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가 하느님께 아뢰었다. "제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서,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고 말하면, 그들이 저에게 '그분 이름이 무엇이오?' 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다" 하고 대답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14-15) '그분 이름이 무엇이오?' 라고 번역된 '마 셰모'(ma shemo)에서 '이름'을 뜻하는 '솀'(shem)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고대 근동 사회에서 '솀'(shem)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어떤 사람을 부르는 데에만 사용되었던 것이 아니고,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의 성격이나 신분 또는 운명등을 반영하였다(창세17,5.15; 32,28).
따라서 과거 사람들은 그 이름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알았으며,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했다(창세14,22; 16,13; 17,1). 창세기 14장 22절에서는 아브라함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이신 주님'으로, 창세기 16장 13절에서는 하가르가 '저를 돌보시는 하느님'으로, 창세기 17장 1절에서는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전능한 하느님'으로 소개하고 불렀다. 이런 이름들은 모두 하느님께서 누구인가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한편 고대 근동의 임금이나 군주들은 사신을 보낼 때, 그 사신에게 자신의 권위를 전적으로 위임한다는 의미에서 자신의 이름이 담긴 인장을 주거나 아니면 그 인장이 찍힌 편지를 주었다. 모세는 이러한 차원에서 하느님의 신임을 요구한 것이다.
'나는 있는 나다'
'나는 있는 나다'의 원문은 '에흐예 아셰르 에흐예'(ehye asher ehye)이다. '에흐예'(ehye)는 '있다'(창세1,2)라는 뜻의 영어의 'be'동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야'(haya)의 1인칭 미완료형 으로 '나는 존재한다'(I am) 또는 '나는 ~이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아셰르'(asher)는 'that, which, what, who' 등과 같은 관계대명사이다. 즉 '~것', '~자'의 의미로, 뒤에 나오는 문장을 묶어 앞뒤로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에흐예 아셰르 에흐예'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I AM WHO I AM')라는 뜻이다. 히브리어에서 동사의 미완료형은 완료되지 않은 동작이나 계속되는 상태를 나타낸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시간 개념처럼 시작과 끝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영원으로부터 영원까지 존재하시는 분이심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묵시1,4.8).
이것은 결코 스스로는 존재할 수 없고 무엇인가 앞선 원인에 의해서만 존재하면서 또한 그 원인에 의해서 지배당할 수밖에 없는 여타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유일하게 스스로 존재하시며, 따라서 모든 원인으로 부터 자유로우시고 나아가 다른 모든 피조물이 존재할 수 있는 궁극적 원인이 되어 주시는 하느님의 유일한 자존성(自存性)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영원자존자'(永遠自存者)이시다.
하느님께서는 이처럼 여타 피조물과 비교할 때, 당신의 고유한 본질과 성품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자존성을 나타내는 칭호를 당신의 이름으로 삼으신 것이다.
이것은 초월적 절대자로서 모든 인과(因果) 법칙을 초월하셔서 자존하시는 분으로서 전 우주에 퍼져 있는 여타 모든 피조물들의 궁극적 근거와 기반이 되시는 하느님의 자존성(自存性)과 영원성(永遠性) 과 절대성(絶對性)을 그대로 반영한 이름이다.
또한 이 이름은 우선적으로 하느님의 자존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동시에 여타 모든 신들이 존재하지 않는 거짓 신들임에 비하여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살아계시는 분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에흐예'(ehye)라는 말에서 유래된 '야훼'(주님)이란 이름은 하느님과 그 백성의 계약 관계를 나타낼 때 많이 사용되었다. 즉 절대 초월자이신 하느님께서 각 계약을 체결하시고, 그 계약들의 신적 기원임을 강조하는 동시에 그 계약들이 영원한 하느님처럼 절대 불변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본문만을 보고, 하느님의 이름이 이때 모세에게 '에흐예'(야훼)로 비로소 처음 계시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창세기 2장 4절의 창조 기사에서부터 이 이름이 발견되며, 더군다나 창세기 4장 26절에서는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는 사실 즉 공식적인 예배가 드려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탈출기 3장 14절과 15절은 지금 계시를 주시는 분이 영원히 자존하시는 주님('에흐예'; 야훼) 이심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다는 의미를 가지며, 그 이름의 진정한 뜻에 대한 신적 해석이 비로소 이때 온전하게 알려졌음을 드러낸다.
출처: 피앗사랑, rig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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