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사’ 박경철의 직격인터뷰] 『엄마를 부탁해』신경숙
신경숙의 인터뷰를 살펴보면 열이면 열 같은 내용이다. 어디에도 ‘작가의 말’은 없고, 단지 ‘기자의 글’만 있다.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과연 ‘외딴방’의 작가 신경숙이 단지 ‘위로’만을 던지고 싶었을까? 이번 인터뷰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했다.
에필로그를 빼면 소설은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엄마를 잃어버린 딸의 지점이다. 여기서 딸은 ‘너’로 지칭된다. 2장은 ‘그’라 불리는 아들의 지점이다. 그리고 3장은 ‘나’ 바로 엄마의 지점, 4장은 다시 ‘너’ 딸의 지점이다. 처음 책을 펴드는 순간 당혹스러워진다. 1장의 주인공 ‘너’가 꼭 ‘나(독자)’를 지칭하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하기 때문이다. Q. 신작이 또 다시 베스트셀러가 되셨는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좋죠. 하지만 두렵죠. 30살에 ‘풍금이 있던 자리’를 썼죠. 초판 3000부를 찍었는데 예상 밖의 반응이었어요. 그때는 더 이상 직장을 알아보지 않아도 되겠다는 기쁨이 생기더군요. 작업실과 넓은 책상을 준 작품이죠. 굉장히 고마운 일이구나 싶었는데, 그것은 행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엄마를 부탁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파장이 커서 두려워요. 근거는 모르겠지만 묘하게 두렵네요. 내 소설이 서사가 반듯하게 진행되는 소설은 아니거든요. 쉽지 않을 수 있는 대목이 있는 소설인데… Q. ‘엄마를 부탁해’는 1장의 주인공이 ‘너’라고 시작해 독자로서 당혹스럽던데요? 쓰는 ‘나’의 입장에서 ‘너’라고 지칭하고는 거리감을 두고 관찰하는 거죠. 그러나 읽는 사람은 자기에게 말한다고 생각해요. 직접적으로 감정이입이 되는 거죠. Q. 이 책을 탈고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요. 엄마란 누구에게나 가장 흔하고 깊은 체험일 텐데, 그 체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을 쓰는 것이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나요? 단편적으로는 늘 써왔죠. 하지만 ‘엄마’라는 이미지는 늘 장벽처럼 느껴졌어요. ‘어떻게 저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나? 나는 못할 것이다’. 그런 마음이 싸우고 있었죠. 엄마라는 보편성이 너무 강해서 어떻게 그것을 새롭게 특수화시킬 수 있는가? 이것을 내 마음속에 해결하는 과정이었죠. Q.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하셨는데 그 과정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가요? 세월과 함께 엄마는 늘 다른 모습으로 변해요. 아까 말한 보편과는 역설적이지만 다양함과 복잡성을 띄고 있어 이걸 어떻게 포착해내나? 고민한 거죠. 게다가 일상에서도 익숙한 것이 늘 밀려나듯 작품도 그렇겠죠. Q. 그러다가 언제 ‘그것’이 다시 밀고 올라왔나요? ‘어머니’라는 말을 버리니까 저절로 장벽이 무너지더군요. 이기심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요? 나는 글을 쓸 때 늘 독립된 인간이라고 느껴요. ‘어머니’ 역시 ‘엄마’로 불리는 순간 의존하는 느낌, 즉 분리가 아닌 하나 된 느낌을 가질 수 있었어요. Q. 어려운데요. ‘생물학적 존재로서의 엄마, 사회적 호칭으로서의 어머니’, 뭐 이런 차이인가요? 엄마는 모든 사람들의 자기 얼굴이죠. 잘 닦아서 보면 나의 근원이고 시작이에요. 그 근원을 찾아가는데 어머니가 아닌 엄마에게 의존해서 가더군요. 저는 이것을 이기심이라고 생각해요. 어머니는 뛰어넘어야하는 무엇이죠. 예의를 갖추어야 할 이름이고요. Q. 단순히 ‘엄마라 칭하는 순간 글이 써졌다’라는 것은 쉽게 이해가 가지는 않는데요? 글을 쓰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죠. 이런 주제의 글을 쓰는데 ‘어머니를 부탁해’와 ‘엄마를 부탁해’중에 어떤 느낌이 주제에 더 가까울까? 하고요. 모두 엄마를 택하더군요. 처음 어머니로 진행되던 글은 꺼칠꺼칠했었는데, 첫 문장을 ‘엄마를 잃어버린 지 1주일째다’로 고치는 순간 합일과 충만한 느낌이 다가오더군요. Q. 아까 그것을 이기심이라고 표현하셨는데, 그 말은 막혀 있다가 ‘엄마’라는 정서에 기대면서 비로소 밀고 나갔다는 의미였나요? 뒤로 밀려나는 순간이 있어요, 예를 들어 6년 전에 쓰다가 장벽에 막혀 더 못쓰고 ‘리진’을 썼죠. 지금까지 작품을 시작하면 그것은 꼭 끝낸다는 것이 습작시를 쓸 때부터 굳어진 습관인데, 이 작품은 시도와 멈추기를 반복했어요. Q. 왜 그랬을까요? 어쩌면 그 부분이 이 책의 열쇠 같은데요. 돌이켜보면 내 욕망이 너무 컸죠. 처음에 엄마에게 이 시대를 대표해주는 어머니상을 부여한 거죠. 그런데 사회는 점점 엄마를 해체시켜나가기 때문에 여기에서 갈등이 발생했죠. 엄마는 항상 바뀌어 80년대 엄마와, 90년대 엄마, 그리고 지금 시대의 엄마는 모습이 달라졌는데 여기서 충돌이 있었죠. Q. 충돌이라면? 시대에 따라 변하는 ‘엄마’의 모습을 단순히 지금 시점의 ‘어머니’로 뭉뚱그려 일반화 할 수가 없었다는 뜻인가요? 이를테면 4장에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이라는 구절은 이미 10년 전에 탄생했어요. 다만 소설 속에 들어와 어떤 자리에서 어떻게 살아날지 몰랐었죠. 이후 계간지에 1년간 연재하는 사이에 지금 포커스에 자리를 잡은 것 같아요. Q. 요사이 ‘엄마를 부탁해’는 ‘위로’라는 코드로 부각되고 있는데요? 의식한 결과인가요? (소위 시류에 편승한 기획소설이냐는 뜻이니, 작가에게는 무례한 질문이다. ) 개인적으로는 조금 당혹스러워요. 언론에서 말하는 ‘엄마의 위로와 내 소설의 원 뜻이 같은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어요. 이 소설은 엄마를 칭송하지 않아요. ‘엄마 역할을 나누어 가져야하는 것이 아닌가?’에 초점이 있어요. ‘엄마를 부탁해’는 그러니 독자가 부탁을 받아야하는 책이에요. Q. 독자를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독자가 부탁을 받아야 하는 책이라면, 작가적 관점은 다른데 있다는 뜻인가요? 작가적 관점에서는 다른 필요한 대목이 있어요. 나는 인간이 자기의 역할을 하게 될 때까지 딛고 일어서야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의 가장 큰 디딤돌이 엄마라고 여겨요, 그런데 ‘우리가 디디는 그 엄마는 과연 행복했을까?’ 라는 근본적 질문이 있어요. 그 차이를 건너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그것이 굳이 ‘위로’라고 말한다면 ‘엄마를 통해 위로받자’가 아닌 ‘엄마를 위로하자’라는 소설이죠. ‘엄마를 부탁해’는 그런 질문을 던지고 나온 책이죠. Q. 그렇다면 ‘엄마를 부탁해’ 는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기를 바랐나요? 제가 가장 난감할 때가 사람들이 ‘여기서 울라고 썼다는 말이지?’ 라는 반응을 보일 때였어요. 어떤 작가도 작업을 하고 있을 때는 작품 앞에서 항상 처음이죠. 쓸 때는 읽는 사람 생각을 하지 않아요. 그래서 난감하죠. 만약 눈물을 흘렸다면 그것이 슬퍼서만 우는 것은 아닌 정화와 치유의 눈물이기를 바래요. 그래서 ‘이 책을 보고 울란 말이지?’ 이 말이 가장 아파요. Q. 예술가를 시대의 고통을 동시대의 언어와 형식으로 담는 사람이라 부른다면, 혹시 이 주제를 다루면서 ‘시대착오적’이라고 여기시지는 않았습니까? 그것은 와 닿지 않는군요. 주제가 아니라 형식이 담기는 틀을 찾지 못하고 전개되면 시대착오적이 되죠. 언어는 보수적이에요. 영상매체와 비교할 때 이미 보여준 많은 것들을 약간 뒤에서 늦걸음으로 찾아가는 것이 원래 언어의 운명이죠. Q. 그럼 문학은 늘 패배하는 운명을 타고 난 것인가요? 작가로서 가장 절망스러울 때가 사회의 복잡한 일들을 제때 따라가지 못한다고 느낄 때죠. 그러니 이미 뒤쳐지며 패배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것이 언어이고요. 영화관에 있으면 2시간 동안 한 세계가 흘러가죠. 하지만 책 읽기는 달라요. 한 페이지가 이해되지 않으면 뒷장으로 갈수가 없죠. 그래서 언어는 패배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만, 그러면서도 가장 강한 영향을 미치는 거죠. Q. 이 소설의 독특한 양식, 주인공이 ‘너, 그, 너, 나’로 전개되는 형식의 변화들은 현재를 담아낼 수 있는 틀과 형식을 염두에 둔 것인가요? 내가 쓰는 작품들은 어떤 시점이건 현재성을 띠고 ‘지금’을 볼 수 있어야한다는 것이 작가겠죠. 문학은 앞서가는 것만은 아니에요. 회의와 통찰을 품은 채 뒤를 돌아다보는 일이기도 하죠.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것, 우리가 두고 오거나 잊어버리거나 배반한 것들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기도 해요. 다만 거슬러 올라가되 당대성을 품은 채 가야죠. Q. 아까 질문을 던지고 나온 책이라고 하셨는데요, 이 책은 해명이 아니라, 질문이라는 뜻 인가요? 제게 소설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죠. 저는 끝을 완성시켜주지 않을 때가 있어요. 독자가 미완성이라고 느껴지는 것을 보고 완성시키는 과정이죠. 일종의 모호성으로서의 질문 같은 것이에요. 완성은 독자가 시키는 것이고요. 때문에 각자 다르게 읽게 해야 하죠. 한 작품을 열 사람이 각각 다르게 얘기하게 하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죠. 여백이나 공백, 질문 같은 것이 많으면 좋겠죠. Q. 치열한 작가들은 대개 내면의 ‘트라우마(외상)’가 있다고 하는데, 선생님은 어떤가요? 아마 죽음이었겠죠. Q. 작가에게 ‘죽음’이란 단순히 두려움과 공포일까요? 혹은 아름다움일까요? 기찻길 옆에 살아서 기차 때문에 죽는 사람을 많이 봤어요. 기관사가 발견했을 때는 이미 늦죠. 기관사는 어쩔 수 없어요. 뻔히 보면서도 질주할 수밖에 없죠. 기차가 멈추면 그 지점으로부터 몇 백 미터 가서 서 있게 되죠. 그때의 처참한 모습들. 나를 잘 따라다니던 개도 그랬었죠. 바로 뒤에 따라 왔었는데, 냄새만 남고 형체는 없더군요. 내가자란 시골도 단순히 아름다운 시골의 모습만은 아니었죠. 죽음은 봄이 되면 찾아오죠. 겨울동안 잘 견뎌낸 분들이 봄빛아래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죽음은 참 다양하고 가까이 있기 때문에 작가들이 죽음에 천착하겠죠. Q. 작가의 그런 트라우마들이 작품 속에서 어떤 식으로 드러나게 되나요? 죽음은 에너지이자 끝이 아닌 시작이죠. 죽음을 알면 곧 생명과 사는 것을 알게 될 테니까. 예전작품에선 숨기지 않고 드러냈죠. 작품 속에 죽게 한 사람이 많고 그 잔상을 남겼어요. 장편을 쓰면 글을 쓰는 동안 작중인물은 생명을 가지고 사는 인물이지 작품속의 가공인물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그를 죽게 했을 때 잔상이 강하더군요. 가끔 독자들에게서 ‘왜 죽게 했는가?’ 라는 추궁을 당하기도 하죠. Q. ‘엄마를 부탁해’에도 그런 ‘죽음’의 여운이 숨겨져 있나요? 이 소설에서는 경계에 둔 것이죠. 엄마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가있어요. 4장에서 형식이 깊이 개입되어 있죠. 원래 엄마는 등장시키지 않으려고 했어요. 주변인으로서만 완성시키려했는데 형식이 형식을 낳았고, 엄마에게 ‘나’라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을 부여하게 되었죠. 엄마를 딛고 일어선 나로서 엄마에게 드리는 헌사죠. Q. ‘엄마’에게 스스로를 이야기 할 기회를 주는 것, 이상의 헌사를 할 수는 없었나요? 우리 시대가 엄마로 상징되는 모성을 회복하되 옛날방식이어서는 안되겠죠. 새로운 모습으로서의 ‘회복’이 필요해요. 그래서 아직 못 찾아서 잃어버린 상태로 둔 거죠. 찾거나 못 찾거나 독자가 읽어낼 수도 혹은 의도하지 않은 파장들이 찾아냈을 수도 있죠. (작가의 말은 지극히 정제되어 있었다. 조심스러웠고 부드러웠다. 작가가 말한 ‘의도하지 않은 파장’이란 이 책이 ‘위로’ 혹은 ‘모성’의 코드라고 세상이 주목하는 해석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 Q. 앞서 경계에 있다는 것은 단순히 소설 속에서 ‘엄마의 생사를 알 수 없게 처리했다’는 뜻만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떤 의미인가요? 현실은 옛날식의 모성을 강화시킬 수 없어요. 그러나 그렇다고 아직은 탈신화를 할 시대도 아니죠. Q. 마지막까지 엄마를 잃어버린 상태로 둔 이유는 ‘부재(不在)’를 강조하기 위한 것 인가요? 물리적 부재뿐 아니라 현재 엄마상의 부재죠. 여기서 엄마상이란 모태 뿐 아니라 살리고 보살피고 태어나는 것은 모두 지녀야 할 것들이죠. 배척 할 것도 아니고요. 엄마라는 말에 의지해서 정당하게 나눠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Q. 엄마를 통해서가 아니라, ‘엄마라는 말에 의지해서’라는 말이 결국 해답이로군요? 사회적 긴장을 깊이 들어가 보면, 모성이 없어서 절망한 사람들, 혹은 읽어버리고 상처받은 사람들이 사회로부터 위로 받았으면, 사회가 모성성을 띠었으면 하죠. 심지어는 이 소설 속의 엄마조차도요. 결국 엄마가 하나로 설명되지 않듯 다양하게 끌고 가며 변주되는 셈이죠. Q. 그렇다면 우리는 ‘엄마’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요? 누구에게나 다 있어야 하는 거죠. 엄마 뿐 아니라 모든 존재에 있어요. 내가 내게, 네가 내게, 공동체가, 혹은 사회자체가요.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엄마에게만 지워놓았어요. 이제는 그것을 나누어져야해요. 2. 신경숙을 부탁해 신경숙은 내면이 치열한 작가다. 문체와 형식에 엄격하고, 정제된 언어를 구사한다. 쉽게 읽히는 작가가 아니다. 그래서 신경숙은 ‘엄마를 부탁해’가 쉽게 읽혀지고, 시대의 ‘요청’에 따라 ‘위로’라는 키워드로 ‘일반화’ 되는 것을 조심스러워 하는 듯했다. Q. ‘외딴방’ 이후 지금까지 작품의 색조가 많이 달라졌는데요. 스스로 그 변화를 점검하고 계십니까? 내 안에는 생애가 두 개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자면 시골과 도시, 어두움과 밝음과 같은 두개의 생애요. 어떤 때는 둘이 잘 섞일 때가 있지만 때론 등을 돌릴 때가 있죠. 글을 묘사해나갈 때 그런 걸 느껴요. 때문에 작품을 읽어보면 어느 작품에서는 리얼하고 어떤 부분은 현실에 발을 디디지 않는 느낌이 들 것이고, 때로는 이 둘이 같이 있는 것으로 느껴지겠죠. 하지만 나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그러나 마치 둘이 같이 있는 듯한 느낌이죠. Q. ‘외딴방’의 경우는 상당히 격렬하달까, 치열하달까, 그런 인상을 주지만 ‘바이올렛’이나 ‘기차는 7시에 떠나네’ 같은 작품은 평화롭거든요. ‘엄마를 부탁해’는 또 다른 느낌이고요. 그때는 정면으로 대결한다는 느낌으로 쓴 거죠. 거울 속을 들여다보며 써내려간 느낌, 그러나 ‘기차…’와 ‘바이올렛’ 등은 상상 혹은 그런 쪽에 가까운 느낌으로 썼어요. Q. 초창기 작품들이 ‘날 것의 느낌’이라면 이후에는 상당히 ‘정제된 느낌’인데요? 내 마음은 오히려 거꾸로 같은데요? 저는 새로움이란 이야기 속이 아닌 형식과 문체에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세대는(작가는 63년생이다) 큰 역사에 부딪칠 수 있는 시간을 가지지 못했죠. 우리 청춘시대의 저항이 적다는 것이 아니라, 식민지배, 4.19, 6.25와 같은 체험은 없는 것이죠. 때문에 새롭게 무엇을 쓴다는 것은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만의 문체를 갖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 작가는 인터뷰어가 조심스럽게 던진 질문의 의도를 금세 간파했다. 그리고 평온하고 담담하게 특유의 어법으로 질문에 답을 했다) Q. 작가라면 누구나 자기만의 문체가 있지 않나요? 맞아요. 운동장이나 계단 같은 곳에 표지나 저자 이름조차 없는 책을 누군가 주워서 읽어도 이것은 신경숙의 글이다, 라고 알아볼 수 있는 글을 쓰려는 욕구가 강하죠. 그래서 이야기를 만들기보다, ‘표현할 때 나만이 표현할 수 있는 문체를 가져야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런데 나이 들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는 사람들이 오히려 소설 안으로 많이 뛰어 들어와요. Q. 사람들이 뛰어 들어온다는 말은 이제 이야기를 중시한다는 뜻인가요? 사람들 얘기를 내 식으로 간곡하게 쓴 것이라고 할까요? 어떤 이야기건 내 언어로 조명하지 않으면 뭇사람처럼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야죠. 평범한 생각과 욕망조차 쉽게 추측할 수 없고, 설령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대상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내 소설 속에서 내면이 비치기를 바라는 것이 일관된 내 입장이죠. Q. 예를 들면요? 단편집 ‘풍금이 있던 자리’의 경우 나를 실험해본 작품이죠. ‘시’인지 ‘소설’인지 경계에 두고 ‘이것이 독자에게 소설로 읽힐까?’ 라고도 생각했죠. 내부적으로 계속하고 있어요. ‘어떤 얘기를 새롭게 읽히도록 어떻게 새롭게 쓰지?’ 그것이 늘 고민이에요. Q. 신경숙이라는 작가에게 문학이란, 또 소설이란 어떤 것일까요? 언어라는 것은 만질 수도 없고 보관할 수도 없는 것이죠. 그러나 언어는 불멸이에요. ‘바이올렛’을 쓸 때 내 소설에 글로 담긴 삼청동이 지금은 흔적도 없죠. 세상은 매순간 변하고 스쳐지나가지만, 언어로 순간을 포착해놓으면 불멸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 순간을 ‘내 언어에 걸려들어 빛을 쬐어 불멸한다’라고 표현하죠. 그것이 내 속의 허무라면 허무를 뚫고 견디고 나가는 방법이죠. 최종적으로는 허무와 격렬하게 싸우는 것이 소설이고요. Q. 최근의 작품에서는 그 격렬함이 상당히 완화된 것처럼 보이는데요. 제 소설의 기본이 연민에 닿아있어서 이제는 바라고 응시하는 쪽에 가까워졌어요. 배려에 맞춰져 있는 거죠. Q. 작가로서 누구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았습니까? ‘광장’을 쓴 ‘최인훈’ 선생님이 은사였는데, 수업시간에 ‘문학은 깊은 우물에 자기얼굴을 비춰보는 것이다’고 하시더군요. 그 말이 섬광처럼 다가왔어요.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고 남아있죠. 걷어내고 또 걷어내고 마지막으로 밑바닥에 비친 얼굴 말이에요. Q. 말씀을 들으니 소설가 신경숙이 진짜 쓰고 싶은 것을 아직 안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너무 즐거운 질문이네요. 못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글을 쓰는 나와 일상의 나가 따로가 아니라 하나죠. 가끔은 시간이 갈수록 그것이 분리되어야 마땅할 것 같은데 나는 점점 일치가 되는 것 같아요. 물방울처럼 솟아났다가 다시 들어가고 또 나왔다가 들어가고, 나도 그 어떤 이야기를 찾아가는 중인 것 같고, 그래서 분명히 있지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Q. 그렇다면 그것은 자전적 체험을 형상화 한 것 아닌가요? 극단적인 아름다움과 지극히 관능적인 것일지도 모르죠. 아까 트라우마 질문하셨죠? ‘죽음’이라고 답했는데요, 그것에 가까운 사라지지 않는 무엇이 있어요. 순간순간 작품화되기 이전의 이런 생각과 느낌이 찾아오지만, 그 느낌이 항상 그대로 있지 않고 없어지기도 해요. 때로는 쓰고 싶은 마음을 아예 잃어버리기도 하고요. Q. 그렇다면 그것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요? 사라지지 않고 심지어 다른 작품을 쓸 때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것이에요. 그러나 그것 역시 변할 테니 지금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찬란하고 황홀하고, 빛나게 ‘햇빛 속에 있는 빛나는 하얀 말의 갈기 같은 아름다움에 관한 소설’, 첫 장부터 끝 장까지 하나도 예사롭지 않은, 조금도 빠뜨렸으면 안 되는, 그리고 다 쓸 때쯤이면 그 작품을 다 외고 있을지도 모를 그런 소설이에요. 하지만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선 그만큼의 ‘연금’이 필요하겠죠. (외딴방을 쓰기 위해 ‘희재 언니’가 10년간을 감금당했다면, ‘엄마를 부탁해’가 나오기까지 ‘엄마’가 연금당했고, 앞으로 정말 쓰고 싶은 ‘무엇’이 지금 그녀의 내면에 갇혀있다고 한다) Q. 37세에 결혼하셨는데, 늦은 결혼이셨죠? 남편은 어떤 분인가요? 우리는 굉장히 달라요. 그래서 서로에게 동행자로서의 틈을 메우죠. 결핍이 채워지는 느낌을 줘요. 시간이 지날수록 나 혼자였을 때보다 함께 있는 게 좋고 동지처럼 안심이 돼요. 그쪽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는 안 물어봐서 몰라요(웃음). 내 쪽이 너무 많이 의지해서 좀 걱정일 때도 있죠. 저사람 나 없으면 안 되겠구나’하는 마음이 서로에게 생긴 것도 같고요. (요즘 세태의 사랑은 요란하다. 그(그녀)를 목숨보다 사랑한다던 사람들이 금세 돌아서서 악마처럼 저주한다. 사랑하는 것과 반하는 것을 가리지 못한 탓이다. 하지만 신경숙의 사랑은 내게서‘그의 부재를 두려워함’이 아닌, 그의 편에서 ‘나의 부재를 걱정함’이었다) Q. 어떻게 16살에 작가가 될 결심을 했나요? 낯선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발설했죠. 두려움 때문에요. ‘다른 곳으로 가는구나’ 하는 순간, 주술처럼 스스로에게 각인시켜 놓은 것이죠. 이후 도시에서 평탄하게 적응했다면 그저 한번 해본 생각이었을 수 있지만, 16~20살 사이에 오히려 강화되었어요. Q. 도시에서 적응이 힘들었던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나요? 시골에서 태어나 열다섯까지 그곳에서 성장했어요. 그리고 스물이 될 때까지는 공장지대에서 보냈죠. 완전히 서로 반대되는 이 공간에서 본 것들이 각인현상처럼 내 마음에 찍혀있죠. 태어나고 죽고 하는 것을 일상적으로 보며 자랐던 농촌에서의 어린시절은 공동체 감각을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했던 것 같아요. 그곳을 떠나오던 밤 기차안도 또렷이 기억해요. 이 도시에 도착한날 새벽빛 속에서 나를 내려다보던 거대한 대우빌딩도요. Q. 공동체적 감각을 지닌 시골소녀에게 서울은 극도의 소외를 안겨주었군요? 시골의 들판은 넓게 퍼져 있어 먼 곳을 응시하게 했다면 도시의 빌딩은 위로 솟아 있어 나를 내려다보거나 내가 올려봐야 하더군요. 나는 이 두 공간으로부터 위로도 받고 내상을 입기도 했죠. 이 두 가지가 다 내 안에 있어요. 공동체와 개인처럼 서로를 밀어내기도 하고 껴안기도 하면서. (정읍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난 신경숙은 열여섯에 서울로 올라와 구로공단의 전기공장에 다니며 산업체 특별학급을 다녔다. 컨베이어벨트 아래 소설을 펼쳐 놓고, 좋아하는 작품들을 첫 장부터 끝장까지 모조리 베껴 쓰며 문학을 공부했다. 그 후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뒤 1985년‘문예중앙’에 중편소설로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Q. 상경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물론 진학목적 때문이었죠. 아버지가 우리 모두를 교육시켜야한다는 의지가 강했어요. 서울서 처음 1년간 일을 했죠. 4명이 동시에 대학을 다니기도 했으니 상급학교로 갈 때마다 귀로에 섰죠. Q. 그때 16세 소녀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떤 것이었나요? 70년대 시대상황이 어린 눈에 정리는 안 되었지만 노동자들의 삶을 체험했죠. 치약 하나로 6개월을 버티면서도 월급 받아 시골로 보내는 사람, 노동운동으로 처참히 깨진 사람, 그사이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끼여서 우울하게 변해갔죠. Q. 그때의 우울이 내면에 고정되었나요? 초기작품 외딴방에 드러난 우울 같은… 사춘기 때 안 봐도 될 것을 많이 봤고, 또 그 나이는 자존심을 많이 다칠 때였죠. 하지만 그것을 지킬 수 없었어요. 나중에 대학 때는 내 목소리가 어떤지를 모를 만큼 말을 하지 않았죠. 졸업 후에도 29살까지 계속 일을 했어요. 글 쓰는 사람이 하는 일은 다했죠. 출판사, 잡지사, 학생기자, 심지어는 방송국에서 구성작가를 3년 동안 하기도 했죠. Q. 신경숙의 내면을 유감없이 보여준 작품이라는 평가를 듣는 ‘외딴방’은 어떤 작품인가요? 작가가 되고 10년 만에 쓴 것이지요. 쓰려고 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안에 두고 있었죠. ‘풍금’이나 ‘깊은 슬픔’같은 작품은 언어에 대한 무진장한 집착과 화사한 세계라면, 외딴방은 정면으로 바라보아야 할 무엇을 눈을 감거나 피하는 느낌으로 10년을 지내면서 부닥친 내적 한계에 대한 일종의 ‘의례’였죠. 그 글을 쓰면서 비로소 치유도 많이 되었어요. Q. 마지막으로 소설가 신경숙의 꿈이나 목표는 어떤 것 입니까? 사춘기 때의 나는 절실히 꿈이 필요했어요.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으니까요. 문학은 그러니까 글쓰기와 책읽기는 나로 하여금 꿈을 꿀 수 있게 해줬어요. ‘도리스 레싱’의 말처럼 작가는 꿈을 만드는 불사조이기도 하죠. 나는 사인할 때 내 앞에 서 있는 이가 젊을 땐 거침없이 꿈을 이루라고 써줘요. 꿈을 이루라고 해 주는 것이 힘들게 청년시절을 통과하는 있는 젊은 친구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내 식의 최선의 위로입니다. 요즘은 내 동년배, 나보다 앞 나이를 사는 분들께도 써 드리죠. 좋게 나이 먹고 싶다는 것도 꿈이고 잘 죽고 싶은 것도 꿈이니까. 나 자신한테 하는 말이기도 하지요. 나도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날을 기다리니까요. 늘 다음 작품이 궁금한 작가이고 싶어요. 지난 시절에 쓴 작품이 아니라 방금 쓴 작품으로 소통되는 현재 진행형의 작가로 존재하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내 꿈도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어요. 한 권의 책, 첫 문장부터 끝 문장까지 단 한 문장도 버릴게 없는 허무를 뚫고 나온 내적형식이 완성된 눈부신 책을 쓰는 것이요. 그때는 그게 꼭 소설이 아니라도 상관없겠죠. 마치며 인터뷰어로서가 아닌 독자로서‘한 권의 책, 첫 문장부터 끝 문장까지 단 하나도 버릴 게 없는 허무를 뚫고 나온 내적형식이 완성된 눈부신 책’을 만나기 위해, 지금 작가의 내면에 연금되어 있는 ‘그것’을 향해 이 말을 해야겠다. 신경숙을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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