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1일(화) 시편 79:1-13 찬송 23장
(아삽의 시)
1. 하나님이여 이방 나라들이 주의 기업의 땅에 들어와서 주의 성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이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나이다
2. 그들이 주의 종들의 시체를 공중의 새에게 밥으로, 주의 성도들의 육체를 땅의 짐승에게 주며
3. 그들의 피를 예루살렘 사방에 물 같이 흘렸으나 그들을 매장하는 자가 없었나이다
4. 우리는 우리 이웃에게 비방거리가 되며 우리를 에워싼 자에게 조소와 조롱거리가 되었나이다
5.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영원히 노하시리이까 주의 질투가 불붙듯 하시리이까
6. 주를 알지 아니하는 민족들과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는 나라들에게 주의 노를 쏟으소서
7. 그들이 야곱을 삼키고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함이니이다
8. 우리 조상들의 죄악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긍휼로 우리를 속히 영접하소서
우리가 매우 가련하게 되었나이다
9.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의 영광스러운 행사를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주의 이름을 증거하기 위하여 우리를 건지시며 우리 죄를 사하소서
10. 이방 나라들이 어찌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나이까 주의 종들이 피 흘림에 대한
복수를 우리의 목전에서 이방 나라에게 보여 주소서
11. 갇힌 자의 탄식을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며 죽이기로 정해진 자도 주의 크신 능력을 따라 보존하소서
12. 주여 우리 이웃이 주를 비방한 그 비방을 그들의 품에 칠 배나 갚으소서
13. 우리는 주의 백성이요 주의 목장의 양이니 우리는 영원히 주께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대대에 전하리이다
(개역 개정)
- 주의 이름을 위하여 구원하소서 -
제74편과 마찬가지로 남유다에 대한 바벨론의 침공으로 인한
예루살렘의 멸망 및 성전파괴(주전 586년)를 그 배경으로 지은 시로
아삽 자손 가운데 한 사람이 이스라엘 민족이 처한 비참한 상황을 탄식하며
하나님께 민족의 구원을 호소한 ‘민족 애가(哀歌)’이다.
제74편이 주로 성전 파괴에 대한 슬픔을 집중적으로 묘사한 애가라면
본시는 예루살렘 멸망으로 인한 이스라엘 민족이 처한
비참한 상황을 집중적으로 묘사한 애가이다.
그러나 선민 이스라엘의 멸망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사건이 됨을 근거로 하여 하나님께 민족의 구원을 호소한다는 점에서는
제74편과 본시편이 공통점을 지닌다.
먼저 전반부 1-4절에서는 하나님의 성전이 더럽혀지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 민족이 이민족들에게 조롱당하는
멸망의 비참상을 탄식조로 토로한다.
이어 중반부 5-12절에서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주의 이름이 욕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친히 능력으로 구원해 주시고
또한 원수들을 격멸해 주시기를 간구한다.
끝으로 후반부 13절에서는 구원을 확신하는 시인의 찬양에의 서원을 언급하고 있다.
이상에서 보듯이 시인은 여기서 나라가 망하여 정치적 주권이 상실되거나
민족적 자주성, 문화적 전통이 짓밟힌 것 내지는
재물이 노략질 당하거나 가족과 친지, 동족이 포로로 끌려가며 살해당한 사실
그 자체만을 인하여 탄식하지 아니한다.
시인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성전이 파괴되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이 이민족에 의해 짓밟힘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훼손되고 그 이름이 모욕을 당한 사실로 인하여 슬퍼한다.
사실 고대 사회에서의 국가간의 전쟁은 곧 신들의 전쟁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한 나라의 패전이나 멸망은 곧 그 나라 사람들이
숭배하는 신의 패배나 무능력을 나타내는 것이 되었다.
유다의 패망 역시 그와 동일한 관점에서 이해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에 시인은 유다의 패망으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받는 것을 슬퍼하며
비록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 범죄하기는 하였으나(8절)
‘주의 이름을 위하여’(6,9절) 하나님께서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셔서
원수들을 멸하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회복시켜 주시기를 간구한 것이다.(9,10절)
결국 본시는 무슨 일에 있어서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먼저 구해야 될 바는 하나님의 뜻과 의이며(마6:33),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또한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든지
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함을 분명히 교훈해 준다.(고전10:31)
그리고 그 어떤 세상의 핍박과 고통 속에서도
나의 수치보다는 교회 공동체의 수치를,
그리고 그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우선적으로 염려하며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도 낙담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뢰해야 할 우리의 마땅한 자세도 아울러 상기시켜 준다.
1절) 「하나님이여 이방 나라들이 주의 기업의 땅에 들어와서
주의 성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이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나이다」
시인은 주의 성전이 열방으로 인해 더렵혀지고,
주의 기업 예루살렘이 돌무더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중심이었다.
그곳은 그들의 죄를 씻는 곳이며, 그들의 삶을 되돌아보는 곳이며,
그들의 정치·경제·사회적 문제들을 해결받고
사법적인 문제들까지도 규정하는 곳이었다.
즉 성전은 그들의 정체성을 상징해 주는 곳이다.
따라서 성전이 없는 이스라엘은 결코 생각할 수 없었다.
따라서 그런 성전이 일순간에 더럽혀지고 무너져버렸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죽음보다 견디기 힘든 큰 절망이다.
그런데 이처럼 성전이 더럽혀지고 파괴되기에 이른 것은
외면적으로 보면 열방 곧 이방 민족인 바벨론의 침공으로 인한 것이었지만
실제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선민의 타락이다.
즉 선민이 부패하고 타락하여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힌 데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시고 이방 군대를 동원하여 성전을 파괴하고
그와 더불어 성전을 더럽힌 유다 사람들도 함께 심판하신 것이다.
선민의 타락이 그들로 성전과 함께 파멸에 이르게 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영적 교훈을 준다.
성경은 오늘 우리 자신을 가리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씀한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3:16)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하나님의 성전을 거룩하게 보존해야 한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게 되면
우리 또한 그들 가운데 있던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힌
유다 사람들과 같이 파멸을 면치 못한다.
성경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고전3:17)고
아주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경고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심령 성전을 거룩하게 보존할 수 있는가?
그것은 말씀과 기도로 가능하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전으로서 거룩해야 할 것을 말씀하면서
그와 같이 거룩하여지는 방법으로 말씀과 기도를 제시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딤전4:5)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그것을 행하기에 힘쓰고,
또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힘쓸 때
우리의 심령 성전을 성령이 거하시기에 합당하도록 거룩하게 보존할 수 있다.
우리의 심령 성전은 세속적인 마음, 본능을 따라 살려고 하는 습성,
이기주의, 미움이나 증오, 음란하고 더러운 생각들로 인하여
늘 더러워질 수 있는 가능성 가운데 놓여 있다.
이렇게 심령 성전을 더럽힐 수 있는 요소로부터
심령 성전을 거룩하게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은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행하기에 힘쓰고,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에 힘쓰는 것밖에 없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경건의 연습이다.(딤전4:7)
우리는 이 경건의 연습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자신을 거룩하게 보존하고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 안에
강하게 역사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려야 한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6: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