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시즌 성균관대 에이스로 활약하게 될 최원재가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고 있다. 강한 승부욕이야말로 성균관대 야구부의 최대 강점이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프로야구 SK 와이번스는 과거 해태 타이거즈(KIA의 전신)에 이어 가장 강력한 팀이다. 2시즌 연속 압도적인 전력 차로 정규시즌 1위에 오른 데다 한국시리즈에서도 2년 연속 우승했다. 대부분의 야구전문가들은 SK의 3년 연속 우승도 어렵지 않다는 전망을 하고 있다.
아마추어 야구에도 SK를 똑 빼닮은 팀이 있다. SKK다. SKK의 2군인가 싶겠지만 정답은 아니다. 바로 대학야구 최강팀 성균관대다.
대학야구의 SK, 성균관대
지난해 성균관대는 제 1회 한국야구위원회(KBO)총재기대회와 전국체육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대학야구 최강자다운 성적이었다. 외면상 그렇다. 이면에 집중하면 두 대회 우승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먼저 KBO총재기대회다.
2001년 이후 성균관대는 준우승만 3번 기록한 2005년을 제외하고 지난해까지 해마다 우승컵을 안았다. 2006, 2007년에는 각각 대학 추계리그와 대학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며 모든 대학야구대회에서 우승을 경험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성균관대가 초대 KBO총재기대회에 챔피언에 오른 건 명실 공히 대학야구대회 그랜드슬램을 가장 빨리 달성했다는 의미다.
전국체육대회 우승은 더 대단했다. 8강 상무전이 백미였다. 당초 프로 2군 북부리그 우승팀 상무의 전력은 성균관대와 비교를 불허했다. 김희걸, 장필준, 오재영이 버틴 투수진이나 손시헌, 박병호, 오재일로 구성된 강타선은 웬만한 프로 1군과 비교해도 뒤질 게 없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다. 성균관대가 상무와 5-5로 정규이닝을 마친 뒤 추첨에서 이기며 4강 티켓을 거머쥔 것이다. 일부에서 ‘대이변’이라 칭했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다.
지난해 성균관대는 각종 대학 대회에 출전해 24승 7패 승률 7할7푼4리를 기록했다. 33개 대학팀 가운데 최다승, 최고승률이었다. 팀 타율 2할8푼4리, 팀 평균자책 1.89 역시 압도적인 1위였다. 대학야구의 SK라 불려도 전혀 손색없는 성적이었다.
![]() 2008년 8월 8일 제 1회 KBO총재기대회에서 연세대를 꺾고 우승한 성균관대 선수들이 주먹을 쥔 채 구호를 하고 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아마추어 야구의 김성근, 이연수 감독
성균관대와 SK가 닮은 건 막강한 전력만이 아니다. 감독도 빼닮았다. 성균관대 이연수 감독은 아마추어 야구계의 김성근으로 통한다. 그만큼 실력자다. 2001년 취임 75일 만에 만신창이였던 성균관대를 춘계리그 우승으로 이끈 뒤 지난해까지 수많은 우승컵을 학교에 안겼다.
“김성근 감독은 야구에 인생을 거신 분이다. 감히 나와 비교할 수 있겠나.” 이 감독이 손사래를 쳤다. 지나친 겸손이었다. 이 감독도 야구에 인생을 걸긴 마찬가지였다.
광주일고와 성균관대를 거쳐 1987년 청보에 입단한 뒤 쌍방울로 이적해 선수와 매니저를 역임한 이 감독은 2001년 모교 감독에 부임했다. 상황은 최악이었다. 전임 감독이 학부모들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터라 팀 분위기는 말이 아니었고 현역시절 무명선수였다는 이유로 이 감독에게 반감을 드러내는 동문들도 부지기수였다.
재일동포 출신이란 핸디캡을 오직 실력으로 극복해야 했던 김성근 감독처럼 이 감독도 기댈 것이라곤 실력밖엔 없었다. 이 감독은 스승 김 감독을 벤치마킹하는 한편 팀 칼라를 만들기 위해 고심했다. 그가 가장 먼저 빼든 카드는 강훈련이었다.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 감독의 부임 초기 모 대회 4강전이었다. 한창 경기가 진행 중일 무렵 심판이 이 감독에게 다가왔다. “이 감독, 뭐 저런 포수가 다 있어?” 이 감독이 영문을 몰라 하자 심판이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당신네 포수가 구종을 가르쳐주고 있다니까.” 이 감독의 눈이 커졌다. “구종이라니요? 누구한테요?”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누구긴 누구야. 타자지.”
현재 프로팀에서 포수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 선수가 범인(?)이었다. 당시 이 선수가 밝힌 범행 동기는 “여기서 지면 하루는 쉴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었단다. 그렇다고 이 감독이 입장을 철회한 건 아니었다. 취업을 위해 도서관에서 새벽까지 공부하는 또래 학생들처럼 프로야구팀 입단이 취업 목표인 대학야구선수라면 당연히 그 정도 노력은 해야 한다는 이 감독의 믿음은 번복되지 않았다.
![]() 성균관대의 야구부 지원은 어느 학교보다 적극적이다. 지원이 곧 성적으로 연결되는 건 아마추어 야구에서도 마찬가지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성균관대의 훈련시작은 오전 9시 30분부터다. 정오까지 야수, 투수조 공히 수비훈련과 웨이트트레이닝을 한다. 점심식사 뒤 오후 6시까지는 야수와 투수 각각 타격, 투구훈련에 전력한다. 저녁식사 뒤는 자율적으로 야수는 기초훈련, 투수는 쉐도우 피칭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훈련스케줄만 보면 다른 대학팀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도 대회를 앞둔 경우에 해당한다. 평상시는 선수들이 학생신분으로 돌아가 강의를 듣기 때문에 오전 훈련은 하지 않는다.
![]() 성균관대 이연수 감독의 유일한 꿈은 프로야구 감독이 아니라 프로야구에 걸맞는 인격과 실력을 갖춘 선수들을 배출하는 것이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성균관대의 훈련을 가리켜 강훈련이라 하는 건 같은 시간이라도 보다 집중력 있는 훈련을 하게끔 유도해 효과를 배가시키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이 감독은 부임 때부터 “자발적 훈련”을 강조했고 선수들에게 “왜 야구를 해야 하는가” 자문토록 했다.
“선수시절 김성근 감독님은 ‘왜 야구를 해야 하는가’란 주제로 수도 없이 정신교육을 되풀이했다. 처음엔 졸음이 쏟아졌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왜 야구를 해야 하는지 깨닫게 됐다. 그걸 깨닫는 순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야구에 집중하게 된다.” 이 감독의 말이다.
부임 초반엔 쉽지 않았다. 선수들이 타성에 젖어 누가 시키지 않으면 몸을 움직이질 않았다. 목적의식도 없었다. 이 감독은 이때 조바심을 내는 대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취임 75일 만에 춘계리그 우승을 차지한 뒤로도 이 감독은 욕심을 내지 않았다.
“3, 4년이 지난 뒤 선수들 사이에서 확실한 목적의식이 생겼다. 지금 열심히 노력하면 선배들처럼 프로입단에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 것이다.”
실제로 성균관대 졸업생의 프로야구 취업률은 매우 높다. 지난해 졸업반 6명 가운데 4명이 프로행에 성공했다. 프로야구팀들도 성균관대 출신을 반긴다. 모 팀의 스카우트는 “캐치볼부터 다시 가르쳐야 하는 아마추어 선수들과 달리 성균관대 출신은 기본이 탄탄해 즉시 전력감으로 기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추승우, 김태완, 이희근(이상 한화), 현재윤(삼성), 정재훈(두산), 모창민(SK)은 대표적인 성균관대 출신 현역선수들이다.
대학야구계의 충격, 성균관대의 ‘기동력 야구’
지난해 8월 8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제 1회 KBO총재기대회 결승전에서 연세대는 성균관대에 2-4 역전패했다. 경기 전 연세대 이광은 감독은 “성균관대의 기동력 야구를 막는 게 관건”이라고 예상했는데 결국 그것을 막지 못해 졌다.
성균관대는 대학야구에서 처음으로 ‘기동력 야구’를 선보인 팀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감독의 말을 들어보자.
“과거 쌍방울에 조 알바레즈 주루코치가 있었다. 알바레즈 코치는 ‘야구는 한 루를 더 가기 위한 스포츠’라며 조금만 틈이 보여도 뛸 것을 강조했다. 설령 주루사를 해도 절대 나무라는 법이 없었다. 되레 박수를 쳤다. 나중에 감독이 되면 꼭 알바레즈식의 과감한 주루야구를 펼치리라 다짐했다.”
김성근 감독 휘하에서 전력분석원으로 활동한 것도 도움이 됐다. “대개 투수는 습관이 있게 마련이다. 가령 견제구를 던지기 전 주자를 한 번 보는 투수가 있고 두 번 보는 투수가 있다. 이를 잘 노려 도루를 시도하면 성공률이 더 높아진다.”
![]() 성균관대 교내 구장 한편에 붙여진 슬로건. 성균관대 특유의 '기동력 야구'를 잘 표현하는 문구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다른 팀 감독들이 ‘성균관대만 만나면 정신이 없다’고 하소연할 정도로 뛰고 또 뛰었다.” 이 감독의 설명이다.
성균관대의 ‘기동력 야구’는 대학야구의 수준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됐다. 다른 팀들이 투수들의 퀵 모션과 견제 향상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이다. 김성근 감독이 성균관대의 ‘기동력 야구’를 보고 이를 SK 야구에 접목했다는 후문도 있다. 제자의 야구라도 장점은 적극 수용하는 김 감독의 스타일을 감안할 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말이다.
야구계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이들
SK가 케니 레이번과 이진영의 이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2009시즌의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이듯 성균관대도 비슷하다. 지난해 팀의 원투펀치로 맹활약했던 황재균, 허유강(이상 한화)과 포수 김정남(SK)이 졸업하며 전력에 공백이 생겼지만 충분한 대안이 있다는 게 감독의 생각이다.
이 감독은 오른손 사이드암 투수 최원재가 선발진을 이끌고 이상훈, 최병윤(이상 4학년), 김용호(3학년)가 타선의 중심에 선다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좋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성균관대 에이스, 최원재를 주목하라
오른손 사이드암 투수 최원재는 지난해 29⅔이닝을 던져 2승 1패 평균자책 3.30을 기록했다. 성적만 본다면 이 감독의 지나친 기대같다. 하지만 최원재는 1학년이던 2006년 대학야구 추계리그 결승에서 경성대를 상대로 1실점 완투승을 거두는 등 2학년 때까지 성균관대 마운드를 이끌던 투수였다. “2학년 때 시즌이 끝나고 허리를 다쳤다. 재활만 5개월이 걸렸다. 준비 없이 3학년이 되다보니까 마음이 급했다.” 최원재가 말하는 부진 이유다. 그의 말대로 조급증은 재기 대신 재앙을 불렀다. 투구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졌다. 베이징올림픽 야구대표팀 예비엔트리에 이름을 올렸지만 8월 그가 있던 곳이 베이징이 아니라 TV 앞이었던 것도 놀랄 일은 아니었다. 최원재가 진정한 에이스가 되기 위해선 속구 구속을 높이는 게 관건이다. 2학년 때까지 시속 140km 초중반대를 형성하던 속구는 지난 시즌 130km 중반으로 뚝 떨어졌다. 희망이라면 서클체인지업의 완성도가 높아졌다는 것. 김수한 투수코치는 “잃어버린 투구 밸런스를 되찾았고 선수 자체가 워낙 노력파라, 큰 기대를 하고 있다”며 “왼손 투수 신현석(4학년)과 함께 원투펀치를 이룰 것”이라고 전망했다. |
이 감독은 무엇보다 신입생 가운데 좋은 투수가 많다고 강조했다. 대구고 김건우, 신일고 임종오, 대구상원고 김민찬 등이 그들이다.
![]() 올시즌 성균관대 타선을 이끌 김용호(사진 좌로부터), 이상훈, 최병윤. 내년시즌 프로에서 볼 확률이 매우 높은 선수들이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성균관대 야구부는 주말이면 야구교실을 연다. 이 감독과 석수철, 김수한 코치가 직접 야구소년들을 지도한다. 강습료는 고사하고 이 감독이 사비를 털어 글러브를 사와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한 명이라도 야구에 관심을 두게 하려는 노력이다. 그의 스승 김성근 감독이 야인시절 전국의 아마추어 야구팀을 순회지도하며 야구계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무엇인지 행동으로 보여줬듯 그 역시 야구 사랑을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성균관대를 가리켜 '아마추어 야구 최강'이라 하는 건 단순히 우승컵이 많기 때문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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