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정이 아니라 경쟁이 해결책이다
농업살리기에 100조원을 허비했고, 또 119조원을 투입한다. 이건 낭비다.
孔柄淏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흥망은 사업 세계의 茶飯事
벤처 업계 1세대의 잇단 좌초를 지켜보면서 기업에서 守成(수성)이란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한때 시가총액이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에 이르렀던 기업들의 부도 내지 파산은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투자자들에게 한숨과 눈물을 안겨 준다.
그러나 기업 세계에서 흥하고 망하는 것은 거의 일상적인 일이다. 특히 제대로 된 벤처업계라면 극히 낮은 생존 확률을 건 게임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텔레비디오社의 창업자이자 10억 달러 이상의 자산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황규빈 회장은 자신의 벤처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는 벤처인으로 지난 30년을 살았다. 실리콘밸리가 생긴 이래 창업자가 30년 동안 자기 회사를 지킨 일은 유례가 없다고들 한다. 우리 회사가 나스닥에 상장되던 해 함께 주식시장에 나갔던 기업의 99%가 퇴출되었다. 그러나 나는 나머지 1% 안에 들며 건강히 살아남았다』
망하고 흥하는 것은 사업 세계에서 자연스러운 하나의 과정이다. 때문에 모두들 망하지 않고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가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과정에서 혁신·개선·발명·발전·성장 등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고객의 욕구와 필요를 만족시킬 수 있는 상품이나 서비스는 이처럼 혼신의 힘을 다하는 치열한 경쟁 과정이 존재할 때만이 탄생하게 된다.
그래서 일찍이 자유주의 사상가이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 교수는 『경쟁은 발견적 절차이다』라는 명언을 남긴 바 있다. 치열한 경쟁 압력이 없는 곳에서 그 어떤 혁신도 가능하지 않다는 말이다.
물론 粉飾(분식)과 같은 부정직한 방법과 이로 인한 선의의 투자자들이 입은 손실 부분에 대해서는 법적인 절차가 필요하겠지만, 망하고 흥하는 과정 그 자체를 두고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경영자들은 나름대로 주어진 상황에서 회사를 살리려고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다만 그들이 내린 결정이 사후적으로 환경 변화가 제대로 맞지 않았다든지 아니면 불운 등이 어우러져 잘못된 결과로 나타나고 말았을 것이다.
어차피 사업이란 위험을 건 일종의 게임과 같은 것이다. 확률을 건 시합이기 때문에 이길 수도 있지만 동시에 패배할 수도 있다.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고 사업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이해하겠지만, 세상의 변화에 발맞추어 고객들이 원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시장에 내놓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누구든지 잘 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비즈니스 세계에는 명암이 갈리게 된다.
예를 들어, 벤처기업들의 경우는 특정 아이템이나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상장에 성공하게 된다. 그 결과로 외형 100억원에서 200억원 때까지는 무난하게 성장하는 기업들이 많다. 하지만 대개 상장을 가져왔던 아이템은 100억~200억원 수준을 벗어나게 되면 시장성을 상실하게 된다. 추가적인 아이템을 만들어 내야 하는데 이 작업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특히 산업 자체의 라이프사이클이 무척 빠른 분야에서는 조금만 현장에서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려도 사업의 핵심을 놓쳐 버리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설령 장부상의 재산이라 할지라도 富(부)를 쌓게 되면 대중들의 갈채를 받게 되고, 이곳저곳에서 강연할 기회가 생기고, 이런저런 모임에 참석할 기회가 생겨나게 된다. 이런 와중에서 사업가들은 아주 조심하지 않으면 집중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게 된다.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점은 또 다른 의미로 풀어서 설명하면 그만큼 사업에서 맥을 놓칠 가능성이 높아짐을 뜻한다. 오랜 역사를 가진 상장 기업들과 달리 벤처 기업들의 경우엔 사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사장의 집중력 저하는 곧바로 조직 전체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구조적으로 불리한 입장에서 상장에 성공한 기업들은 하루하루 생존을 건 투쟁을 전개하게 된다. 불행히도 그동안 신문 지상을 장식했던 벤처 1세대 간판급 인물들의 경우는 집중력 저하라는 어려움을 경험한 점에서 스스로 좀더 이기적으로 활동했더라면 기업을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갖게 된다.
경쟁과 도태는 건강한 사회의 징표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를 규율할 수 있는 도덕성을 갖는다. 하지만 이런저런 어려움에 부딪히게 되면 한두 번 불법적인 일에 손을 대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粉飾과 같은 불법적인 방법들이 동원됨으로써 富와 명예를 잃어버리는 어려움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벤처업계의 속사정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라면 화제의 인물이 된 사람들뿐만 아니라 자본잠식 상태거나 자본잠식에 가까운 상태에 들어가 있는 기업들이 적지 않음을 알 것이다.
자연계는 적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법칙이 지배한다. 비즈니스계도 마찬가지다. 도태되는 기업들의 안타까운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사회 전체로 보면 그 사회의 건강함이란 결국 신진대사가 얼마나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느냐에 의존한다고 보면 된다. 자본 시장이 투명해지고 치열한 경쟁 과정을 통해서 승부에 실패한 기업들이 가능한 한 빠른 시간 안에 퇴출되는 것을 돕는 게 사회 전체 차원에서 건강함과 효율성을 유지하는 일이다.
도태는 사회적으로 非효율적으로 사용되던 자원이 효율적인 사용처나 사용자로 이동하는 과정이다. 마치 혈액이 순환하듯이 우리는 흥함과 망함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자원의 순환이 이루어진다.
한국 사회가 지금보다 한 단계 더 도약하기를 원한다면,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이 더 높은 수준의 삶을 누리기를 원한다면 도태 과정을 더욱 원활히 해 기업 세계뿐만 아니라 사회의 다른 부분에 이르기까지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같은 도태 과정을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분으로 구성원들이 받아들이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생산성을 높이는 일은 그냥 「높이자」는 구호로써 가능한 일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일면 가혹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모든 곳에 경쟁 압력을 고양시킴으로써 신진대사를 가능한 한 원활하게 만들어 주는 일이다. 신체와 사회는 이런 점에서 거의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혈액 순환이 원활하지 못한 결과는 건강함을 잃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사회 역시 특별한 지식이 없더라도 모든 곳에 원활하게 혈액 순환이 이루어지는 관점으로 접근하면 된다.
근사한 구호나 左·右와 같은 현란한 구호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신진대사의 최대화를 도모하는 사회」라는 용어만으로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바는 명확하다.
교원평가제도 논란
최근 교육계의 현안 가운데 하나로 교원평가제도가 있다. 교원평가제도의 도입과 시범실시를 앞두고 한 해 내내 관련 단체들 사이에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번은 서울 시내 某 중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스스로 교원평가를 자청함으로써 이루어지는 학교內의 변화를 소개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기사의 핵심은 「평가제도를 실시한 이후에 학생, 즉 고객 위주의 학습이 유행병처럼 번지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왜, 이런 내용이 기사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늘날 公교육의 현장은 평가제도로부터 성역으로 남아 있다.
私기업에서 뛰는 사람들은 시간을 정해서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고객들의 평가를 받게 된다. 그 평가는 구입하거나 안 하거나 둘 중 하나다. 이런 유무형의 압력 때문에 私기업은 더 나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만일 고객에게 선택 권한이 주어지지 않고 배급제로 실시된다면 누구도 노력해야 할 인센티브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평가를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는 논의할 가치조차 없는 명백한 주제라 할 수 있다.
시장에서 활동하는 모든 행위자들은 고객들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얼마 전 나는 강남의 某 학원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미국의 중학교나 고등학교 영어교재를 선행학습 형식으로 전문화해 성공한 학원이었다. 영어에 대한 선행 투자를 수입 대체산업으로 육성한 경우다.
미국의 교육과 가격 차이는 10분의 1이하에 머물고 있었다.
경쟁이 존재하게 된다면 인간이나 조직이나 고객의 욕구가 있는 모든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경쟁 압력이 존재하는 私교육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 사이에 경쟁력 정도는 현저한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의 私교육 분야의 경쟁력은 일찍이 세계 시장에 노출되었던 제조업과 같은 분야와 마찬가지로 뛰어난 경쟁력을 갖고 있다. 그것은 바로 경쟁 압력이 만들어 낸 성과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 사회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할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충분히 얻을 수 있다. 그것은 자연계처럼 더 나은 상태로 자원배분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환경을 적극적으로 고쳐 가는 일이라 생각한다.
다르게 표현하면 흥함과 망함이 더욱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 그러나 일부 교원단체를 중심으로 조합원의 투표를 거쳐서 교원평가 관련 연가 투쟁을 전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삶의 본질, 생존과 번영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선택을 고집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미국 대학교육의 성공사례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9월10일자는 「브레인 비즈니스」라는 제목하에서 全세계 주요국의 고등교육의 경쟁력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 기사를 실었다. 다양한 관점에서 고등교육기관을 분석한 기사의 결론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지나친 정부의 개입과 과도한 정부 의존은 대학 자체의 경쟁력을 현저하게 낮추게 된다. 그 이면에는 매너리즘과 안주 그리고 경쟁 不在(부재)가 가져오는 폐해와 낭비 그리고 非효율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시작되었던 고등교육의 시장 친화적인 모델은 점점 세계로 확산되어 가고 있다. 이 모델은 公교육에 비해 네 가지의 장점을 갖고 있다. 첫째는 형평과 효율성을 더 잘 결합할 수 있고, 둘째는 아이비 리그로부터 시작해서 커뮤니티 칼리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고등교육제도를 제공할 수 있다. 셋째는 시장친화적인 모델이 다른 모델보다 더욱 지속 가능한 성장성을 보이고 있으며, 넷째는 많은 고객을 상대로 하는 기관이 단 하나의 후원자인 정부에 의존하는 기관보다 자신의 운명에 대해 더 많은 통제권을 제공한다』
경쟁 압력을 성역 없이 한국 사회 곳곳에 불어넣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이보다 더 절실한 과제는 없다. 기업 세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미 다른 代案(대안)이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기업 세계를 벗어나 全영역에서 발생하고 있다. 근래에 들어서 우리 사회는 시장 친화적인 부분에서 代案을 찾기보다는 그 반대 방향에서 代案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최근 세계무역기구(WTO) 쌀 협상 지분 동의안이 국회 상임委를 통과하면서 또 한 번의 홍역을 치르고 있다. 본회의의 비준을 앞둔 상태에서 농민단체들의 격렬한 시위가 전국 곳곳에서 일어나자, 정부는 허겁지겁 농민 부채상환 유예 발표와 쌀 100만 섬 추가 매입案을 내놓았다.
한국의 농업이 당면하게 될 가혹한 현실에 대한 논의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1990년대 들어서 농업 분야에만 정부는 거의 100조원대의 돈을 투자했다. 농업 종사자 수나 부가가치 창출 비중 면에서 보면 경제 논리보다는 지극히 정치·사회적인 논리에 기반을 둔 결정이다.
농업살리기에 투입된 200조원의 경제성은?
정부는 다시 119조원의 추가 재원을 마련해서 어려움에 처한 농업을 구하기 위한 정책들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모든 정치·사회적인 논리에 따른 의사 결정이 그렇듯이 정부의 이런 선택은 문제 해결은 고사하고 또 한 번 낭비에 가까운 再분배정책으로 귀결될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길은 낭만과 거리가 멀다. 때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곳에는 생존을 향한 치열한 경쟁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냉혹한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나 분야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다양한 사회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代案을 찾는 데 있어서 이런저런 논리를 내세우기 이전에 삶의 가장 근본적인 진실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치열한 경쟁 압력과 도태 과정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어떤 정책이나 제도, 보조금 지불은 의타심과 낭비를 낳고 결국 정책 실패로 결론 난다.
지난 100년의 세계 역사에서, 지난 60년의 한국경제 성장사를 통해서 「경쟁 친화적인 해결책」에 주목할 수 없다면, 우리는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귀한 시간을 놓치게 될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