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호 2023-10-20 15: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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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적록색약이다.
처음 색약인걸 알게된건, 내가 초등학생 때 담임선생님이 색약 검사를 해주셨을 때였다.
비슷한 색상의 점들이 많이 찍혀있는 그림 속에 숫자를 찾는 테스트였다.
처음 1-2 페이지에 숫자들은 찾기 쉬웠지만, 그 이후엔 찾지 못했다.
담임선생님은 그런 나를 보고 크게 놀라며, 정말 안보이냐며 재차 물어보셨다.
나는 내가 너무 대충봤나 싶어서, 그림을 뚫어지게 쳐다봤지만 찾지 못했다.
그 날, 엄마가 학교로 오셨다.
엄마는 나보고 정밀검사를 받아보자 말하셨고, 엄마와 같이 안과를 갔다.
오랜 만에 엄마와 낮에하는외출에 나는 기뻣는데, 엄마는 가는길에 조금 우셨던걸로 기억한다.
"익은 고추를 따오라고 하면, 너희 외할아버지는 안 익은 고추도 너무 많이 따오셨어"
그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태어나서 한번도 뵌적 없는 우리 외할아버지도 색약이라고 했다.
'적록색약'을 판정받았다.
엄마는 많이 슬퍼했지만, 난 사실 괜찮았다.
내 세상은 남들이 보는 세상과 조금만 다르다고만 여겼고, 그로 인한 불편함은 없을 것 같았다.
커가면서 알았다. 내가 살면서 불편했던 것들 중, 색약의 영향이 컷다는걸.
한 달전 드디어 색약렌즈를 사러갔다.
콘택트렌즈가 65만원이나해서,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그래도 너무 설레서 전 날 잠도 못잤었다 ㅎㅎ
이걸 껴도 색깔을 조금 더 구분할순 있지만, 일반인처럼 다채롭게는 못 본다고 했다.
색약렌즈를 끼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렌즈를 끼기전 연두색 꽃을 봤었는데, 렌즈를 끼고보니 주황색이더라. 심지어 여러 색이 겹쳐져 있더라. 조화로웠다.
왜 사람들이 꽃이 예쁘다고 하는지 조금은 알것 같았다. 일반인들은 얼마나 더 멋진 세상에서 살고 있을까.
그래도 난 마음이 들떠서, 전에 봤던 어떤 사이트의 '색약이 보는 세상' 게시글의 사진을 다시 봤다.
(첨부사진)
집중해서 쳐다보면 두 사진의 색의 차이가 조금이지만 보이게 됐고, 신기했다.
그리고 게시글 댓글들을 봤다. 보지말걸 그랬다.
"저런 단조로운 세상에서 뭔 재미로 사냐"
"음식들도 색깔이 저러니까, 식욕 떨어지네"
"저렇게 다른데 안 보이는구나 ㅋㅋ"
"눈에 오줌필터를 끼고 사네 쟤넨"
내가 좀 바보 같아졌다.
차라리 색약인걸 모르고 살았으면..
렌즈라도 사지 말걸..
그냥 죽기전엔 남들이 보는 세상의 단풍나무를 꼭 한번이라도 보고 싶다.
여유있는남자 2023-10-20 15:20:44
바보같은건 악플러들이다. 기술은 발전하니 더 좋은게 나올꺼야.
목호 2023-10-20 15:39:22
@ 여유있는남자
감사합니다! 꼭 그렇게 되면 좋겠어요 ㅎㅎㅎ
유단시타 2023-10-20 16:15:30
오히려 작성자 분의 이야기를 보며 본받아야 할 부분이 더 많다고 생각이 듭니다. 자책하지 마시고
본인만의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보며 지냈으면 좋겠어요
목호 2023-10-20 17:01:02
@ 유단시타
'본인만의 아름다운 세상'이란 말이 마음에 정말 와닿네요 ㅠ 좋은말씀 해주셔서 감사해요!!
햇님찌찌 2023-10-20 20:12:28
초록 빨강 신호등 볼 땐 어때요?
목호 2023-10-20 20:20:13
@ 햇님찌찌
신호등은 구별 잘해요!
저도 궁금했는데, 색각이상자들을 위해서 배려해서 만들었대요. 초록인데 파랑이 많이 섞인 초록색이라 구분이 잘가요
때론부드럽게 2023-10-20 21:50:07
@ 목호
와우 위치랑 모양으로구분하는줄알았는데 그런것까지 생각해서 신호등만들었다니....이건 좀 감동이다
햇님찌찌 2023-10-20 21:54:11
@ 목호
ㅇㅇ 청록빛이라 그런가보다 ^^
그래서 신호등을 파란색이라고도 말했던 이유가 있었구나
곤조3마이 2023-10-20 20:27:35
내 남자친구도 적녹색약인데 운전 잘하고 일상생활 잘함. 가끔 색깔 구분 잘 못할때는 안쓰럽고 귀여움.. 내 립스틱색깔 구분 못해서 에피소드도 생기곸ㅋㅋㅋ 뇌 빠진 악플러새끼들은 무시혀~
목호 2023-10-20 20:28:59
@ 곤조3마이
맞아요 ㅋㅋㅋㅋ 사실 일상생활에 지장은 없는데, 한번씩 억울하더라구요 ㅜ
따지고보면 악플이라고 하긴 애매한데.. 그냥 좀 속상하긴하더라구요 ㅎㅎ,
내가니아빠 2023-10-20 20:28:50
모든 악플은 결국 하늘에 침뱉기다. "저런 단조로운 세상에서 뭔 재미로 사냐" - 지 뇌가 단조로워진건 눈치못채고 자1살안하고 살고있음 "음식들도 색깔이 저러니까, 식욕 떨어지네" - 그렇게나 처먹어서 뒤룩뒤룩찔빠에는 식욕떨어지는 색깔보고 음식 조절하는게 맞음 "저렇게 다른데 안 보이는구나 ㅋㅋ" - 잘 보이는 눈깔 가지고 망하가는 지 앞날은 못 봄 "눈에 오줌필터를 끼고 사네 쟤넨" - 입에서 오줌냄새나는 지 아가리 똥내는 모름. 나도 잘 못지키는건데, 악플을 달거면 리플을 안달아야함. 악플을 달 수록 인간 밑바닥으로 다가가고 닥치고 있을 수록 중간의 인간은 됨. 근데 나도 악플 존나 못참는 글들이 많긴 함.
목호 2023-10-20 20:37:01
@ 내가니아빠
저를 저격하고 작성했기보단, 그분들은 그냥 웃겨서 적었을텐데 좀 마음 아프긴하더라구요 ㅎ
호워니입니다 2023-10-20 20:29:56
우왕 나도 적록색약인데 ㅎㅎㅎ 난 단풍놀이를 이해 못했었음 ㅎㅎㅎㅎ 지금도 이해못함
목호 2023-10-20 20:38:01
@ 호워니입니다
반갑닿ㅎㅎㅎㅎㅎㅎㅎㅎㅎ 왜가는걸까 단풍놀잏ㅎㅎㅎㅎㅎㅎㅎㅎ
밀짚몰랑 2023-10-20 20:50:47
색약 환자들용 선글라스가 있던데 많이 비싸?
목호 2023-10-20 20:53:19
@ 밀짚몰랑
직구로 해도 최소 50만원 정도는 하는 것 같아요
더 글로리에서 끼는 콘택트렌즈가 교정효과가 높다해서 산 색약렌즈를 샀긴했는데, 일반인들처럼 다채로운 세상을 보는건 아니고 헷갈리는 색을 조금 구별해서 볼수있는 정도?
그곳이빨고싶다 2023-10-20 20:59:03
저보다 더 잘 아시겠지만 색약 연구는 앞으로도 쭉 진행될거고 도구에 의존하지 않는 교정 방법이 꼭 나올거에요 목호님이 보고싶은 단풍나무의 사계절의 색을 눈으로 담고 마음에 간직하는 날이 반드시 올거에요 그때까지 짧은생각으로 빻은말을 내뱉는 시방봉것들에게 큰엿을 먹여주자구요
목호 2023-10-20 21:01:47
@ 그곳이빨고싶다
평소에 글 많이 쓰시나봐요........ 써주신 표현 너무 멋지네요 ㅠ 감사합니다 그런 날이 꼭 오면 좋겠어요
은빛영웅 2023-10-20 21:20:35
내가 적녹색약 판정 받았는데 솔직히 지금 29살 먹으면서 한번도 의식안하고 살았음.. 괜찮아! 우리가 뭐 신호등을 못 알아보는것도 아니고, 의사도 전투기 조종사될거 아니면 일상생활에 지장없다카더라 내 스스로가 본인일에 좀 무관심한것도 있긴 한데, 색맹 아니니깐 됐지ㅎ 하고 무심하게 넘겨서 생각하면서 중견기업 사무직 다니며 잘 살고 있음 ㅋㅋㅋㅋ
qwertyasd1 2023-10-20 21:50:17
흠 다른얘기지만 글을 진짜잘쓰시네요 참 뭐랄까.. 글쓰시는 말투보면 참 컬러풀하네요 부럽습니다 색을 다양하게 못보시는분들이 대신 더더욱 다양하게 표현을 잘하시는것같습니다
문법낙지 2023-10-20 23:44:20
저도 적녹색약인데 중딩때부터 꿈이었던 소방관 적녹색약때문에 자격 안 돼서 못 하고 그냥 소방쪽 자격증 따는 중ㅠ 힘내요 우리
밥오바 2023-10-21 01:17:01
적록 색약은 여자에겐 유전이 안 돼서 엄마는 모르셨나보네요. 아들 낳으시면 적록색약 이실겁니다. 딸 낳으시면 그 딸의 2세 아들이 적록색약 근데 전에 지인도 적록색약이었는데 엄청 잘 삽니다. 신경쓰지 말고 사세요. 생각보다 색약 분들이 많으시더라구여.
닉넴좋나고민되네 2023-10-21 03:37:11
나도 색약인데 오히려 나는 담임선생님이 놀라했다는 거랑 어머니가 슬퍼했다는 부분이 띵하네ㅋㅋ나 같은 경우엔 전부 다 무덤덤 했거든 심지어 그때 당시의 어렸던 난 남들과 다른 나의 모습에 기분좋기까지 했더랬지ㅋㅋ 살아보면 별거 아니지 않음? 그저 다른 사람에게 색약임을 밝혔을 때 이거 저거 가르키면서 무슨색으로 보여라고 물어보는게 조금 아니꼬울 뿐 ㅋㅋ
지금도 저 푸른 산이 아름답지 않은것이 아니며 나무들의 생기 또한 잘 느껴지는데 남들과 다른 색깔을 본다 한들 그게 무슨 문제냐 아름다운걸 아름답다고 보고 느끼는데...
첫댓글 그런 일도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