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은 쉬운 것이라고 생각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만만하게 예수님께 와서 질문했는데 이번 기회에 자신의 구원을 확증받겠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어느 계명입니까?"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예수께서 말씀하신 6계명 중에 5개는 십계명에서 직접적으로 인용하시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10번째 계명을 강화하여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청년은 예상했던 답이 나오자 득의만만하여 자신있게 대답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현대 교회는 계명들을 폄하하는 시대이지만 구원에 대한 관점은 청년의 생각과 비슷합니다
구원이 별로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청년이 행위로 영생을 얻을 것이라 오류를 범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에게 전혀 새로운 관점을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이것은 청년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씀입니다
청년은 근심에 가득한 표정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부자였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기 때입니다
부자청년이나 현대 교회나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어렵습니다
현대 교리는 예수님의 마지막 계명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대안으로 사람은 쉬운 구원을 가르치고 변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안심시킵니다
부자청년은 나중에 어려운 형제들을 돌보지 않은 염소들로 확산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천국의 비밀은 사람의 방식과 다르기 때문에 기독교는 독특한 종교입니다
기독교인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진정한 크리스천이라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를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것이 더 기독교인으로 만드는 것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입니까?
둘은 상호 배타적입니까?
둘 중 하나일 수도 있고, 둘 다 아닐 수도 있고, 둘 다일 수도 있습니까?
사실 이 질문은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무신론자) 둘 다 아니다
(리얼 크리스천) 둘 모두이다
(부자청년과 현대교회) 둘 중 하나다
예수님은 이 난제에 대한 정답을 산상수훈에서 언급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1)
두 번째 답변도 이와 비슷한데 집을 짓는 것과 비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 (마 7:24)
정답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에는 믿는 것이 포함되어 있지만
예수님을 믿는 것에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포함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쉬운 구원은 하나만 있어도 된다거나 하나님과 세상의 두 주인을 섬길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해도 설득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한도 이 난제를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을 것이니라" (요 3:16~18)
요한은 구원의 첫째 조건이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라고 합니다
믿지 않고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두 번째 단계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요 3:19~21)
믿음의 첫째 문을 지나 빛과 어둠을 선택하는 두 번째 문에 도착했습니다
두 유형의 신앙형태가 있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악을 행하는 자가 있습니다
귀신들도 예수님을 믿지만 주님의 가르침을 지키지는 않습니다
악을 행하는 것은 어둠에 있는 것이며 어둠은 그의 믿음을 증명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반면에 빛 가운데 행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으로 증명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믿음은 행위로부터 자유를 주기 때문에 선악의 행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만약 신자들이 세상에서 계속 악하게 살면 그는 어둠을 선택한 것이고 어둠은 대적자인데 어떻게 그의 믿음이 옳은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어둠을 선택하면 세상은 어둠으로 가득해질 것이고 참빛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을 믿는다고 하는 자들이 빛 가운데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입니다
이것은 모순 상황을 발생시킵니다
그리스도는 참빛이신데 그를 믿는 자녀들은 어둠에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종교 지도자들이 빌미스러운 일로 연루되어 당황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요한계시록에서는 두 개의 옷을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 것 같습니다
구원의 옷(garments)은 어린양의 피로 주어진 구속의 옷이며 공의의 겉옷(robe)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입니다
교회의 교리는 믿음만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하므로 더 어렵습니다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말씀을 잘못 가르치는 이세벨의 가르침(Jezebel teaching)입니다
이 때문에 신자들은 세상과 구별되지 못한 삶을 살게 했습니다
우리는 누구의 가르침을 따라야 할까요?
출처; 카이로스
https://blog.naver.com/acoloje/223499592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