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법정] ②
37년간 혼인외자였던 '친아들'…현대판 '홍길동'
北·中도 폐지한 유일무이 '동성동본금혼제'
1997년 '헌법불합치' 선고시대상 변화에 '8족 이내 혈족 금혼' 조항도 도마에
(서울=뉴스1) 심언기 기자 | 2022-05-02 06:05 송고 | 2022-08-17 12:05 최종수정
편집자주 판결은 시대정신이다.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가치와 때론 나아 가야할 방향을 담고 있어서다. 우리 사회는 짧은 기간 압축적으로 성장하면서 여러 차례 격변기를 거쳤다. 이 때문에 1년 전에는 옳다고 믿었던 시대정신이 오늘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역사의 변곡점에서 과거와 정반대의 판결이 많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건의 판례를 통해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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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헌법소원·위헌법률 심판 선고를 위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자리하고 있다. 2022.2.24/뉴스1 © News1 허경 기자 |
#. A씨는 1996년 사랑하는 이와 결혼을 위해 자신의 성(姓)을 버리고 박모씨란 가공의 인물이 됐다. 동성동본 금혼 규정을 피하기 위해서다. 예비 시어머니의 지인인 박모씨의 딸로 출생신고를 한 뒤 숨죽이며 살아왔다. A씨는 70대에 접어들어 또 다시 마음고생에 시달렸다. 이중호적을 가진 자신이 사망하면 자녀들에게 유산 상속이 힘들 것이란 걱정에 밤잠을 설쳤다. A씨는 고민 끝에 자신을 상대로 '셀프소송'을 제기했다. 시어머니 지인 박모씨와 자신 사이에 친생자 관계가 없음을 확인해달라고 법원에 호소했다. A씨가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데는 40년이 걸렸다.
유교 사상이 짙게 배어있던 20세기말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성(姓)과 본관(本貫)이 같은 동성동본 간 결혼이 금지됐다. 남성의 성을 물려받는 관습 속 혈족이란 인식으로 동성동본은 '근친혼'으로 간주됐다.
생물학적 근거조차 없는 유교 사상의 잔재로 많은 이들이 수 십년간 자신의 권리를 제약받았다. 의료보험이나 가족수당, 상속, 세금공제 등에서 각종 불이익을 감내해야 했다. 혼인신고조차 불가능해 자녀를 혼인외자(婚姻外者)로 호적에 올려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A씨 사연은 지난 2009년 법률구조공단의 도움을 받은 실제 사례다. 혼인신고를 못해 공무원 유족연금을 반려자가 수급받지 못하거나, 지인·친척의 호적에 자신의 아이를 등록해야 했던 드라마같은 일들이 불과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비일비재했다.
동성동본 위헌심판제청 사건은 관습법이 헌법상 기본권과 충돌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부계 혈족 중심의 성불평등 가족법의 각종 제·개정에 물꼬를 튼 판결이란 평가도 많다.
◇중국·북한도 일찌감치 폐기했지만…전세계 유일 '동성동본금혼'
2일 법조계에 따르면 동성동본금혼 규정의 시작은 1960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우리나라 민법은 1948년 제정 작업에 돌입해 1958년 제정됐다. 공포 기간을 거쳐 1960년 1월1일부터 시행됐다. 당시 제정된 민법 809조 제1항은 '동성동본인 혈족 사이에서는 혼인하지 못한다'고 명시했다.
전세계에 동성동본간 금혼을 법으로 규제하는 국가는 대한민국이 유일했다. 유교적 동성동본 금혼의 시발점이 된 중국에서조차 1931년 폐지됐고, 북한에서도 1948년 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며 금혼제가 사라졌다.
반면 민법 조항에 따라 우리나라에선 동성동본 부부가 실질적으로 혼인 생활을 영위해도 법적으로는 이를 인정받지 못했다. 가부장적 문화가 강했던 당시 사회분위기 속에서 동성동본 부부도 이를 공론화하기 보단 불이익을 스스로 감내하는 선택을 했다.
민법 시행 이후 시간이 흐를수록 동성동본간 결합 사례는 꾸준히 누적됐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하며 동성동본간 결혼 역시 크게 증가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해 동성동본금혼 규정을 손봐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그러나 당시 유림을 비롯한 보수층의 극렬 반대로 동성동본 금혼 규정은 40년 가까이 유지됐다. 정부와 입법부도 가부장적 사회상과 반발을 감안해 법 개정 등에 미온적이었다. 대신 '혼인에 관한 특례법'을 제정해 △1977년(4577쌍) △1988년(1만2443쌍) △1996년(2만7807쌍) 등 세 차례 사실혼 상태의 동성동본 부부의 혼인신고를 받아 구제하는데 그쳤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도 이같은 당시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극중 성선우, 성보라 커플은 동성동본이란 이유로 가족들의 거센 반대에 직면한다. 성보라가 "내년에 동성동본 결혼을 한시적으로 허락한대. 국회에서 법안 준비 중이야"라며 웃는 장면이 나온다.
헌법상 남녀평등에 위배되고 각종 기본권 침해가 심각하다는 비판과 문제제기는 사회상 변화에 따라 점차 힘을 얻기 시작했다. 이에 힘입어 혼인신고를 거부당한 동성동본 부부 8쌍은 1995년 서울가정법원에 관악구청장을 상대로 불복신청을 제기했다. 같은해 5월17일 가정법원은 헌재에 위헌심판제청을 신청했다.
사회문제에 관한 메시지를 담은 곡을 다수 발표했던 고(故) 신해철씨는 자신이 속한 록그룹 넥스트를 통해 1995년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 신곡을 내놨다. 동성동본금혼 문제를 공론화한 해당 곡은 당시 위헌심판 제청과 맞물려 상당한 사회적 논의를 촉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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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8촌 이내 혈족 사이의 혼인을 금지하고 이를 혼인무효 사유로 규정한 민법조항이 위헌인지를 판단하기 위한 공개변론이 열리고 있다. 2020.11.12/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
◇'동성동본금혼' 37년만에 '헌법불합치'…극심한 진통 속 2005년에야 법개정
서울가정법원은 동성동본금혼 조항에 대한 위헌심판을 제청 사유로 △행복추구권 향유에 중대한 장애 △남계(男係) 혈족만을 문제삼아 여성들의 평등권 침해 △의료보험·급여·가족수당 등 근로관계에서 오는 불이익, 상속 등 재산문제, 행정상의 신고 등 심각한 장애에 따른 헌법상 혼인과 가족생활의 권리 침해 등을 제시했다.
헌재는 2년여 간 심리를 거쳐 1997년 7월16일 재판관 9인 중 2명만이 합헌 의견을 내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했다. 5명은 '단순위헌', 2명은 '헌법불합치'로 판단했다. 헌법재판소법상 심판정족수(6명)에는 이르지 못해 '위헌'이 아닌 '헌법불합치'를 선고했다. 1960년 민법 시행 이후 37년만의 일이다.
헌재는 "사회적 타당성 내지 합리성을 상실하고 있음과 아울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을 규정한 헌법이념 및 규정과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에 기초한 혼인과 가족생활의 성립·유지라는 헌법규정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며 "금혼의 범위를 남계혈족에만 한정해 성별에 의한 차별을 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유전학적인 이유로 근친혼을 금지해야 한다면 이는 남계혈족 뿐만 아니라 여계혈족에게도 똑같이 문제가 되는 것인데 동성동본금혼제는 남계혈족만을 문제삼고 있을 뿐"이라며 "유전학적인 질병의 발생빈도가 이성간 또는 동성이본간의 혼인의 경우보다 특히 높다는 아무런 과학적인 증명도 없음이 밝혀져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헌재는 "위헌으로 본다 하여 헌법재판소가 동성동본인 혈족 사이의 혼인을 권장한다거나 기존의 보편타당한 윤리 내지 도덕관념을 모두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둔다"고 덧붙였다.
헌재는 동성동본금혼 조항을 1998년 12월31일까지 개정하고, 미개정시 1999년부터 효력이 상실된다고 결정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1998년 11월 해당 조항을 삭제한 민법개정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유림 등 반발 여론의 눈치를 살피던 국회는 동성동본금혼 조항을 1999년까지 유지하기로 의결했다.
헌재 판결로 사문화됐지만 동성동본금혼 조항이 역사의 뒤안길로 완전히 사라지기까진 8년이 더 걸렸다. 2005년에서야 비로소 동성동본금혼 조항이 민법에서 삭제됐다.
◇'8족 이내 근친혼 금지' 조항도 도마에…헌법소원 4년째 결정 유보
헌재 판결로 유가사상에 입각한 구시대적 동성동본 금혼 규정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어디까지 '근친혼'이냐를 두고는 논쟁이 여전하다.
개정된 민법 809조 제1항은 여전히 '8촌 이내의 혈족(친양자의 입양 전의 혈족을 포함한다) 사이에서는 혼인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8촌 이내 결합을 '근친혼'으로 본 것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근친혼의 범위는 3촌 이내 직계혈족 수준이고, 근친혼에 대한 규정이 없는 국가도 많다.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는 3촌 이상 방계혈족 사이의 혼인을 허용한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은 4촌 이상 방계혈족이면 혼인이 가능하다. 우리나라가 유독 광범위하게 근친혼의 범위를 설정해 기본권을 제한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8촌 이내 근친혼 금지 민법에 대해선 위헌 소송도 제기됐다. 지난 2016년 A씨는 6촌 사이인 B씨와 혼인신고를 했다. 이후 B씨가 혼인무효확인의 소를 제기해 혼인이 취소됐다. A씨는 가정법원에 항소하는 한편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그러자 A씨는 2018년 2월19일 헌법소원심판을 재차 청구했다.
헌재는 2020년 11월12일 공개변론을 열고 의견을 수렴했다. 위헌 찬성측에선 해외 국가들 사례를 지적하며 "유전학적 관점에서도 6촌 내지 8촌인 혈족 사이 혼인의 경우 그 자녀에게 유전질환이 발현될 가능성이 비근친혼 자녀의 경우와 거의 차이가 없다"고 지적한다. 침해의 최소성 및 법익의 균형성에 위반된다는 주장이다.
반면 이해관계인 법무부 측은 "심판대상조항은 근친혼부부 사이에서 출생한 자녀들에게 나타날 수 있는 유전질환 및 생물학적 취약성을 방지하고, 우리 민족의 혼인풍속 및 친족 관념에 기초한 전통을 이어 받으며, 공동체 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목적의 정당성 및 수단의 적합성이 인정된다"고 맞섰다.
8촌 이내 혈족간 금혼 규정에 대한 헌법소원은 4년 넘게 헌재에 계류 중이다. 옅어진 친족의식과 해외 사례, 유전학적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 중인 헌재는 쉽사리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수 십만명이 영향을 받은 동성동본 금혼 문제와 달리 8촌 이내 금혼의 대상자가 많지 않아 사회적 공론화는 지지부진하다. 헌재의 판단이 지연되는 사이 올 4월1일 민법 제809조 제1항에 대한 위헌확인 신청이 추가로 접수됐다.
eonki@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