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를 기다리며' 는 현대극의 흐름을 바꾸어놓은 프랑스 작가 사무엘 베케트의 대표작이자 부조리 문학의 정수, 노벨 문학상 수상작이다.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두 주인공의 의미 없는 대화는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된 삶을 상징함과 동시에 당신은 누구를 기다리는가. 그리고 지금 당신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기다려도 오지 않는 그 무엇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배어 나오는 전후 부조리 극의 고전이다. '고도를 기다리며' 는 1952년에 출판되어 극히 일부의 지식인들에게만 알려져 있던 베케트에게 일약 명성을 안겨다 준 작품으로 20세기 후반 서구 연극 사의 방향을 돌려놓은 희극의 대표작이다.
'고도를 기다리며' 에 깔려 있는 허무주의적이고 비극적인 세계 인식은 이 작품이 인생의 부조리를 인식하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던 전후 실존주의 문학의 한 흐름임을 보여준다. 특히 "여자들은 무덤 위에 걸터앉아 무서운 산고를 겪고 구덩이 밑에서는 일꾼이 꿈속에서처럼 곡괭이질을 하고. 사람들은 서서히 늙어가고 하늘은 우리의 외침으로 가득하구나. 하지만 습관은 우리의 귀를 틀어막지" 라는 블라디미르의 대사는 그 단적인 예로 실제로 "고도를 기다리며" 의 창작 배경은 전쟁과 깊은 관련이 있다.
아일랜드 출신인 베케트는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중립국 국민이라는 안전한 신분을 이용해 프랑스 친구들의 레지스탕스 운동을 도왔다. 그러던 중 그가 가담하고 있던 단체가 나치에 발각되어 당시 독일의 비점령 지역이었던 프랑스 남단 보클루즈(이 지역의 이름은 작품 속에 등장한다.)에 숨어살게 되었는데, 거기서 할 수 있는 일은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전쟁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는 다른 피난민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얘깃거리 하나가 동이 나면 또 다른 화제를 찾아내야만 했는데 바로 이것이'고도를 기다리며' 에 나오는 대화의 양식이 된다. 이렇게 베케트는 자신의 체험에서 얻은 사실적인 요소들에서부터 시작하여 구성을 극도로 단순화함으로써 작품을 창조해 낸 것이다.
앙상한 나무 한 그루만이 서 있는 황량한 무대, 특별한 줄거리도 극적인 사건도 없는 내용. 그 때문에 1953년 1월 5일 파리의 바빌론 소극장에서 작품이 공연되었을 때 공연이 성공하리라고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다. 실제로 '고도를 기다리며' 는 이미 다른 여러 연출가들에게 거부당한 상태였고, 배우들마저도 작품에 대한 평가를 내리지 못한 채 공연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피가로」지에 '광대들에 의해 공연된 파스칼의 명상록'이란 평이 실리자 관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해 기껏해야 한 달 정도 공연될 예정이었던 연극은 장기 상연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기존의 사실주의극과는 거리가 있는 새로운 내용과 형식에 관객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미국에서의 초연 때 연출자 알랭 슈나이더가 "고도" 가 누구이며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묻자 베케트는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 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고도를 기다리며' 를 난해한 작품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작품의 토대가 되는 기다림의 상황은 오히려 의미가 정해져 있지 않음으로 인해 보편성을 띠게 된다. 1957년 등장 인물 중에 여성이 없다는 이유로 미국의 샌 퀜틴 교도소에서 공연되었을 때 1,400여 명에 달하는 죄수들은 예상을 뒤엎고 열광적인 반응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고도"가 "바깥 세상이다." 혹은 "빵이다" 혹은 "자유다" 라고 외친다. 한편 1960년대 폴란드에서 공연을 관람한 사람들은 '고도'가 러시아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고 생각했고, 프랑스 통치 하의 알제리에서 공연되었을 당시 땅이 없는 농부들은 그들에게 약속되었으나 아예 실시되지 않은 토지 개혁에 관한 연극이라고 받아들였다고 한다.
고도<Godot>가 영어의 <God>와 프랑스어의 <Dieu>의 합성어의 약자라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베케트는 "이 작품에서 신을 찾지 말라" 고 했으며 "여기에서 철학이나 사상을 찾을 생각은 아예 하지 말라. 보는 동안 즐겁게 웃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극장에서 실컷 웃고 난 뒤, 집에 돌아가서 심각하게 인생을 생각하는 것은 여러분의 자유이다" 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결국 '고도'의 의미는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 개개인에게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텍스트의 의미가 열려 있음으로 인해 "고도를 기다리며" 는 아직까지도 연구가 계속되고 있으며 널리 사랑 받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 [예스24 제공]
사람은 누구나 인생의 대부분은 기다림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의 기다림이 끝나면 또 다른 기다림이 시작되고 언제나 삶은 기다림이란 반복의 연속이 이루어낸 결과의 산물이 인생인 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보면 미래를 꿈꾸며 지난 과거일지라도 회상을 하는 이유도 지금 현재 삶의 딛기 위한 발판의 위한 지렛대 역할을 하는 이유마저도 우리에게는 내일 즉, 고도라는 미래가 존재하는 의미를 내포하는 지도 모른다.
무언가 존재하는 한다는 것은 시간 속에서만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곧 미래에 우리 인생이 결정 되어진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말은 현재의 시간 속에서 진행되는 삶은 기다림이란 미래의 형태로 표현되는 것이라고도 할 수가 있다. 그래서 작가인 베케트가 내 건 제목처럼 <고도를 기다리며>는 아예 오지 않거나 오더라도 생각한만큼 좋지 않을 미래일지라도 기다리며 살아가는 막연한 희망과 우리 자신의 현실을 대비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 역시 처음 고도를 기다리며 책을 접할 때는 막연히 높은 거리(高度)만을 떠 올렸다. 사람이 추구하는 성공과 야심이 희곡에 담겨 있을 거라는 추측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고도란 누군가의 바라는 희망과 이상을 그려내고 있을 때 조금은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책을 덮은 내내 내가 추구하는 고도는 무엇이며 나의 기다림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세차게 나를 뒤흔들었다. 마치 무거운 쇠망치로 나를 후려갈기는 기분이었다.
진실로 내가 원하고 추구하고 소망하는 것은 무엇인지 때로는 챗 바퀴 구르는 듯한 일상은 마치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그냥 매일 반복해서 굴려 올리는 바위 돌 같은 기다림으로 나의 지치고 무의미한 틀 속의 안이한 삶을 살아온 것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비로소 내 심장에 고도를 심어둔다. 그것이 무엇이든 내 가슴의 고도는 영화 메트리스에서 바로그를 기다리듯 미지의 도전과 모험이어도 좋고 마라톤 대회 시 대회 종료 전까지도 들어오지 못하는 꼴등 완주자(포르투갈어로 고(Godot))라도 더 이상 두려움은 없다.
다만 조금 늦었을지라도 그 대상에 대한 믿음, 값지고 뭉클한 영원한 기다림만 있다면 더 이상 바라는 것도 없다. 오래 전 읽은 책에서도 우산은 쓰는 이유가 비를 피하기 위함이 아니라 비를 맞기 위해 쓰는 것이라고 했다. 한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그 말이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야 세찬 소나기처럼 나를 파고드는 것은 또 무슨 이유일까? 그러나 망설이지 않고 나 자신을 위한 고도를 기다리며 살아가고 싶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것을 이젠 그 누구보다 잘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