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색은 대지, 흙, 축제, 우리의 발아래에서 안전함을 연상케 한다.
갈색은 토양색이다.
일반적으로 화가가 어떻게 색상을 혼합 하느냐에 따라 색채의
심리적 성향에 접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극적이고 지나치게
활동적인 오렌지색은 어두운 색과 섞이면 진정 되는 느낌을 준다.
어둡고 흐릿한 갈색이 부드러운 적갈색으로 변하면 평화를 상징
한다.
연한 갈색은 생명력 이상으로 인간 생활에 필요한 힘을 작용한다.
이때는 물론 붉은색처럼 능동적이 아닌 수동적인 방법으로 힘을
발휘한다.
이는 갈색이 작용해서 우리의 교감신경이 육체적인 긴장을 완화 하도록 돕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란색과 같이 능동적이지 않고 실제 수동적으로 긴장해소를 돕는다.
물론 여기서는 단지 육체적인 의미에서 쾌적한 향유와 쾌감의 법칙만을 뜻한다. 그렇다고 해서 갈색을 피폐적인 색상이라고 한정하는 것은 아주 잘못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 색은 철저하게 긍정적으로 관찰되고, 추구할 가치가 있는 수동적인 안일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수많은 갈색 목재는 안락함을 줌과 동시에 편안하게 환대 받는 기분이 들게 한다. 예를 들어 음식점의 갈색 식탁이 그렇듯이 의상에서도 시원한 계절에 갈색 의상은 포근한 감을 준다.
갈색 옷은 특히 갈색 머리와 잘 어울린다.
옅은 갈색 머리, 더욱이 노란빛을 띠는 갈색 머리가 햇빛을 받을 때는 참으로 아름답고 고귀한 멋을 풍긴다.
이는 마치 금빛 같기도 하다.
그래서 소위 ' 귀족머리 ' 라 지칭되는 금빛나는 갈색머리가 적어도 독일어권 문화에서는 미의 조건에, 또 결혼 조건에 포함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색을 동조하지 않고 거부하는 사람은 심리적으로 신체의 생명력을 무시한다. 다시 말해 자기 신체의 건강상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을 정도로 유흥과 육체적 욕구로 가득 차 있다.
그는 만족을 억제하지 않고 오히려 과시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밖에도 사회 심리학적으로 갈색을 거부하는 사람은 대체로 인간의 본능인 집단적인 충동에서 벗어나서 모든 것을 개인의 인격으로 증명하려 한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주도면밀한 계획하에 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인정받고자 한다. 물론 이와 같은 흥미로운 심층 심리적인 해석이 오늘날 일반적으로 타당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근대 독일사에서, 소위 제 3제국, 즉 나치-독재에서 갈색은 국가를 상징하는 색상이었던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갈색 유니폼의 출처는 게르만 민족의 신화에서 유래했다.
여기서 '갈색내의'는 의식적으로 곰의 껍질을 쓰고 싸우는 '광포한 전사' 혹은 곰 사냥꾼, 즉 고대의 곰 가죽을 두른 남성결사대였다.
대부분의 일반인에게 갈색은 오랫동안 안정성과 확실성을 가져다주는 흙을 의미 했었다. 그러나 나치-독재에서 이들은 아무것도 안전하다고 믿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갈색'집단, 갈색군복을 입은 군인이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전쟁 이후 사람들은 '갈색'을 지구와 결합(피,땅,향토)시켜 갔다.
다시 말해서 도시 또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간 할 것 없이 누구나 결국에는 다시 갈색의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새로이 인식했던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통해 이제는 갈색 성향이 일반적으로 하나의 긴밀한, 호감을 가는, 시민적인 색상으로 인식 되어간다.
그래서 이제는 갈색하면 순간적으로 연상되는 것은 작업, 주부, 식량, 오물, 구운고기, 일반 가정의 식사, 소박한, 건조한, 분쇄하는, 부패한 쓰레기, 초코렡, 담배, 커피, 가축사료, 비종교적인 것 등이다.
초록색이 삶과 자기주장을 위해 자아, 영혼, 의지를 앞세우는 이미지라면, 갈색은 배타적으로 자아의 신체적인 쪽에 집중한다.
갈색은 '쉽게 살아가는'것의 의미가 내포 되어 약간은 지나친 향유를 암시한다.
초등학교 어린이의 태도에서 특별히 환경에 의해 손상된 어린이는 종종 갈색을 마음에 드는 색상으로 선택하는 것이 두드러진다.
색깔의 힘 - Harald Brea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