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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O, 미스테리 스크랩 프랑스 정부가 공개한 UFO 파일 -『外界기원說을 숙고해 볼 시점』[月刊朝鮮]
산책중 추천 0 조회 68 07.05.26 21:2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정밀 분석] 프랑스 정부가 공개한 UFO 파일 -『外界기원說을 숙고해 볼 시점』
 
항공기 조종사·농부 등 UFO 실제 목격담과 분석 담아…
프랑스 국립항공우주국은 외계인 만났을 때 대책까지 논의
 
맹성렬 국회 과기정위원회 정보통신자문위원
1964년생. 서울大 물리학과 졸업. KAIST 신소재공학과 석사.영국 케임브리지大 공학박사. 한국UFO연구협회 연구부장. 現 국회 과기정위원회 정보통신자문위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케임브리지 ETRI Joint R&D 센터 센터장.
저서 「UFO신드롬」, 「초고대문명」, 「한국상공의 UFO」(공저), 「어떻게 외계인을 만날까?」(역서).

10만 쪽의 UFO파일 공개
 지난 3월22일 「워싱턴 포스트」, 「런던 타임스」 등 全세계 언론은 『 프랑스 정부가 인터넷에 모두 10만 쪽에 달하는 UFO파일을 공개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지금까지 미국을 비롯한 여러 선진국가들이 정부 차원에서 UFO를 조사해 왔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으나, 이번 경우처럼 UFO 조사 내용을 전격적으로 인터넷 상에 공개한 적은 없었다.
 
  언론 보도가 나가자 UFO의 존재를 믿든 안 믿든 간에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 국영 UFO조사기구인 「GEPAN」 홈페이지에 접속을 시도했고, 그 때문에 한동안 서버가 다운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번 UFO파일 공개를 계기로 프랑스의 UFO에 대한 관심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프랑스는 全세계 국가들 가운데 가장 먼저 UFO에 대해 국가적인 차원의 관심을 기울인 나라이다. 이 때문에 UFO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프랑스 정부가 UFO 정보를 공개한 것은 크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번에 공개한 자료들 가운데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진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여러 경로를 통해서 이미 세상에 알려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프랑스 정부가 인터넷 사이트에 공개한 10만 쪽에 달하는 UFO파일 가운데, 1999년 프랑스 국립항공우주국(CNES)의「심층연구위원회(COMETA)」에서 만든 「UFO와 국방: 우리가 어떤 대책을 마련해야 하나?」라는 보고서가 가장 눈에 띈다.
 
  「COMETA」는 국립항공우주국의 「국방고등연구원(IHEDN)」 감사관 출신인 프랑스 공군 장성 데니스 레티가 위원장을 맡고, IHEDN의 전·현직 감사관들이 참여하여 UFO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구성되었다. 이 위원회에서 작성한 이른바 「COMETA 보고서」는 당시 자크 시라크 대통령에게 전달되었다.
 
  COMETA 보고서를 위주로 UFO에 대해 알아보자.
 
 
  세계 곳곳에서 목격되는 「UFO」
 
GEPAN 책임자 장 자크 발레스코.

  <1977년 3월7일 밤 9시경 야간 기동훈련 후, 군사기지로 복귀하던 미라지 IV기 조종사 허브 지로드와 그의 항법사는 3시 방향에서 매우 밝은 빛이 그들과 거의 충돌하는 위치로 접근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 비행물체는 후방 1500m로 지나쳐 갔다. 45초쯤 지나 그 怪(괴)비행체가 되돌아왔으며, 두 조종사는 극심한 공포심을 느꼈다>
 
  지상 관제소의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은 이 UFO는 음속 이상의 속도로 전투기만이 흉내낼 수 있는 뛰어난 기동력을 보였는데, 일반 전투기였으면 당연히 냈을 「소닉 붐」(Sonic Boom: 제트기가 비행 중에 음속을 돌파하거나, 음속에서 감속했을 때 또는 초음속 비행을 하고 있을 때 지상에서 들리는 폭발음)을 발생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COMETA 보고서에 소개된 이 사건에서 UFO는 형태가 변하기도 하고, 레이더와 목격자의 시야에서 동시에 사라지는 특성을 보여 주고 있다. 또 다른 사례를 보자.
 
GEPAN 초대 책임자였던 클라우드 포에르.

  <1994년 1월28일 오후 1시13분경 1만1900m 상공을 순항하고 있던 에어 프랑스 AF3532기의 기장·부기장, 수석 스튜어드가 거의 비슷한 높이로 날고 있는 기상관측기구 같은 물체를 목격했다. 그 크기를 어림해 보니 직경이 무려 250m가량이었다. 더욱 이상한 것은 그 물체가 밤갈색의 종 모양을 하고 있다가 렌즈 형태로 모양을 바꾼 후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이들이 집단환각이나 신기루, 또는 구름을 착각했을 가능성은 배제되었다. 그 물체가 인근의 관제탑에서 레이더에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COMETA 보고서에는 프랑스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목격된 대표적인 UFO도 소개되어 있다. 그중에서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있었던 UFO사건은 미국 정보자유화법에 따라 美 국방정보국(DIA)에서 공개한 자료 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1979년 2월에 작성된 GEPAN UFO 보고서 표지(오른쪽). 1954년 9월26일자「Radar」誌 표지사진. 1954년 프랑스에 UFO가 다수 출현했다.

 
  전투기와 조우한 UFO
 
  <1976년 9월18일 밤 11시경 테헤란 공항 관제탑으로 테헤란 북부의 쉐미란 지역에 거주하는 시민들로부터 「하늘에서 이상한 물체를 목격했다」는 전화가 여러 차례 걸려 왔다. 관제탑 책임자 후세인 페로우지氏가 쌍안경으로 관찰해 보니 실린더 형태의 怪비행체가 테헤란 북부 상공에 떠 있었다. 이 상황은 이란 공군 지휘본부 서열 3위인 작전 부사령관 요세피에게 보고되었고, 직접 그 물체를 눈으로 확인한 그는 사로키 공항에 대기 중인 F4기를 출격시켰다.
 
  출격한 F4기가 그 물체에 45km 거리로 접근하자 갑자기 비행기의 계기판이 마비되고 UHF와 인터콤(기내 통화장치) 등 모든 통신수단이 두절되었다. F4기 조종사는 접근을 포기하고 사로키 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F4기가 더 이상 미확인 물체에 위협이 되지 않을 만큼 충분히 멀어지자 비행기의 계기판과 통신수단이 모두 정상적으로 작동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요세피는 두 번째 F4기를 출격시켰다. 레이더에 포착된 UFO는 보잉 707 급유 비행기 정도의 크기였는데, 굉장히 밝게 빛나고 있었기 때문에 육안으로는 크기를 어림할 수 없었다. UFO와 F4기는 한동안 테헤란 남쪽 상공에 떠 있었다. 이때 반달의 3분의 2 정도 크기의 또 다른 발광 물체가 원래의 UFO로부터 튀어나왔다. 이 두 번째 물체는 곧장 F4기를 향해서 매우 빠른 속도로 돌진해 왔다. F4기 조종사는 그 물체를 향해서 AIM9 미사일을 조준하고 발사하려 했으나 그 순간 미사일 발사 계기판의 전원이 꺼지면서 동시에 모든 통신이 두절돼 버렸다>
 
 
  프랑스 정부의 UFO조사 배경
 
「COMETA 보고서」표지사진.

  COMETA 보고서는, 1977년 5월1일 「국방고등연구원 미확인대기현상 연구그룹(GEPAN)」이라는 공식 UFO기관을 국립항공우주국內에 설치하고 이곳에서 20여 년간 연구조사를 하여 얻은 결과를 총망라한 것이다. 그런데 GEPAN의 성립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었다.
 
  1974년 2월21일 당시 프랑스의 국방상이었던 로베르 갈리는 공영 TV 프로그램인 「프랑스 엥테르(France Inter)」에 출연했다. 그는 『프랑스에도 UFO사건이 일어나고 있으며, 특히 1954년 프랑스 전역에서 많은 UFO 목격 보고가 있어 이를 조사하는 부서가 국방부 내에 설치되었다』고 말했다. 특집방송이 나간 이유는 1973년 미국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UFO 목격 사건들이 발생하여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했고, 그 결과 프랑스 국민들이 UFO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1948년 공군에 「프로젝트 블루북」이라는 공식적인 UFO조사기관이 설치되어 20여 년간 조사를 벌였다. 1967년 미국 국회 국방위원회의 요청으로 당시 全美 물리학회 회장이던 콜로라도 대학의 에드워드 콘돈 교수를 위원장을 한 이른바 「콘돈위원회」가 결성되어 약 2년간의 과학적 연구가 이루어졌다.
 
  1969년 제출된 1000여 쪽 분량의 「콘돈 보고서」에는 「UFO의 實在(실재)와 현상이 현재 알려진 물리학적 범주에 벗어나는 것일 수도 있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하지만 『UFO가 과학적 조사 끝에 천문기상현상인 것으로 밝혀졌다』는 콘돈 교수의 머리말을 매스컴에서 인용 보도하면서 「프로젝트 블루북」팀이 해산하게 된다.
 
  미국 정부의 공식 조사가 종결되자 한동안 UFO 목격 사례가 줄어드는 등 UFO 현상이 주로 대중심리에 기인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1973년 미국에 또다시 UFO 목격 사례가 급증하면서 全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다.
 
  프랑스의 공식 UFO조직이 태동하게 된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UFO는 외계 知性體 조종받고 있다』
 
  국민적인 관심이 고조되자 1974년 프랑스 정부는 국립항공우주국(CNES)에 UFO관련 정보처리를 일임하게 되었으며, 국방고등연구원이 비공식적으로 UFO조사에 관여하게 되었다. 이미 1970년대 초부터 CNES의 몇몇 연구원들이 UFO문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하고 있었고, 그중에서도 책임연구원인 클로드 포에르 박사는 미국의 「콘돈 보고서」를 읽고 크게 고무되어 나름대로 UFO 조사분석의 통계적 기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UFO 조사분석 업무는 자연스럽게 클로드 포에르 박사를 중심으로 한 연구그룹에 맡겨졌다. 1975년 클로드 포에르는 「미국 우주항행학 및 항공학 학회」 관련 회의에서 그동안 자신의 연구내용을 발표하는 등 활동을 했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 가운데 1979년 2월 GEPAN이 「GEPAN UFO보고서」라는 제목으로 작성한 최초의 공식 보고서가 포함되었다. 여기에는 UFO사건에 즉각 대처할 수 있는 조사팀의 역할, 사건 초기 수사를 맡은 경찰들의 역할, 그리고 조사된 보고서를 분석하는 연구자들의 역할 등에 대한 방법론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레이더 목격 사건이나 지면의 착륙 흔적을 조사하는 전담조직의 운용 필요성이 특별히 강조되어 있다. 이 보고서에는 이런 과정을 통해 확보된 1600여 건 보고서의 통계자료가 담겨 있는데, GEPAN은 이 중에서 354건에 대해 매우 신뢰도가 높은 것으로 분류하고 있다.
 
  보고서가 제출된 1979년 초 GEPAN의 대표적인 연구자 중 한 명인 피에르 개랭 박사가 「플라잉 소서 리뷰」誌 25권 1호에 「케네스 아널드 사건 이후 30년」라는 제목으로 기고를 했다. 이 기고문에는 주로 미국 사례를 중심으로 UFO현상에 대한 분석을 하고 있는데, 결론적으로 『UFO는 외계 知性體(지성체)의 조종을 받고 있으며, 세계 각국 정부들이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증명할 만한 구체적인 증거를 어느 정부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일 것』이라고 썼다.
 
  피에르 개랭 박사는 프랑스 정부의 공식 지원을 받는 연구조직인 GEPAN의 주요 연구자로서 GEPAN 책임자였던 클로드 포에르와 함께 대외적인 글쓰기를 금지당했다. 또한 클로드 포에르는 책임을 물어 책임자에서 해임되고, 알랭 에스테를 박사가 새 책임자가 되었다.
 
  1979년 이후 GEPAN의 예산이 크게 늘었으며 조사분석 내용에 대한 외부 유출에 대한 통제가 심해졌다. 하지만 1981년 영국에서 열린 한 UFO회의석상에서 알랭 에스테를은 『GEPAN의 조사결과 잠정적으로 UFO가 외계인들에 의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비공식 발언을 했다. 에스테를이 이런 확신을 하게 된 배경으로 그해 초 트랑장 프로방스 지역에서 발생한 UFO 착륙사건이 크게 작용했다.
 
 
  프로방스에 착륙한 UFO의 흔적
 
  이 사건은 이번에 공개된 프랑스 자료 중에 1982년 작성된 「GEPAN 기술보고서 16」에 자세하게 분석이 되어 있으며, COMETA 보고서에도 프랑스의 가장 대표적인 UFO사건으로 소개되어 있다. 사건의 내용은 이렇다.
 
  <1981년 1월8일 오후 5시경 니스 근교 트랑장 프로방스의 한 농부가 자신의 집 뜰에 둥근 금속물체가 날아와 앉는 것을 목격했다. 그 물체는 어떤 기존의 비행체처럼 날개 등의 특징적인 돌출물이 없었고, 아무런 소음도 내지 않았다. 그 농부 이외에 주변에서 이 UFO를 목격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물질적인 증거가 없었다면, 이 사건은 환각 등으로 치부되었다>
 
  그 물체가 앉았던 자리에는 선명한 둥근 고리 모양의 자국이 남아 있었고, 파견된 조사요원들은 문제의 지점에서 흙과 식물 샘플을 채취해 프랑스의 5개 연구소에 보냈다.
 
  이들 연구소의 분석 결과 UFO 착륙 지점에서 생화학적 변화가 일어났으며, 착륙 지점에서 멀어질수록 그 변화의 정도가 약해졌음이 밝혀졌다. 무엇보다도 주목할 만한 점은 UFO 착륙 지점에서 채취한 흙이 열과 압력에 의해 변성되어 있으며, 식물의 엽록소가 30~50% 감소되었다는 것이다.
 
  1983년 알랭 에스테를이 프랑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 사건을 두고 『아주 명백한 UFO 증거』라고 언급함으로써 일반 대중들에게 처음 알려졌다. 트랑장 프로방스 사건은 GEPAN 활동에 치명적인 역할을 했다. 프랑스 정부에서 공식 UFO 조사를 하는 것이 프랑스 국민들의 UFO에 관한 의혹을 잠재우기는커녕 오히려 더 부추긴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예산이 대폭 삭감되고, 알랭 에스테를은 다른 부처로 옮겨야 했다. 후임으로 장 자크 발레스코가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알랭 에스테를의 퇴진 이후 한동안 유명무실하던 GEPAN 조직은 1988년 「대기 再진입물체 전문부서(SEPRA)」로 명칭이 바뀌었다. 새 명칭은 이 부서가 인공위성이나 로켓이 대기 중으로 再진입할 때 생기는 현상을 조사하는 것이라고 못박고 있지만, 발레스코는 여전히 UFO연구를 그들의 조사 범주에 포함시켰다.
 
  1993년 발레스코는 프랑스 저널리스트와 공저로 「UFO-과학의 진보」라는 책을 저술했다. 이 책에서 그는 『물리적 실체로서 UFO가 존재하며, 그것이 외계에서 왔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결론짓고 있다.
 
  1977년 미라주 IV기 UFO사건은 음속 돌파를 했으나 소닉 붐을 일으키지 않는데 이런 현상은 UFO의 대표적 특성이다.
 
  1990년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 상공에 삼각형 모양의 UFO가 출현해 F16기 두 대가 출동했다. 두 대의 비행기가 UFO에 가까이 접근하자 UFO는 마하 1.5의 속도로 지상 200m까지 급강하하여 레이더망을 벗어났다.
 
  그런데, 브뤼셀 시민 어느 누구도 소닉 붐을 듣지 못했고, 어떤 피해보고도 없었다.
 
지난 30여 년간 프랑스에서 목격된 UFO 모습.

 
  한국에 나타난 UFO
 
1995년 9월4일 오후 2시40분경에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설곡리에서 찍은 사진. 문화일보 김선규 기자가 찍은 이 사진은 노부부를 연속사진으로 찍던 중 우연히 찍힌 것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신뢰도가 높은 UFO 사진 가운데 하나다.

  1995년 9월4일 우리나라에서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그날은 문화일보의 김선규 기자가 UFO 사진을 촬영한 날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당시 비행훈련 교관이었던 P소령은 5000m 상공에서 계룡산 근처를 비행하다 유성 같은 것이 하늘에서 떨어져 지상 1000m에서 멈춘 후 자신이 타고 있는 비행기 쪽으로 날아오는 것을 15초간 목격했다.
 
  바로 밑을 통과할 때 자세히 보니 그 물체는 은빛 금속체로 위가 납작하고 아래가 뾰족한 팽이 모양이었으며, 직경이 3~4m쯤 되어 보였다. 숙지하고 있던 주변의 지형을 참고해서 그 UFO의 속도를 측정해 보니 마하 7이 넘었다. 그런데, 이 물체는 아무런 「소닉 붐」을 내지 않았다. P소령에 의하면, 『일반 제트기가 그런 속도로 비행하면, 소닉 붐에 의해 유리창이 많이 깨져 민원이 들어온다』고 한다.
 
  소닉 붐의 不在에 관해서는 유체 역학적으로 가능하다는 주장이 있다. 1990년 벨기에 브뤼셀 UFO사건 당시 「파리 마치」紙와 인터뷰한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 플라스마 물리연구실장인 장 피에르 프티 박사는 이른바 「라플라스의 힘」이라고 알려진 전자기력을 이용하면 소닉 붐을 消去(소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런 원리를 적용한 초음속 비행기가 개발되고 있다는 소식조차 없는 상황에서 1977년에 이런 성능의 비행체가 운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난센스다.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은 UFO
 
1988년 5월9일 푸에르토리코에서 공군 전투기와 함께 촬영된 모습.

  1977년 미라주 IV기 UFO사건은 여러 사람의 육안으로는 확인되는데 관제탑과 비행기 자체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았다. 이런 사례가 우리나라에서 있었다. 1980년 3월31일 팀스피리트 훈련에 참가했던 2대의 F-4기 조종사 4명은 UFO를 목격하고 추적했다.
 
  소형 여객기 크기의 그 비행물체는 둥글납작했으며, 한가운데에서 용광로 불빛을 위아래로 발산하고 있었다. 이들은 150m까지 바짝 접근하여 30여 분간 좌우상하로 선회하며 그 물체를 지켜보았다. 하지만 연료가 떨어져 기지로 귀환하면서 다른 비행기에 타고 있는 조종사들에게 그 물체를 육안으로 확인시켰다.
 
  놀라운 점은 지상의 관제소에서도, 150m까지 바짝 접근했던 F-4기에서도 어떤 레이더 신호를 포착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조종사였던 이승배 예비역 소장에 따르면, 현재의 최신예 스텔스기로 아주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할 경우 레이더상에 그 윤곽이 흐릿하게나마 잡히는데, 그가 목격한 UFO는 전혀 포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칼 세이건 박사와 함께 미국 「프로젝트 블루북」의 자문을 맡았던 알렌 하이네크 박사는 『신뢰도와 기묘도가 모두 높은 경우에 가장 UFO다운 UFO』라고 정의했다.
 
  그에 따르면 가장 신뢰도가 높은 경우는 이른바 「레이더-육안」 사례다. 육안과 레이더에 동시에 포착되는 경우를 말한다.
 
 
  신뢰도와 기묘도
 
지난 1월 美 위스콘신州 그린베이에서 촬영.

  그리고 홀연히 레이더와 육안에서 동시에 사라지는 것은 「체셔어 고양이 효과」로 매우 기묘도가 높은 경우다. 1994년 에어 프랑스 AF3532기 사건은 신뢰도와 기묘도가 모두 높다는 점에서 가장 대표적인 UFO사례로 꼽을 수 있다. 이런 경우는 1952년 미국 워싱턴 상공 사건에서도 나타났다.
 
  1952년, 미국 수도인 워싱턴 상공에 UFO가 수차례 출몰했다. 레이더에 UFO 편대가 포착되어 요격기들이 출동했는데, 가까이 다가가자 조종사 눈앞에서 UFO들은 마치 전등불이 꺼지듯 사라져 버렸다. 더욱 놀라운 일은 동시에 레이더 스크린 상에서 이 비행물체들이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이다.
 
  이 사건에 대해 당시 미국 「프로젝트 블루북」 팀은 『UFO들이 결코 지구 상 기술로는 흉내낼 수 없는 특성을 보인다』고 결론 내렸다.
 
  에어 프랑스 AF3532기 사건의 경우에는 또 한 가지 기묘도가 높은 특징을 보여 주었는데, 바로 「형태 변형」이 그것이다. 맨 처음 美 공군에서 「UFO」라는 군사용어를 만들어낸 것은 그것이 명백히 비행을 하는 물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어 프랑스 AF3532기 사건같이 형태가 변하고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면, 그것이 견고한 외양을 갖춘 비행체라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UAO(미확인 공중물체)
 
2006년 12월19일 멕시코 코코카타페틀산에서 촬영. UFO는 종종 光球(광구) 형태로 목격된다.

  요즈음 UFO연구가들 사이에 UFO라는 표현보다 「UAO」, 즉 「미확인 공중물체」라는 표현이 흔히 사용된다. 이와 같은 「형태 변형」의 사례가 우리나라에서 1973년 4월13일 충남 보령의 낙동초등학교에서 발생했다. 22명의 학생들과 담임 교사에 의해 목격된 UAO는 맨 처음 6개의 둥근 구름 덩어리 모양이었다가 하나로 뭉친 후 다시 두 개의 럭비공 모양으로 나누어진 다음 구름이 걷혀 붉은 빛을 냈다. 비행 중에 이 물체는 은백색으로 빛났는데 다시 하나로 뭉쳐서 시야에서 사라졌다.
 
  1995년 9월3일 강원 케이블TV 카메라맨이 포착한 UFO는, 맨 처음 하나로 운행하던 UFO가 여러 개로 분열하여 횡대 비행하는 특성을 보여 동일한 범주로 분류할 수 있다. 全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형태 변형 UFO는 1984년 舊소련에서 목격됐다.
 
  처음에 커다란 빛 덩어리로 보이던 UFO는 녹색 구름 덩어리 모양으로 변한 후 나뭇잎처럼 좌우로 흔들리더니 모양이 바뀌어 꼬리 모양과 방추형 동체 모양이 되어 마치 비행기 모습처럼 되었다.
 
외계인 접촉자로 불렸던 스위스 농부 빌리 마이어의「UFO 증거 사진」. 1970년대 중반부터 수많은 UFO 관련 사진들을 연이어 공개돼 조작 논란에 휩싸였지만 美 오리건 주립대 브로디 명예교수 등은 사진을 분석한 결과, 조작된 증거가 없다고 발표했다.

  앞서 살펴본 1976년 이란의 테헤란 UFO사건은 「레이더-육안」 사례이므로 신뢰도가 매우 높다. 조종사가 UFO를 공격하려 하자 비행기 조종을 무력화하고, 통신두절을 일으키는 특성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기묘도」가 매우 높아 대표적인 UFO사례로 보고 있다.
 
  COMETA 보고서에는 이 사건을 UFO의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고전적 사례로 분류하고 있으며, 대표적 특징으로 「극도의 기동력」과 「공격 무기의 무력화」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자동차 운전자에게 발생하는데, 1957년 미국 텍사스州(주) 레벨란드에서 자동차 주행 중 접근한 UFO에 의해 자동차 시동이 꺼져 버린 사건이 있었다.
 
  1981년 트랑장 프로방스 사건의 경우 물리적 증거가 있어서 매우 신뢰도가 높은 UFO사례로 꼽힌다. 이 사건과 비슷한 경우로 1964년 4월 미국 뉴멕시코州의 소코로에서 한 경찰관이 착륙한 달걀 모양의 UFO를 목격한 사건을 들 수 있다. 「프로젝트 블루북」 팀에 의해 조사된 보고서에 의하면, 당시 지면에서 불에 그은 둥근 자국과 함께 깊이가 5cm쯤 되는 3개의 착륙 패드 자국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1989년 舊소련의 보로네시에서 발생한 UFO착륙사건에서 지표면에 자국이 발생했는데, 여기서는 강한 자기장이 검출되었다. 당시 보로네시 지질물리연구소 겐리흐 실라노프 소장은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11t 정도의 무게에 짓눌린 자국과 함께, 믿을 수 없을 만큼 높은 수치의 자기장이 검출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UFO 가설
 
미국 뉴멕시코州 로스웰에서 발견됐다는 외계인 시체를 해부하고 있는 장면. 해부 사진을 놓고 아직까지 진위 논란이 있다.

  지금까지 UFO현상에 대해서 수많은 假說(가설)들이 제기되었다. 특히 눈앞에서 갑자기 사라지는 UFO에 대해서는 「帶電(대전) 상태의 특별한 곤충 무리가 전하를 상실하기 때문」이라든지, 「폭풍우 구름에서 遊離(유리)된 球電體(구전체)의 소멸」이라는 식의 설명이 제기되었지만, 만족스러운 답이 되지 못한다. 30년 전에 음속 이상의 매우 빠른 움직임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닉 붐을 일으키지 않는 특성까지 설명하고자 「반물질 UFO」說까지 제기되었으나 물리적으로 검증된 바 없다.
 
  UFO 소동이 일어나던 1940년대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제기되는 가설은 초강대국의 비밀병기說이다. 1947년 미국에서 공식 조사를 착수하게 된 것이 바로 이런 가능성을 조사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당시 빈출하는 怪비행체가 나치 독일 비밀실험장에서 개발된 모델을 바탕으로 제작된 舊소련이나 미국의 비밀병기로 추정했다.
 
  하지만 기초 조사를 마친 후 작성된 1947년 9월27일자 비밀보고서는 『그것들이 극도의 상승속도와 회전時 뛰어난 기동력, 비행기나 레이더에 의해 감지될 경우 신속히 회피하려는 특성을 보이는 등 당시의 어떤 기술력과도 견줄 수 없는 고도의 기술력에 의해 제작된 비행체』라고 결론 내렸다.
 
프랑스에서 목격된 막대형 UFO.

  최근 필자가 이승배 예비역 소장에게 UFO가 강대국의 비밀병기일 가능성을 물었을 때, 그는 『UFO의 비행 능력이 1940년대의 기술 수준뿐 아니라 2000년대의 기술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사실 때문에 그런 가능성은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가장 선호되고 있는 「UFO 外界(외계)기원說」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인가? COMETA 보고서에서 데니스 레티 위원장은 『지금까지 모은 UFO정보를 토대로 UFO 기원에 대한 모든 가설, 특히 外界기원說을 숙고해 볼 시점』이라고 충고했다.
 
  COMETA 보고서 말미에는 UFO의 外界기원說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드리워질 정치적·종교적 파장까지 언급되어 있다.
 
  COMETA 보고서의 주장대로 현재 우리는 外界 어느 곳으로부터 찾아오는 高度(고도) 문명의 방문자를 맞이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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