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일상에서 매일 밥 때가 되어 찾는 식당들의 음식맛은 그 맛이 그 맛된 지가 이미 오래다. 대량생산에 의한 맛의 편의화가 보태지면서 범람하게 된 인스턴트식품들...... 그리고 화학조미료가 천편일률적인 멋을 내면서 요리한 이의 '손맛깔'을 찾아보기가 여간 어렵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제대로 된 전통먹거리의 식도락조차 잃어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이렇게 맛깔스런 맛을 잃어버리고 사는 나날, 입안 가득 침 고이게 하는 음식잔치 소식이 남도땅에서 풍겨온다. 이름하여 '남도음식문화큰잔치.' 한번쯤은 우리의 맛을 온전히 맛보고 싶었던 나, 남도의 맛과 멋을 온전히 누려볼 수 있는 기회를 어이 놓칠 수 있겠는가.
언제 찾아도 넉넉한 호남평야의 가을 들판은 지금 자연과 인간이 함께 황금빛깔을 내기에 여념이 없다. 토실토실하게 익은 알곡과 주렁주렁 달린 열매들의 살진 속살은 무릇 생명들에게 생명력을 충전시켜 줄 결실 ! 익을수록 겸허해야 하는 삶의 슬기도 가르쳐 주는 교과서. 저 들판의 풍성한 먹을거리는 지금 남도의 아낙들 '맛깔 손'에 의해 한창 산해진미로 둔갑하여 차려지고 있으리라.
해우소도 아름다운 절, 선암사
단풍, 상수리, 은행나무가 온몸을 불사르며 깊어 가는 가을의 선암사. 절로 드는 산행길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의 촬영장소. 비구니 역을 맡았던 강수연이 빨래하던 그 계곡은 여전히 맑은 옥계수를 흘러내리고 있다.
무지개형의 돌다리 승선교 아래에서 올려다보이는 강선루의 풍정은 선암사에서의 최고 절경. 일곱 선녀가 내려와서 목욕을 하고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는 계곡 위의 돌다리 조형미를 찍고 있는 사진작가들을 언제고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잘 찍힐 사진 풍정이 기다리고 있다.
선암사 경내로 들어서기 전 만나게 되는 자생 차 군락지는 지금 하얀 차꽃을 청아하게 피우고 있다. 그 제조법과 전통이 예전 그대로 전해지고 있어 그 격을 최고로 치는 선암사의 토종 야생차 한 잔을 선각당에서 음미해 본다. 향내는 더 없이 그윽하다.
800여 년 세월을 이어오는 수많은 보수과정에서도 시멘트를 사용하지 않은 선암사. 여느 절에서도 느낄 수 없는 고즈넉하고 경건한 분위기가 여간 좋은 곳이 아니다. 대웅전의 화려하고장엄한 자태도 압권이다.
이곳 선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명소는 해우소가 아닐까? 이젠 다른 절간에선 보기 조차 힘들어진 이 해우소는 무려 3백여 년이 넘은 건축물. <자전거여행> 작가 김 훈의 표현대로 "인류가 똥오줌을 처리한 역사 속에서 가장 빛나는 금자탑" 답다.
벽이 높지 않아 쭈그리고 앉은 이의 머리끝을 보고 사람이 거기에 있음을 짐작케 설계한 화장실. "전남 승주지방을 여행하는 사람들아, 똥이 마려우면 참았다가 좀 멀더라도 선암사 화장실에 가서 누도록 하라"는 그의 일갈대로 내내 참아냈던 배설의 꿈을 위해 엉덩이를 까고 쭈그려 앉아 보는 나.
햇살 스며드는 창살 틈으로 내다보이는 잿빛 기와지붕 위에 노오랗게 떨어지는 은행나뭇잎의 색깔 대비. 지극히 아름답다고 느끼는 찰라, 뇌수에 전해 오는 기분 좋은 카타르시스. 장을 탈출한 배설물이 똥간 아래로 낙하 끝에 내는 소리는 "또∼오옹".
그렇다, 이 소리는 기분 좋은 배설의 해방이 똥탑을 쌓는 순간, 작은 우주인 똥간을 울리며 내는 의성어 그대로의 순우리말 ! 산사를 지니는 바람에 불알도 기분좋게 올라 붙는다. 바지를 올리는 나의 똥끝은 미련 없이 시원하기만 하고. '남도의 맛'을 얼마든지 담아둘 준비는 이로써 다 된 셈.
낙안읍성마을 안을 따라드는 고샅길 낮은 돌담 너머론 옛집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여느 민속마을들처럼 보이기 위한 마을이 아니다. 사람들이 살아오고 있는, 생명이 숨쉬는 민속마을이어서 그런지 정겹다.
성안마을을 넉넉히 감싸안은 높이 4미터, 둘레 1400여 미터의 장방형 성곽길은 산책로로도 일품. 나는 어느새 조선시대(1392∼1910)로 거슬러 올라 시간여행을 즐기고 있는 중이다. 100여 세대가 오순도순 살아오고 있는 성안의 민가들. 초가지붕의 포근한 곡선이 직각의 도시건축물에 고곤해진 눈을 한없이 편안하게 해준다.
마을 한가운데의 뜰샘도 그 구조미가 퍽 독창적이다. 이 대동우물가에서는 성안마을 아낙네들이 아름답게 꽃피웠을 수다들이 다시 들려오는 듯하다. 낙안읍성자료관에 드니 낙안의 역사와 생업, 풍속들을 두루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남도음식대축제'의 메인전시는 남도의 22개 시,군에서 최고의 맛으로 참여, 전시한 음식상들. 산·강·바다·들녘 등 권역별로 구분하여 '맛따라 남도기행' 이란 주제로 차려져 있다. 자아, 그러면 '젓가락으로 지구를 들어올린 겨레'의 한 사람답게 남도의 맛자랑따라 눈도 입도 즐거워 볼거나 ! '맛따라 남도기행', '상으로 보는 일생', '허브꽃 요리', '뷔페식 전통음식', '어린이를 위한 전통음식', '음식약국', '술 익는 마을', '가을이 익어가는 전시' 등이 축제객들의 눈길을 맛나게 끈다.
영암 영산강에서 잡힌 숭어의 어란, 혀끝을 톡 쏘는 지리하고 알싸한 맛을 자랑하는 흑산도 홍어, 홍길동도 먹고 놀랐다는 장성의 떡갈비, 밑반찬의 꽃으로 꼽는 남도 젓갈의 대명사 토하젓의 곰삭은 맛, 광주의 명물인 애저탕, 한여름 보신탕으로 꼽는 보성강 자라요리 용봉탕, 담양 소쇄원 죽순탕의 담백한 맛, 원초적으로 씹을수록 뻘의 단맛이 기찬 목포의 산낙지, 강진의 해태식당이나 명동식당에서 한 번씩은 이미 그 푸짐한 상차림에 놀랬던 한정식, 섬진강을 거슬러 압록리에 이른 은어회의 수박향, 그리고 먹을 음식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눈으로만
감상해야 할 만큼 너무 빛이 고운 추월산의 26가지 다식 등 등......
이곳에선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남도아낙들의 손맛을 돈 안내고도 싫도록 먹어 볼 수 있다. 단, 눈으로만. 맛의 고장답게 잘 차려 내놓은 남도의 전통요리에 그만 넋 안 빼앗길 축제객들이 어디 있을까. 입에서는 "맛있겠다 ! ", "참말로 먹고 싶어 환장하것네요 잉 ! ", "참 맛나겠다 !" 등 등 군침 흘리는 찬탄을 연발한다.
낙안읍성 안의 민속마을 음식점거리에 즐비한 향토음식점들도 옛날 주막처럼 정겹다. 마당 마당에는 큰 차일이 넘실거리고 그 아래 펼쳐진 평상에 둘림을 하고 앉은 축제객들은 차려지는 민속음식에 흐뭇해 하니 잔칫집이 따로 없다. '여행의 즐거움 중 맛있는 음식이 절반' 이라는 말대로라면 이곳에서의 남도음식 맛기행은 이미 절반은 성공한 여행을 만들어 주는 셈.
더군다나 배고픈 이들에게 베푸는 보시라는 마음으로 넉넉하게 차려 내놓는 밥장사의 장인정신은 내가 남도기행길에 오를 때마다 유독 들뜨는 까닭 중 하나. 이런 남도의 맛과 정에 반하지 않을 이 있을까?그래서 남도땅 기행은 언제나 식도락가들의 천국 ! 맛의 넉넉함이 입안 가득 느껴진다.
남도의 맛이 이처럼 빼어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그것은 뭐니뭐니해도 너른 호남평야에서 일구어진 풍부한 곡물이 그 바탕일 터이다. 여기에 가까운 청정 서남해역, 특히 뻘을 먹고 자란 숭어, 꼬막, 낙지, 뱀장어, 도미 등 풍부한 수산물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천혜의 자연 조건에서 비롯되었으리라. 아울러 지리산같은 산악지역에서 얻어낸 무공해 산채가 무궁무진 더해졌을 것이고.
이와 같이 다채롭고 넉넉한 먹거리재료가 맛솜씨 좋은 남도의 아낙들 손끝에서 산해 진미의 맛으로 탄생된 것이리라. 그래서 나온 말이 '음식은 역시 전라도가 최고 지라이'가 아닐까? 전라도 사람들의 자존심 어린 이 '맛의 예술'로서의 자랑은 백 번, 천 번 아니 무조건 믿어도 좋은 말.
민속행사장에 마련된 체험코너에서는 떡메를 치며 인절미를 만들어 먹어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천연색소 전통떡 전시 및 판매' , '외국인 음식경연' 도 빼놓을 수 없는 축제 프로그램이 된다. 그런가 하면 이곳 축제장이 아니면 보기 힘든 '쪽물들이기' 와 '남도 천연염색전' 도 수준높은 볼거리.
또한 낙민루 앞에서의 수문장 교대식, 새끼꼬기 등 짚풀 공예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조선시대 장터 재현장은 옛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한편의 공연 무대에선 전국민속예술제와 전통혼례식도 올려진다. 전라남도 무안땅의 전설적인 거지 김작은이의 '각설이타령' 도 재미있다. 이렇게 입 풍년, 눈풍년, 귀풍년 든 축제객들은 무얼 더 바라랴.
맛의 본고장 전라남도는 남도음식의 전통문화를 관광산업으로 다지기 위해 남도음식 별미집 15곳과 명가 9곳을 엄선하여 육성하고 있다. 이 맛집들에서는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의 진수성찬'을 받으며 후덕한 인정에 놀래고, 혀 끝에 감기는 맛에 놀란 후, 음식은 역시 전라도가 최고다' 라는 말을 꼭,꼭 하게 된다.
남도음식 별미집
* 부드럽고 달콤한 '꽃게무침' 의 '장터식당'
전남 목포시 만호동 1가(061-244-8880)
* 참말로 징하게 삭힌 맛 '홍어회'의 '금메달식당
전남 목포시 용당1동(061-272-2697)
* 맛깔스럽고 향긋한 '산채정식' 의 '정읍식당'
전남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백양사입구(061-392-7427)
* 수박향내 싸아한 '은어회' 의 '새수궁가든'
전남 곡성군 압록유원지 입구(061-362-8352)
* 깔끔하고 구수한 '우렁회와 우렁탕'의 '벌교우렁집'
전남 보성군 벌교읍 벌교리(061-857-7613)
* 부드러운 속풀이 진국 '나주곰탕'의 '남평식당'
전남 나주시 금계동(061-334-4682)
* 구수하고 개운한 '갈낙탕' 의 '독천식당'
전남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061-472-4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