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여자 김종성 | 역사의아침 | 20110627 |
왕의 여자라면 우리가 생각하기에 왕후가 생각나겠지만 후궁도 있고 궁녀도 있었다. 우리가 상상하는 왕이란 존재는 진시황제나 춘추전국시대의 왕들이 그랬듯이 그 가치만으로도 뭐든지 다 할 수 있고 다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조선시대의 왕들은 힘이 약했다. 즉 왕권보다 신권이 더 강했다고 볼 수 있다. 어느 주상 때는 왕권이 신권보다 강했을 수 도 있고 신권과 왕권이 균형을 맞추어 간 적도 있을 것이다. 조선 전기만 해도 왕권이 강했지만 중기로 넘어가면서 사화로 왕권은 약해지고 왜구와 오랑캐에게 나라를 짓밟히는 수모를 겪고도 당쟁으로 나랏일을 봐야 할 왕들이 정치논쟁에 휘말려 신권에 끌려 다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왕들은 신하들의 눈치 봐야 했고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고 기록했으며 왕후나 후궁들과의 동침에서도 여러 숙직상궁 감시 하에 성관계 도중에도 왕에게 이러저러한 조언을 했다고 하니 정말 [왕의 여자]를 읽으면서 우리가 상상하는 왕의 권위가 어디에 있었겠는가. 그리고 항상 경건한 마음과 성인군자가 되길 훈계했으니 매일 같이 스트레스를 받았고 어디 함부로 쉴 수나 있었겠는가.
‘왕이 되면 수많은 궁녀들을 마음대로 거느릴 수 있었을 텐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왕이 되면 오히려 여자를 사귀기 힘들었다고 해야 정확하다. 여자를 사귀고 싶어도 사귈 수 없었다. 왕의 일상은 상당히 통제되고 특히 조선시대의 왕의 모든 일들이 투명하게 공개되었고 [승정원일기]에서 최대 관심사는 ‘오늘 왕이 어디에 있었는가? 라고 한다. 그러니 수행하는 왕의 측근을 따돌리고 궁녀를 몰래 만난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혹시 몰래 궁녀를 만난 다해도 왕후와 후궁, 승은상궁의 첩보망에 걸려 뒷날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했다고 한다. 그녀들의 질투와 시샘, 견제가 얼마나 집요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궁녀는 궁 안에 태어날 수 없고 궁녀의 일생은 궁 밖에서 입궁해서 견습궁녀 즉 애기 항아의 생활을 시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궁녀의 관례는 애기항아에서 정식 궁녀가 되는 의식인 동시에 왕과 혼인하는 의식이었다. 형식적으로나마 혼인한 까닭에 관례를 치르는 궁녀의 기분은 마치 신부의 마음과 같았고 한다. 상궁은 궁녀의 최고 위치인데 보통 6~7세에 입궁하여 보통 18세에 관례를 치른 후 15년이 경과하여 33세정도가 되면 상궁이 되었다. 그리고 60세가 되면 단축근무를 하고 격일근무도 제외시켰다. 한 번 궁녀는 영원한 궁녀였지만 죽음이 임박 할 경우나 소속 상전이 승하(사망)한 경우 그리고 왕궁에서 방출 결정을 내리는 경우, 타의에 의해 방출할 경우, 비위 사실이 발각된 궁녀는 당연히 떠나야 했다. 궁밖으로 나가더라도 다른 남성과 성관계를 할 수 없고 결혼도 할 수 없다고 한다. 조선시대 궁녀들은 성관계 금지의 속박으로부터 평생 고뇌와 번민 속에서 살았다. 조선시대 법전에는 “궁녀가 바깥사람과 간통하면 남녀 모두 때를 기다리지 않고 참형에 처한다. 고 규정했다. 궁녀가 왕이 외의 남자와 성관계를 갖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남녀 모두 참수에 처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니 궁녀들의 해방구는 궁녀들의 동성애로 이어졌다.
왕의 여자가 되는 방법은 외부선정인 간택이 제일로 많았고 궁녀에서 시작해 후궁이 되는 내부승진도 있었다. 궁녀 중에서 천민의 지위를 극복하고 후궁에 올랐으니 현대판 신데렐라이다 선조의 할머니(중종의 후궁), 광해군의 어머니 김공빈, 경종의 어머니 장희빈, 영조의 어머니 최숙빈 등이 이에 해당된다. 왕의 자녀를 출산은 못했지만 후궁이나 다름없는 대우를 받은 여인들은 승은상궁도 있었다. 후궁의 품계는 빈-귀인, 소의-숙의, 소용-숙용, 소원-숙원의 4단계로 나눈 뒤 이를 정(正)과 종(從)으로 세분했다. 특히 텔레비전 사극에 주로 등장하는 후궁의 품계이다. TV볼 때 아무 생각 없이 보았는데 [왕의 여자]를 읽은 후에는 더욱 관심을 가지고 볼 것 같다.
‘왕의 여자’하면 떠오르는 것이 ‘미인’이다. 능력이나 지위가 괜찮은 사람들을 대할 때면 그들의 부인 즉 배우자가 예쁘거나 잘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누구나 다 그런 것이다. 한 나라의 왕은 국가의 왕인만큼은 괜찮은 입장에 있는 사람도 드물기 때문에 왕의 여자는 응당 미인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였던 동이와 같이 드라마나 영화 속에 나오는 왕의 여자들은 거의 미인이다. 그런데 우리는 한 번도 제대로 왕의 여인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왕의 여자는 미인이겠지’하는 막연한 추측만 했을 뿐이다. 정말 사진이나 동영상이 있었다면 우리의 궁금증을 수월하게 해결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우리의 첫사랑이 상상 속에 있듯이 조선의 왕의 여자들도 우리가 상상의 미인이길 바랄 뿐이다. 근데 사실 조선시대의 왕들은 사회 분위기상 후궁을 뽑을 때 왕의 보는 눈을 의심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왕은 후궁을 뽑을 때 내면과 외면을 골고루 관찰해야 했다. 최고의 권력자가 후궁을 들일 때 남의 눈을 볼 필요가 있겠는가? 하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왕들은 막강하지 못했다. 임금은 사방의 감시 속에서 살았을 뿐 아니라 홀로 있을 때도 늘 자기 수양을 하라고 강조 받았다. 왕 입자에서는 ‘예쁜 여인보다는 예쁜 왕권’이 더 좋아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예쁜 이성들과 실컷 사귀어 보겠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런 위치에 올라가면 자리를 유지하기도 벅찬 경우가 많았다. 특히 조선시대 왕들의 경우가 그랬다.
[왕의 여자] 책을 읽으면서 앞으로 사극에서 궁녀나 후궁, 왕후들이 나오는 사극을 보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고 드라마에 나오는 등장인물이나 설정이 고전기록과 차이가 나는 점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참고문헌을 통계, 분석을 통하여 보다 독자들이 이해에 도움을 주었고 특히 조선시대의 시대적 배경과 상황을 고려하여 통찰력 있게 설명함으로써 독자들이 시대의 상황에 맞게 글을 읽을 수 있어서 무엇보다 좋았다.
첫댓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긴 글이 더욱 마음에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