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촌
작사<< 김동환 >>
'산너머남촌에는'으로 유명한 시인..
1901년 함북 경성에서 태어났습니다.
1924년 문예지 '금성' 3월호에 '적성을손가락질하며'를 발표해서 시인으로 데뷔했습니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기자였으며 왜정 때 잡지사 '삼천리'의 경영주였습니다.
당시 '삼천리'의 여기자로 입사한 작가 최정희씨와 사랑하게 됐으며 6.25때 납북될때까지
김동환씨와 최정희씨는 두 딸을 둔 부부였는데 1952년 7월 이웃에 가듯 나간체 납북,
김동환씨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무나 쉽게 사귀지 않는 무뚜뚝한 표정에 쌀쌀해 보이지만 내면은 다정다감하고 인정이 많은 사람이었답니다.
그는 향토적이고 애국적, 민요적 색채가 짙은 서정시를 주로 썼습니다.
대표작 - 산너머남촌에는, 국경의 밤. 웃은죄.. 등 시와..
소설 전쟁과여인, 수필집 꽃피는한반도..등 많은 작품이 있습니다.
작곡<< 김규환 >>
1925년 평양 출생
남촌은 1975년 작곡된 곡입니다.
김규환씨는 독립운동가인 부친과, 신사 참배 거부를 주동하는 어머니가 감옥을 밥먹듯 드나든 때문에 어려서부터 고학하며 가족을 부양했습니다.
음악가가 되고 싶었지만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아 뮤료로 공부하는 평양사범학교를 다녔고
졸업하며 김동진씨가 조직한 평양 교향악단에 호른연주를 했습니다.
그후 평양음악학교에 입학, 피아노, 작곡을 공부하다 중퇴하고,
1947년 월남해서 동덕여고 교사재직, 1960년 KBS 합창단 상임지휘자로 부임했습니다.
1998년 까지 한국 음악저작권협회 부회장이었습니다.현재는 영남대학과 부산 동의대학에 출강하고 있으며, 합창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작 - 임이 오시는지, 남촌등 80여곡 가곡과
채보한 민요 한오백년, 신고산타령등 30여곡...
칸타타 조국, 이제는 만나자..가 있습니다
사월의 노래
작사<< 박목월 >>
본명 영종(泳鍾). 경북 경주(慶州)에서 태어났다. 1935년 대구 계성(啓聖)중학을 졸업하고 1939년 문예지 《문장(文章)》에 시가 추천됨으로써 시단에 등장하였다. 1953년 홍익대학교 조교수, 1961년 한양대학교 부교수, 1963년 교수가 되었다. 1965년 대한민국 예술원(藝術院) 회원에 선임되었고, 1968년 한국시인협회 회장에 선출되었으며, 1973년 시전문지 《심상(心像)》의 발행인이 되었다. 1976년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장에 취임하였다.
자유문학상·5월문예상·서울시문화상·국민훈장 모란장 등을 받았다. 저서에 《문학의 기술(技術)》, 《실용문장대백과(實用文章大百科)》 등이 있고, 시집에 《청록집(靑鹿集)》(3인시), 《경상도가랑잎》, 《사력질(砂礫質)》, 《무순(無順)》 등이 있으며, 수필집으로 《구름의 서정시》, 《밤에 쓴 인생론(人生論)》 등이 있다.
작곡<< 김순애 >>
본관 광산(光山). 황해도 장연(長淵) 출생. 서울의 정신여학교를 졸업하고 부산 초량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1915년 만주를 거쳐 중국 난징[南京]으로 건너가 중화명덕여자학원(中華明德女子學院)에서 공부하였다. 그해 김규식(金奎植)과 결혼하였으며, 1919년 김규식이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을 청원하기 위하여 프랑스로 가자 민족의 궐기를 호소하기 위하여 일시 귀국하였다. 3 ·1운동이 일어나자 다시 중국으로 가서 1919년 7월 상하이[上海]에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조직, 활동하였으며 8·15광복 때까지 김규식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였다. 1946년 정신여자중·고등학교 재단이사장으로 취임, 육영사업에 전념하였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봄의 왈츠
역사자 미상
작곡<< 호손 >>
필라델피아 태생의 작곡가.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고 전문적인 음악 교육은 받지 못하였지만 아마추어 작곡가로 명성을 얻었다. 악기점을 경영하면서 기타 교사로 활약하였다.
희망의 속삭임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