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반야선원 7월 10일 3지장도량 순례3️
본래 도솔산이었으나 백제 때 창건한 선운사가 있어
선운산이라 널리 불리게 되었습니다 ㆍ
선운이란 '구름속에서 참선한다'는 뜻이고
도솔이란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궁'이라는 뜻이며
모두 '불도를 닦는 산'이라는 의미입니다ㆍ
일주문에는 도솔산 선운사로 쓰여 있습니다.
선운사는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도솔산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입니다 ㆍ
일주문을 지나서 초록의 채양길을 따라 가면 선운사의 역사에 나오실 듯한 고승대덕 스님들의 부도와 비가 있습니다.
선운사는 백제 27대 위덕왕 24년(577)에 검단선사가 창건된 사찰이며, 숭유억불정책의 조선시대에도 왕실의 원찰로 법등을 밝힌 곳이라고 합니다.
《선운사의 역사와 오늘》
선운사는 백제 27대 위덕왕 24년(577)에 검단선사가 창건한 뒤 통일신라기의 역사는 전하지 않으며, 고려 공민왕 3년(1354)에 효정 스님이 퇴락한 법당과 요사를 중수하였다.
조선시대에 절을 크게 중창한 스님은 행호극유 스님이시다. 행호스님은 성종의 숙부인 덕원군의 도움을 받아 1474년에 2층의 장육전과 관음전을 완공한 이래 10여 년에 걸친 대작불사를 통하여 선운사의 옛 모습을 되찾아 숭유억불의 조선시대임에도 왕실의 원찰로 법등을 환하게 밝히게 되었다.
그러나 선조 3년(1597)의 정유재란 때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고, 이후 광해군 5년(1613) 봄에 일관스님과 원준스님이 힘을 합하여 1619년까지 6년에 걸쳐서 보전, 법당, 천불전, 지장전, 부도전, 능인전을 중건하여 다시 사찰의 골격을 갖추게 되었다. 이후 1720년까지 중건과 중수가 계속되었고 그 뒤에는 외형적인 불사보다는 걸출한 고승대덕들이 많이 배출되어 사격을 드높였다.
조선후기 화엄학의 대가인 설파상언 스님과 조선후기 선문의 중흥조 백파긍선 스님을 비롯하여 구한말의 청정율사 환웅탄영 스님, 그리고 근대불교의 선구자 석전 박한영 스님이 선운사에 출가하거나 수행하시면서 당대의 불교를 이끌었던 명문사찰이 되었다.
선운사 대웅보전은 보물 제290호이며 여기에 모셔진 세 분의 부처님은 보물 제1752호이다.
지장보궁에 계시는 금동지장보살좌상은 보물 제279호이고, 영산전목조삼존불상, 육층석탑, 범종, 만세루, 화엄종주백파대율사대기대용지비를 비롯하여 석씨원류, 선운사사적기 등의 중요한 문화재들이 보존되어 있으며, 경내의 동백나무숲, 장사송, 송악은 천연기념불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조계종 초기불교 전문교육기관인 선운사 불학승가대학원에서는 불학연찬에 매진하고 있으며,
산내 암자인 참당암에서는 수좌스님들이 참선수행을 통해 부처님의 혜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불교의 사회적 실천을 위해 선운사 창건주이신 검단스님의 중생구제의 원력을 이어 고흥군종합사회복지관을 운영하고 있답니다ㆍ
선운사 천왕문 앞에는 아취형 석교인 극락교가 있습니다.
《천왕문 》
《사천왕상 》
《생령좌》
도솔산 선운사의 천왕문에는 사천왕상이 있습니다.
사천왕상 발 밑에는 일반적으로 악귀들이 있는데
선운사 사천왕상 발 밑에는 일반적인 악귀와는 달리
남방 증장천왕 아래는 음녀가 있고,
서방 광목천왕 발 밑에는 탐관오리가 있다고 하니 눈여겨
볼 일 입니다.
《만세루 보물 제 2065호》
《전통 다도 체험을 하다 》
천왕문을 지나면 선운사의 만세루가 있습니다.
대웅보전과 천왕문 사이에 있는 만세루는 선운사 창건 당시부터 있었다고 하는데 그동안 여러 차례 중수를 하였어도 7백년이나 된 기둥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천왕문을 지나서 왼쪽에 있는 범종각 입니다.
《대웅보존 보물 제 290호》
만세루를 지나서 대웅보전 앞으로 갔더니 보물 제290호인 대웅보전은 보수 중이네요.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 보물제 1752호》
대웅보전 안에는 보물 제1752호로 지정된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이 있는데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여래와 아미타불이 앉아 계신답니다.
고창 선운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
광명의 부처님이신 비로자나불과
중생의 모든 질병을 고쳐주시는 약사여래불,
괴로움과 고통이 없는 안락하며 자유로운 극락정토의 주인인 아미타불을 직접 친견하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에 선운사 홈페이지에서 세 분의 부처님을 모셔왔습니다.
고창 선운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은 중앙에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여래와 아미타불이 앉아 있는 삼불상을 말한다. 비로자나불은 보통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광명의 부처이다. 약사여래는 중생의 모든 질병을 고쳐 주는 부처이고, 아미타불은 괴로움이 없는 안락하며 자유로운 세상인 극락정토의 주인이 되는 부처이다.
선운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은 나무 기둥을 세워 윤곽을 바로잡고 흙을 바르고 천을 덧씌운 뒤에 금박을 입힌 소조 불상이다. 선운사 불상은 조각적 종교적으로 매우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불상의 넓고 당당한 어깨, 긴 허리, 넓고 낮은 무릎 등은 16세기부터 17세기 전반까지 유행한 장대하고 웅장한 형태미를 보여준다.
특히 불상의 받침에 승려 무염 등 10여 명이 1633년에 이 불상을 조성하였다고 구체적으로 기록되고 있고, 비로자나, 약사, 아미타라는 삼불의 명칭을 분명히 구분하고 있어 17세기 불상 연구에 기준이 되는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일반적으로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을 , 대적광전에는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시는데 선운사에는 대웅보전임에도 불구하고 비로자나불을 모신 것이 특징이다.
선운사 대웅전은 지붕 긴급보수 공사 중이며
선운사대웅전공사기간은 2021. 10. 18 ~ 2022. 10.12일 까지이니 올 가을이 지나서 선운사를 가시면 대웅보전 참배가 가능하겠어요.
《고창 선운사 대웅전 보물 제290호》
대웅전은 절에서 특별히 숭배의 중심이 되는 주요 불상을 모신 법당이다. 선운사는 구름 속에서 참선 수도하여 큰 뜻을 깨친다는 뜻인 '참선와운(參禪臥雲)'에서 이름이 유래하였으며, 대한불교조계종 24교구 본사로 189개의 승려 생활시설과 89개의 작은 절 그리고 144개의 굴(窟)을 거느리던 호남 제일의 사찰이다. 선운사는 6세기 백제 위덕왕 때인 577년에 검단 선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현재의 대웅전은 정유재란 때 거의 불에 탄 것을 광해군 때인 1610년대에 다시 건축한 모습이며 그 뒤로도 수차례 수리하였다.
선운사 대웅전은 비교적 높은 석축 위에 세웠고 정면이 측면에 비해 2배 이상 크다. 기둥의 일부는 휘어진 나무를 그대로 사용하여 자연미가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외관은 장중하며 안쪽은 단청 벽화가 매우 라름답고 세련된 모습이다. 천장의 수많은 용들이 구름 속에 몸을 감추고서 선운사를 수호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섬세하고 화려하다.
일반적으로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가운데로 하고 좌우에 부처를 모시는 보살을 두는데, 선운사 대웅전은 비로자나불을 가운데 두고 좌우에 서방 극락정토의 주인인 아미타여래불과 중생의 병을 고쳐주는 약사여래불을 모시고 있다. 이러한 구성은 모두 부처의 육신이 아닌 진리의 모습인 비로자나불과 석가불을 일체로 보는 사상적 배경에서 출현한 것으로 보인다.
대웅보전 앞에는 선운사 육층석탑이 있는데
원래는 9층이었으나 현재는 6층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영산전》
《영산전 목조 삼존불 유형문화재 제28호》
대웅보전이 보수 공사중이라 영산전이 주법당 역할을 하고 있어요.
본래는 약 4.8m의 장륙존상을 모셔서 장육전이라고 하였으나
1821년경에 석가모니부처님과 제화갈라보살, 미륵보살 등
삼존불을 모시고 영산전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향나무 목조 삼존불상 주변에는 16나한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선운사 영산전 목조삼존불상
영산전은 석가모니의 일생을 기리고 그 행적을 보여 주는 전각이다. 선운사 영산전은 본래는 키가 1장 6척(약 4.8m)이 되는 장륙존상(丈六尊像)을 모셔 장육전이라 하였으나, 건물이 기우는 등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1821년 경부터는 영산전이라 하고 향나무를 조각한 3개의 불상을 봉안하였다.
목조삼존불상을 모신 이곳에는 석가모니가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후 대중에게 불교의 가르침을 이르는 광경을 묘사한 탱화(부처, 보살, 성현들을 그려서 벽에 거는 그림)가 있다. 영산전 안에는 향나무를 조각하여 금을 입힌 석가여래좌상(고오타마 싯다르타의 성불 후 이름)을 주불고 하여 좌우에 갈라보살(연등불의 화신)과 미륵보살(미래에 중생들을 구제하는 보살) 입상, 그 주위에 16나한상을 두었다.
석가여래좌상은 16각의 난간을 두른 나무로 된 연꽃무늬 좌대(불상을 올려 놓은 대) 위에 있다. 양쪽의 보살은 화려하게 장식된 관을 쓰고 손에는 연꽃을 들고 있다. 이 불상들에서는 획일적인 얼굴 형태와 딱딱한 표정, 단순한 몸의 굴곡, 평평한 옷 주름 등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이 잘 나타난다.
《조사전》
《명부전》
《팔상전부터 참배를 합니다.》
팔상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를 여덟 장면으로 묘사해서 그림을 그린 팔상성도를 봉안하는 곳이랍니다.
팔상전(八相殿)은 석가모니의 행적 가운데 극적인 여덟 장면을 그림으로 나타낸 팔상 탱화(幀畵)를 봉안하는 곳이다.
이 곳에도 1706년의 중건 때 함께 봉안한 팔상 탱화가 있었으나 현존하지 않고, 현재는 1900년에 새로 조성된 팔상 탱화 중 2점이 남아 있다.
석가 여래 좌상도 근래에 새로 조성한 것이며, 본존 뒤의 후불 벽화 역시 1901년에 조성된 것이다.
《산신당》
팔상전 옆에는 산신당이 있으며
팔상전과 산신당 사이에는 선운사의 유명한 동백나무 숲이 있습니다 ㆍ
선운사의 대웅보전 아래쪽에는 관음전이 있는데
선운사 관음전은 한국삼십삼관음성지 중 제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관음전에는 천수천안관세음보살상과 천수천안관세음 탱화,
그리고 오른쪽 벽에는 신중탱화가 있답니다.
《금동지장보살좌상 보물 제279호 》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지장기도 도량인 선운사에는 지장보궁 현판이 걸려 있는데, 지장전에 '보궁'이라고 표현하는 곳은 처음 봅니다.
보물 제279호인 선운사 금동지장보살좌상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 여름에 일본으로 도난을 당했었는데 지장보살상의 영험함으로 인해 2년만에 선운사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답니다.
고창 선운사 금동지장보살좌상은 청동 표면에 금칠을 한 지장보살상이다.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원하고자 지옥에 몸소 들어가 죄지은 중생들을 교화 구제하는 지옥세계의 부처를 말한다. 부처가 없는 시대. 즉, 석가모니불이 사라지고 미래불인 미륵불은 아직 출현하지 않은 시대에 중생들을 교화하는 부처이다. 선운사 지장보살상은 불상의 머리에 두건을 쓴 모습, 넓적하고 편평한 얼굴, 형식적이고 수평적인 옷 주름 처리 등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이 불상은 일제 강점기에 도난을 당하게 되는데, 불상의 영험함으로 인해 다시 선운사에 모셔지게 되었다.
일본으로 도난당한 지장보살상은 불상 주인의 꿈에 수시로 나타나 "나는 본래 고창 도솔산에 있었다. 어서 그곳으로 돌려 보내 달라"라고 하였으나 불상의 주인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점차 가세가 기울고 병이 들게 되자 불상 주인은 불상을 다른 사람에게 처분하기에 이른다, 그 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도 같은 일이 반복되자 불상을 소장하고 있던 사람이 고창 경찰서에 신고하고 반화람으로서 선운사 지장보살상은 도난당한 지 2년 만에 선운사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위 사진은 1938년 11월 반환 당시를 기념하는 사진과 이 사건을 간략하게 정리한 내용이다.
불상을 소장하면서 생기는 불상사는 소문이 퍼지고
마지막으로 소장하게 된 사람이 고창 경찰서에 불상을 모셔 갈 것을 부탁하여 당시 선운사 스님들과 경찰들이 일본 히로시마로 가서 모셔왔다는 신통력을 지닌 지장보살님!!!
한국의 대표 지장기도 도량인 고창 도솔산 선운사 천왕문을 나와서 초록의 물감을 풀어 놓은 듯한 길을 따라 발걸음도 가볍게
선운사의 순례를 마칩니다ㆍ
YouTube에서 '◼️고창 도솔산 선운사◼️해운대 반야선원 불기2566년7월10일 지장도량 사찰순례 해설 청파 박종안 법사님' 보기
https://youtu.be/BgVNL3TsU7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