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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불교와 상담심리
Ⅱ. 廓庵 十牛圖의 특징
Ⅲ. 十牛圖와 심리치료의 對比
1. 심리적 문제의 발생원인
2. 심리적 문제의 해결과정
Ⅳ. 淨心의 과정과 十牛圖
Ⅰ. 불교와 상담심리
동서양의 많은 정신치료자와 심리상담가들이 불교와 정신치료 또는 심리상담을 통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서양에서는 선을 명상의 한 형태로 보고, 195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명상의 신체 생리적 변화와 그 후 주로 1970년대 초부터 시작된 명상의 심리적 영향에 관한 실험적 연구가 있었고 이들의 연구결과에 의하여 명상의 심리치료 효과가 과학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특히 오늘날 뇌의학의 발전은 불교 명상법의 과학적 연구를 가속화 시키고 있으며, 직지인심과 견성성불을 강조하는 선불교를 인지치료나 상담심리의 기법과 접목시키고자 하는 노력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추세에 따라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의 경우 지난 2007년 한국불교상담심리학회를 개설하고 불교와 상담심리학의 통섭적 연구를 시도하고 있으며 이미 서울과 경주의 대학원 과정에는 불교상담심리학과가 개설되어 있다. 하지만 상담의 현장에서 불교가 활용되기 위해서는 치료자가 먼저 불교수행이나 공부를 충분히 하여 환자와 내담자에게 치료자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같은 경험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불교학적 지식만이 아닌 상담심리기법의 숙지와 충분한 임상경험의 축적도 함께 이루어져야만 한다. 또한 붓다의 근기에 따른 방편설법을 포함하여 선불교에서 수행자를 깨달음의 세계로 이끄는 제접법 등의 상담심리학적 연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오늘날 상담심리학과 불교수행법의 만남은 서양적 정신치료의 새로운 전개를 암시하고 있다. 십우도(十牛圖 또는 尋牛圖 )에 나타난 선사상과 심리치료과정과의 대비는 이러한 통섭적 추세의 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십우도에서는 선의 수행과정을 소를 찾아가는 일에 비유하고 이를 몇 단계로 나누어 선 수행과 깨달음의 핵심을 명료하게 밝히고 있다. 상담심리 치료에 있어서 내담자의 치료도 십우도와 마찬가지로 자기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양자는 수행적 가르침과 심리과학이라는 측면이라는 차이가 존재하지만, 선불교의 수행법 자체가 개인의 그릇된 소견과 번뇌를 타파하고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심리수행법이라는 점을 살펴본다면 양자의 방법적 차이는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Ⅱ. 廓庵 十牛圖의 특징
곽암의 <十牛圖>는 달마선 초기의 관심적, 점수적 선풍을 정통적으로 이어받아, 그 선사상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독창적으로 전개한 남악, 마조류의 선, 특히 임제의 선풍인 홀로 벗어나 아무것도 걸치지 않는 獨脫舞衣적 선사상을 고양하는 데 그 중심을 두고 있다. 즉 임제의 선풍에 입각하여 곽암은 一超直入的인 입장에서 시종일관하는 경향을 보이며, 참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을 수행의 중심으로 삼았다는 사실이 작품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곽암의 십우도가 나타나기 이전에는 보명의 牧牛圖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대혜종고에 의해 간화선이 확립되어 가고 조동종에서 임제종으로 그 사상적 흐름이 변화해 가고 있었다. 따라서 임제종의 성립과 그 사상적 기반으로서 간화선의 확립은 곽암의 십우도가 보명의 목우도와는 달리 원상을 중시하고 있으며 돈오적인 측면을 가지게 하였다. 또한 보명의 목우도는 ‘아직 기르지 못함’ 에서 ‘기르는’ 것으로 나아가지만 곽암의 십우도는 ‘소를 찾아나서다’ 에서 ‘소를 얻다’로서 소의 검고 흼(黑白), 청정과 오염(染淨)의 대립적 표현을 무시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따라서 곽암의 입장에서 법성의 소는 흑백의 추이를 전혀 보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한 구성상으로도 곽암의 십우도는 첫 단계부터 마지막 단계에 이르기까지 그림이 모두 圓相으로 표시되고 있으며, 대승보살적 사상을 이어받아 泮本還源과 入廛垂手라는 단계가 추가되어 있다.
Ⅱ. 十牛圖와 심리치료의 對比
1. 심리적 문제의 발생원인
<정신분석적>
프로이드는 인간을 무의식적인 존재로 규정하고 있다. 인간의 성격은 원초아(Id), 자아(Ego), 초자아(Superego)라는 삼원구조를 지니는데, 자아는 원초아와 초자아 사이에서 성격구조들간의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성격구조간의 부조화가 발생하게 되면 심리 적 증상이 발생한다. 이때 자아는 억압, 부인, 투사, 치환, 반동형성, 취소 등의 방어기제를 형성하지만, 방어기제가 성공하지 못할 경우 무의식과 자아의 타협점으로서 심리적 증상을 형성하게 된다.
<인간중심적>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하려는 경향성과 함께 다른 사 람에게서 인정을 받고자 하는 긍정적 존중에의 욕구를 지니고 있다. 또한 부모를 비롯한 가까운 성인들의 가치조건에 따라 자기개념을 형 성해 나가면서 긍정적 존중에의 욕구를 충족시켜나간다. 이러한 현실 적 삶에서 자신의 실현경향성과 외부적 가치조건이 일치할 경우 인간 적 성숙을 이루지만 불일치가 일어날 경우 ‘여기와 지금’이라는 현상 적 장에서 부정되는 경험들이 많아지게 되어, 이 과정이 되풀이 될수 록 잠재력을 실현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심리적 묹와 부적응이 발생 하게 된다.
<인지행동적>
엘리스는 인간이 정서적 문제를 겪는 이유는 구체적인 사건들 때문 이 아니라 그 사건을 지각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라고 하였다. 즉 융통성과 현실성, 기능적 유용성에 비추어볼 때 비합 리적인 신념들이 많아지게 되면 심리적, 정서적 문제가 발생하게 되 는 것이다. 아론 벡도 그의 인지치료 이론에서 인간은 자동적 사고를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자동적 사고가 인지삼제(자기비관, 염세주의, 세상부정)과 같은 부정적 내용일 경우 심리적 문제로 이어진다고 하 였다. 심리의 근저에 자리한 역기능적 인지도식은 부정적 내용을 담 은 자동적 사고를 활성화하거나 흑백논리, 과잉일반화, 선택적 추상 화, 의미확대 및 축소, 임의적 추론과 같은 인지적 오류를 일으킴으로 서 심리적 문제를 발생시킨다.
2. 심리적 문제의 해결과정
[1] 심우(尋牛) - 소를 찾아 나서다 (치료의 시작)
茫茫撥草去追尋 水闊山遙路更深
力盡神疲無處覓 但聞楓樹晩蟬吟
아득히 펼쳐진 수풀헤치고 소 찾아 나서니
물 넓고 산 먼데 길은 더욱 깊구나.
힘 빠지고 정신 피로해 소 찾을 길 없는데
단지 들리는 건 늦가을 나뭇가지 매미 울음 뿐.
<선가적해석>
본래 청정한 佛性을 가지고 있으나 자기가 미혹한 상태에 있기에 보리심을 일으켜 우리의 本性인 소를 찾아 나서는 장면이다. 소는 空하기 때문에 이를 찾으려면 자신이 空에 뛰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진리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 진리의 당처인 것이다.
<정신분석적>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적 개념으로 본다면 동자는 ‘의식’이다. 소는 여기서 ‘무의식’을 상징하며 의식으로서의 동자는 이러한 무의식을 찾아간다. 심리적 증상들은 무의식의 활동의 결과이기에 동자는 현실의 심리적 증상을 야기하는 무의식인 소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나는 것이다. 이것은 현실의 방어기제가 무너진 상황에서 자신의 심리적 문제의 근본원인을 찾아가는 해결하고자 하는 ‘뿌리치료’ 로서의 정신분석적 심리치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정신분석적 치료자는 심리치료의 첫 단계에서 내담자에게 이러한 무의식을 찾아갈 것을 요청하게 되고 이것이 정신분석적 심리치료의 출발점이다.
<인간중심적>
칼 로저스의 인간중심적 상담이론에서 찾고자 하는 소는 바로 현상학적 장에서의 ‘경험’이며 동자는 현실적 ‘자기개념’이다. 소의 개념을 더욱 근원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그것은 또한 자신에게 잠재된 ‘실현경향성’에 부합되는 진정한 자기의 모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상학적 장에서의 경험과 외적 가치조건들에 의해 형성된 자기개념이 불일치를 이룰 경우 심리적 문제와 부적응이 발생하게 된다는 칼 로저스의 이론에 따른다면, 치료자는 내담자에게 이러한 경험을 하도록 해야 하며, 자신의 실현경향성에 부함된 진정한 자기의 모습을 찾아가도록 안내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중심적 심리치료의 출발점이다.
<인지행동적>
아론 벡의 인지치료의 관점에서 본다면 동자가 찾고자 하는 소는 바로 ‘역기능적 인지도식’이다. 역기능적 인지도식은 인지적 오류를 발생시키고 그것이 부정적 자동적 사고로 이러져 심리적 문제를 발생시킨다고 볼 때, 인지행동상담의 치료자는 동자인 내담자에게 자신의 역기능적 인지도식을 찾아갈 것을 요청해야 한다. 이러한 심리치료의 시작점으로서 마치 동자가 가진 막대기가 상징하듯 치료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단계라 할 수 있는 것이다.
[2] 견적(見跡) - 자취를 발견하다 (치료의 실마리)
水邊林下跡偏多 芳草離披見也麽
縱是深山更深處 遼天鼻孔怎藏他
물가 나무 아래 발자국 어지러우니
芳草 헤치고서 그대는 보았는가.
설사 깊은 산 깊은 곳에 있다 해도
하늘 향한 그 코를 어찌 숨기리.
<선가적해석>
깊은 산에 들어가 소의 발자국을 겨우 발견한 단계이다. 이때까지 잃어버렸던 자기의 本心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소의 발자국을 본 것에 불과한 것이고 소를 본 것은 아니다. 번뇌의 잡초가 많아 소의 발자취가 확실히 보이지 않는다. 발자국만 똑똑히 보고 추적하면 언젠가는 그 모습을 나타낼 것이다.
<정신분석적>
의식적 자아가 무의식적 내용들을 찾아가는 과정을 말한다. 흔히 정신분석학에서는 상담의 주요방법으로 어떤 대상과 관련하여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 감정, 기억들을 아무런 수정도 가하지 않고 이야기 하게 하는 자유연상기법을 사용한다. 이러한 자유연상 기법의 초기에 나타나는 심리적 증상의 모습이나 전의식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한 자아가 형성하는 방어기제의 내용들도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것들은 무의식이 아니다. 소의 발자국이 소 자체가 아닌 것처럼 무의식이 형성하는 심리적 증상이나 현상들일 뿐이다. 내담자는 치료자의 해석에 바탕하여 자신의 심리적 문제점과 방어기제, 전의식의 내용들을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다.
<인간중심적>
자신이 타고난 실현경향성에 부합된 진정한 자기의 모습은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았다. 내담자는 자라오면서 외부적 가치조건에 따라 형성된 자기개념이 드러내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 예를 들어 상담의 첫 진행과정에서 자신이 왜 힘들었었는지, 무엇이 불만족스러웠는지 등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실현경향성이 가치조건과 불일치를 이루며 나타내던 증상들이었거나, 자기개념이 현실적 경험과 이루는 불일치의 내용들이다. 물론 이러한 불편한 감정을 일으킨 ‘소’의 본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일으킨 심리적 문제들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인지행동적>
인지행동 치료에서 소의 발자국은 현실의 심리적 문제를 야기시키는 부정적 자동적 사고의 내용들이다. 치료자는 내담자의 현재 삶에서 심리적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환경적 자극과 자동적 사고를 내담자와 함께 탐색하고 조사해 나가면서 소의 발자국에 해당하는 부정적 자동적 사고의 내용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상담자는 인지행동치료의 주요 기법 중 증상의 기저에 공통된 요소를 찾고 초기에 발생했던 증상들을 먼저 다루게 된다.
[3] 견우(見牛) - 소를 보다 (문제의 원인 발견)
黃鶯枝上一聲聲 日暖風和岸柳靑
只此更無回避處 森森頭角畵難成
노란 꾀꼬리 가지 위에 지저귀고
햇볕 따사하고 바람 서늘한데 언덕엔 푸른 버들
더 이상 빠져나갈 곳 다시 없나니
위풍당당한 소뿔은 그리기가 어려워라.
<선가적해석>
소의 엉덩이를 본 단계로 見性으로 깨침이 열린 장면이다. 六根門을 통하는 무엇이든 모두 我다. 六根이 觸하는 바가 모두 깨침의 문이 아닌 것이 없다. 우리의 一擧一動이 어느 하나가 깨침의 경지에 통하지 않는 것이 없다. 누구나 소를 가지고 있으니 이를 발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신분석적>
상담자가 꿈, 자유연상, 저항, 전이 등의 의미를 내담자에게 지적하고 설명하고 가르치는 단계이다. 이러한 상담자의 해석을 통해 내담자는 심리적 증상의 이면에 자리잡은 무의식적 내용들을 조금씩 보게 된다. 또한 꿈의 분석을 통해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무엇이 문제인지를 점차 알아가게 된다. 마치 소의 발자국을 따라온 동자가 소의 부분적인 모습을 보게 되는 것처럼 심리적 증상들과 꿈을 분석, 자유연상을 통해 드러난 현상들을 해석하고 분석해 나가면서 무의식의 내용들이 점차로 의식의 영역에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내담자가 과거의 중요한 인물들에게 느꼈던 감정이나 생각을 상담자에게 투영하는 ‘전이현상’이 발생하는데, 이것은 내담자의 무의식이 의식의 표면으로 올라오고 있음을 나타내는 매우 중요한 현상으로 상담자는 전이의 해석을 통해 전이현상에 담겨있는 시점과 대상의 왜곡 혹은 착각을 내담자에게 알려주고 이해시킨다. 동자가 소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처럼 내담자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무의식의 내용들을 보게 된다.
<인간중심적>
상담자는 내담자가 사회화 과정을 통해 발달시킨 가면을 벗어던지도록 돕는다. 성장과정에서 물들여진 여러 가치조건들이 어떤 것들이었나 보여주게 된다. 상담자는 내담자가 자신의 내면에서 진행되는 경험과 접촉할 수 있도록 돕는데 상담의 초점을 맞추면서 ‘감정의 반영’이라는 기법을 통해 내담자가 느끼는 것을 거울에 비추듯 보여주게 된다. 그 동안 내담자가 자신의 자기개념과 불일치하는 내적인 감정들을 명료하게 깨닫지 못하고 부인하거나 왜곡해 것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내담자는 진실된 자기의 모습을 점차 발견하게 된다.
<인지행동적>
벡의 인지치료 상담과정 중 네 번째인 내담자의 부정적 자동적 사고의 내용들이 가지는 현실적 타당성을 따져보는 단계이다. 환경적 자극에 대한 보다 객관적이고 타당한 대안적 해석을 탐색해 보고 이를 기존의 부정적인 자동적 사고와 대치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소 자체인 역기능적 인지도식을 통해 나타나는 현상적 모습이라 할 수 있는 인지적 오류의 모습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상담자는 빈틈메우기 기법이나 칸기법을 통해 자동적 사고들의 모습과 인지적 오류들의 모습을 발견해 나간다.
[4] 득우(得牛) - 소를 얻다. (근본 원인과의 대면)
竭盡精神獲得渠 心强力壯卒難除
有時裳到高原上 又入煙雲深處居
온 정신 다하여 이 놈을 잡았으나
힘 세고 마음 강해 다스리기 어려워라.
어느 땐 高原 위에 올랐다가도
어느 땐 구름 깊은 곳에 들어가 머무누나.
<선가적해석>
불퇴전의 경지를 표현한 단계이다. 이 단계는 일단 깨친 자리이다. 소를 보기만 해서는 안된다. 念念相續하여 佛性을 놓치지 않는 공부가 없으면 이 소는 곧 산으로 도망간다. 즉 분별의 세계에 다시 떨어지게 된다. 따라서 고삐를 단단히 붙잡아 내 것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얻은 이 소를 일상생활에 활용해야 한다.
<정신분석적>
내담자는 상담의 과정에서 자신의 무의식적 내용들을 직접적으로 대면하게 된다. 그 무의식적 내용들은 의식상태에 붙잡아 두기에는 너무 위협적이거나 고통스러운 경험들이다. 따라서 마치 힘이 센 검은 소를 다스리기 힘든 것처럼 저항이 발생하게 된다. 자신의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던 원초적인 충동과 욕구들, 다른 사람에 대한 원망과 적개심, 무력감과 소외 의식의 영역에 나타나면서 내담자는 상담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고통스러운 무의식을 직면하지 않으려 한다. 내담자는 이 과정에서 상담자에게 그러한 무의식적 내용들의 해석을 통해 내담자에게서 발생하는 저항의 의미를 이해하고 이를 내담자에게 적절히 해석해 줌으로써 상담에 대한 내담자의 협조를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인간중심적>
내담자의 내적 경험들은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과 진솔성, 공감적 이해라는 세 가지 태도를 바탕으로 하여 상담자를 통해 반영되어 나타난다. 하지만 소를 잡았어도 소가 날뛰는 것처럼 내담자는 그러한 경험들을 부정하거나 왜곡하게 된다. 이것은 내담자가 자라나는 과정에서 부여된 가치조건들에 강하게 구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그러한 경험들이 지금껏 형성해온 자기개념과 가치조건들에 들어맞지 않기 때문이며,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경우 위협을 느끼기 때문이다. 부모나 가까운 성인들이 제시한 가치조건들에 부합된 방식으로 살지 않으면 무가치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이 자신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인지행동적>
상담자는 앞 단계에서 부정적 자동적 사고의 근원에 자리한 인지적 오류들을 밝혀내고 대체시키고자 하였다. 이제는 환경적 자극을 왜곡되게 만드는 보다 근원적인 역기능적 인지도식의 내용들을 탐색하고 확인하며, 역기능적 인지도식의 내용을 현실설, 합리성, 유용성 측면에서 검토하게 된다. 즉 마치 동자가 소를 얻게 되는 것처럼 인지적 문제점의 가장 근원에 자리잡은 역기능적 인지도식이라는 근본원인을 발견하고 검토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검토과정에서 내담자는 마치 힘센 소를 다스리기 힘든 것처럼 자신의 생각이 맞음을 내세우며 저항을 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담자는 내담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면서 내담자가 보다 현실에 부합하고 사실에 근접한 방식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5] 목우(牧牛) - 소를 기르다. (원인해결과 유지)
鞭索時時不離身 恐伊縱步入埃塵
相將牧得純和也 羈鎖無拘自逐人
채찍과 고삐 메어놓지 않음은
제멋대로 걸어서 티끌세계 들어 갈까봐
잘 길들여서 온순하게 되면
고삐 잡지 않아도 절로 사람 따르리.
<선가적해석>
소를 붙잡기는 했으나 아직 자기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그래서 잘 길들여 내 마음대로 하는 단계이다. 悟後의 수행이다. 단단히 고비를 쥐고 길러가노라면 소는 솔직하고 부드러워져 말을 잘 듣게 된다. 따라서 본래의 면목을 잃지 않도록 소를 잘 길러야 한다.
<정신분석적>
내담자는 이제 자신의 무의식적 내용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들이 의식의 통제하에 놓이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자신도 모른 채 자신의 감정, 행동, 생각 등에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적 요소들을 의식의 영역 밖으로 이끌어 냄으로써 더 이상 무의식이 왜곡된 방식으로 현실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내담자가 무의식에 대한 완전한 통찰을 이루기까지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마치 소를 잡았지만 채찍과 고삐로서 다스리지 않으면 다시 도망을 가듯이 언제 다시 그러한 무의식적 내용들이 심리적 증상을 일으킬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자신의 무의식을 의식의 통제하에 두는 연습을 해야 한다. 상담자도 내담자가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찰과 해석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
<인간중심적>
내담자가 자신에게 부여된 가치조건들을 해제하고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그것들을 부정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고 존중해 주어야 한다. 상담자의 이러한 조력에 힘입어 내담자는 자신을 의미있게 만드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며 외적인 가치 조건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 나가게 된다. 하지만 소가 언제 도망갈지 모르듯이 불완전한 내담자가 언제 다시 자신의 경험을 부정하고 왜곡하게 될지 모른다. 따라서 무조건적 긍정적 존증과 공감을 통한 지속적인 관심과 배려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심리적 문제의 해결은 물론이고 자유롭고 성숙된 존재로 나아가게 된다.
<인지행동적>
상담자는 이 과정에서 내담자가 지닌 역기능적 인지도식의 내용을 현실성, 합리성, 유용성 측면에서 검토하면서 더욱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적 인지를 탐색하여 내면화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내담자 또한 이러한 대안적 인지를 내면화하기 위해 노력하여 현실에 부합하고 사실에 근접한 방식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체득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내담자의 심리적 문제들은 해결된다. 하지만 소가 언제 다시 도망칠지 모르듯이 내담자는 현실적 자극을 통해서 언제든지 다른 인지적 오류들이 발생할 수 있음을 상기하면서 자신의 인지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
[6] 기우귀가(騎牛歸家) - 소 타고 집에 돌아가다 (능동적 제어)
騎牛迤麗欲還家 羌笛聲聲送晩霞
一拍一歌無限意 知音何必鼓唇牙
소 타고 유유히 집으로 가노라니
오랑캐 피리소리 저녁놀에 실려간다.
한 박자 한곡조가 한량없는 뜻이러니
곡조 아는 이라고 말할 필요 있겠는가.
<선가적해석>
소를 완전히 키워서 내 마음대로 부리게 되어 그 소를 타고 本分의 고향으로 자유자재로 돌아가는 단계이다. 어디에도 거리낌없이 大自在를 얻은 경지, 즉 소를 탄 때이다. 소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단계에 이르면 일상생활에 그 소를 활용해야 한다.
<정신분석적>
무의식인 소를 자유자재로 다스리듯 지금껏 자신을 괴롭혀온 무의식적 내용들을 알게 되고 의식적 영역에 둠으로써 무의식 전체는 불가능하더라도 심리적 문제의 근원에 자리잡은 무의식의 통제가 가능하게 된 경지를 말한다. 득우의 경지에서 무의식적 내용들에 대한 지적통찰을 이루고 목우의 과정에서 정서적 통찰을 이루었다면 이 과정에서는 계속적인 훈습이 이루어지는 단계라 할 수 있다. 무의식적 내용과 의식이 따로 있지만 훈습을 통해 무의식의 의식화를 계속적으로 이루어 가면서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단계라 할 수 있다.
<인간중심적>
이 단계에서 내담자는 상담자의 충분한 공감적 이해를 통해 소외와 외로움을 해소하고 여러 가지 제한과 한계들에서 자유로워지면서 자기를 가치있게 생각하고 개성과 정체감을 갖게 된다. 마치 동자가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듯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고 개성과 정체감을 갖게 된다.
<인지행동적>
이 과정에서 내담자는 소를 타고 피리를 불며 자신의 집으로 돌아 오듯이 자신의 인지가 가진 오류를 스스로 깨닫고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적 인지를 탐색하여 내면화 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이러한 대안적 인지의 내면화를 통해 현실에 부합하고 사실에 근접한 방식으로 사고하게 되면서 심리적 건강이 회복된다.
[7] 망우존인(忘牛存人) - 집에 도착해 소를 잊다 (정상적인 삶)
騎牛已得到家山 牛也空兮人也閑
紅日三竿猶作夢 鞭繩空頓草堂間
소 타고 이미 고향에 도착하였으니
소 또한 공하고 사람까지 한가롭네.
붉은 해 높이 솟아도 여전히 꿈꾸는 것 같으니
채찍과 고삐는 띠집 사이에 부질없이 놓여있네.
<선가적해석>
깨치기는 했으나 깨쳤다는데 얽매여서는 아직 완전한 것이 못된다. 깨침은 잊었으나 깨친 ‘나’라는 존재를 가지고 있는 단계이다. 佛性을 깨치기 위하여 소를 찾아서 붙잡아 내 집에 돌아와서는 이제 소를 잊어야 한다. 一道로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 한 몸이 됨을 말한다.
<정신분석적>
무의식의 의식화를 통한 의식의 외연이 넓어지고 자아의 강화가 이루어지면 더 이상 심리적 문제를 일으키던 무의식적 내용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개인의 의식과 하나가 된 것이다. 그 동안 정신분석 상담의 도구들이라 할 수 있는 자유연상이나 꿈, 저항의 해석 등도 마치 채찍과 고삐처럼 필요가 없게 된다. 스스로 자신의 정상적인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경지로써 정신분석상담의 목표가 달성된 것이다.
<인간중심적>
한 개인이 자신의 개성과 정체감을 회복하고 현상학적 장에서 느껴지는 여러 경험들을 부정하지 않고 수용하며 자신의 실현경향성을 발전시켜 나갈 때 더 이상 상담자의 조언은 필요가 없게 된다. 성숙된 자기실현을 통해서 능동적인 삶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인지행동적>
역기능적 인지도식이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전환되게 되면 현실적이고 긍정적인 인지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현실성있고 융통성있는 인지방식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게 되면 더 이상 역기능적 인지도식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에 따른 인지적 오류나 부정적인 자동적 사고의 발생도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상담자가 제시한 대안적 인지들도 필요가 없는 정상적인 삶이 가능하다.
[8] 인우구망(人牛俱忘) - 사람도 소도 모두 잊다
鞭索人牛盡屬空 壁天遼闊信難通
紅爐焰上爭容雪 到此方能合祖宗
채찍과 고삐, 사람과 소 모두 비어있으니
푸른 허공만 펼쳐져 소식 전하기 어렵구나.
붉은 화로의 불꽃이 어찌 눈을 용납하리오.
이 경지에 이르러야 祖師의 마음과 합치게 되리.
<선가적해석>
소위 사람도 없고 소도 없다. 따라서 大悟의 철저한 경계이다. 깨침도 없으려니와 깨쳤다는 법도 없다. 즉 佛性을 노골화하여 수행의 정점에 달한 일원상의 단계이다. 둥글기(佛性)가 太虛와 같아서 결함도 없고 남음도 없다. 能見의 사람과 所見의 소가 모두 空忘에 돌아왔다.
<도정신치료적 해석>
소암 이동식 박사는 정신분석의 최고 수준은 제7도 망우존인 단계이지만 道의 단계에서는 제8도 인우구망이 있다고 하였다. 또한 인우구망의 단계는 집착이 없는 공으로 완전한 해방이고 무아라고 하였다. 정신치료는 나와 심리적 현상들을 분별하여 객체인 심리적 현상의 해결에 초점을 맟추고 심리적 증상들의 원인이 사라지는 것을 이상적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제8도 인우구망의 가르침을 통해 자아마저도 초월할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法空의 체득은 심리적 문제의 해결과 연결될 수 있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我空을 통해 개인적 소견인 주관성을 벗어나 세상 만물을 바라볼 것을 요청한다.
[9] 반본환원(返本還源) - 근원으로 돌아가다
返本還源已費功 爭如直下若盲聾
庵中不見庵前物 水自茫茫花自紅
근원으로 돌아가 돌이켜보니 온갖 노력 기울렸구나.
차라리 당장 귀머거리나 벙어리 같을 것을.
암자 속에 앉아 암자 밖의 사물을 인지하지 않나니
물은 절로 아득하고 꽃은 절로 붉구나.
<선가적해석>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청정한 마음이 우주와 하나가 된 곳에 본래로 돌아가는 단계이다. 전 단계의 절대 無의 一圓相을 다시 초월하여 원래의 현실세계에 되돌아 온 경지이다. 산은 푸르고 물은 흐른다는 자연대로의 세계, 천연 그대로를 긍정한 諸法實相의 세계.
<도정신치료적 해석>
소암 이동식 박사는 제9도 반본환원은 본래면목이요, 자신이나 현실을 투사없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禪에서는 眞面目에 도달하기 위해서 360도를 돌려야 한다. 180도의 경계에서는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180도의 부정과 긍정의 감정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360도의 전환이고 위장이나 투사가 없는 현실이 되는 것이다. 그 단계에 이르면 다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 되지만 이것은 360도 전환 이전의 산이나 물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10] 입전수수(入廛垂手) - 저자에 들어가 자비의 손을 드리우다
露胸跣足入廛來 抹土塗灰笑滿腮
不用神仙眞秘訣 直敎枯木放花開
맨 가슴 맨 발로 저자에 들어가니
재투성이 흙투성이라도 얼굴 가득 함박웃음.
신선이 지닌 秘法 따윈 쓰지 않아도
당장에 마른 나무 위에 꽃을 피게 하누나.
<선가적해석>
중생을 제도하는 단계이다. 민중과 하나가 되어 그들을 구제하는 단계이다. 고요한 곳에서 수행을 다 마치고 중생이 있는 네거리에 나와 오가는 사람들을 교화. 佛光을 골고루 베풀어 주는 것이 십우도의 최후의 목적이다.
<도정신치료적해석>
소암 이동식 박사는 ‘도정신치료의 정수는 치료자의 인격으로써 冬土에서 떨고 있는 환자에게 봄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The essence of Taopsychotherapy is bring spring to the patient who is shivering in a frozen land.) 라고 그 목적을 밝히고 있다. 그는 도정신치료는 서양정신치료가 이론과 기법에 중독되어 있는 것에 대한 치료이며 治癒因子로써 치료자의 인격, 관심, 사랑(Preud), 치료적인 에로스(Seguin), 도우려는 열망(J. Frank), 감화, 하이데거의 배려(Sorge)와 공감들이 다 자비심(慈悲心)으로 귀착이 된다고 하였다. 결국 그가 제시하는 봄은 곧 제10도 입전수수에 나타난 일체중생을 위한 자비심으로써 심리치료적 용어로는 공감(共感)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Ⅳ. 淨心의 과정과 十牛圖
지금까지 선종의 수행법을 제시하고 있는 십우도와 서구 심리치료를 대비시켜 보았다. 십우도의 도상이 총 10장인데 비해 서구 심리치료의 대응이 제7장에서 마무리가 되는 것은 서구적 심리치료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소암 이동식 박사는 십우도에 나타난 수도의 과정을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정심의 과정으로 보고 도정신치료적 입장에서 정신치료 방식과 대비 시키고 있다.
심우와 견적, 견우는 환자의 핵심감정, 핵심역동을 이해하는 것에 해당한다고 하는데, 핵심감정이라는 용어는 대혜선사가 <서장>에서 ‘碍凝之物이 제거되면 覺’ 이라는 표현에서 따온 것으로 이동식 박사는 ‘핵심감정을 깨달아 제거되면 覺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환자가 자신의 핵심감정을 깨닫게 되면 정화가 일어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정화의 과정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이 慈悲心에서 발현된 共感이다.
처음 단계에서 일어나는 감정은 부정적인 것이지만 득우는 이러한 감정을 억압하지 않고 느끼고 자각하고 있는 것에 해당된. 목우는 감정(소)를 놓치지 않고 부리고 갈등을 해결하기 시작하는 것이고 긍정적인 감정이 나타나서 자라고 커지는 것을 말한다. 기우귀가는 문제와 현실을 받아들이고 해결하는 것이다. 검은 소가 흰소로 변하는 것처럼 부정적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봄으로써 정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망우존인은 갈등이 비록 해결되었지만 아직까지 자기개념이 남아서 무아의 상태가 되지 못한 것을 말한다. 소암 이동식 박사는 이것이 서양 정신치료의 한계라고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제8장~제10장에 이르는 것을 <도정신치료적 입장>에서 분석해 보았다.
인우구망은 집착이 없는 공으로써 불교의 我空, 法空의 경지와 연결될 수 있지만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는 자신이나 현실을 투사없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즉 0도에서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 경지가 180도 전환된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라는 부정적 감정의 단계를 있는 그대로 거치고 나면 다시 360도로 바뀌어 돌아온 ‘산은 산이요 물은 물’ 로서 긍정과 부정을 포함한 절대긍정의 정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정화된 마음과 무아의 경지에서 비로소 대승보살의 자비심과 같은 따뜻함이 우러 나오며 이것은 소암 이동식 박사가 도정신치료의 정수로 지칭하고 있는 봄의 다른 말이며, 칼로저스가 강조한 ‘공감’과도 이어지는 개념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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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심우도 어려운데 언제 입전수수가될까요.
초발심시변정각....()
스님 다음번엔 기독교의 원죄사상과 불교의 업사상을 비교해 주세요.
불교 업사상과 관련하여 부분적 영역에 대한 생각을 담은 논문한편 올려 보았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들이 많으므로 참고만 하시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질문을 올려주세요....() 원죄사상에 대한 비교와 분석은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부분이라 막연한 답면만 늘어 놓을 것 같아 충분히 살펴보고 올려드리겠습니다. 참고로 '기독교 바로알기'라는 책을 예전에 읽어본 적이 있는데 100% 동감은 할 수 없지만 어느정도 이상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긍정적 존중과 진솔성, 공감적 이해로 내담자의 정화된마음과 무아의경지에서 대승보살의 자비심과 같은 따뜻함이 우러나온다. 나를 찾아나서 나를 만나게되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