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8일 주일 예배
본문<마>18;5~10
제목; 영접과 실족
지금 이 땅의 한국 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기상도는
최하위입니다
영성이 고갈되어 바닥을 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묵은 닭도 많고 종교인은 늘어만 가는데 주님이 원하시는
참 제자들
참 그리스도인은 찾아 보기 힘든 시기가 되었는데
과연 그렇다면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하는 진단이
있어야만합니다
그리고 그 원인을 요약하여 분석하면
말씀은 풍년인데 말씀대로 살기 보다는 내 소견에 옳은 대로
내 유익과
내 이기심만을 찾아 살고 있기 때문이요
배부르고 등 따신데 그래서 이제는 별로 아쉬운 것이 없는데
보임작하고 먹음직하여
지혜롭게 할 만한 것이 지천인데, 구원도..영생도 천국도
주여..영생 천국보다 여기가 좋사오니 하며 지금 이 순간
이 현실에
비전도 열정도 없이 머물러있으면서
말씀도 멀리하고..아니 말씀을 들어도 반응하지 아니하고
말씀대로 살지 않으며
기도조차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 주님은 반드시 재림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의 살길은 말씀을 내 안에 영접하는 일입니다
한치 앞도 모르고 내일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면서
우리 아파트 앞에 마트가 있는데 그 마트 주인 남자가
총각인데
그에게 몇 번 전도하기 위해 건빵을 들고 갔었는데
무뚝뚝했던 그 남자 암에 걸려 갑자가 마트를 접었다고 합니다
나는 여러분이
지금의 이 현실에 만족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여러분..이제 그 고집과 아집을 버리고
교만은 내려놓고
주를 마음으로 믿어 입술로 시인하며 영접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한번 고백으로 끝나지 말고 늘 고백하며
내 영적 상태를 진단하고
과연 내 안에 예수가 계신가를 점검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요1;12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주님 주신 권세를 마음껏 누리며 복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영접과 실족에 관한 이야기인데
5절입니다.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영접의 뜻은 [사랑의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말씀하신 ‘이런 어린 아이’는 누구를 말할까요..
육안으로
혹은 세상의 잣대로 보았을 때 사랑받을 수 없는 아이를 말합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복음 송으로는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 하는데
세상의 잣대와 편견으로는 사랑 받을 수 없는 아이도 있다는 것입니다
될 성 부른 나무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옛말이 있는데
이 말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은 세상의 잣대와 자기중심의 편견과
고정관념과
비교의식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으로 아이들을 비교하고 있습니까?
말 잘 듣는 일인가요
성적인가요..? 외모인가요?
오늘 본문의 이런 아이는 무엇하나 독립하여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아이
남들과 비교하여 조금은 부족한 아이
홀로서기가 안되어 부모의 근심이 되어있는 아이가
이런 아이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런 어린 아이를
진실한 사랑의 마음으로 받아들였을 때 예수님을 영접한 것과
같다고 하십니다.
혹시 여러분의 눈에는 예쁜 아이만 들어옵니까?
참으로 눈을 고쳐달라고 회개해야 합니다.
공부 잘 할 것 같고
말 잘들을 것 같은 아이, 말하여 범생과에 들 만한 아이만 눈에 들어옵니까?
편견의 마음과 선입견의 마음을 고쳐달라고 회개해야 합니다.
차등도
차별도 없어야 합니다
외모도 외양도 누구의 가문이나 그 아버지가 누구냐도 묻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영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포기할 대상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는 틀렸다
그가 무엇을 할 수 있겠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 예수 사랑으로 품고 포용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에는 특별한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다 구원받아야 함은 물론이고 요13: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은 지금 내 앞에 있는
그 한 사람
그 한 사람을 주님이 네게 보낸 자로 알고 영접하면
예수를 영접함이요...예수를 영접함은 예수를 보내신
하나님을
내 마음 속에 깊이 영접하는 일임을 믿고
누구나 차별 없이 대하고 영접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내 옆에 있는
힘든 그 사람이 바로 예수입니다.
주님은 고와와 과부, 병든 자 그리고 죄인의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있어 보이고
명품을 들었으면 호감이 가고, 귀부인 스타일에 열광하고
추해보이고
빈약해 보이면 경계하여 가까이 하기를 주저합니다.
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마음이 실종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의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주 가끔은
교회를 찾는 전문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코로나 기간 동안에는 잘 안 오더니
이제 다시 오는데
이들이 하는 말은 늘 어디를 가야 하는데 차비가 부족하다고
차비를 빌려 달라기도 하고..그렇습니다..저들은 늘
갚을 것도 아니면서
꼭 갚을 테니 빌려 달라고 하는데 액수도 제법됩니다
처음 개척교회 할 때는 보통 만원을 요구하던데
언제부터인가
삼만원 이상을 요구합니다
어제 저녁부터 아무 것도 못 먹었는데
김밥이라도 사먹게
돈좀 빌려 달라고 오는데 그것도 요즘에는 현금이 없으면
자기 폰에 통장이 개설되어 있으니 입금시켜 달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런 사람이 오면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가 고민이 좀 됩니다
그들의 요구대로 해 주면 그들은 돈을 잘 준다는 소문을 내서
다른 사람을 또 보냅니다
그래서 저도 작전을 바꿉니다...목양실로 데리고 와서
듣거나 말거나 복음을 전합니다...그리고 지금은 천 원짜리
몇 장이 있으니
이것이라도 받아 가겠느냐 하면 그들은 더 이상 고집부리지 않고 떠나갑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야 합니다...정말이지 교회에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들이 와야 합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보내 달라고 기도하고
마음이 상한 사람
넘어지고 다치고 멍들고 상처받고 힘들어 하며
지친 사람들이 와서 쉼을 얻고 재충전도 받고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를 영접하여 구원의 길에 있게 하는 목적이 교회에 있습니다
신앙을 가진 저와 여러분의 마음이 예수의 마음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부자도 사랑했지만
가난한 자,
고아, 과부, 병든 자와 죄인의 친구였다는 것을
예수를 믿는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합니다.
부자, 있어 보이는 사람
잘 나가는 사람만 가까이 하려하지 말고
못난 사람, 열등한 사람,
힘들고 어렵고 지쳐 보이는 사람을
가까이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그들을 따듯하게 영접해야 합니다.
주님은 그들을 영접하는 자가 천국에서 큰 자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는 실족입니다
-6절과 7절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다의 뜻은 헬라어로는 ‘스킨 달리조’인데
함정이나 덫에
빠지게 하는 데 이용되는 구부러진 막대기를 뜻하는 명사로
‘스칸 달론’에서 유래한 동사입니다.
그리고 이 동사는
덫에 빠지게 하다, 죄를 짓게 하다,
스스로가 실족한 것이 아니라 실족당한 것을 말합니다
즉 나로 인해
믿음을 포기하게 하다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참으로 가슴 뜨끔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예전에 아이들을 가르칠 때
예수 믿는 아이들을 많이 핍박했는데 예수를 영접하고
신앙생활하면서 그 때 그 일들을 많이 회개 했습니다
목사인 지금도
혹시 내가 잘 못 전한 말로 상처 받아 실족한 영혼이 있을까봐
많이 기도하며 조심하고 또 조심합니다
목사에게 상처를 받아
교회를 떠나고 믿음을 포기했다는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참으로 안타까울 때가 많아 내가 대신 회개합니다
부모나 형제, 골육지친들로 인해..혹은 믿는 자들의
잘 못된 행실로 인해
상처 받고 실족한 사람들도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도 신앙생활하면서 내게 상처 준 이런 사람들로 많은 위기를 겪었는데
심지어는 목사가 되고나니
폰 번호를 바꾼 골육지친들도 있고
내가 가장 넘기 힘든 벽은 교회였으며 그 안에 있는 직분자들이었으며
서리 집사가
평신도로 설교를 하던 때가 있었는데 말씀을 근거로 입바른 소리하다
그 교회의 목사에게 쫓겨난 적도 있을 정도로 나 또한
세상에서보다는
예수 믿는 자들에게 받은 상처 또한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비록 상처를 입었지만 애굽인 세상으로 돌아가지 말아야 하는데
눅7:23에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세례요한이 감옥에 갇혔습니다..이에 세례요한이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
당신이 메시야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메시야를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예수께 묻게 합니다
이 때 예수님은 요7:21은 [마침 그 때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맹인을 보게 하신지라]
무슨 말입니까? 너는 지금 복음 때문에 옳은 일을 하다가
고난을 받고 있지만
그러나 참고 기다리라 그리고 지금 내가 하는 일을 보라
요7:22은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하시면서
방금 소개한 23의[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아멘
그렇습니다..저와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상처 받지 않고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로 본질적인 문제인 구원은 포기하면 안 되고
상처로 인해
신앙생활을 도중에 그만 두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결국은 실족하게 한 자도 문제이지만
실족한 자도
구원의 길과 멀어지니 상처받아도 그리스도 예수를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자세 또한 마15;14의 하반절은 [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
마23;24은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다시 말해 무엇을 조금 안다는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종교지도자들이 눈앞의 이익을 탐하다가
잘 못 인도하고 잘 못 가르치며 구원과는 멀어지게 하고
천국 영생이 아닌
지옥행 열차를 타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경계심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실족도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도 없이
내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다가 실패하고 실수하며
교회나 구원의 길에서 멀어지는 것은 실족이 아니라
삐짐입니다..
잘 구별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8절과 9절에서는
이 작은 자 하나를 실족케 하는 죄가 가장 크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그에게 받은 상처로 인해 죄를 짓게 하고
믿음을 포기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남을 실족케 하는 자가 결국은 나를 실족하게 만듭니다.
내 손 내 입술 때문에 실족하는 내 가족은 없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내 행실, 내 말 실수로 상처받아
교회와 더 멀어지게 하는 일은 없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교회를 멀리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떠나게 만드는 것으로
그 죄가 크다는 것입니다.
나도 예수 믿기 이전에는 사도 바울의 예전 모습인
사울과 같은 자였습니다.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였고
빈정대고
조롱하며 방해했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회개로 돌이켜 예수 믿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예수로 인해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다 하신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사명의 땅으로 가려면 내가 포기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이 말은 그의 구원을 위해
내가 가진 것을 포기하면 그 영혼의 심령 속에 복음이 심겨진다는 말씀입니다.
전도 대상자가 즉<가족, 자녀, 친지, 이웃>이
사명의 땅인데
내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어서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가 없습니다.
8,9절의 찍어 내버리라, 빼어 내 버리라 하는 이 말씀을
실제로 신체의 사지를 절단한다거나
눈을 빼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단호하게
죄의 유혹을 물리치라는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적용도 잘 해야 합니다..내가 어떤 책에서 본 이야기인데
이 말씀을 읽은 어떤 전도자가
자기가 전도하던 전도 대상자가 한 영혼으로 보이지 않고
자꾸만 이성으로 보게 되고 이성의 감정을 갖게 되니
더 이상 죄 짓지 않기 위해
자기 눈을 손가락으로 찔러 멀게 하고
소경이 된 채로 복음을 전했다고 하는 이야기인데
그러나 여러분 이것은 오히려
복음 전도의 역효과만을 가져오는 것이고
올바른 말씀 적용이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다시 말하여 이 말씀을
나의 기득권, 나의 가진 것을 과감하게 버리고서라도
복음을 위해
나를 희생하라는 말씀으로 적용하면 됩니다.
-10절입니다.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6절과 10절에서 말씀하는 이 작은 자는 누구입니까?
예수님 주변에 모여든 세리나 죄인들이 곧
작은 자입니다.
여러분의 주변에는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많습니까?
예수님의 주변에는 세리와 죄인, 고아와 과부들
병든 자와 소외당한 자들이
늘 크고 작은 무리를 이루고 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들은 늘 소외당하고 업신여김과 멸시 천대받던 자들로
쉽게 영적으로 상처 받을 수 있는 영혼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으로 인해 많은 상처를 받아 실족하였었습니다.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이 누구입니까?
율법주의자들입니다.
원칙과 룰을 정해 놓고 그 안에서 벗어나면
비방하여 판단하고 업신여기며 핍박했던 자들입니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비슷한 모습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 모두는
우리들 식의 편견과
선입견에 의한 룰과 잣대를 만들어 놓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업신여기며 얼마나 많이 핍박하여
멀리했는가를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없어서 비교 당했고 부족해서 비교당하며 무시당하며
버티고 인내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역시 어린 아이와 작은 자를 보면 업신여기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우리는 어린아이와 작은 자를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업신여김을 받는 자는 천사와 하나님이 보호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이 작은 자들과
어린아이들을 통해 예수를 발견하라는 말씀입니다.
즉 송명희 시인 같은 지체장애인이 오늘 성경에서 말하는
작은 자에 속하는데
우리는 이 작은 자인 송명희 시인을 통해
우리를 편견 없이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발견하라는 말씀입니다
작은 자를 업신여겨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누구도 업신여겨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 모두는
천하보다도 더 귀한 영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존귀하고 보배로운 주의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즉 인자가 온 것은
잃은 자를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하신 말씀이 이런 사실을 증거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오늘 말씀을 들은 저와 여러분..주를 영접하되
실족하여
세상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어야 함을 믿고
예수를 잘 믿어 복된 삶으로 늘 승리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