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편 단편소설>
바람 언덕에 핀 꽃
오월 중순이다. 넓게 펼쳐진 보리밭에는 도대체 푸른색이 없다. 황금빛이다. 보리누름이 되려면 아직 열흘은 남았는데. 대원은 샛노란 보리밭에서 실오라기 같은 푸른색을 찾고 싶다. 길섶에 차를 세우고 가드레일을 넘어 논두렁을 밟았다. 보리알은 탱탱하게 여물었고, 쭉쭉 뻗어 올라온 보리까슬이는 날카로웠다. 대원은 보리깜부기라도 찾을 요량으로 논두렁에 쭈그리고 앉아 보리밭을 살폈다. 보리깜부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아빠, 저게 뭐야?’
‘보리깜부기’
‘먹는 거야?’
‘아빠 어릴 때는 따 먹기도 했어. 배가 고팠으니까.’
‘나도 먹을래.’
‘아빠가 어른이 되어서 알게 됐는데. 보리깜부기는 보리이삭이 병든 거래. 그래도 먹어 볼래?’
‘그렇구나. 아빠가 건강해서 다행이야.’
예닐곱 살짜리 아이가 보리밭사이로 새처럼 날아다니며 반복했다. ‘아빠가 건강해서 다행이야.’ ‘아빠가 건강해서 다행이야.’ 대원은 논두렁에서 벌떡 일어섰다. 갑자기 눈앞이 뿌옇게 변하면서 몸이 휘청 흔들린다. 대원은 다시 퍼질러 앉았다. 눈을 꼭 감았다 떴다. 누런 보리밭이 대원을 바라보며 살랑살랑 흔들렸다. 대원은 가까스로 일어나 승용차가 있는 길섶으로 나왔다. 가드레일을 잡고 새삼스럽게 보리밭을 다시 봤다. 새들이 ‘아빠 여기, 아빠 여기’하면서 포로롱 날아올랐다가 보리 골로 숨었다.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되는 느낌이다.
대원은 승용차에 올라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실었다. 30년 만에 가는 길이었다. 서울에서 대진 고속도로를 탔었다. 고속도로가 끝나는 통영에서 내려 국도로 들어선 길이다. 거제로 가는 길은 미로를 향하는 길 같다. 길은 강을 따라 흐르기도 하고, 들판을 지나기도 하고, 아파트가 즐비한 도시를 울타리 삼아 지나기도 한다. 강을 따라 흐르는 길은 여유와 평화로움이 있다. 길은 일차로 보다 넓고, 이차로 보다 좁을수록 마음이 편하다. 사차선 길에 서면 삭막하다.
대원은 방음벽이며 가드레일이 없는 길을 찾아 에돌았다. 금계국이라든가. 혹은 천인국이라든가, 노란 꽃이 길섶을 온통 장식하고 산자락까지 노랗게 물들였다. 대원은 강을 따라 달렸다. 강물 속에 거꾸로 매달린 금계국이 물속에서 웃고 있다. 살아온 날이 물속에서 잠수를 하는 것 같다. 라디오를 켰다. 세월호 소식을 알려준다. 아직 실종자를 모두 찾지 못했단다. 300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은 한 달 보름이 되도록 마무리 짓지 못했다. 대원은 가슴이 쥐어짜듯 아프다.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한 손을 명치에 대고 숨을 몰아쉰다. ‘그래, 가자. 가서 만나자.’ 중얼거렸다. 어쩌면 이번 길은 현이와 세월호 참사로 인해 영혼이 된 꽃다운 소년소녀의 넋이 그를 이끌고 있는지 모른다.
대원은 서둘러 내비게이션을 작동시켰다. 거제관광안내소를 쳤다. 신 거제대교를 건너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곳에 당도해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육중한 성곽이 앞을 가로막았다. 오량성이다. 거제의 관문, 고려시대에 역이 있던 곳이며 무신의 난 때 폐위되어 거제도로 추방당한 의종이 쌓은 성이라는 설도 있고, 조선시대 연산군 때 쌓은 성이라는 설도 있지만 오량성은 대원에게 낯설지 않는 장소다.
대원은 성에 올랐다. 성곽 위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 여러 그루가 나란히 서 있다. 느티나무 아래 퍼질러 앉았다. 성 안에는 여전히 마을이 있고 논밭에는 곡식이 자라고 있다. 동네가 좀 더 크진 것 같지만 가지런하게 정리정돈 된 논밭에는 옥수수, 상추, 감나무, 대추나무 등 온갖 것이 자라고 있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고향의 모습이었다. 대원은 어렴풋이 떠오르는 고향집을 찾았지만 어디가 어딘지 통 알 수 없다. 대원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새삼스럽게 진갑을 바라보는 나잇살을 헤아리며 중얼거렸다.
‘좀 더 일찍 올 수도 있었는데. 미안하다. 현아.’
대원은 성에서 내려와 관광안내소를 찾았다. 수더분한 여직원이 관광해설사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친절하게 관광지도를 챙겨 준다. 대원은 관광지도를 승용차 보닛 위에 펼쳐놓고 돌아보고 싶은 곳을 손가락을 꾹꾹 눌렀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거제포로수용소부터 들리기로 작정하고 차를 출발시켰다.
대원은 내비게이션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도심을 지나고 다시 한적한 국도를 달렸지만 거제포로수용소유적지는 보이지 않았다. 오래 전 기억을 떠올리다 갓길에 차를 세웠다. 너무 멀리 온 것 같았다. 쌩쌩 지나치는 차량을 붙잡고 물을 수도 없어 차를 돌려 길가의 주유소에 들어갔다. 기름때가 덕지덕지 묻은 작업복을 입은 사내가 ‘어서 옵소’하며 달려왔다.
“가득 채워 주시오. 그리고 길 좀 물어봅시다.”
“옙 말씀만 하이소.”
“거제포로수용소를 가야 하는데 아무래도 지나친 것 같아서......”
“지나쳐도 한참 지나쳤네예. 오던 길을 다시 돌아 가이소. 거제시청만 찾아 가모 될 깁니더. 그 주변에 가서 물어보모 금세 압니더.”
“거제시청을 지나친 것 같은데. 포로수용서 흔적이 없었어요.”
“싹 단장을 새로 했다 아입니꺼. 원래 포로수용소가 있던 고현과 수월리, 그 일대는 완전히 달라졌지예. 아파트가 줄줄이 들어서는 바람에 도로도 싹 바뀐 기라요. 여게 살아도 도깨비가 장난치는 것을 보는 것 같습니더. 하룻밤새 건물이 쑥쑥 자라는 것 같다니깐요.”
“그렇군요.”
“거제는 처음입니꺼?”
“오래 전에 떠난 곳이라 낯설군요.”
“그럴 깁니더. 그라마 무조건 거제시청만 내비에 치고 가이소. 산 쪽으로 눈여겨 보모 포로수용소 유적지가 있습니더.”
“옛날에 그 쪽은 완전히 허허 벌판에 철조망만 쳐져 있고 부서진 건물잔해만 남았던 것 같은데.”
“그걸 다 축소해서 옮겨 놨다 합니다. 유적은 그대로 두어야 제 맛이 날 낀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조건 새로 맹그는 기 좋다니까. 오롯한 옛것은 없는 거지예.”
대원은 더 이상 말을 섞기 싫어서 고개만 끄덕였다. 사내는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하면서도 기름통을 빵빵하게 채웠다. 주유가 끝나고 대원은 오던 길을 되짚어 달리기 시작 했다. 내비게이션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목소리는 ‘좌회전 하십시오. 우회전 하십시오.’ 하면서 지시사항을 잘도 읊조린다.
거제포로수용소는 아버지가 있던 곳이다. 아니, 현이의 손을 잡고 주말이면 가끔 나들이를 하던 곳이기도 하다. 현이에게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산교육을 시키던 장소이기도 했다. 현이는 유별나게 할아버지 이야기를 좋아했다. 외모나 행동거지도 할아버지를 닮았다며 ‘너거 아부지가 환생했는 갑다 야.’ 어머님은 신기해했다. 현이는 할아버지 이야기라면 듣고 또 들어도 싫증을 내지 않았다. 대원이 주말에 좀 쉬고 싶은데도 현이의 손에 끌려 그 곳을 찾곤 했었다. 거제포로수용소는 아버지가 육이오 동란 때 반공포로로 잡혀 몇 달을 살던 곳, 공산포로와 반공포로의 반목으로 폭동이 일어났을 때 죽을 만큼 얻어터진 것이 빌미가 되어 반공포로를 비밀리에 석방 했을 때 아버지는 초죽음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었다. 아버지는 그 길로 돌아가셨다. 세 살이었던 대원은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진 날 갠 날 없이 손톱 밑에 흙 알갱이 채우며 호미 들고 산 어머니, 외아들인 자신을 키워 낸 어머니, 장가들어 손자 현이를 안겼을 때는 고생한 보람을 느낀다던 어머니셨다.
그러나 그 일이 터진 후 서울로 이사를 갔지만 어머님은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셨다. ‘금쪽같은 내 새끼 우야꼬, 우야꼬.’ 하시면서 차마 눈을 감지 못하시던 어머니, 달 밝은 밤이면 남산에 올라 달을 봤다. 어머니는 달 속에서 다소곳이 손자를 안고 대원을 내려다보셨다. ‘어머님, 잘 계시죠? 저도 잘 있어요.’ 대원은 늘 보름달만 뜨면 남산에 올라가 달을 바라보며 서로를 위로하고, 위로 받곤 했다. 어쩌다가 툭 어머니 자리에 낯선 여인이 앉아 현이를 안고 있는 것 같을 때 술을 마시지 않으면 살 수 없던 시절도 있었다. 낯선 여인, 대원은 중얼거렸다. 그녀는 그에게 언제부터 낯선 여인이 되었을까.
‘목적지 근처에 도착했습니다.’
내비게이션의 목소리에 현실로 돌아온 대원은 바로 눈앞에 서 있는 표지판을 읽었다.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 낯설었다. 허 허 들판만 생각하고 왔던 길이라 도심 가장자리에 위치한 유적지는 상상이 안 됐지만 일단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빈자리가 별로 없다. 주말이라 관광객이 많았다. 대원은 표를 사고 계단을 올라갔다. 여기가 아닌데. 기억속의 거제포로수용소는 넓은 공터와 철조망과 포탄자국이 남은 건물의 잔해와 원형의 밥솥이었다. 유적공원을 다 돌아본 후에야 이유를 알았다. 1983년에 유적관을 만들어 그 당시의 사진과 장비 및 의복 등을 축소 복원해서 전시 한 것이었다.
그렇지. 그가 거제를 떠날 즈음 한창 공사 중이었지.
대원은 기억을 더듬으며 걸었다. 유적지 한쪽에서 비로소 대원은 자신이 찾던 것을 보았다. 아버지가 밥을 짓던 솥, 미군들이 춤을 추던 곳, 현이는 그 곳에만 오면 부엌에 나무 단을 안고 낑낑대는 할아버지 흉내를 냈고, 둥근 원탁 위에서 깡깡 춤을 추며 미군 흉내를 내 그를 행복하게 했었다. 대원은 계단에 퍼질러 앉았다. 현이도 따라와 앉았다. ‘아빠 고마워.’ 뜬금없이 아이는 고맙다는 말을 했다. ‘뭐가 고마워, 너에게 참 미안하지.’ 대원은 아이를 안듯이 손을 휘저었다. 옆에는 아무도 없다. 다시 아이가 옆에 와 앉으며 대원을 빤히 바라본다.
‘아빠, 전쟁은 나쁜 거야?’
‘그래,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지.’
‘아빠, 할아버지는 투사였어?’
‘그래, 할아버지는 김구 선생님을 따르셨대.’
‘김구 선생님은 누군데?’
‘민족통일을 원하신 큰 어른이야’
‘민족통일이 뭔데?’
‘너도 학교 들어가면 배울 거야. 집에 가면 위인전에서 찾아보자. 백범 김 구 선생님에 대한 것이 있는지. 없으면 사다 줄게.’
‘나도 후제 할아버지처럼 투사 할 거야’
현이는 영특했다. 일곱 살 나이에 비해 의젓하고 조숙했다. 책을 좋아했고, 그림을 잘 그렸다. 남자애가 좀 우락부락했으면 싶은 것이 아버지 마음이었을까. 태권도도 가르치고, 축구도 가르쳤지만 현이는 그런 활동적인 것보다 조용하게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을 더 좋아하는 선천적으로 따뜻한 아이였다. 외모는 대원을 닮아 미남형이지만 성격은 아내를 닮았다. 아내, 대원은 한 순간 멈칫했다. 아내라는 말, 얼마 만에 떠올린 단어인가. 기억에서 완전히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던 여인, 가슴 바닥에 박힌 잡초의 뿌리처럼 뽑아내고 싶어도 뽑아낼 수 없었던 여인, 사람들은 세월이 약이라고 했지만 세월은 약이 될 수 없었다. 대원에게 그 사건은 지독한 통증이었고,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는 황무지였다.
30년 전 그 해 봄, 사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한 흰 꽃이 오월 중순도 되기 전에 산과 들을 온통 도배했다. 매화가 지기도 전에 벚꽃이 전국적으로 만개를 하더니 오월의 꽃으로 불리던 아카시아가 사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했다. 아카시아, 찔레꽃, 이팝나무 꽃, 산딸나무 꽃, 산 목련 등 흰 꽃이 며칠 새 완전히 만개를 해 버렸다. 흰 꽃이 유난히 탐스럽게 핀 봄이었다. 날씨는 한 여름을 방불케 했다. 사람들은 날씨가 미쳤다고 했다. 날씨가 미치면 사람도 미치는 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원은 한창 젊음의 혈기에 차 있던 30대 후반이라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든 바로 돌아가든 무심했다. 자신의 일에 푹 빠져 살았다고나 할까.
주말이면 직장 동료들과 어울려 동호회 활동에 열을 올렸다. 산을 찾고 낚시를 하러 다니고 밤에는 색소폰과 운동을 다니며 정신없이 삶의 진동을 따라 흔들렸다. 일곱 살이었던 상현은 늘 대원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함께 있어주길 바랐지만 가끔 거제포로수용소나 바람 언덕에 데리고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주는 것으로 아비 노릇을 다 했다. 아내는 가족 나들이를 싫어했다. 대원은 그런 아내가 늘 못마땅했다. 온종일 집에 있으면서 피곤하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물론 어머님과 논밭에 곡식을 심어 거둔다는 것은 알지만 온종일 직장에 시달리다 주말을 맞은 남편에게 꼭 아들을 떠맡겨야 하는지.
그날따라 아내의 기분이 저조했다. 아니, 똥 씹은 얼굴이다. 또 어머님과 다투었나 싶어 대원도 화가 솟구친다. 청상과부로 대원만 바라보고 산 어머닌데 며느리가 그 어머니 심기를 수시로 건드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내가 밖에 나가면 어머니는 대원을 붙잡고 하소연하기 일쑤였다.
“현이 에미가 시에미를 아주 우습게 본다. 참말로 복장 터져 몬 살것다. 고마 옆집 순이한테 장개 가라쿵께 오데서 저런 여시를 데리고 들어왔는지. 내가 내 명에 몬 살기다.”
“어머니, 저 사람 심성은 고와요. 농사일 안 해 본 사람이라 농사를 지으려니 힘들어서 그럴 거예요. 어머님이 너그럽게 품어주세요.”
“내가 온제 특별나게 굴었나. 시집살이는 누가 하는데.”
어머님은 찬바람을 일으키며 힁허케 밖으로 나가시곤 했다. 대원은 아내를 사랑했다. 대원이 지방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갔을 때였다. 대원은 학원 가까운 곳에 하숙집을 구하기 위해 처음 찾아간 날, 문을 열어주는 처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사랑에 감전되었다.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시간은 단 8초에 불과하다 했든가.
대원은 아내의 헌신적인 보살핌을 받으며 서울 생활 1년 만에 경남지방공무원 공채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아내를 데리고 거제 집으로 왔을 때 어머님은 처음부터 아내를 반기지 않았다. 싹 깎은 밤톨같이 깍쟁이 기질이 다분한 서울 처자라고 싫어했지만 그 속내는 다른 곳에 있었다. 오래전부터 이웃집 처녀를 며느리 감으로 점찍어 두고 있었던 것이다. 대원은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감행했다.
그리고 현이가 태어났다. 현이가 태어나자 어머님의 아내에 대한 태도가 나아지긴 했지만 아내는 시간이 흐를수록 시골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대원은 집에 일찍 들어오는 것이 자꾸 부담스러워졌다. 주말이면 집에서 편하게 쉬고 싶다가도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 끼어 온몸에 바늘이 꽂히는 것 같았다. 밖으로 나가버리는 것이 상수였다. 그럴 때면 무조건 배낭을 메고 등산을 간다며 집을 나서거나 이 것 저 것 배운다며 거제 시내에 있는 학원으로 내뺐다. 아내는 그런 대원을 지독히 경원하고 미워하는 단계까지 왔다.
그날도 그랬다. 모처럼 어머님이 진주 이모 님 댁에 가시는 바람에 아들을 사이에 두고 오붓한 주말이었다. 아내에게 점수를 좀 딸 수 있을 것 같아서 대원은 신이 났다.
“우리 현이 데리고 바람 쐬러 갑시다. 모처럼 가족 나들이 하겠네.”
아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원에게 찬물을 확 끼얹었다.
“나도 좀 쉬자고요. 어제 온종일 마늘을 뽑았더니 허리가 내려앉아요. 만사 귀찮으니 당신이 아이 좀 데리고 다녀오세요.”
“날마다 집에서 쉬면서 따로 쉴 게 뭐 있남? 직장에서 온종일 시달리는 나도 있는데.”
“뭐라고요? 그럼 어디 바꾸어 살아봅시다. 당신이 어머님과 농사일해요. 나는 직장 다닐 테니까.”
“말 되는 소리를 해라.”
“말 되는 소리니까 하는 거예요. 내가 이 집에서 부리는 소예요? 어머님과 도저히 한 집에 못 살겠으니 시내로 이사 가요.”
“어머니를 혼자 두고? 이 사람이 정신이 있나 없나”
대원도 목소리가 높아졌다.
부부싸움이란 사소한 것에서 시작해 구전재전 이야기까지 쏟아져 나와 결국엔 분노를 표출하게 된다. 옥신각신하다가 결국엔 아내 입에서
“이혼해요. 나 더는 못 살겠으니 갈라서자고요.”
“뭐, 이혼? 그래, 이혼하자. 그렇게 살기 싫으면 나가면 되잖아. 안 잡는다.”
대원도 화가 꼭지까지 올라 맞받아치며 거실의 탁자위에 놓인 책을 들어 벽에다 패대기를 치고 현관문을 거칠게 열어 젖혔다. 문 옆에 서서 잔뜩 질린 얼굴에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아들을 봤다. 대원은 아차 싶었지만 아들에게 일별도 주지 않고 집을 나와 버렸다. 아들이 그의 등에 대고 무어라고 중얼거렸지만 기억하기 싫어서 묻어버렸다. 막상 집을 나왔지만 갈 곳이 없었다. 집 옆 공터에 세워놓았던 픽업을 탔다. 말단 공무원이었던 그는 사무실에 가서 밀린 일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페달을 밟았었다.
그리고 그 날, 현이는 그를 떠났다.
대원은 계단에 퍼질러 앉았다. 그 대목에만 오면 숨이 찼다. 한참을 두 무릎 사이에 고개를 파묻고 있다가 일어섰다. 천천히 포로수용소의 유적지를 돌아 나오다 예전에 포로수용소 입구가 있던 곳을 찾았다. 녹 쓴 철조망을 감아 오른 담쟁이 넝쿨이 옛 자취를 기억나게 했다. 소나무 아래 시멘트가 깔린 둥근 원안에 들어가 앉았다. 포로수용소에 기거하던 미군 병사와 그 아내, 가족들이 파티를 열던 곳이라 했다. 밤이면 청춘남녀가 모여 몽환의 춤을 추며 즐기던 곳, 철조망 안에서 그 현란한 광경을 지켜보며 이를 갈았을 포로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살아 있는 자보다 죽은 자가 많으리라. 역사는 기록에서만 남아 있을 뿐 직접 전쟁의 참화를 겪지 못한 현재를 사는 사람에게 아픈 역사도 스쳐가는 바람 같은 것이 아닐까.
대원은 거제포로수용소를 나와 바람언덕으로 향했다. 학동 몽돌해수욕장 근처를 지날 즈음에는 자신도 모르게 가속페달을 밟은 오른발에 힘이 실렸다. 중형 SM5는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바람을 가르며 구불구불한 길을 달렸다. 바다를 품고 앉은 섬 거제, 다리가 생기면서 배편이 아니라 육지와 이어졌지만 그에게 거제는 여전히 무인도 같은 섬이었다. 관광객이 밀리고 밀리는 곳이라 해도 그에게는 낯선 그림일 뿐 그의 마음에 있는 섬은 짙은 검회색 바다와 낡은 어선이 떠 있는 폐허 같은 섬이었다.
대원은 바람의 언덕으로 가는 길에서 바다 쪽을 봤다. 굳건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바위덩이, 신선바위는 천년 후에도 그 자리에 그대로 꿈쩍도 않고 앉아 있을 커다란 덤이었다. 신선바위가 가슴을 찌르며 들어왔다. 통증, 이젠 모두 사그라지고 없으리라 생각했던 통증은 늘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처럼 솟구쳤다. 그 옆에 바다의 풀등 같은 송도도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대원은 바람언덕의 이정표를 지나 간이주차장에 승용차를 세우고 좁고 가파른 오른쪽 언덕 아랫길을 따라 신선바위 쪽으로 내려갔다. 대원은 신선바위 끝자락에 가서 걸터앉았다. 짭조름한 바다냄새가 오관을 자극했다. 바위를 치고 가는 하얀 포말이 그때 뿌린 눈물방울 같았다. 아내는 통곡을 하고, 그는 속울음을 삼키며 그 자리에서 아이를 보냈었다. 자유롭게 날아가라고, 갈매기 조나단처럼 가볍게 날아가라고. 비로소 대원은 자신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알았다. 팔뚝에 내려앉는 끈끈한 소금기조차 혀로 핥아 먹고 싶을 정도로 그리웠던 곳, 아내를 품어주지 못했던 아픔조차 함께 그리웠던 곳, 아내와 함께 뿌렸던 눈물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는데.
‘현아, 아빠가 왔다. 오래 기다렸지? 많이 외로웠을 게다. 그래, 아빠도 많이 외로웠단다.’
대원은 중얼거렸다. 하얀 포말이 다리 아래 신선바위를 강하게 강타하고 물러갔다. 그제야 아들 현이가 현관을 나서는 그를 향해 중얼거렸던 말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아빠, 미워 나랑 거기 가기로 했잖아.’하면서 물기 크렁크렁한 눈으로 바라보던 모습이었다. 아들의 마지막 모습, 30년 동안 하루도 잊을 수 없었던 그 눈빛, 그 모습이 신선바위에 앉으니 더욱 선명하게 떠올랐다. 밀려가고 밀려오는 파도를 타고 아들은 그의 품에 안겼다가 사라져가기를 반복했다.
‘당신 참 모질군요. 어쩜 눈물 한 방울도 없어요. 아들이 가는데. 내 잘못이지만’
바람결에 실려 오는 쓸쓸한 목소리가 파도를 타고 넘나든다. 대원은 돌아섰다. 어쩜 그것은 아내의 잘못만은 아니란 것을 안다. 가족보다 나라는 에고가 먼저였던 젊은 치기 때문에 아들도 아내도 어머니도 제대로 품어주지 못하고 차버린 것이 자신이었음을 안다. 그 날, 불뚝 치솟은 화를 참고 아내를 다독였다면 아니, 현이를 안았다면 그의 인생이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을 안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 한 줄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대원은 신선바위를 뒤로 하고 다시 길 위에 올라 반대편 바람의 언덕 쪽으로 걸어갔다. 이국적인 풍차가 돌고 있는 바람의 언덕, 그 너머 푸르게 넘실대는 바다를 봤다. 바람의 언덕을 오르는 길섶이나 언덕 아래 바닷가는 예전 모습이 전혀 없었다. 그때는 낡고 가난한 작은 어촌 마을이었던 곳이 지금은 완전히 관광지로 바뀌어 있었다. 대원은 바람의 언덕에 오르는 계단을 천천히 밟고 올랐다. 평일인데도 관광객이 많았다. 바람의 언덕이란 이름에 매혹되어 찾는 발길인지, 바람의 언덕에서 바라보는 거제 바다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찾는 발길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의외로 관광객이 많았다.
대원은 천천히 절벽 위에 섰다. 발아래 푸르고 깊은 물이 넘실거렸다. 사람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게 나무기둥을 세우고 굵은 새끼줄을 쳐 놓았다. 그 아래, 노란 금계국이 사방에 피어 있었다. 유난히 노란색을 좋아하던 아이였다.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면 노란색 크레용만 바닥나곤 하던 아이, 대원은 뒤를 돌아봤다. 등 뒤에 풍차가 천천히 돌고 있었다. 그 아이의 넋이 따라와 풍차를 돌리는 듯 했다.
대원은 넋을 놓고 풍차를 보다가 풍차 아래로 사뿐히 내려서는 한 여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바다를 향해 걸어오는 여인, 하얀 저고리에 감색주름치마가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단연 도드라졌다. 대원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개량한복이 참 잘 어울리는 여자구나.’ 순간 대원은 그 여자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자가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대원과 눈이 마주쳤다. 네 개의 눈이 동시에 딱 멈췄다. 관광객도 바람도 그들 사이에 딱 멈추어 섰다. 두 사람은 망부석이 되어 마주봤다. 바람의 언덕에는 오직 두 사람만이 있을 뿐이었다.
“아, 당신......”
여자가 먼저 중얼거렸다.
“순임이 맞소?”
대원은 바짝 마른 입술을 겨우 움직여 물었다. 여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옆으로 걸어와 섰다. 가까이서 본 그녀, 짧은 커트머리를 좋아하던 그녀, 지금은 반백이 된 긴 머리를 어깨 뒤로 단정하게 묶었다. 대원은 돌아서서 바다를 봤다. 순임도 그의 옆에 서서 바다를 봤다. 30년 전 그날처럼 말없이.
대원은 그날을 떠올렸다.
그들은 신선바위에서 새가 된 현이를 보내고 정처 없이 걷다보니 바람언덕의 절벽 앞에 서 있었다. 대원을 따라 말없이 걸어온 순임도 그 곳에 서서 바다를 봤다. 그때는 이국적인 풍차도 없었다. 그냥 바다 위의 절벽 난간일 뿐이었다. 대원은 죽음을 생각했다. 죽고 싶었다. 아들을 따라가고 싶었지만 자신만 바라보고 청상으로 살아오신 어머님을 생각하면 차마 절벽 아래로 뛰어내릴 수도 없었다. 그 곳에서 대원은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꺼이꺼이 목 놓아 울었다.
“왜 그랬어? 왜?”
순임의 어깨를 잡고 쩔쩔 흔들다가 사정없이 밀어버렸다. 순임은 맥없이 쓰러졌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내 탓이에요. 내가 그 앨 죽였어요.”
울 기력도 잃어버린 순임은 풀밭에 엎어진 채 풀을 쥐어뜯으며 그 말만 되풀이 했다.
비로소 냉정을 되찾은 대원은 순임을 향해 나지막하게 말했다. 어떤 감정도 실려 있지 않은 삭막하고 날카로운 쇳소리 같은 거였다.
“당신이 원했지. 그래, 우리 헤어지자. 더 이상 당신과는 안 되겠어. 이렇게 될 줄 알고 당신은 뱃속의 아이도 죽였구나. 현이가 그토록 원하던 동생을 당신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했었지. 이제 알았어. 어머님이 외아들인 내가 외로웠으니 아들 생각해서 손자든 손녀든 상관없이 셋만 낳아달라고 했을 때 당신은 현이 하나면 된다고 혐오스럽다는 듯이 딱 잘랐었지. 어머님은 그런 당신에게 넌더리를 냈고.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구나. 홀가분하겠구나.”
그리고 그들은 헤어졌다. 대원은 이혼 서류를 작성해 순임의 친정으로 보냈다. 직장에 사표를 내고 집과 전답을 팔아서 반은 순임에게 위자료로 지급하고 반을 가지고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로 갔다. 서울에는 외삼촌이 작은 직물공장을 하고 있었다. 대원은 외삼촌 밑에 들어가 일을 배웠다. 잊고 싶었다. 순임도 잊고 싶었고, 현이도 잊고 싶었다. 다 잊어버리고 새로 시작하고 싶었지만 모자는 끝없이 그를 괴롭혔다. 외삼촌은 새장가를 가라고 했지만 여자는 모두 아내 같아서 싫었다. 어머니는 그의 방황이 길어지자 마음병을 얻어 앓다가 돌아가셨다. 외톨이가 된 그는 어머니를 잃고 서야 조금 정신을 차렸지만 여전히 혼자 살았다. 30년 동안 단 한 번도 거제에 오지 않았고 아내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 철저하게 잊었다. 아니 철저하게 잊고 싶었고 잊은 척 했다. 자신이 죽음 앞에 서지 않았다면 아직도 잊은 척 아니, 진짜 잊고 살았을지 모른다. 대장암 말기, 그는 살아갈 날이 길지 않다는 것을 알고서야 아들 현이 생각을 했다. 아니, 고향 생각을 했다. 돌아가고 싶은 곳,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는 것이 기뻤다.
그래서 마음의 정리가 필요해 나선 길이었는데 뜻밖에도 아내를 만난 것이다. 우연일까. 신의 섭리일까. 대원은 곱게 늙은 아내의 모습을 슬쩍 훔쳐봤다. 아내는 잘 살아온 것 같았다. 그래, 잘 살면 된 거지. 맺힌 고를 풀고 오라는 신의 섭리 아닌가 생각하니 마음이 한없이 너그러워졌다. 대원은 앞뒤 뚝 잘라버리고 스쳐가듯 나직하게 말했다.
“그때 일 미안하오.”
“아니요. 제가 늘 미안했어요.”
그들은 바람의 언덕에 사람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텅 빌 때까지 망부석처럼 서서 바다를 보다가 천천히 바람 언덕을 걸어 나왔다. 신선바위와 바람언덕을 가르는 삼거리에 섰을 때 순임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시간 있으면 잠깐 그 곳에 같이 갔으면 해요.”
“거기 말이오?”
순임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 이젠 아프지 않다. 다시 가 봐도 괜찮겠지.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았던 그리움 한 조각이 뭉글뭉글 피어올랐다. 현아, 기다려라. 곧 갈게. 할머니랑 잘 있지? 뜻밖에도 너의 엄마를 만났구나. 30년 만인데 하나도 안 변했네. 그때 그 모습이더라. 아빠는 반갑더라. 너에게 해 줄 이야기가 하나 더 늘어서 좋구나. 엄마를 용서하마. 아니, 네가 아빠를 용서해 줘야겠다. 엄마 잘못이 아니라는 거 안다. 그런데도 아빠는 너의 엄마를 원망했어. 바꾸어 말하면 너를 외면하고 집을 나왔던 나를 용서할 수 없었던 거야. 내 잘못인데. 엄마 잘못으로 돌리고 싶었던 거야. 알지? 너는 그날 많이 외로웠던 게야. 엄마아빠가 크게 싸웠으니까.
대원과 순임은 각자의 승용차를 타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바람의 언덕을 떠났다.
대원은 순임의 차를 따라가며 라디오를 켰다. 세월호 소식이 다시 들려온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의 비탄이 고스란히 그의 가슴을 찔러온다. 모진 세월이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각인된 상처는 낫지 않았다. 가끔 아물었나 싶으면 다시 차오르는 통증이었다.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았던 긴 세월, 대원은 안다. 그들 부모도 그와 같은 마음이리라. 라디오를 껐다.
학동 몽돌해수욕장에 닿았다. 앞서 가던 순임의 차가 바닷가 근처 조그마한 카페 앞에서 섰다. 대원도 근거리에 차를 세웠다. 핫도그와 옥수수, 오뎅을 파는 리어카에서 고소한 냄새가 풍겨왔다. 예전에 그 바닷가는 높고 낮은 다랑이 논밭이었다. 구불구불한 논과 논 사이로 난 소로를 따라 바닷가에 닿았다. 바닷가는 바스락거리는 검은 자갈로 덮여 있었다. 물빛은 푸르고 깊었다.
대원에 승용차 안에 앉아서 창문만 내리고 바다를 봤다. 아직 오월인데도 바다는 한적하지 않았다. 옷을 입은 채 물속에 들어가 자맥질을 하는 젊은 남녀의 경쾌한 웃음소리와 자갈밭을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는 어린 아이의 웃음소리, 물수제비뜨는 소리, 뱃고동 소리, 갈매기의 끼룩 끼룩 우는 소리, 다소곳이 서로의 어깨에 기대 바다를 바라보는 젊은 연인들, 중년 남녀가 모여 먹자판을 벌인 것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지만 바다는 그대론데 주변은 온통 변해버렸다. 가난한 어촌의 모습은 아니었다. 세련되고 흥청망청하는 도시풍의 어촌으로 변해 있었다.
순임이 대원에게 따라오라고 손을 흔들었다. 대원은 차에서 내려 순임을 따라갔다. 순임은 사람들이 뜸한 바다 가장자리를 향해 걸었다. 발자국을 떼어놓을 때마다 짜르르 짜르르 몽돌이 울었다. 순임은 몽돌해변 옆에 바다를 향해 툭 불거진 바위 쪽으로 걸어가다가 어떤 지점에서 멈추더니 바다를 보고 자갈밭에 퍼질러 앉았다. 대원도 순임 옆에 가서 앉았다. 순임은 반질거리는 자갈 두 개를 주워 만지작거리며 먼 수평선 너머 떠 있는 크고 작은 배를 바라봤다. 대원도 가만히 그녀 옆에 앉아 바다를 봤다. 바다는 평온했다.
순임은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신에게 말하고 싶었어요. 당신은 한 번도 내게 묻지 않았고, 나는 말할 기회를 잃었던 이야기지만. 그날, 당신이 집을 나가고 울면서 들어온 현이를 달래기 위해 여길 왔었어요. 나도 울음 울 곳이 필요했고요. 여기에요. 내가 앉아 넋을 놓고 있던 자리가. 그리고 현이는 저기 바위 쪽으로 다람쥐처럼 올라갔어요. 나는 현이에게 멀리 가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는 그냥 잊어버렸어요. 내 설움에 빠져서 꺽꺽 울면서 아이를 잊은 겁니다. 딱 한 번 현이가 저 바위 위에 올라 엄마라고 불렀어요. 나는 근성으로 손을 흔들어 주었지요. 현이는 두 팔을 벌려 사랑한다는 표시를 했어요. 나는 고개를 돌렸고 아이는 사라졌어요. 요즘처럼 사람이 몰렸더라면 누군가 바위에서 미끄러져 바다에 빠지는 현이를 발견했겠지요. 그때는 이곳이 을씨년스러웠어요. 여름철에만 잠깐 북적대는 곳이었지요. 꽤 시간이 흐른 후에야 나는 내 주위가 너무나 조용하다는 것에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아이를 찾았죠. 보이지 않았어요. 나는 미친 듯이 저 바위에 올라 현이를 부르기도 하고, 바닷가를 헤매기도 했어요. 현이를 부르는 내 절박한 비명소리에 동네 노인 한 분이 나오더군요. 나는 그 어른을 붙잡고 우리 아이 좀 찾아달라고 매달렸어요. 그 분이 거제 해경에 연락을 했고, 아이는 파도에 밀려 저 바위 너머 어딘가에서 발견했다더군요. 나는 해경이 안고 온 현이를 보고 그 자리에서 기절을 했었지요. 그 다음은 당신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이미 지나간 세월이오. 나만 힘든 세월은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 둘 다 알거요. 어쨌든 우리는 이렇게 살아 있고 또 만났구려. 아마도 현이가 우리를 만나게 한 모양이오. 한 가지 묻고 싶소. 그날 바람의 언덕에서 당신은 어디로 간 거요? 모진 말을 하긴 했지만 걱정을 했었소.”
“바람언덕에서 당신이 사라진 후 나는 신선바위로 갔어요. 현이랑 같이 있으려고 뛰어내렸지요. 현이가 나를 구했나 봐요. 나는 죽지 않았지만 죽은 여자였어요. 나를 구한 사람은 다름 아니라 현이를 찾아준 그 노인이었어요. 내가 왜 죽으려고 했는지 아는 분이었기에 나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던 거래요. 그날부터 쭉 여기서 살았어요. 저기 <현이 카페>라고 문패가 붙은 집이 제 집이에요. 늘 현이랑 살고 있어요. 내가 당신을 찾았을 때는 이미 몇 달이 흐른 후였고 당신은 서울로 이사를 갔다더군요. 친정어머니께 전해준 위자료 고마웠어요. 그것을 밑천으로 저기 현이 이름으로 카페를 열었어요. 처음에는 바닷가 헌집을 구해서 찻집으로 꾸몄는데 몽돌해수욕장 재정비를 하는 과정에서 현대식 카페가 된 겁니다.”
“재혼도 않고 쭉 혼자 지낸 거요?”
“당신도?”
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다시 만났다한들 무엇이 달라질까. 각자 자신의 길을 걸어 마지막 합일점을 찾아갈 뿐이 아닐까. 그들에게 젊음은 다시 오지 않고, 영원히 자람을 멈춘 아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맴돌 것이다. 대원은 바다를 향해 자갈을 주워 던졌다. 퐁 퐁 퐁 퐁 퐁 다섯 개의 징검다리가 생겼다가 사라졌다. 마지막 둥근 파문 속에 아들 현이가 웃고 있었다. 아들은 환하게 웃으며 손짓했다. ‘아빠, 빨리 와. 엄마, 빨리 와. 여기야 여기’ 아이는 긴 세월을 건너뛰어 개구쟁이 모습으로 거기 있었다. 그들은 아이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한 것 같았다.
“갑시다.”
대원은 순임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순임도 대원의 손을 꼭 쥐었다. 수평선 너머 해가 설핏 기울고 있었다. 고기를 낚으러 갔던 어선들이 조용히 돌아오고 있었다. 돌아올 집이 있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희망의 불빛이리라. 대원과 순임도 오랜만에 편안한 휴식에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긴 기다림이었다. 더는 기다릴 필요가 없는 그런 기다림이었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걸었다.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어떻게 건널 것인가는 그들 두 사람의 숙제일 뿐이다.
2014. 6. <거제 스토리델링 발표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