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지낚시에 대한 선각자의 조행기록 2편을 공지로 올림니다. ..........................
이 이야기는 사초 송우선생 사이버 기념관에서 발췌했습니다.
(1탄) 남한강 조타골
안개 낀 새벽의 조타골 자갈 강변
ぢ여보, 연 총리 선생! 거, 평양에 아파트 많이 짓던데, 나 하나 분양해 주시요.っ ぢ아니, 이병용 남측 대표 선생께서 평양에 아파트를 마련하시겠다니, 혹시 통일이 되면 평양에 오셔서 국회의원이라도 할 셈이시요?っ ぢ아니, 그런게 아니오. 내가 평양에 오다 보니 북에는 산천 경개 좋은 곳이 많아 서울에서 공직을 퇴임하고 나면, 평양에 와서 살면서 견지낚시나 하고 싶어서요.っ ぢ.....っ
남북 고위급 회담 대표들이 서울과 평양을 오가면서 회담을 할 당시에 이병용 남측 고위급 회담 대표 (전 통일원 차관, 안기부 특보, 현 민족통일연구원 원장)는 북측 대표인 연형묵 총리에게 견지낚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일이 있었다. 그러나 북측 연형묵 총리는 で견지낚시と라는 말에 묵묵부답(默默不答)이었고 대화는 씁쓸음하게 중단되었다. 왜 그랬을가? 이에 대해서는 북측 연 총리가 직접 대답을 하기 전에는 그 진의를 알 수 없으나 이 말을 듣도 내가 유추하기로는 연 총리가 낚시에 흥미가 없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북에서는 이미 견지낚시가 で종(種)의 기원(起源)と에서 흔히 말해지는 で잊어버린 고리と가 되어 で 견지낚시と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대화를 잇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한다.
나는 이 말을 듣고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 사연을 회상했다. 하나는 우리나라의 남북 고위급 회담 대표들이 평양에 가거나, 북측 대표들이 서울에 오면 서로 교환하는 선물에 견지낚시대를 선택해 달라고 국무총리실에 권고했던 일이고, 다른 하나는 남북 견지낚시 동호인이 서울과 평양, 한강과 대동강을 상호 방문하기 위하여 평양특별시장에게 で 남북 견지낚시문화의 교류と를 공식 제의하던 일이다. 아직도 남북 대표단의 선물 아이템 속에 견지낚시대가 포함된 일이 없고, 수 차에 걸친 서신에도 불구하고 평양특별시장은 아직도 답신이 없는 것을 보면, 나 역시 씁쓸음한 기분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어느 날 이 차관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ぢ혹시 괜찮은 곳이 없을가?っ 난감했다. 이 차관님은 で여울견지 신사と이시기 때문이다. 본디 여울견지란 흐르는 강물에 하반신을 담구어 놓고 팔팔 뛰는 강고기를 낚으며 맑은 하늘의 하얀 구름과 절벽에 어루러진 절경들을 낚는 신선풍(神仙風)의 낚시라서 で 늦은 봄부터 늦은 가을と까지가 제격이며, 특히 で아까시아 꽃이 필 때と는 마릿수로, 단풍이 물들기 시작할 때는 씨알로, 그리고 폭양이 내려 쬐는 한더위철에는 で피서의 백미(白眉)と이다. 그런데 이 차관님께서 연락이 오신 것은 가을이 다 가 여울견지는 끝을 낼 때였으므로 만만한 낚시터를 생각해 내기가 어려웠다.
일잔한 경험을 토대로 낙점(落點)을 했다. ぢ조타골이 어떨가요? 조타골은 남한강의 총주호 조정지댐 아래에 위치한 곳으로 で낚시가 잘 되어 좋다と해서 で 조타골と이라는 이름이 생긴 곳 입니다.っ ぢ조옷습니다. 갑시다.っ ぢ그런데 차관님! 때가 늦어서 마릿수는 없을 것이고, 낚기만 하시면 50센치미터 전후의 멍짜 누치를 낚으실 것 입니다.っ ぢ50센치미터 전후의 누치라.....っ 강 계류 낚시인들에게는 환상의 고기이다. 대낚을 하는 분들은 물론이고, 릴과 루어를 사용하는 낚시인들도 오륙십 센치미터 급의 누치를 낚으면 대가 부러룶느니, 바늘이 뻣었느니, 줄이 터졌느니, 별이별 소리를 다한다. 하물며 길이가 70센치미터도 되지 않고, 직경이 5미리미터도 되지 않는 작은 견지대에, 1호 전후의 가는 줄을 감고 5호 전후의 작은 바늘로 낚았을 때의 맛은 무엇에 비길 바가 없는 통쾌한 승부를 내게 된다.
고기의 먹이 습성이 어떤 가를 보려면 그 고기의 주둥이를 보면 안다. 붕어와 잉어, 그리고 모래무지와 누치의 입의 생김새는 서로 전혀 다르다. 붕어와 잉어라는 녀석들은 얇고 동그란 입을 가지고 있고, 모래무지나 누치란는 녀석들은 못이 박힌 사람의 발뒷굼치를 연상하는 무딘 주둥이를 가지고 있다. 붕어와 잉어는 평생 입을 뻐끔 거리며 먹이를 흡입하기 때문에 얇고 동그란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모래무지와 누치는 평생 모래와 자갈을 뒤지며 먹이를 찾기 때문에 주둥이에 못이 박혀 둔탁하고 너덜 거리는 입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오륙십 센치미터 급의 누치의 주둥이를 보면 이러한 현상은 확연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그 주둥이의 생김새와 육질을 보면 얼마나 단단한지 4호 바늘이건 5호 바늘이건 한 박히기만 하면, 뻣으면 뻣었지 절대로(?) 주둥이가 뾵어지거나 바늘을 털어내지 못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약간의 하이테크만 있다면 아무리 큰 누치라고 해도 작은 바늘로 얼마던지 낚아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고기의 서식처가 어떤 곳인가를 알려면 그 고기의 체형(體型)을 보면 안다. 광어와 갈치, 그리고 누치와 쏘가리의 체형을 비교해 보자. 광어는 납작하다. 따라서 깊은 바다의 수압(水壓)을 이기며 바닥에 살기 좋게 생겼다. 갈치는 길고 납작하다. 따라서 바다 어느 곳이건 누어서 살기보다는 서서 살기에 편하게 생겼다. 쏘가리는 검고 험하다. 따라서 검푸른 수중 절벽이나 수중 바위 틈에 살기 좋게 생겼다.
그러면 누치란 놈은 어떻게 생겼는가? 몸통이 길고 날렵하며 도톰하다. 누치란 물발이 센 여울의 밑바닥에 박혀 있는 자갈과 돌을 뒤지며 살기 때문이다. 거센 여울의 물살을 이기고 그 단단하게 박혀 있는 자갈들을 주둥이로 쑤시며 평생을 살아온 누치 중에도 で 한 자 반 이 넘는 멍짜と들을 낚아보면 꾹꾹 쑤셔 박으며 달아나는 힘이 で천하장사と급이다.
ぢ어화 둥둥 내 멍짜야.っ
천하장사를 낚으러 조타골로 갔다. 새벽 안개를 뚫고 중부고속도로를 달려 일죽에서 빠져 나와, 장호원에서 해장국 한 그릇을 후후 불어 비운 후, 앙성을 거쳐 조정지댐 관망대에 도착했다. 충주호가 건설되면서 で자연 하천 시대의 조종(弔鐘)을 울린と 이 일대는 댐의 방류량이 조과(釣果)를 좌우한다. 누치란 녀석들은 방수량이 많으면 で기어 올라오고と 방수량이 적으면 で빠져 나간다.と 댐도 보이지 않고 강물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눈 앞에는 시야를 막는 안개만 짙게 피어 있을 뿐이었다.
오던 길로 차를 돌려 농협과 で능암온천と 표시가 있는 곳에서 농촌 강변 소로를 타고 조심스럽게 조타골에 접근했다. 서울 올림픽도로에서 중부고속도로로 진입하는 곳에서 약 120킬로미터 지점이다. 수 백만평에 이르는 그 넓은 자갈밭도, 그렇게 거세게 흘러가는 남한강의 조타골 푸른 물도 지척에 있으련만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서둘러 바지 장화를 입고, 미끼와 밑밥을 챙겨 견지대를 목에 꼽고 강변을 어슬렁 거렸으나 대자연(大自然)의 조화는 어림도 없었다는듯이 인간의 접근을 허락치 않았다. 그래도 이 차관님과 일행인 최봉기 감사, 임종혁 교수, 그리고 김승호 과장은 겁도 없이 초행(初行)인 이 지역의 강물에 서둘러 진입했다.
차차 안개가 걷히면서 조타골의 광활한 모습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밤을 새워 릴 떡밥 던질 낚시와 콩알 대낚시를 한 사람들은 송아지만한 멍짜 누치를 낚아 말뚝에 붙잡아 놓았고, 신새벽에 고무보트를 타고 배견지를 시작한 어떤 사람은 물 속의 송아지와 싸움을 벌리는지 낚시대가 활처럼 굽어 있고, 혼자 FRP 배를 화물차에 싣고 밤새 왔다는 김정렬 씨는 벌써 10 여 마리의 멍짜를 낚아 놓고 희희낙낙하며 여명(?)의 햇살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한강 조타골 낚시터는 대단위 강낚시터다. 우리가 자리를 잡은 곳의 여울의 유속은 큰 봉돌 하나를 장착해야할만큼 거센 여울이었고, 깊이는 여울턱이 사타구니 정도, 100터 아래에 있는 깊은 소는 사람 두 세 길이나 되어 보였다. 전형적인 대형 멍짜 누치 낚시터였다. 여울 건너에는 길게 자갈 섬이 생겨 있고, 자갈 섬 밖은 남한강의 본류가 200-300미터의 강폭으로 흐르고 있었다. 자갈섬 밑에는 다시 200-300미터의 긴 여울이 길고 펼쳐저 있고, 자갈섬 위로 100미터쯤 올라가면 거대한 수중 바위 서너개가 상체(上體)를 들어낸채 치솟아 있어 격류와 급류, 거센 여울과 깊은 소, 포말과 귓청을 째는 물결 소리가 어울려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멀리 하류에서는 강이 거의 직각으로 꼬부라져 왼편으로 흐르고 있었다.
이쯤 설명했으면 で조타골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と는 짐작이 갈 것이다. 1993년 봄에서 가을까지 이곳에서 낚인 50센치 전후의 누치는 무려 500여 마리가 넘었고, 이달곤(천호동 거주)씨는 80센치미터가 넘는 대형 누치를 낚았으나 애석하게도 사진이나 박제를 남기지 못하고 회를 처서 뱃 속에 넣었다. 피라미 마자 끄리 모래무지 등은 부지기수이고, 씨알 좋은 잉어와 쏘가리가 낚시인들의 이마에서 땀을 흘리게 한다. 조타골 입구에 있는 능암온천은 탄산온천으로 아직 시욕장(試浴場)만 건설된 상태이나 귀로(歸路)에 조독(釣毒)을 풀기에 좋다. 허의영(sota380@kornet.net)님에 의하면 복탄/복여울이라는 메일이 왔으나, 이 근처에 여울이 하도 많으므로 제가 말하는 조타골과 정확히 일치하는 지점인지는 모르나,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허의영님! 감사합니다.
기증처/서울 중구 장충동 민족통일연구원 이병용 원장 1권
송우선생을 추모하며... 올려봤습니다 - 갱함장(강경모) -
저도 그 중의 한 명이었고 초보였으니까 더욱 더 신비에 가까운 장소였다고 생각됩니다. 이 내용을 읽고 머릿속의 풍경을 영상으로 담고 또 담아 더디어 조타골에 입성한 때가 얼마지나지 않은것 같은데...
더욱 분개하고픈 것은 당장 내년이 되면, 이 여울은 완전히 사라질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
선생의 유지는 한국 고유 전통낚시인 견지낚시를 체계적으로 담아 세계화 추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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