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가 육체를 떠난지 40년이 되었다.
10월 9일 그는 볼리비아에서 혁명 중 총살되었다.
혁명!
과연 혁명은 무엇인가?
혁명을 앞두고 우리는 열사를 찾는다. 체 게바라, 카스트로, 전태일 그러나 정치 뿐 아니라 사회, 문화,종교 모든 측면의 혁명가가 있다.
평화를 나누는 마더 테레사도 혁명가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도 혁명가요, 자비를 설법하신 부처님도 혁명가요, 무폭력을 외친 간디도 혁명가요. 종로에다 사과 나무를 심어보자는 작은 노래를 퍼뜨린 자도 혁명가이다.
혁명가..........
그러나 과연 나는 혁명가인가?
나의 본모습을 찾고자 게으르지 않고 늘 강철처럼 단련하며 꾸준히 수행하는 혁명가인가?
불의를 불의로 바라볼 줄 알고, 옳은 것은 실천하는 나는 그런 혁명가인가?
체 게바라의 일생을 되집어 보며 나는 묻는다.
"나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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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 게바라는 어떤 사람인가?
" 1928년 아르헨티나에서 건축가의 맏아들로 태어난 게바라는 비교적 유복한 소년기를 보냈다. 두 살때 발병한 천식이 그의 일생을 괴롭히지만 그는 운동과 여행을 아주 좋아했다. 문학서적을 탐독하고, 그림에도 상당한 소질이 있었으나, 음악은 백지였다.
자신을 "시인이 되지 못한 혁명가"라고 부를만큼 시에 심취하여 로르카, 네루다. 베를렌, 보들레르를 암송하기도 했다. 1953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의과대학에서 알레르기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와 전문의사 자격증을 받았다.
. ...(중략)... 미국의 사주와 지원을 받은 용병대의 쿠데타로 (과테말라)정부가 무너지자, 그는 제국주의의 정체를 목격하고 "혁명적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혁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아무튼 아르벤스의 편에서 싸웠던 그는 반도들의 총구를 피해 아르헨티나 대사관으로 피신했고, 뒷날 "나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과테말라에서 혁명가가 되고, 쿠바에서 싸웠다"고 술회했다.
과테말라에서 탈출한 게바라는 1955년 멕시코에서 운명의 동지 피델 카스트로를 만난다. 이 무렵 에르네스토 게바라는 쿠바의 망명동지들에 의해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로 불리기 시작했다. '체'는 본래 기쁨, 슬픔, 놀람 등을 나타내는 간투사인데, 그 어원은 '나의'라는 뜻을 지닌 인디언 토속어라고 한다.
카스트로와의 첫 대면을 게바라는 이렇게 묘사했다. " 나는 밤새워 피델과 이야기했다. 그리고 새벽녘에 쿠바 원정대의 의사로 등록했다. 독재에 맞서 혁명에 참가하기로 결정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중략)...
1956년 11월 25일 멕시코를 출발한 82명의 대원 가운데 크리스마스까지 쿠바의 거점 시에라 마에스트라에 집결한 사람은 15명 뿐이었다. 그중에 카스트로와 게바라가 들어 있었다. 1959년 혁명군을 이끌고 아바나에 입성하기까지 게바라는 의사로서 전사로서 탁월한 기량을 발휘했으며, 특히 그가 지휘한 산타 클라라 기지의 전투는 바티스타 독재를 전복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정운영. -피사의 전망대- 부분 인용)
여기까지가 쿠바혁명을 성공시킨 게바라의 대략적인 역정이다. 놀라운 일은 그 뒤에 벌어진다. 모든 혁명 일세대가 파괴와 전복의 과정을 통해 혁명을 시작하지만 새로운 건설의 과정에서의 혁명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되듯이 게릴라들도 혁명성공 이후 온갖 악전고투를 겪는다. 게바라는 쿠바 중앙은행 총재와 산업부장관을 지내면서 고립무원의 쿠바 경제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게바라는 보장되어진(?) 명예와 안전을 버리고 다시 무기를 들었다. "제국주의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싸워야 한다는 성스러운 임무를 안고 새로운 전장을 찾아간다"는 요지의 편지를 카스트로에게 남긴 채로 말이다.
그리고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 곳곳을 누비고 다니며 제국주의와 정부군에 맞서 투쟁하던 게바라는 1967년 볼리비아 정부군과의 교전 끝에 생포되어 그의 존재를 지워버리고 싶어하는 미국의 지시에 의해 사살된다. 그를 체포한 볼리비아 장교가 생포 직전 총구를 겨누며 물었단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소.
"혁명의 불멸성에 대해 생각중이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최후의 순간에 자신이 쫓던 신념의 지극한 한 면을 생각할 줄 아는 그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목숨을 걸었던 일에 대해 마지막까지도 굳건한 믿음을 보내는 그런 사람이었다.
[동국] 45호 발췌
첫댓글 쿠바가면 이사람 이야기만 하거나 티를 입거나 책을 가지고 있으면 무사통과에 친밀도 100%라고 하데요. 참 많은 걸 끼친 파르티잔이었는데...벌써 서거 40년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