움과 마지막의 경계에서 늘 푸른 꿈은 외면되고 싸늘한 밤공기 갈 곳을 잃어 서성거리고 있는 침묵의 성긴 파편들은 고요 속에서 감쳐진 불면의 언어가 되었다 바람이 불면 또 사라지는 것처럼 기더리고 있는 것도 잠시 머물고 있는 것도 더러는 보이지 않는 것들로 사라지고 저 외로움의 몸부림 같은 것들. --「어쩌면 나는」 전문 박흥우 시인은 ‘나’에 대한 진솔한 인생의 일면을 적나라(赤裸裸)하게 발현하고 있다. 그의 의식에 항상 함께 동행하는 것은 ‘고요 속에서 감쳐진 불면의 언어’이다. 그가 ‘소리 없이 흘러가는 시간’이라는 시간성에서 추출하는 의식은 ‘저 외로움의 몸부림 같은 것들.’이라는 결론으로 적시하는 것은 고적(孤寂)한 내면에서 무엇인가 원대(遠大)하거나 장엄한 갈망의 희구(希求)가 사유(思惟)의 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을 간과(看過)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어쩌면’이라는 부사형 감탄사로 그가 바라는 인생 목표가 성취를 위한 열망의 인식 범주(範疇)를 스스로 정하고 있다. 이는 ‘외로움’의 근저(根柢)에는 상당한 심리적인 ‘아쉬움’이 일상에서 ‘불면의 언어’로 까지 전환하는 인생의 정점을 향하여 비상하려는 중대한 동기를 유발시키고 있다. 그는 다시 ‘나’에 대한 명민(明敏)한 통찰을 거치면서 ‘거침없이 지나치는 세월의 뒤안길에서 누군가로 부터는 지워 버려야 한다는 것조차 나는 모른다 나도 모르고 세상도 모른다(「내가 아니기 때문에」 중에서)’는 어조(語調)로 미지의, 미확인의 자아를 인식하면서 새로운 인생관의 창출을 위한 잠시 고뇌에 빠져들고 있다. 이 밖에도 ‘세월이 / 나를 끌고 가는 걸까 // 평생 같이 한 일 / 어깨에 짊어진 삶의 무게들이 / 떨어지는 단풍잎 같다(「무상」 중에서)’거나 ‘이 나이에서 시작할 만한 일은 없을까 / 큰 의미를 두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 / 다시 재도전 하고 싶다 / 남은 세월에서 나를 남겨보고 싶다 (「환갑의 무게」 중에서)’는 간절한 염원과 같이 그는 인생 ‘재도전’의 일념이 전광(電光)처럼 뻔득이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자아(自我-the ego)로서 존재에 대한 의식이 강렬하게 발산한다. 결국 ‘나=존재’라는 등식으로 변전하여 한 정신적인 개체(개인)이거나 실체적인 주체로서 많은 철학자들이 연구하고 학문으로 정리한 바가 있으나 우리 시에서도 시 창작의 출발은 ‘나(자아)’의 체험(삶의 궤적)에서 이미지를 창출하는 과정에서 궁극적으로 삶(인생)의 실체를 구명(究明)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작업은 바로 자아의 성찰로 이어지고 새롭고 정돈된 가치관의 정립을 위한 여과(濾過)장치임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애(自愛-self love)이며 자존(自尊-self respect)으로서 삶과 인생을 향상시키는 고매(高禖)한 인격 수양이라고 할 수 있다. 대체로 ‘나’에 대한 시적 형상화는 스스로의 인식에서 성찰로 거기에서 어떤 기원의 의식으로 전환하게 되는데 박흥우 시인은 ‘들녘에 내리는 빗소리가 그리움을 안고 / 내 가슴을 파고든다 보고싶다’거나 ‘흐르는 시냇물에 떨어지는 빗방울에게 / 내 마음을 실어 당신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이상 「이 밤에」 중에서)’라고 기원과 그 기원에대한 불확실한 신념은 의문형의 시법으로 ‘나’를 조망(眺望)하고 있다. 2. ‘외로움’과 시와 시인의 여망 박흥우 시인은 삶과 인생의 여백에서 ‘시’에 관한 여망이 남다르게 현현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외로움(고독)은 어떻게 생성되고 어떻게 시에 형상화하고 있는가. 실생활(real life)에서 접하게 되는 현실적인 괴리(乖離)에서 감정(emotion-사물을 대할 때 느끼는 쾌감, 불쾌감을 주로 한 희노애락의 정)으로 발단하는 고독을 시라는 정신적인 상황에서 정화(淨化)하기 위한 방편이 어떤 불멸(不滅)의 염원으로 전환하는 시법을 충족시키게 한다. 바로 고전에서 공자가 말씀하신 불학시면 무이언(不學詩 無以言)이요, 불학례이면 무이입(不學禮 無以立)이라는 명석한 교훈에서 그가 다시 세우려는 인생관인지도 모른다. 공자님이 시를 공부하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고 예를 공부하지 않으면 서서 걸어다닐 수 없다는 진리는 이 땅에 우리의 인생과 시가 공존해야하는 명언으로 널리 통용되는 진실이다. 외로움이니 하는 말로 속살거리는 봄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내 이미 시인이 아닌 시인으로 시다운 시를 외면한지 오래이지만 봄비가 내리는 이 좋은 계절에 어찌 못난 시라도 쓰지 않을 수 있을까 시가 아니어도 시인이 아니어도 좋다 끄적거리는 글이라도 봄을 대신한다면 쓰고 싶은 시들은 만찬이다. --「봄밤」 전문 이러한 염원이나 갈망이 위에서 읽을 수 있듯이 ‘시’와 ‘시인’이라는 집념으로 전이(轉移)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주창(主唱)하는 ‘외로움’이나 ‘그리움’의 승화가 바로 ‘시’로 분화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게 된다. ‘내 이미’라는 부사로서 긍정의 심중을 알 수 있는데 그는 ‘시가 아니어도 시인이 아니어도 좋다’는 명징(明澄)한 심저(心底)에서 공감을 유로(流路)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깊은 성찰의 인식 내면에는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숭엄(崇嚴)한 시에 대한 원망(願望)의 인생 지표가 정립되어서 이를 지향하는 지적(知的) 사유가 활화산으로 요동치고 있다는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게 한다. 그는 다시 ‘헌 책방에서 시집 한 권을 샀다 / 낡은 시집이지만 / 넘기는 책장마다 / 고운 시들로 / 눈이 아프도록 행복한 밤이 되었다(「시를 읽다」 중에서)’는 어조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광적(狂的)인 집념의 시행(詩行)은 이제 멈출 수 없는 인생의 지표로서의 신념으로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시가 나를 툭 치고 지나간다 시상을 들추어내 종이에 옮겨 보지만 시가 아닌 낙서 같아 애꿎은 종이만 버리고 있다 분명 사랑, 그리움, 외로움의 경계에서 움직이는 시가 있었는데 종이 위에 옮겨 보지 못한 문장들 막연히 스치고 지나간 것이 시인지 불분명 해진다 필시 쓰고 싶은 시는 닿을 수 없는 곳에서 갑자기 떠오르는 모양이다 꿈속에서 꾼 시가 잠에서 깨어나 날아가는 시보다 진정한 시를 꿈꾼다 늘 그랬던 것처럼. --「종이 위에서 피는 꿈」 전문 그렇다. 박흥우 시인과 시와의 인연은 분리될 수 없는 숙명(宿命)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이처럼 ‘시가 나를 툭 치고 지나간다’거나 ‘꿈속에서 꾼 시가 잠에서 깨어나 날아가는 시보다 진정한 시를 꿈꾼다’는 어조(語調-tone)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그가 평소에 감지(感知)하는 보편적인 사물의 의식과는 약간 차이가 나는 듯하다. 그냥 막연하게 시라는 괴물에 사로 잡혀서 관념적인 표현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사랑, 그리움, 외로움의 경계’에서 그는 시와의 담론을 시작하고 있다. 이 ‘사랑, 그리움, 외로움의 경계’는 그가 여망하는 시에의 주체적인 모티브가 되는 진실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일찍이 조지훈 시인이 말한 ‘시란 지. 정, 의(志情意)가 합일된 그 무엇을 통하여 최초의 생명의 진실한 아름다움을 영원한 순간에 직관적으로 표착하여 이를 형상화한 것이다.’라는 고견(高見)과 같이 그 경계의 실체가 그의 주제로서 지정의에 합일된 진실이어야 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그의 시적인 의식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현현되고 있다. -시에 대한 그리움이 / 다른 그리움으로 향할 때 / 한 편의 꿈을 만들어 내어 주고 / 페이지 속에 낀 시인이 되어 본다 / 잠시 동안.(「시를 읽다」 중에서) -시는 잠시 와 있는 듯하다가 / 다시 떠나는 철새와도 같은 것 / 잠시 아주 자유롭게.(「환상」 중에서) -시는 / 시이기 때문에 / 시다워야 한다고 / 시를 만들기 위해서 / 시를 쓴다고 / 이 핑계 저 핑계 / 잡다한 생각뿐이다 / 시는 / 아무니 쓰는 게 아니지만 / 왜 이리 미안하냐고 / 시에게. (「왜 이리 미안하냐고」 전문) - 커피 한잔을 마시며 어제 쓰다가 날아간 시를 한참 아쉬워하고, 점심엔 밥을 먹고, 밤에는 길을 보지 말고 시를 쓰자 근사한 시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면서(「시를 쓰면서」 중에서) -코스모스 축제장에 온 관람객들도 시고 우스꽝스러운 내 모습도 시다 나는 더 이상 시가 떠 오르지 않는다 허수아비인 내거 시이고 내거 논밭에 있지 않아서 시이고 시가 아니다 오오 극락이여, 진지한 건 질색이다.(「당신이 시다」 중에서) -시를 쓰겠다는 의지는 풍경이 품고 있는 시를 바라본다 시라는 것은 정답이 없다지만 시집을 읽는 나를 바라보면 하나의 다른 시선이 한 편의 시로 들어가고 있다(「선심」 중에서) 일찍이 미국의 사상가 에머슨은 시는 단 하나의 진리라고 했다. 명백한 사실에 대해서가 아니라, 이상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건전한 마음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박흥우 시인의 시적 진실은 그가 발흥한 인생의 체험에서 생성된 고귀한 정서의 향방이 승화한 그의 인생론임에는 틀림없다. 3. ‘세월’의 행간(行間)에서 재생하는 순간들 박흥우 시인은 시간성에 상당히 예민하다. 모든 사물이나 관념의 행간에는 ‘세월(시간)’이 동행한다. 우리의 일생은 세월에게서 무엇인가 중대한 희망을 얻기도 하고 가장 중요한 성취를 아쉽게도 빼앗기기도 한다. 우리의 한생이 세월과 더불어 존재한다.그래서 우리 시인들은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이미지를 많이 투영하는 습성이 있다. 누군가 시간은 우리 인간들이 소비하는 것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시간은 영혼이라는 말로 우리들의 심성(心性)을 유익하게 혹은 부드럽게 흡인(吸引) 하면서 시 속에 동화시키거나 투사(投射)하는 시법을 자주 대하게 되는데 이는 그만큼 시간(세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모티브나 주제로 승화한다는 순수한 정감이다. 시간을 잃어버린 순간들은 하루를 서성거리다 보이지 않는 세월 속에 흩어지고 어쩔 수 없이 나도 떠밀려가고 있다 잊혀진 그리움은 외로울 때 보다 더 외로운 한숨이 흐른다 짧지만 적지 않았던 날들 나이보다 더 소중한 것들도 이젠 떠나가고 있지만 남겨진 시간의 공간에서 조금이나마 그리움들을 모두에게 줄 순 없을까 그리움은 그리운 것들끼리 또 다른 외로움들이 있었다 --「세월」 전문 보라. 박흥우 시인은 ‘시간(혹은 세월)’에 대한 직간접적(直間接的)으로 ‘나’와 접목시키면서 어떤 인생 해법을 탐색하고 있다. 또한 ‘남겨진 시간의 공간에서’라는 시공(時空)의 융합을 통해서 인간들의 애절한 상심(傷心-여기서는 그리움과 외로움)을 화해하는 그의 진실을 이해하게 된다. 시는 항상 기쁨이든 슬픔이든 그 자체 속에 이상을 좇는 신과 같은 성격을 갖고 있다는 상징주의의 비조(鼻祖) 보들레르의 말처럼 시간은 우리의 애환(哀歡)과 언제나 동행하면서 절망이나 비애(悲哀)를 융화하는 이상형의 속성을 갖고 있다. 시간은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지표를 설정하고 거기에 적응하는 삶의 과제가 정립(定立), 반립(反立), 종합(綜合)이라는 헤겔의 정반합(正反合) 논리에 맞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세월이 가고 오고 있는 것조차 도통 관심이 없었다 담벼락을 붉게 물든 오월이 되어서야 무심히 지나친 시간을 돌아본다 비가 내린다 장미꽃들은 비를 맞으면서도 화려한 기품을 잃지 않고 황홀한 향기로 세상을 유혹 한다 한참 빨려 들어간 장미꽃들 사이에서 수줍은듯 활짝 핀 옥령화를 보고 멈칫 한다 수수하지만 신선한 꽃망울들 꽃들에서도 잠시 사람의 흔적이 보인다 열렬한 사랑 붉은 장미꽃 겸손한 미덕 하얀 옥구슬 같은 옥령화 사랑을 잊고 살았던 세월의 한쪽 그늘에서 인생의 반쪽 옥령화 같은 사람이면 어떨까 순진한 바램이다 --「공염불」 전문 그는 이 세월이 ‘장미꽃’이 ‘담벼락을 붉게 물든 오월이 되어서야 / 무심히 지나친 시간을 돌아본다’는 무관심이 결국 ‘화려한 기품’, ‘황홀한 향기’, ‘열렬한 사랑’, ‘겸손한 미덕’ 그리고 ‘인생의 흔적’들을 다시 일깨우고 있다. 그것을 그는 ‘공염불’이라는 허무 또는 허망의 세월을 ‘사랑을 잊고 살았던 세월의 한쪽 그늘에서’ 응시하면서 음미하고 있다. 그의 뇌리(腦裏)에는 지나간 시간에서 재생하는 이미지를 많이 대할 수가 있는데 ‘숨소리가 들리는 듯 담 그늘 아래에 / 그들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 세월 쓸어간 바람 한 자락 / 잠시동안 쉬어갔겠구나(「빈집」 중에서)’라거나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으려는 / 부질없는 억새풀의 손짓은 / 늦가을 강가를 바라보면서 / 푸석거리는 그리움을 기억하고 있다(「노을에 안긴 억새풀」 중에서)’는 등의 어조에서 사무치는 세월의 한(恨)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밖에도 작품 「과꽃」 「시월이 다가오면」 「하루의 기억 자 편에서」 「고향」 「소회」 「새날이 밝아오면」 「다시 돌아온」 「개망초꽃」 등등에서 시간성과 교감하는 시편들을 읽을 수 있다. 4. 사랑학과 그리움의 원류를 찾아서 박흥우 시인이 다시 대사물관에 착목(着目)하여 정감으로 흐르는 관념의 구조는 ‘그리움’을 전제로 한 사랑학의 원류를 탐구하는 것이다. 그가 우리 인간들이 필수적으로 추구하고 실현해야 할 부분이 사랑의 실천임을 자각하고 있다. 이 사랑의 유형에는 다양하게 적시된다. 남녀간의 애정을 바롯해서 박애(博愛), 자비(慈悲), 우정, 모정 등 우리의 삶과 무관할 수 없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영혼의 궁극적인 진리라고 말한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의 언지대로 사랑이 넘치는 곳에는 언제나 삶의 활기가 솟아난다. 그런데 박흥우 시인은 이러한 사랑의 원천을 ‘바람’이라는 무형의 사물에서 탐색하고 있는데 원래 바람의 이미지는 만유(萬有)의 자연과 인간들에게 생존에 영향을 제공하는 무한의 자유형이다. 풀냄새가 피어오르는 날은 어김없이 그리움이 물밀듯 밀려온다 그럴 때면 온종일 바람을 맞으며 수많은 생각들을 허공에 던져 놓고 그들이 전하는 상념에 젖어본다 일상의 모든 걸 버리고 고요보다 더 깊은 나락으로 다가서면 흔들리는 감정을 안아주듯 바람은 잔잔히 내 등을 떠밀고 있다 절절히 그리움에 젖어본 사람만이 외로움을 아는 것처럼 바람에게 위로를 받고 싶을 뿐이다 밀려오는 그리움이 풀냄새로 스미는 날은 온종일 바람의 숨결 속에 젖어 본다 바람을 맞으며 바람이 된다. --「온종일 바람 속에서 」 전문 이 시는 이 시집의 표제시가 되는 작품인데 ‘바람’을 통해서 바람과 더불어 작품을 전개하고 있다. 그는 ‘온종일 바람을 맞으며’, ‘바람은 잔잔히 내 등을 떠밀고 있다’, ‘바람에게 위로를 받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바람을 맞으며 바람이 된다.’는 등의 어조로 ‘바람’을 매개체로 해서 자신의 사유의 궁극적인 핵심을 분사하고 있다. 이러한 현생은 ‘바람’이 주된 이미지, 흔들림을 형상화하고 있는데 바람이 불면 ‘그리움이 물밀 듯 밀려’오고 또는 ‘수많은 생각들을 허공에 던져 놓’는다. 그가 하루 종일 바람 속에서 ‘흔들리는 감정’으로 ‘일상의 모든 걸 버’리게 되는 시적 정황에서 그리움과 외로움이 엄습(掩襲)하는 일상이 그의 내면에 잠재(潛在)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박흥우 시인의 사랑학이 생성하는 단초를 발견하게 된다. 바람과 함께 흔들리는 그리움과 외로움이 원초적으로 그에게 내재된 사유를 흔들어 깨우고 있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아 / 봄날에 피는 꽃도 / 정겨운 웃음도 / 사랑 실은 바람도 / 너의 것이고 나의 것이려니(「사랑이 안겨올 때」 중에서)’라는 어조에서 읽을 수 있듯이 사랑은 언제나 바람과 동행하고 있는 것이다. 너에 대한 내 사랑이란 무엇인가 깊은 산골짜기에 갇힌 바람 같은 것들 꾸역꾸역 모아둔 가여움 같은 것들 어느 틀에 가두어 놓은 연민 일까 우리가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서로가 원하는 것들은 사랑도 미움도 헤어짐도 다 바람 같은데 폭풍이 불어오는 벼랑 끝에서 흔들어 보는 내 마음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 빈 하늘만 바라본다 --「방황」 전문 여기에서도 ‘너에 대한 내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형으로 시적 상황을 설정한다. 그리고 바로 ‘깊은 산골짜기에 갇힌 바람 같은 것들’이라고 해답을 제시하고 있어서 ‘사랑=바람’이라는 등식을 성립시키고 있다. 그는 다시 ‘서로가 원하는 것들은 / 사랑도 / 미움도 / 헤어짐도 다 바람 같은데’라고 더욱 사랑에 대한 정의를 확고하게 정립시키려고 하는데 ‘폭풍이 불어오는 벼랑 끝에서 / 흔들어 보는 내 마음’으로 연약성이 어쩌면 더욱 다정다감한 심려(心慮)가 결국 ‘빈 하늘만 바라’보는 공허로 현현되고 있다. 박흥우 시인의 사랑학의 정체는 그리움과 외로움 그리고 기다림의 미학(美學)이 상존(常存)하면서 아픔과 이별 등이 복합적으로 상호 교감함으로써 시적인 정감을 배가(倍加)하는 효과를 나타내고 있어서 우리들의 공감은 확대되고 있다. 그는 ‘사랑은 / 사랑을 버려야만 다시 온다(「내게 다가온 사랑」 중에서)’거나 ‘사랑하는 사람들도 결국은 헤어지는 것에 익숙하다고 / 삶을 위한 한 편의 작은 이별들(「동행」 중에서)’처럼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자까지도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날들 예쁜 만큼, 아픈 만큼, 시리도록 따뜻했던 사랑, -「시린 추억」 중에서 언제나 사랑에는 아픔이 있다. 그것은 이별이다. ‘아쉬움마저 얹혀가는 철길에서 / 곱게 흔들리는 코스모스의 따뜻한 몸짓은 / 바람에 실려 보내주는 위안일까(「간이역」 중에서)’처럼 바람과 함께 ‘위안’을 간구(懇求)하는 시법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5. 계절적 이미지 변화와 서정시학 박흥우 시인의 계절의 향취에 흠뻑 젖어 있다. 사계절이 모두 그의 사유의 무대이며 정서 환기(喚起)로 전환하는 대지의 광장이다. 춘하추동(春夏秋冬) 사계(四季)에서 동화(同化-assimilation)나 투사(投射-project)하는 그의 시흥(詩興)과 주제의 창출을 위한 시적 전개는 다양하며 표현되는 시문장의 기승전결(起承轉結) 구도와 주제의 투영도 다채롭게 현현되고 있다. 우선 사계에 대한 간명(簡明)한 감응은 다음과 같이 간추려 볼 수 있을 것이다. -(봄) 봄을 / 기다리는 것은 그리움이다 / 연두 빛 사랑이다(「그리움이 건네준 것은」 중에서) -(여름)꽃 피고 새 우는 / 상큼한 여름날 / 아침 이슬 머금고 / 그리움으로 피어난다(「능소 화」 중에서) -(가을)쓸쓸함을 헤집던 눈길은 / 알 수 없는 시를 남겨준 그런 가을이었지 / 어느 늦가을의 풍경(「가을 소묘」 중에서) -(겨울)티 하나 없는 순수한 옛 기억들이 / 한꺼번에 가슴속으로 오르내린다 / 이게 바로 신 열인가 / 창문을 두드리는 눈 소리에 / 겨울은 뜨거워진다(「눈의 영토」 중에서) 우리는 금방 알 수 있듯이 봄과 여름은 ‘그리움’에 대한 감상적인 언술이고 가을과 겨울은 ‘쓸쓸함’과 ‘옛 기억’들이 계절적인 이미지로 부각(浮刻)되고 있다. 철학자 바슐라르는 ‘계절은 추억의 기본 표지(標識)이다’라는 말로 계절을 찬미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우리나라처럼 사계가 뚜렸한 계절의 변화가 곧 우리들의 삶과 분리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박흥우 시인은 이 계절의 민감성에 대해서 ‘계절은 / 햇살의 시선이 닿는 자리마다 / 둥글게 자아의 세월을 품어 / 지나고 있는 한 시절에 아쉬움을 토한다(「그리움이 건네준 것은」 중에서)’는 어조와 같이 변화무쌍(變化無雙)한 사계절의 정경(情景)들이 시간성과 함께 시적 소재를 무한으로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겨우내 얼어붙은 들녘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하얀 눈의 세상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시간은 계절을 거침없이 밀어내 봄을 가져오고 있는 중이다 가야할 것과 오는 것들은 분명히 있다 봄이 오는 길 따스한 햇살 아지랑이 피는 대지가 된다 동행한 생명들은 내리는 비에 젖고 세상은 푸르게 변해 가고 있다 -- --「봄이 오면」 전문 우선 박흥우 시인은 봄에 대해서 과민(過敏)하리만큼 많은 이미지를 재생시키고 있다. 봄은 뭇 생명의 탄생에서 추출하는 경이와 신비감에서 새 희망의 출발을 적시하는 아름다움의 계절이다. 다시 소생하는 만물의 정감은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하얀 눈의 세상’에서 ‘세상은 푸르게 변해 가’는 자연의 조화와 섭리는 우리 인생의 황홀한 감정으로 수 놓이게 한고 있다. 이처럼 봄을 노래한 작품은 「안부」 「붉은 전령」 「시대를 거슬러서」 「꽃이 되어 슬프다」 「뚝배기 속의 봄」 「봄」 「봄을 만나다」 등 봄을 찬미(讚美)하거나 시적인 정감을 투영하는 미적인 찬사(讚辭)를 읽을 수 있어서 공감하게 된다. 계절 앞에서 돌아서는 건 가을이라고 허공에 흩어지는 이별의 예감 때문에 눈앞이 자꾸 흐려진다 가슴이 시린 것은 혼자라서가 아니다 기다려야 할 것도 그리워해야 할 것도 굳이 없지만 약속이나 한 것처럼 쓸쓸해지는 도시의 거리로 나선다 사람들은 어디론가 흘러가고 누군가는 누구를 기다리면서 서성댄다 가을은 낙엽을 길거리로 내몰고 있고 서걱거리는 아픔을 바람에 실어보낸다 쓰리고 아프다 방황하는 이 거리에서 또 어디로 가야 할까 가을이 하얗게 익어 가고 있다 --「아프다」 전문 그는 다음으로 가을에 심취(深醉)한다. 가을은 분명히 풍요의 계절이다. 만물이 결실하는 풍년에서 심적물적으로 풍성한 삶을 이어주는 현상에서도 우리 시인들은 ‘낙엽’과 늦가을 등에서는 어쩐지 ‘이별의 예감’이나 고적함이 ‘쓰리고 아프다’는 가을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그는 다시 ‘이 가을 끝자락이 시였을까 // 밀려오는 쓸쓸함은 / 알 수 없는 수많은 생각들로 채워지고 / 휑하니 비워진 들녘, / 나부끼는 풀 섶 그늘에서 / 덧없이 사라지는 시의 잔재들이 아른거린다(「가을 소묘」 중에서)’는 어조와 같이 ‘시’라는 그의 심연에 고이 간직한 정념(情念)을 토로하고 있어서 그의 인생괴 시적인 진실을 이해하게 된다. 이 밖에도 가을 소재에서 그리움, 이별, 외로움, 공허함 등의 이미지가 주제를 투영하고 있으나 ‘손바닥에 올려놓고 / 낙엽을 본다. / 가을을 찾으려는 듯이 // 바람이 불어와 낙엽을 날려 보낸다 // 꿈을 꾼다(「낙엽에는 추억이 있다」 전문)’와 같이 간명하게 이미지를 요약하면서 낙엽과 추억이 대칭하는 시법은 또 다른 박흥우 시인의 시적 면모를 이해하게 한다. 그는 겨울에 대한 메시지도 심금(心琴)을 흡인하는 시편들이 많이 있다. ‘쓸쓸한 바람과 하얀 눈 속에 머문다 / 동지섣달 긴긴밤에(「겨울 밤」 중에서)’, ‘하얗게 변한 세상은 거스르지 않는 스산한 풍경을 늘어놓았다(「겨울의 흔적」 중에서)’ 그리고 ‘저만치 앞서가고 있는 황량한 풍경(「겨울로 가는 길」 중에서)’ 등의 어조는 쓸쓸하거나 스산하거나 또한 황량한 사계의 변화에서 창출하는 서정적 시학을 다변적으로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 박흥우 시집 『온종일 바람 속에서』 읽기를 마무리 한다. 그는 우선 ‘나’에 대한 존재의 인식과 긍정에서 상당한 인생의 질량의식을 탐색하고 있으며 이러한 의식의 흐름에는 시인의 예감이 어떤 영감(靈感-inspiration)으로 현현되고 있어서 그의 내면에는 다양한 사물과 관념의 이미지가 항상 한 편의 작품 창작을 위해서 축적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한다. 그러나 시적 표현에서 몇 가지 문제를 유념해야 한다. 일찍이 호라티우스의 「시론」에 보면 시는 아름답기만 해서도 안되고 사람의 영혼을 뒤흔들면서 뜻대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는 표현이나 주제가 선명하게 함축(含蓄)되어 독자들과의 공감을 유로해야 하기 위해서 기승전결의 명석한 시적 구조의 형성에 더욱 심혈을 투자해야 할 것이다. 이 밖에도 시의 언어의 적용에도 몇 가지의 시법이 있다. 언어의 절약과 언어의 조탁(彫琢)이라는 측면에서 동일한 단어를 시 한 편에서 자주 사용하게 되면 설명문으로 바뀔 우려가 있다. 또한 사물에 대해서는 의인법이나 다른 이미지화해서 표현되어야 시적인 묘미가 충족하게 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제2시집에서 더욱 승화한 이미지와 표현법으로 시적미학을 창조하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