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읍에서 국도를 따라 율포쪽으로 가다 보면 활성산에 이르는데 이 산의 봇재를 넘어서기 전부터 산을 넘어서까지 온산이 마치 녹색의 양탄자를 깔아 놓은 것처럼 계단식으로 가꾸어진 '다원'이 펼쳐집니다.
도로변에 지어진 '다향각'에서는 득량만의 수려한 해안경관과 끝없이 펼쳐진 차밭을 함께 볼 수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풍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원래는 일제시대 때인 1939년 일본인 차 전문가들이 보성을 우리나라 최적의 홍차재배지로 선정, 인도산 차종자를 수입하여 밭에 씨를 뿌린 것이 그 시초이며 1957년 새로운 차 재배단지를 개간하고 70년대말∼80년대초에 재배면적 확대에 힘써 현재는 358ha에서 연간 200여톤의 차가 생산되는 전국 최대의 다원이 형성되었습니다.
보성군에서는 매년 봄 곡우가 지나면서 시작되는 차수확 시기에 맞춰 "다향제"를 열어 차문화 보급에 힘쓰고 있으며, 첫날 "다신제"를 시작으로 차잎따기 경연, 차만들기 경연, 차아가씨 선발, 다례시범 등 다채로운 행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보성다원에서 최고의 투어 포인트는 단연 관광농원 대한다업. 드라마 온달왕자에서 신혼여행지로 등장한 곳,011 광고에서 수녀와 비구니 스님이 함께 자전거를 타던 메타세퀘어 가로수 길 등이 모두 이곳에서 촬영되었습니다. 넓은 차밭에 키높은 메타세퀘어 길이 조성되어 있어 마치 이국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 보성 녹차밭 주변 관광지 ★
◀▶ 벌교 홍교 ◀▶
지정 번호 : 보물 제304호 지정년월일 : 1963년 1월 21일 소 재 지 : 벌교읍 벌교리 153 소 유 자 : 국유 규 모 : 길이 27m, 홍예고 3m 재 료 : 화강암 시 대 : 조선시대
3간(間)의 홍예(虹霓)를 연결축조하고 석교로서 외벽과 난간에 변모가 적지않게 나타나 있다. 궁융형(穹隆形)으로 된 이 석교는 각처에 있으며 또한 선암사(仙岩寺) 승선교(昇仙橋)와 함께 구조형식이 아주 뚜렷한 예이다. 궁륭형 교량은 동서를 막론하고 고대부터 있어온 터이며 국내의 유례로서도 불국사의 청운교(靑雲橋), 백운교(白雲橋) 등이 있다. 또 각지의 조선시대 석빙고(石氷庫) 등에서도 천정가구(天井架構)에서는 이러한 홍예와 동류의 기법을 보이는 유구(遺構)들이 있다. 한편 이러한 축조형식은 성문등에서도 흔히 이용되어 온 것이다. 이 홍교는 원래 숙종(肅宗) 44년(1718)에 당시 낙안현(樂安縣)의 주민들에 의해 현지에 떼다리(강과 해류가 교차하는 곳에 원목을 엮어 놓은 다리)를 놓았는데 영조 4년(1728년) 에 전남도 지방에 내린 대홍수로 이 다리가 유실되자 그 이듬해 선암사 주지 호암화상 (護岩和尙(약휴:若休))이 제자인 초안선사(楚安禪師)를 화주(化主)로, 습성대사(習性大師) 를 공사감독으로 천거 착공하였으며, 이 공사는 6년후인 영조10년(1734)에 완공을 보게 되었다.
서재필 선생은 1864년 1월 7일 문덕면 용암리 가내마을에서 태어나 농촌의 풍경과 정서를 익혔으며, 1884년 갑신개혁을 주도해 3일천하를 이룬 뒤 이의 실패로 망명 미국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의학박사가 된후 1896년 귀국하여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독립협회를 결성하여 민중운동을 이끌어 오시는등 평생을 조국의 광복과 근대화를 위해 열정을 다하시다 1951년 병석에서 우리나라 명운을 통탄하며 85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셨다. 선생의 생전의 위업을 기리고자 1992년 사당건립, 송재로 생가복원을 통해 유적지로 면모를 갖추었으며 1999년 완공을 목표로 조각공원 조성, 유물전시관 건립, 생가등이 복원되면 명실상부한 기념공원으로 가꾸어 진다.
◀▶ 해수 녹차 온천탕 ◀▶
전남보성에는 전국제일의 다원이 있고, 특히 율포해수욕장내 위치한 이곳은 지하 120M에서 지하 바닷물을 끌어올린 해수와 차재배 주산지인 우리고장 다원에서 생산된 차잎을 우려낸 녹수를 이용하여 건강목욕을 즐길수 있고 백사청송의 풍광과 함께 올망졸망한 남해안의 정취를 함께 조망할 수 있는 휴게시설이 구비되어 있다.
녹차는 인체내의 콜레스트롤을 저하시켜 고혈압, 동맥경화 뿐만 아니라 탄닌성분에 의한 중금속 및 유기수은을 체외로 배설시켜주고 폴리페놀성분으로 구취제거및 구강보호와 함께 미온수를 이용할시 각질제거에 도움을 주고 모발이 부드럽게 되면서 윤기를 주며 비듬예방효과가 있다.
해수는 인체의 호르몬 분비를 촉진시키며 위장병, 부인병과 함께 피부염을 방지하여 주며 삼투압작용을 통한 인체내 노폐물의 분비를 촉진시켜 현대병 및 성인병, 관절염 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으며 비타민 C의 공기산화방지를 통한 피로회복의 촉진을 가져다 주며 땀의 분비량 촉진을 통한 다이어트에 특효가 있음.
소재지 전남 보성군 회천면 동율리 678번지
안내전화 061-853-4566
관할기관 전남 보성군청
접근방법 ■ 승용차 : □ 광주 ―(50분)→ 보성 ―(15분)→ 율포, □ 목포 ―(65분)→ 장흥 ―(20분)→ 율포 □ 목포 ―(80분)→ 보성 ―(15분)→ 율포 □ 순천 ―(30분)→ 보성 ―(15분)→ 율포 ※ 버스 및 열차이용시는 보성도착후 20분마다 율포행 버스가 있음.
지명도 및 연계관광지 - 해수및녹차 : 전국제일의 다원 및 지하 120m해수는 전국적 지명도 유지 - 연계관광지 : 율포해수욕장 → 자연휴양림 → 서재필 기념관 → 대원사
천년고찰의 신비함이 감싸고 도는 문덕면 죽산리 대원사는 신라고승 아도화상이 창건하였다는 구전이 전해오는 아주 오랜 사찰이다. 웅장함과 화려함은 없어도 꾸밈이 없는 경내에는 울고있는 부처와 가슴이 타버린 부모의 마음을 표현하는 사찰 입구의 부처상을 가슴으로 느껴볼 수 있는 사찰이다.
대원사는 문덕면 죽산리 천봉산의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유서깊은 사찰이다.
백제 무녕왕 3년(504년)에 신라의 고승 아도화상이 세웠다고 구전되고 있으나 근거는 없다. 「조선사찰사료」의 「대원사기문」에 의하면 대원사는 중국남재 건무 원년(404넌) 즉 신라 지증왕때 동방불법의 시조인 아도화상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404년은 신라 지증왕 제위기간이 아니고 지증왕의 선왕인 소화왕 16년에 해당하므로 이 기록 역시 조선후기에 구전되어 오고 있던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현재의 자료로는 대원사의 창건에 관한 내용을 밝힐수 없는 실정이다.
대원사는 고려후기 원종(1257~1274)때에 조계 제5세원오국사에 의하여 중건되었다고 하는데 그 내용은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부도가 극락전 좌측에 남아 있으므로 원오국사가 대원사에 주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원오국사 천영은 1215년 남원군의 양씨가문에서 태어나 1230년에 복구에게서 중이 되고, 1236년에 승과에 급제하였다. 그후 1246년에 삼중대사가 되었으며 1250년에 왕명으로 선원사 법주가 되고 1256년에 조계산의 제5세가 되어 1286년 그가 입적할때까지 무려 30년동안 송광사에서 종풍을 크게 떨쳤다.
원오국사가 송광사에 머문 13세기 후반에 이곳 대원사를 중건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때 천봉산으로 중봉산으로, 대원사를 죽원사로 개칭하였다고 하며 수도사찰로 성장케 하였다고 한다. 원오국사가 대원사를 중건한 후 어느시기까지 계속 대원사가 그 규모를 유지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동국여지승람」에 대원사는 중봉산에 있으며 원오국사의 부도와 황희영당이 있다고 하였으므로 16세기에도 존속하였다. 이어서 17세기에는 「선문점송집」과 「운수단가사」등이 목각판으로 간행되기도 하였다 한편 대원사의 사명은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범우고」에는 大元寺로 표기 되었고 17세기 목각판과 18세기 후반기 사서로부터 대원사로 표기되어 오늘까지 이르고 있다. 그러므로 초기에는 大元寺로 표기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대원사는 6.25전까지만 하여도 극락전을 비롯하여 천불전, 내원, 상원암, 호적암, 남암등이 있어 대가람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거의 모두가 불타버리고 현재는 극락전만이 유일하게 남아있다. 1990년부터 중창사업이 전개되면서 선원, 요사체, 일주문, 주지실, 화장실 등의 건물이 대원사 경내에 새롭게 들어서고 있다. 대원사 극락전은 지방유형문화재 제 87호에 지정되어 있는 주물전으로 정면3간 측면 3간의 맛배지붕이다. 다소 높은 축대 형식의 기단위에 세워져 있고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한 덤벙주초에 배흘림이 약한 두리기둥을 하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보아 3간 건물이지만 비교적 규모가 크고 겹처마를 하고 있는 지붕이 커 압도적인 무게를 느끼게 하는것이 특징이다. 극락전 안쪽벽에는 수월관음보살도와 달마도가 그려져 있는데 우리나라 사찰 벽화에서는 손꼽히는 귀중한 것이다. 극락전 옆에는 자진원조국사 부도가 있다. 이 부도는 8각 원당형의 완전한 형식을 갖춘 것으로 고려시대 말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보성다원◀▶
보성읍에서 국도를 따라 율포쪽으로 가다 보면 활성산에 이르는데 이 산의 봇재를 넘어서기 전부터 산을 넘어서까지 온산이 마치 녹색의 양탄자를 깔아 놓은 것처럼 계단식으로 가꾸어진 '다원'이 펼쳐진다 도로변에 지어진 '다향각'에서는 득량만의 수려한 해안경관과 끝없이 펼쳐진 차밭을 함께 볼 수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풍치가 아닌가 생각한다. 원래는 일제시대 때인 1939년 일본인 차 전문가들이 보성을 우리나라 최적의 홍차재배지로 선정, 인도산 차종자를 수입하여 밭에 씨를 뿌린 것이 그 시초이며 1957년 새로운 차 재배단지를 개간하고 70년대말∼80년대초에 재배면적 확대에 힘써 현재는 358ha에서 연간 200여톤의 차가 생산되는 전국 최대의 다원이 형성되었다. 보성군에서는 매년 봄 곡우가 지나면서 시작되는 차수확 시기에 맞춰 "다향제"를 열어 차문화 보급에 힘쓰고 있으며, 첫날 "다신제"를 시작으로 차잎따기 경연, 차만들기 경연, 차아가씨 선발, 다례시범 등 다채로운 행사를 벌인다.
◀▶ 공룡알 화석 ◀▶
위치 및 위치설명 - 위 치 : 전라남도 보성군 득량면 비봉리, 득량면 비봉리 일대 - 위치설명 : 보성읍에서 회천방향 18번국도를 따라 7㎞ 정도에 위치
지 정 번 호 : 천연기념물 제418호 지정년월일 : 2000년 5월 1일 소 재 지 : 보성군 득량면 비봉리 선소 구 역 : 119필지 156,685㎡ 시 대 : 중생대 백악기
보성군 득량면 비봉리 해안 3㎞ 구간에 걸쳐 보존상태가 완벽한 세계적 규모 공룡알 화석 및 집단산란지이며 공룡알은 해안일원 5개층준에 넓게 분포되어 있으며 대부분 알둥지를 형성하고 있고 하나의 둥지에서 최소 6개에서 30여개의 공룡알을 함유하고 보존상태가 거의 완벽한 10여개의 공룡알 둥지와 100여개의 공룡알이 발견되었으며 수백개의 알 파편들이 산재되어 있다.
알둥지 가운데는 세계적 규모의 공룡알 둥지(최대직경 1.5m)가 매우 특징적으로 발견되었으며 공룡알 껍질이 8겹이나 중첩되어 산출되었는데 이는 세계적으로 드문 초식공룡 집단산란지로서 공룡의 부화습성 및 산란지 환경을 밝힐 수 있는 세계적인 학술자료 가치로 평가된다.
◀▶ 서편제 보성소리 ◀▶
위치 전남 보성군 대야리 강산 마을 (강산 박유전 예적비) 보성군 회천면 영천리 도강마을 (송계 정응민 노래비) 보성군 문화 관광과 (전화 : 061-852-5924)
개요 서편제 동편제의 고졸성을 극복한 기교파로 가공과 기교와 수식으로 소리를 만드는 창법이며, 남도의 판소리라 할수 있다. 이 소리는 전라도 서쪽지역에 전승된 소리제를 박유진을 서편제 개발의 시조라고 할 수 있다. 강산제는 서편제 가운데 박유전제를 가리키는 데 보성 강산 마을에서 비롯되었고 보성제는 정응민제를 가리키며 보성 도강마을에서 근원이 되었다. 보성소리는 박유전 - 정재근 - 정응민 -정권진 - 조상현 - 성우향, 성창순으로 맥을 잇고 있으며, 보성 판소리 보존협회에서는 조상현의 문하생들이 지금도 소리를 배우고 있다. 또한 1994~1995(2년)까지 사업비 200백만원을 투자하여 강산제 박유전 유적과 보성제 정응민 유적을 복원하여 영화 '서편제'상영에 기인하는 등 우리것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승화발전시키고자 판소리 현장을 재현시키고 있으며, 정응민 기념관, 판소리 서편제 전수관등을 건립 추진하고 있습니다. 인근 관광지인 제암산 자연 휴양림과 보성다원, 율포해수욕장, 풀장 및 해안도로는 관광루트로 이미 각광을 받고 있으며, 이코스와 연계된 서편제 현장은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하는 관광으로 많은 인파가 끌 것으로 예상된다.
◀▶ 소설 태백산맥 무대 ◀▶
대하 소설 태백산맥은 1948년 10월 어느 날 미명으로부터 1953년 늦은 어느 가을날까지 우리민족이 겪은 질곡을 담아낸 소설로 대하 소설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와 함께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면서 1989년 4부작 10권의 책으로 출간된 이래 채 10년도 안된 1997년 2월 100쇄 돌파와 함께 450만부의 판매 부수를 기록하면서 한국 문학사에 처음 있는 대기록과 진기록을 함께 수립하였다.
지식인 출신 파르티잔 염상진과 이성적인 국군 장교 심재모, 회의적인 지식인이지만 역사로부터 끊임없는 실천과 선택을 강요당하는 김범우, 우익 행동대장 염상구, 애절한 사랑의 주인공 소화, 그리고 서민영, 외서댁, 안창민, 이지숙, 들몰댁 ... 270 여명의 등장인물이 엮어가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씨줄이 되고 걸죽한 육담과 전라도 방언들이 함께 날줄이 되어 거대한 소설 『태백산맥』의 베를 짠것이다.
소설 태백산맥은 논픽션이 아닌 소설이지만 현실의 벌교에는 소설 속의 사건들이 펼쳐졌던 이런 저런 장소들이 소설과 똑같은 위치에 있어 사실감을 더해주고 있다. 소설을 열어가는 현부자네 집, 하대치의 아버지가 등이 휘도록 돌덩이를 져 날라 쌓았다는 중도방죽, 포구를 이어주는 소화다리, 염상구가 희한한 결투를 벌였던 철다리며 벌교의 이중적 구조를 볼 수 있는 횡갯다리(홍교), 좌우로 첩첩 산줄기들이 뻗어 내려오다 문득 만들어낸 커다란 물사발과 같은 율어의 지세 등....
특히 최근 들어 소설을 읽고 소설에서 얻은 감동을 현장에서 체험하기 위해 소설 무대인 벌교를 찾는 문학 기행과 현장 답사를 바라는 관광객이 날로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소설 『태백산맥』무대의 문학기행과 함께 옹기, 염색, 차, 용문석과 같은 전통문화를 연계해 체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제암산 자연 휴양림 ◀▶
위치 : 전라남도 보성군 웅치면 대산리 구역면적 : 160ha 개장년도 : 1996년 2월 21일 수용인원 : 최대 3,000명/일, 최적 1,500명/ 이용문의 : ☎ (061) 852-4434, 850-5427(휴양림관리사무소) 특색 웅치면 대산리에 위치한 제암산은 해발 807M로 정상에 제(帝)자 모양의 기암괴석이 3층으로 이루어져 그 높이가 30M나 되며 바위는 둥글고 평탄하여 100여명이 함께 어깨동무를 할 수 있으며 가뭄이 있을때면 기우재를 올리는 영산으로 봄이면 철쭉이 만발하고 여름이면 어우러진 관목들과 가을이면 갈대, 겨울이면 설화를 만끽할 수 있는 산으로 사철 제암산을 찾는이가 발을 잇고 있다
제암산을 찾는이에게 편안한 쉼터를 제공하기 위하여 지난 96년 160ha에 자연휴양림을 조성 숲 속의 집 7동을 목조로 건축하였으며 야영장 1개소 평상 19개 야외교실 1개소, 조수사육장 3개소, 등산로 7.6km, 산책로 2.3km를 개설 하였으며 부대시설로 4,100㎡의 주차장과 10종의 취사장을 갖추고 있다.
제암산등산로 : 휴양림 → 정상의 임금방위 → 휴양림(10.5km에 2시간소요) 진달래와 철쭉 : 4월의 진달래와 5월의 철쭉이 장관을 이뤄 봄나들이에 안성맞춤. 물놀이터와 계곡 : 여름철 어린이들이 물놀이를 할 수 있는 물놀이터와 휴양객이 쉴 수 있는 시원한 계곡이 으뜸. 단풍과 설경 : 가을부터 겨울까지는 단풍과 설경이 아름다워 등산객과 휴양객이 많음.
지정 번호 : 중요무형문화재 제96호 지정년월일 : 1988년 8월 1일 전 승 지 : 미력면 도개리 316 예능보유자 - 이옥동(1913년 9월 30일생) - 이래원(1919년 8월 2일생)
옹기장이라 함은 우리 한민족의 어느 누구의 가정을 막론하고 후원이나 정원에 장독대 시설을 마련하지 않는 곳이 없으며 그곳에 설치되어 있는 저장구인 독과 항아리 등을 만드는 장인을 가리킨다. 옹기는 우리 민족이 다같이 애용해 왔으며 애용되어야 할 생활용기로서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갖고 계승되어 온 생활공예품으로서 아직 외래 문화에 오염당하지 않는 유일한 생활용기이다. 전통적인 옹기는 자기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편요기 (片窯器)로서 사회적 계급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다같이 애용되는 초벌구이 (初燔)로서 표면에는 잿물로 옷이 입혀진 옹기장이 활동하는 곳을 옹기점이라 칭하고 있다.
옹기점의 시설로는 대체로 토기제작장과 요성장(窯成場)으로 크게 양분할 수 있다. 토기제작장은 날그릇을 주로 다루는 곳으로 거친 흙을 풀어 순수한 질을 얻기 위한 수비장, 작업장인움, 그릇을 만드는 물레, 건조장인 송침, 날그릇을 예장하는 찬간(헛동막, 동막)의 시설을 필요로 한다. 요성장은 토도(土陶) 제품을 완성하는 최종시설로서 대체로 산 언덕에다 반지하구조로 되어 있다. 형태에 따라 조대불통 가마와 뺄통가마·설창가마·칸가마 (뫼통가마)로 크게 구분하는데 전남지역에서는 주로 뺄통가마를 사용한다.
작업공정은 생질작업, 건아꾼작업, 대장작업, 잿물작업, 가마작업으로 구분한다. 생직작업은 생토를 다루는 작업으로 옹기를 만드는 최초의 작업과정으로 「생질꾼」이 하는데 재래식방법과 수비방법. 기계분쇄작업 등의 방법이 있다. 건아꾼 작업은 생질꾼에 의해 만들어 놓은 고작더미를 다시 가공하는 것으로 매통질이나 옆매질 등으로 생질작업시 미처 가려내지 못한 돌이나 잡물을 골라내며 건조시키는 작업이다. 대장작업은 그릇의 모양을 만드는 일, 한가마분의 날그릇이 모이면 이것들을 가마속에 서려 넣는 일, 구워내는 일 등으로 대장이 담당한다.
보성 옹기점은 뺄불통가마, 움 1동, 건조장, 잿물토의 시설이 있으며 채바퀴타래 기법을 사용한다. 7∼8 대째 전승해 온다고 하는데 선대는 강진 병영에서 옹기제작을 했다고 하며 1950년 3월경 보성의 노동에 설점하였다가 현위치로 옮겨왔다고 한다.
◀▶ 백민 미술관 ◀▶
보성군 문덕면 죽산리에 있는 백민미술관은 국도 18호선 죽산교에서 대원사 가는 길로 접어들어 1㎞쯤 오른편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백민미술관은 이 지역출신 서양화가로 국전 심사위원을 지낸 구상화가 백민(百民) 조규일(曺圭逸) 화백이 자신의 작품과 소장하고 있던 국내외 유명화가들의 회화작품 등 350여점을 보성군에 기증했고, 보성군은 주암댐 건설로 인해 폐교된 초등학교를 매입 미술관으로 개수해 1992. 12.17. 문을 열었다.
백민미술관은 1층에 조규일 화백실과 동양화실 그리고 국제관이 있는데 동양화실에서는 이 지역 출신 서예가들의 귀한 작품과 조선후기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고, 국제관에서는 북한 공훈 미술가들의 작품과 제정 러시아 시대의 목판 성화(聖畵)를 비롯해 러시아에서도 보물급으로 알려진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2층에서는 국내외 유명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는데 이 전시실은 자연채광방식을 채택하고 있기에 밤이 되기 이전에는 항상 자연광속에서 작품을 감상할수 있다. 자연채광 방식은 유해광선을 차단하고 밝은 빛만 투과되도록 하는 기법으로서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이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고 러시아에서는 일반화된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