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의 제국
최창일
몰라도 너무 몰랐다
무정한 세월이 끌려가도
역사의 눈비 맞고 바람 맞고
달려온 시간 속 거기 있다는 것을.
가야伽倻는 서력 42년부터 562년까지
경상남도 전라남도 낙동강 가까운
창녕, 밀양, 부산 등까지
하나의 나라였다.
그렇다면 5천만 인구 중 3분 1 인구는
가야의 후예가 아닌가.
700년을 존속한 가야는
삼국 시대三國時代가 아닌 사국 시대四國時代로
불려지기를 원하고 있다.
이른 봄 지산동池山洞 고분古墳 입구에 홀로 피는
하얀 목련이 목을 외로이 비뚤며
뚝뚝 낙하하는데
고분 속에는 절대 권력자의 이기심 산물이
섬뜩으로 누워 있고
사회적 무의식의 껍데기,
40여 명이 주인을 위해 순장되어
저승까지 따라가는 측은함으로 누워 있다.
철기 문명, 가야금, 봉황 문장鳳凰紋章, 황차黃茶, 도자기의
찬란한 예술을 꽃피웠건만
가야사는 갈기갈기 찢어진 채 묻혀 버렸다.
가야伽倻, 불가의 나라 아버지를 간절히 부른다는
뜻은 이해할 수 있으나
신비의 왕국 역사는 좀처럼
속 시원히 말이 없다.
가야의 문명은 미완이다.
그래서 가야는 사라져버린
대륙 아틀란티스처럼 더욱 신비롭다.
베토벤의 미완성 교향곡이 심금을 울리듯,
사야의 신비로운 정체성은
슬프면서도 비장한 아름다움으로
지산동 고분 아래 말이 없다.
오래 전에 멸망한 나라,
가야의 대표적 악기 가야금伽倻琴 창제자
악성 우륵于勒의 희미한 손톱자국 하나
남기지 않은 채
망국 가야의 노래 제목만 덩그라니
열두 줄 가얏고에 걸린 채
그 어디에서도 연주는 들을 길 없다.
지산동 고분 둔덕 아래 폭포처럼 쏟아질 것 같던
개나리 노랑색이며 틈새에서 내밀던
붉은 진달래도 한 되어 혀를 깨물고 있다.
은회색 파스텔로 누부시게 하던
벚꽃마저 땅에 얼굴을 대고
일어날 줄 모르고 미완의 문명,
가야의 신화를 열망하고 있다.
가야는 내게 말을 걸어왔다.
기나긴 세월 속 가야의 언어를 모르는
나의 입이 굳어 대답을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