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불2길 - 햇빛길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망해산 능선을 걷다보면 이러다 머리가 벗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능선을 따라 걸으며 금강을 바라보면 마음이 트이고 가끔 불어주는 강바람은 익어 버릴 듯한 몸과 마음을 식혀준다.
이후 만나는 축성산 또한 무성한 나무로 그늘길이 열리는데 이때의 행복은 꼭 한번 누려보아야 그 참맛을 알 수 있다.
→ 즐거운자연학교에서 햇빛길을 따라 서수 쪽으로 가면 불주사 입구가 있다.
→ 불주사가 자리한 장상리에는 일명 고산골이라 불리는 원장산 마을과 군인이 주둔했다고 하여 이름 붙은 군둔마을 그리고 본래는 잠버들이라 불리었으나 이 마을이 기와를 구웠다고 하여 기와골이라 불렸던 와촌 등이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그 중 원장산마을 길을 따라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변씨 집안의 퇴락한 제실이 서있는데 이 고장의 토호 집안으로 해방 후 야당 당수를 지낸 변광호 씨 집안의 제각이다.
→ 그곳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백인농장이 있다. 젖소와 송아지에게 먹이를 주고 함께 놀며 반추동물을 배우고 유제품 발효과정과 시식을 할 수 있는 열린 체험 공간이다.
→ 백인농장을 지나서 올라가다 보면 축성산 불지사라는 현판이 달린 일주문을 만날 수 있다.
→ 부처님이 항상 머물었다는 뜻의 불주사는 일주문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불지산의 동쪽 중턱에 있다. 산비탈에 축대를 쌓은 후 가람을 배치하였는데 전체적으로 청정하고 단아한 분위기이다. 최근의 중창불사로 큰 주차장과 자연석으로 만든 웅장한 돌계단을 갖추어 엄숙함이 풍기며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17호 불주사 대웅전과 관음전, 나한전 등이 있다.
→ 불주사 뒤편으로 난 좁다란 등산로를 올라가면 망해산이 나타나고 등산로를 따라 걸으면 망해산 정상의 정자를 만나는데 이 곳은 금강과 나포십자들의 풍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명소이다.
→ 망해산 정상에서 내려와 다시 발길을 옮기면 축성산의 그늘진 등산로를 만나는데 축성산은 취성산으로도 부르는데 부처가 설법하던 영취산과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축성산 인근에 있는 상주사에는 소속 암자가 9개나 있었고 승려도 약 200여명이나 되어 밥하려고 씻는 쌀뜨물이 아랫마을까지 내려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만큼 한때 상주사는 규모가 매우 컸던 사찰임을 알 수 있고 바로 옆에 있는 보천사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전해 온다.
→ 저수지매운탕 옆으로 축성산을 빠져나오면 축성제가 있고 이곳을 지나 1912년 개교한 임피초교 쪽으로 가면 이방청(노성당), 300년 된 나무와 연지, 그리고 선정비, 임피향교를 비롯하여 옛날 역사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이다.
→ 임피초교를 지나면 전통 한옥 두 채가 보이는데 한눈에도 오래되어 보이는 세월의 고색 창연함이 물씬 풍기는 팔작지붕의 건물은 조선시대 임피지역 향리들이 근무했던 이방청이다. 임피현의 관아건물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이방청은 현재는 노성당이라고 더욱 알려져 있고 최근까지 읍내리 성내마을의 경로당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 노성당을 지나 임피향교로 오르다보면 좌측으로 조그마한 연못을 배경으로 옛 비석들이 줄지어 서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어느 고을이나 현청의 앞에는 그곳 관아에서 근무한 수령들 중 공이 많은 사람들의 공덕을 기리는 비석이 서있기 마련인데 이곳에도 총 17개의 비석들이 선정비(善政碑) 및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라는 명찰을 달고 서있다.
→ 비석들 뒤쪽으로는 연못이 있고 연못의 가운데에 인공섬을 만들고 버드나무를 심어 놓았는데 버드나무가 묘한 모습으로 누워있어 연못 전체의 운치가 더한다. 인공으로 조성한 이곳 연못은 언제 누가 만들었지 전해지지 않지만 이 연못의 위치가 현청과 이방청 사이에 있기에 그 역할이 고을 사또를 위한 공간이었으리라 추정된다. 임피지역민의 말에 의하면 봄, 가을로 사또와 지방 유지들이 모여 연회를 베풀며 풍류를 즐겼다고 전하고 있다.
→ 임피향교는 조선 후기의 소규모 향교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대성전은 공포의 양식이나 초석 등에서 특이한 점을 가지고 있어 건축사적으로 연구할 부분이 많은 건물이다.
→ 임피향교에서 채만식도서관 앞을 지나 읍내리로 나가면 백릉 채만식선생의 생가터가 있다. 1902년 6월 17일 채만식 선생이 태어난 임피 읍내리의 274번지는 얼마 전까지 비디오가게를 통해야만 안채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간판만 있고 영업은 하지 않아 출입이 자유롭다. 선생의 집은 엄밀하게 말하면 생가라기보다는 생가터라고 할 수 있다.
→ 읍내리에서 임피하수처리장 쪽으로 농로를 따라 걸으면 서해황토방이 있고 그 앞에서 좌회전하면 깐치멀농촌체험마을이 있는 작촌마을로 갈 수 있다.
→ 깐치멀농촌체험마을은 까치처럼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고 자연과 정겨움이 가득한 곳이란 뜻의 녹색농촌체험마을이다.
불주사
불주사는 군산지역의 사찰 중 유일하게 일주문이 있었던 사찰이다.
가운데 대웅전이 자리하고 동북쪽에 벽안당(혹은 관음전)이 있고, 대웅전의 동남쪽에는 나한전이 있는 구조이다. 1986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 117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대웅전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주심포계팔작지붕 건물로서 최근에 단청을 새로 하였는데, 조선시대 양식의 건물이다.
2000년 대웅전을 보수할 때“崇禎二年二月”이라 적힌 암막새의 명문으로 보아 인조 7년(1629) 불주사의 중창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불주사라는 명칭은 무엇일까? 불주사라는 명칭은 이 사찰의 뒷산 모습이 석가모니불이 설법하신 인도의 마갈타국 왕사성의 영축산과 흡사하다 하여 축성산이라 부르고 절의 이름도 깨달음을 얻으라는 뜻에서 불지사(佛智寺)라 한 것이지만 본래 명칭은 불주사(佛住寺) 즉 부처가 있는 절이라는 뜻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노성당(이방청)
노성당은 읍내리 임피초등학교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데 주변은 구 읍성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건물은 원래 이방청(吏房廳)이었는데 임피 장날을 정하고 물가를 정하는 사람을 지정 하였으며 신창진(새챙이 나루터)의 입출항 선박을 통제 하는 기능도 있었다고 한다. 1905년 이후에는 일본 경찰의 주재소로 사용되었고 그 후 임피의 유지 이동석이 매입하여 양로당으로 쓰도록 노인회에 기증하였다고 한다.
‘崇禎紀元後四乙卯四月初八日卯時開基五月初六日未時竪柱同月初九日卯時上樑’이라는 묵서명으로 미루어 이 건물은 1855년(철종 6)에 건립된 것을 알 수 있다.
연지 및 선정비
조그마한 연못을 배경으로 옛 비석들이 줄지어 서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어느 고을이나 현청의 앞에는 그곳 관아에서 근무한 수령들 중 공이 많은 사람들의 공덕을 기리는 비석이 서있기 마련인데 이곳에도 총 17개의 비석들이 선정비(善政碑) 및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 라는 명찰을 달고 서있다. 비석들 뒤쪽으로는 오리가 놀고있는 연못이 있다.
연못의 가운데에 인공섬을 만들고 버드나무를 심어 놓았는데 버드나무가 묘한 모습으로 누워 자라는 바람에 연못 전체의 운치가 더하는 듯하다.
인공으로 조성한 이곳 연못은 언제 누가 만들었으며 연못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전해지고 있지 않다.
옥란교
옥란교는 논 경지정리로 지금은 사라졌지만 읍내리 서남쪽 800m 지점의 논 한가운데 있던 돌다리였다. 유래를 보면 조선중기 광해군때 임피현으로 귀양을 온 선비가 있었는데 임피현령에게 그를 외딴섬으로 유배시키라 하였다. 그러나 당시 임피현령은 귀양 온 선비와 절친한 친구라 섬으로 보내야 하는 상황에 가슴 아팠다고 한다. 그렇다고 조정의 명령을 거역할 수도 없어 사또는 밤마다 고민하였다고 한다. 그때 사또의 딸인 옥란낭자가 기발한 묘안을 제안했다. 읍내에서 멀지 않은 성 밖에 연못을 파고 그 연못 가운데 섬을 만든 후 아버지의 친구를 그 섬에 유배시키자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식사를 날라주기 위해 연못의 섬에 돌다리를 만들었으니 사람들은 이 다리를 뛰어난 발상으로 아버지의 고민을 해결한 옥란낭자의 이름을 따서 옥란교라 불렀다는 것이다. 지금은 연못도 옥란교도 모두 사라지고 우정의 소중함을 전하는 전설만 남아 있는데 선정비 뒤에 있는 연못의 모습이 옥란교의 전설과 유사하여 다시금 살펴보게 된다.
임피향교
임피향교는 1403년(태종 3) 현 경산리 교동인 대정동에 창건되었는데 1630년(인조 8)에는 현 미원리인 서미곡으로 이건되었으며 1710년(숙종 36)에는 현재의 위치인 장유동으로 옮겨 다시 세워졌다. 1974년에는 대성전이 중수되었고 1975년에 명륜당이 보수되었다.
임피향교는 조선 후기의 소규모 향교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대성전은 공포의 양식이나 초석 등에서 특이한 점을 가지고 있어 건축사적으로 연구할 부분이 많은 건물이다.
백릉 채만식 선생
채만식선생은 자신의 고향인 군산을 배경으로 1930년대 암울한 삶을 그려낸 장편소설 탁류를 만날 수 있다. 백릉 채만식선생은 임피면 읍내리 274번지에서 출생하였으며 중앙고보를 거쳐 일본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중퇴하였다. 귀국 후 동아일보·조선일보 기자를 역임하였고 1925년 단편 “세길로”가“조선문단”에추천되면서문단에데뷔하였고, 1934년에“레디메이드인생”,“ 인텔리와 빈대떡”등풍자적인작품을발표하여작가기반을굳혔다. 그뒤단편“치숙”,“ 소망”,“ 예수나믿었더면”,“ 지배자의무덤”등풍자성이짙은작품을계속발표했다.
대표작인 장편“탁류(濁流)”는 한 여인의 비극적인 사건을 놓고 사회의 비리를 풍자한 작품이다.
1) 저수지매운탕 [붕어매운탕 453-2931]
2) 옹고집장집 [쌈밥 453-5566]
3) 한우마을 [육류 453-9288]
4) 태평가든 [해물전골 453-6264]
5) 콩사랑순두부 [순두부 453-8151]
6) 동군산농협하나로마트 [마트 453-2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