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금융사에서 하나은행만한 ‘기린아’도 찾아보기 힘들다. 시중은행들이 수십년에 걸쳐 쌓은 에너지를 한순간에 소진시켜 피합병기관으로 몰린 상황에서 하나은행은 문을 연지 13년만에 ‘빅뱅의 핵심’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나은행은 충청은행(1998년 6월), 보람은행(1998년 9월), 서울은행(2002년 9월)을 잇따라 흡수했다. 이제 그 저력을 토대로 2009년에는 ‘시가총액 기준 세계 100대 은행’ 진입이란 야심찬 청사진을 향해 바짝 고삐를 죄고 있다. 지난 97년 은행의 캐치프레이즈가 ‘작지만 좋은 은행’이었던 점을 비춰보면 상전벽해라 표현할 정도로 몸집을 키워 왔다.
그러나 금융권의 판도변화에 따른 대형은행들의 치열한 영토전쟁은 하나은행에 보다 정교한 전략적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내년은 하나은행이 선도은행권에 자리를 트느냐, 중형은행으로 처지느냐의 중대한 갈림길이 될 것이란 게 금융권의 분석이다. 하나은행은 그 ‘승부수’로 금융지주회사 체제로 변신을 택했다.
◇지주회사체제, 수익확대 성장의 열쇠=지난 71년 은행의 모태인 한국투자금융을 시작으로 32년 연속 흑자를 기록, 은행업계 최고의 주주수익률을 간판으로 내세운 하나은행은 이른바 ‘통합화된 종합금융서비스그룹’을 지향한다.
여기에 ‘올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금융환경은 대형화, 겸업화하고 있다. 선진금융자본이 속속 진입하고 있고, 2007년 통합금융업이 선보이면서 탈규제의 바람도 거셀 전망이다. 2007년말 또는 2008년에 신바젤협약이 도입되면 각 은행들은 자산구조와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반면 시장의 신용위기는 상존하고 있고, 전방위 경쟁은 달아오르고 있다. 종합금융을 제공하지 않고서는 금융시장에서 ‘고립무원’의 처지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은행의 판단이다. 질적변화는 생존의 문제라는 얘기다.
따라서 내년과 2006년은 수익확대를 통한 성장에 속도를 붙여야 하는 시기다. 금융지주회사로 가야만 영업력을 극대화하고, 수익성을 지속적으로 끌어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각 업권별로 유기적 결합을 통해 시너지를 높이는 게 최대 과제인 셈이다.
◇“대투 집중 육성…인수 연내 마무리 총력”=이를 위한 하나은행의 복안이 바로 연내 대한투자신탁를 ‘깔끔’하게 인수하는 것이다. 지주회사 체제로 옮겨가는 데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이기 때문이다.
하나은행 고위 관계자는 11일 “연말전에는 공정한 매각가격을 토대로 인수협상을 마무리지을 계획이며, 정부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면서 “인수후 집중적으로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협상에 관여중인 재정경제부 핵심 관계자는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게 가격인데 서로 양보하면 금방이라도 결론이 나겠지만 안되면 1개월 이상 더 지연될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최대 난제로 하나은행이 요구중인 채권담보부증권(CBO)펀드의 사후손실보전의 경우 매각가격과 연동돼 있어 가격 줄다리기의 핵심이 되고 있다.
따라서 한측의 양보가 없는 현 실정에서 매각시한을 거론하는 게 의미가 없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예상보다 빠르게 매각이 결정된 한국투자신탁의 예처럼 연내 마무리쪽으로 서로 의중을 둔다면 12월에는 매듭이 가능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미래에셋 한정태 팀장은 “하나은행이 지주회사로 바뀌는 것은 좀 더 지켜봐야 겠지만 대투인수를 마무리하면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자사주 매각을 통해 대외신인도를 높여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면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5년은 도약 결정지을 중대 고비=은행측은 12일 경기 용인 신갈연수원에서 전 임원이 모여 2005년 사업 및 중장기 경영전략을 수립하는 워크숍을 갖는다. 이자리에서 향후 은행경영의 중요 키워드가 나온다. 이현주 전략기획부장은 “종합 금융네트워크 제공이란 큰 기조아래 중장기 사업전략의 방향을 잡아가는 단계”라면서 “최종결론은 12월 중순께 이사회에 보고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은행은 최근 3년간 중소기업(SME) 대출부문에서 자산건전성이 강화되고, 순이자마진과 자본건전성이 개선되는 등의 성과를 거뒀다. 최고경영자(CEO)가 수시로 바뀐 다른 은행과는 달리 김승유 행장이 7년8개월째 장수하며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것도 긍정적 요인중의 하나다.
그러나 은행측도 인지하지만 ‘확고한 입지 구축 및 차별화 부족현상’이 약점이다. 하나은행하면 떠오르는 핵심사업이 없고 포지션도 애매하다는 것이다. 하나은행 사정에 밝은 한 금융전문가는 “은행비즈니스에서 하나은행이 선도하는 권역이 없다”면서 “전반적인 경영환경상 하나은행에 내년은 도전과 시련, 그리고 기회의 한해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