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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는....
<<건륭제 시대>>- 재위:1735년 ~ 1795년(공식 60년, 비공식 64년 정도)
이 건륭제는 중국 淸국의 최전성기 "강희.건륭 시대"라고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이렇게 전성기를 이룩한 3명의 황제 중 마지막 시기에
해당하는 황제입니다.
탤런트 '신구' 할아버지를 은근히 닮았습니당. 캬캬.
아무튼 건륭제는 청나라를 넘어서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래살고 실질적인(공식적으로는 아님) 재위기간으로
따지면 중국역사에서 가장 긴 재위기간에 있던 황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륭제는 정복전쟁 하기를 좋아해서 시간만 나면 룰루랄라 히말라야 근처까지 정복하러 가고
아무튼 싸돌아다니는 걸 무척이나 좋아한 황제였습니다.
오죽하면 자신을'십전노인(十戰老人)- 10번의 큰 전쟁에서 싸운 노인네 ㅋㅋ'이라고 자칭했을까요?
(- 물론 건륭제가 말하는 10번의 큰 전쟁에서 반정도는 가치도 없고 제대로 깨진 전쟁 ㅋㅋ)
아무쪼록 건륭제는 자신의 할배인 강희제와 뽜덜 옹정제의 탄탄한 제국의 다스림 덕분에
그가 재위에 오를 당시에는 제법 드넓은 제국을 다스리기 수월했습니다. 재정도 탄탄했구요.
그 덕분에 강희제와 옹정제, 건륭제 이렇게 160여년 동안 청나라 사람들은
사상 유례없던 연속 태평성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태평성대!!!' 더군다나 약 160여년간 연속으로!!!
이렇게 엄청긴 태평성대 속에서 번번한 적은 없고 사람들은 안심 속에서 평화롭게 살다가
점점 나태해졌습니다.
더불어 건륭제는 은근히 과시하기를 좋아해서
할배 강희제를 따라 한답시고 여기저기 순방 나갈 때 무지막지한 비용을 썼으며
그가 좋아하는 영토 확장 전쟁은 쓸데 없는 것이 대부분이라 엄청 작은 영토 하나 먹는데도
몇십년이 걸린 것도 있어서 막대한 재정을 써버리곤 했습니다.
물론 그 때는 너무도 탄탄한 재정이 있어고 나라도 제법 잘 돌아가서 아무 탈이 없었죠.
그렇지만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위험의 싹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긴 태평성대 속에서 사람들이 워낙에 잘먹고 잘살다 보니 인구수가 몇억대로 순식간에
초급증 하게 됩니다.
이 건륭제 시절부터 계속 늘어나서 오늘날 짱개들의 인구가 몇십억이나 된셈이죠. (커걱;;;)
이렇게 건륭제 재위 초.중반까지는 좋았습니다. 거의 청나라 전성기의 초절정이었죠.
그런데 건륭제가 오랜 재위기간 때문인지 말년가서 삐딱하게 됩니다.
판단력도 흐려지게 되죠.
결국은 사치에 빠지게 되면서 틈만나면 연회 파티 열고 탱자 탱자~~ 놀기 일쑤였습니다.
건륭제는 또 은근슬쩍 세금을 늘리면서 백성들에게서 삥을 뜯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모든게 다 나태해 지다보니 나라의 기강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해서
드넓은 중국 땅에서 제대로 통제가 이루어지겠나요?
여기저기서 부정부패를 일삼는 관료들이 늘어났죵.
더불어 건륭제 말에 건륭제가 '화신'이라는 넘을 총애하기 시작합니다.
'화신'!!! 말 그대로 악의 화신입니다.
얘가 건륭제가 너무나 총애를 해서 우쭐거리면서 겉으론 헤헤... 거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청나라의 재정을 마구마구 빼돌렸습니다.
백성들에게 수탈은 말할 것도 없었죠.
이렇게 백성들이 항의를 함에도 '화신'은 건륭제가 대빵으로 총애했기 때문에
황태자 조차도 건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화신'이는 기고만장해 가지고 룰루랄라~~~ 재정을 더더욱 자기집으로 빼돌리죵. (아이 조아~♥
이렇게 관료들의 부정부패가 보이지 않게 조금씩 심해지고
'화신'의 착취와 수탈이 심해지는 가운데에
건륭제 말엽 영국에서 사신이 옵니다.
세계사 시간에도 나오는 '매카트니'죠.
( -매카트니의 방문이라고 청나라 황제가
오만방자하게 누워가지공 영국사신에게 절하라 말라 강요하는
장면이 있죠?? 거기서 청나라 황제가 건륭제고 영국사신이 매카트니입니당.)
이렇듯 영국이 매카트니를 청나라에 사신으로 보낸 것은 인도에 동인도회사도 있겠다... 슬슬
오랜 소망이던 중국시장과 무역을 하기 위해서였죠.
하지만 그 때 건륭제는 중화사상에 아주 빠져버렸고 나태해져서 더욱 기고만장해서
"영국 그딴거 뭐임? 먹는거임? 필요없삼 ㅎㅎ" 이럽니다.
결국 매카트니는 성과도 없이 청나라를 쭉 둘러보고 떠나는데
그 때 매카트니가 청나라의 사정을 아주 딱 족집게로 간파해서 청나라의 실체를
글로 남겼습니다.
중국의 세계문화유산
중국은 1985년에 "세계문화와 자연유산 보호조약"에 가입하였다.1987년 제11회 세계유산대회에서 처음으로 고궁 등 6개 유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래 도합 30개 자연경관과 문화유적이 등재돼 스페인, 이탈리아 다음으로 그 수가 세계 3위에 올라있다.
문화유산(21곳)
베이징 주변
북경 고궁(베이징 꾸궁) Imperial Palace of the Ming and Qing Dynasties
일명 자금성이라고도 하는데 중국 최고 권력의 중심으로 원림경관과 가구, 공예품, 9천여 개의 방을 갖춘 방대한 건축군은 명, 청조시기 중국 문명의 역사적 증거가 된다.
주구점 북경원인 유적 Peking Man Site at Zhoukoudian
원고시기 아시아대륙인류사회에서 아주 드문 역사적 증거이며 인류 진화 과정을 보여준다. 북경시 방산구 주구점 용골산에 위치하고 있는데 거대한 천연 동굴이다.50여 만 년 전의 고 인류 두개골을 발굴, 현재까지 8개의 고 인류 문화 유적과 118개의 동물 화석 및 10여 만 점의 석기가 출토되었다.
북경 이화원 Summer Palace, and Imperial Garden in Beijing
중국 고전 원림의 대표로 세계에서 제일 큰 황실원림. 총면적이 290헥타르에 달한다.북경에 위치한 이화원은 청나라 황실 화원 겸 행궁으로 1750년에 착공하여 1764년에 완공, 주로 항주 서호를 모방한 곤명호와 그 호수를 파면서 나온 흙으로 쌓은 만수산으로 이루어졌다.
북경 천단 Temple of Heaven, and Imperial Sacrificial Altar in Beijing
명, 청나라 황제들이 천지의 신에 제를 지내고 오곡풍수를 비는 장소였다. 세밀한 건축구성, 기묘한 건축구조와 화려한 건축 장식은 세계건축사의 귀중한 유산이다.
만리장성 The Great Wall
약 기원전 220년,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이 과거의 일부 방어공사들을 완정한 방어시설로 연결시켜 북방의 침략을 막는데 사용하였다. 명나라에 이르러 계속 구축하여 장성을 세계에서 가장 긴 군사시설로 건설하였다. 장성은 세계 7대 기적의 하나이다.
승덕 피서산장과 주변 사원 Mountain Resort & Temples of Chengde.,청더[承德, Chengde]
청나라 황제가 피서를 즐기고 정무를 보는 장소로 1703년에 공사를 시작, 청나라 3대 황제 즉 강희, 옹정, 건륭 연대를 거쳐 90년에 걸쳐 건설되었다. 중국에서 현존하는 부지면적이 가장 큰 고대제왕의 궁원이다.
명,청 황실능침 Imperial Tombs of the Ming and Qing Dynasties
명선릉,청동릉,청서릉,십삼릉.명효릉,심양 고궁, 성경 3릉 등을 포함한다. 전통적 건축과 장식관을 체현하며 봉건적 세계관과 권력관을 보여준다.
중원지방
곡부 공묘, 공부, 공림 Temple and Cemetery of Confucius and the Kong Family Mansion in Qufu
곡부 고대건축군의 독특한 예술 및 역사특색은 2000여 년간 공자에 대한 세인들의 숭배에서 온 것이다. 유교문화의 상징이며 세계 3대 성성의 하나이다.
무당산 고건축군 Ancient Building Complex in the Wudang Mountains
무당산 건축들은 원, 명, 청 등 3조대의 세속과 종교건축의 건축학 및 예술성과를 집중적으로 체현하였다. 호북성 단강구시 경내에 위치하고 있는데 태화산이라고도 부른다.1994년에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 중국 4대 도교 명산중 하나로 33개 고대 건축 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국 무술 본산으로 알려져 있다.주봉 천주봉은 해발이 1612미터이다.
평요 고성(平遥古城)The Ancient City of Ping Yao
산서성 중부에 위차한 평요 고성은 현재 보존이 가장 잘 된 4대 고성중의 하나이다. 명나라 홍무 3년(1370년)에 건축, 둘레의 길이가 6.4킬로, 성 높이가 12미터, 평균 너비가 3.5미터이다.
낙양 용문석굴(龙门石窟)Longmen Grottoes
용문지역의 석굴과 불단은 중국 북위말기에서부터 당나라에 이르기까지 500 여 년간의 우수한 조형예술을 표현하였으며 하나의 대형 조각 예술 박물관이기도 하다.2100 여 개 석굴에 9.7만 존 조상이 있으며 석각 작품만 3600여 개 있고 불탑은 40 여 개가 보존되어 있다. 하남성 낙양시 이하 연안에 있는 용문석굴은 불교 4대 석굴중의 하나이다.
운강 석굴(云冈石窟)Yungang Grottoes
기원 460년부터 건설한 운강석굴은 불단이 252개 있고 5.1만 여 개의 불교조각상이 있으며 중국 불교 석굴 예술 걸작이다.
소주 고전 원림 Classical Gardens of Suzhou
2000여 년의 역사가 있으며 세계 원림 역사에서 독특한 지위와 가치가 있고 높은 예술 수법,짙은 전통문화 내포로 동방문명 예술을 체현하였다.창랑정(송),사자림(원),졸정원(명),유원(청) 등이 대표적이다.
완남 고촌-서제, 홍촌(西递,宏村)Ancient Villages in Southern Anhui, Xidi and Hongcun
서제촌과 홍촌은 거리 풍격, 건축, 장식물, 급수시스템이 고대 부락의 원시상태대로 보존된 독특하고 절묘한 전원 문화유산이다. 안휘성 황산풍경구내에 자리 잡고 있는데 서제촌 북송 황우연간(1049-1054)에 건설, 완전하게 보존된 옛 주택이 122채가 되고 홍촌은 남송 소흥 원년(1131년)에 세워졌는데 현존 명, 청시기의 옛 주택이 137채가 된다.
서안 진시황릉과 병마용 Mausoleum of the First Qin Emperor, Terra-cotta Warriors and Horses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한 진시황이 기원전 210년에 죽은 후 능묘 중심에 매장되었다. 능묘 주위를 둘러싼 도융들은 형태가 다양하며 그들의 전마, 전차, 무기들과 함께 현실주의 완벽한 걸작으로 아주 높은 역사적 가치를 남겼다.
만주지방
고구려 왕성,왕릉 및 귀족고분 Capital Cities and Tombs of the Ancient Koguryo Kingdom
길림성 집안시에 위치,동북지역 료녕성 오녀산성 등 43개 고구려 관련 주요 유적지를 포함하는데 풍부하고 정미한 벽화예술,높은 수준의 건축기교와 풍부한 문화를 내포하고 있다.동북공정으로 인해 중국에서 자기 역사라고 우기고 있어 한중간 물의를 빚고 있다.
남, 서부지방
려강 고성(丽江古城)The Old Town of Lijiang
운남성 서북부에 위치한 려강 고성은 경치가 수려하고 유구한 역사가 깃들어 있는 중국 역사 문화의 명성이다.여강 고성은 원나라 때부터 건설하기 시작했는바 오늘날 까지 9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1997년에 유네스코에 등록되었다.
대족 석각(大足石刻)The Dazu Rock Carvings
중경 대족 등 지역에 분포된 5만 여개 인물형상을 포함한 70여 개 석각조상은 중국 석굴 조상의 극치이다.
청성산-도강언(青城山-都江堰)Mount Qingcheng and the Dujiangyan Irrigation System
청성산은 중국 유명한 도교 명산이고 도강언은 기원전 3세기에 건설됐다. 세계에서 연대가 가장 길고 유일하게 보존된,댐이 없이 물을 끌어들일 수 있는 거대한 수리공사이다.
신장, 티베트 지방
돈황 막고굴 Mogao Caves
속칭 천불동이라고 하는데 실크루드의 전략적 요점에 위치해 있으며 동서방 무역의 중개점이며 종교,문화와 지식이 융합된 곳이다. 막고굴 492개의 석굴과 조각상, 벽화는 현재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보존이 제일 완벽한 불교 예술 보물창고이다. 감숙성 돈황시에 위치하고 있는데 낙양의 용문석굴과 대동의 운강석굴과 더불어 중국 불교 3대 석굴중의 하나이다.서기로 128년부터 개착하기 시작한 돈황 막고굴은 용문석굴보다 128년, 운강석굴보다 94년 앞섰으며 실지로 벽화로 우선 유명한바 1991년에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
서장 라싸 부다라궁 The Potala Palace and the Jokhang Temple Monastery, Lhasa
유명한 궁전 보루식 건축군으로 장족 고대건축예술의 정수이며 서장 불교의 성지이다. 부다라궁은 역대 달라이 라마의 동궁인 동시 티벳의 정치와 종교가 합일된 통치 중심이기도 하다.5세 라마 때부터 이곳에서 중대한 종교 정치 행사를 진행해왔다."부다라"는 "보타"라는 뜻으로 관세음보살이 거주하는 섬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부다라궁은 해발 3700미터에 위치하고 있으며 부지 면적은 36만 평방미터, 건축 총면적은 13만 평방미터이다. 부다라궁은 세계에서 해발이 가장 높고 규모가 가장 큰 궁정식 건축군이다.
문화 및 자연유산(5곳)
산동성 태산 Mount Taishan
장엄한 태산은 2000여 년간 제왕들의 참배하는 곳으로 인문과 자연경관이 완벽하게 융합되었으며 중국 예술가들과 학자들의 정신 원천이며 고대 중국 문명과 신앙의 상징이다.산동성 중부에 위치하고 있는데 최고봉은 해발 1545미터,웅위롭고 기세가 도도한 것으로 유며 특히 태산의 일출은 널리 소문나 있다.5악중 동악인 태산은 역대 임금들이 신의 화신으로 알고 봉신 활동을 자주 하던 산이었다.
안휘성 황산 Mount Huangshan
황산은 화강암에서 자라나는 기송과 운해속에 드러나는 괴석들로 유명하다.황산은 천연적인 동,식물원으로 식물자원과 야생동물자원이 풍부하며 독특한 황산문화를 보유하고 있다.황산은 기송,괴석,운해,온천으로 특징을 귀납한다.
사천 아미산-낙산대불(峨眉山-乐山大佛)Mt. Emei and Leshan Giant Buddha
중국 불교 명산이다.사천성 낙산시 동안의 민강,대도하,청의강 등 3강 병류처에 위치한 낙산대불은 당현종 개원 원년(713년)애 조각하기 시작하여 당덕종 정원 19년(803년)에 완공하였는바 선후 90년의 시간이 걸렸고 높이는 71미터이다.세계에서 제일 높은 고대 마애조상인 낙산대불은 미륵불의 좌상이다..아미산에서 서식하는 식물종류는 아열대의 식물에서부터 고산 침엽림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복건성 무이산(武夷山)Mount Wuyi
풍경구 면적이 약 70평방 킬로미터 되는 무이산은 전형적 단하지모로 대자연의 걸작이다.중국 동남부에서 보존이 제일 완벽한 아열대삼림 생태시스템으로 풍부한 생물자원을 갖고 있다.무이산은 또한 "대홍포"차로 유명하다.
강서성 려산(庐山)Lushan National Park
려산은 중국 고대 교육기지와 종교중심이다.강서성 구강시에 위치하고 있으며 해발은 1474미터이다.려산은 또한 웅위롭고 기이하며 험난하고 수려함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백녹동 서원은 기원 940년에 건설한 것으로 중국 고대 4대 서원 가운데서 앞자리를 차지한다.려산은 "백발 삼천척"으로 형용된 폭포로 유명한바 현재 영국,미국,독일,프랑스 등 18개 나라 건축풍격의 별장이 600여 채나 있으며 유일하게 대규모 "세계촌"을 이루고 있는 중국 명산이다.
자연유산(4곳)
사천성 구채구(九寨沟)Jiuzhaigou Valley Scenic and Historic Interest Area
사천 북부에 위치,40여 킬로미터 길이의 산골짜기 곡지로 이루어졌는데 주변에 9개 장족촌락이 있다 하여 구채구라고 명했다. 기화이초, 설산, 폭포, 호수 등 원시적 자연풍경과 팬더 등 진귀한 자원은 아름다운 "동화의 세계"를 방불케 한다.
사천성 황룡
사천 서북부에 위치한 황룡은 많은 설산과 중국 최동단에 분포된 빙천으로 이루어진 산골짜기이다. 지표 칼슘화는 이곳의 최대 특색이다. 황룡풍경구의 특수 용암지모와 진귀한 동식물자원은 서로 잘 조화되어 "세계기관"을 이루었고 "인간선경"으로 불리고 있다.
호남성 무릉원(武陵源)Wulingyuan Scenic and Historic Interest Area
가장 독특한 경관은 3000여 개의 뾰족한 사암주와 사암봉인데 대부분이 높이가 200여 미터 된다. 산봉우리 사이에 협곡이 종횡으로 분포됐고 수많은 개천, 늪, 폭포가 있으며 40여 개 석굴과 천연적인 큰 돌다리도 인기를 끈다. 호남성 서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데 장가계, 소계욕, 천자산 등 세개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대자연의 미궁","천하제일기산"등 미명으로 알려진 무릉원은 억만년 전의 지각운동으로 생겨난 것으로 1992년에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
운남성 삼감병류(三江并流)Three Parallel Rivers of Yunnan Protected Areas
아시아 3대 하류인 금사강, 노강, 람창강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며 해발 3000여 미터의 협곡을 경유, 양안은 해발 6000여 미터 이상의 빙하기의 절벽이다. 중국 지진 발생 중심지역이며 세계에서 기후변화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중국의 자연환경
① 지형
중국의 총면적은 960만 k㎡로서 세계육지면적의 6.5퍼센트(우리나라의 43.2배)를 차지한다.
중국의 지형은 매우 복잡하여 산지가 33%(316.8만k㎡), 고원이 26%(249.6만k㎡), 분지가 19% (182.4만k㎡), 평원 이 12%(115.2만k㎡), 구릉이 10%(96만k㎡)를 차지한다.
② 기후
중국대륙은 남북 위도의 차이에 따라 기온차가 크고 기후도 천차만별이다. 최남방인 해남도는 열대기후지역에 속하고 절강 복건 광동 및 광서장족자치주 등 화남지역은 아열대성 기후를 띠고 있으며, 양자강을 중심으로 한 화중지역은 온대 기후이고, 화북평야에서부터 만주까지는 대륙성냉대기후지역이다. 또한 서부의 신강위구르자치구 등은 산맥에 의해 해양과 격 리되어 있어 건조한 기후를 보이며 곳곳에 고산기후도 나타나고 있다.
③ 토지자원
국토 총면적 960만k㎡ 중 현재 개발하여 이용중인 면적은 592만 k㎡로서 약 62퍼센트를 차지하며, 개발후 이용 가능한 면적은 98만k㎡로서 10%를 차지한다. 사막이나 돌산과 같이 이용이 불가능한 토지는 270만k㎡에 해당된다. 이용중인 토 지중 경지는 96만k㎡로 1인당 평균 보유율은 0.085헥타르이다.
중국의 인문환경
중국의 인문환경을 종합적으로 보자면 한국과 상당히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오랜세월에 걸쳐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한자문화와 유교문화를 공유해왔고 또 근세사에서 열강에 의해 강제로 개방된 것이나 침략당한 것 등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그리고 교육열이 매우 강하다는 것과 관료주도의 강력한 근대화정책을 펴고 있다는 것도 한국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한국과는 상당한 발전수준의 차이가 있고 산업화 정도나 도시화 정도나 산업구조의 선진성 등에서 상당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인들의 질서의식이나 전반적인 사회교양수준에서 아직 좀 떨어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중국의 교육제도는 6-3-3-4제도를 채택하고 있어 한국과 완전히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평준화제도를 채택하지 않고 있으며 초등학교(소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상당히 자유롭고 자율적인 권한을 각급 학교에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좋은 학교에 가려는 경쟁이 매우 치열한 상태에 있으며 대도시의 좋은 학교에 가려면 기부금을 수천만원씩 내야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원래 사회보장제도가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았는데 1990년대부터 조금씩 사회보장제도를 정비해가기 시작해서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대도시의 경우 서구식의 사회보장제도를 전면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초보적 수준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60~70년대의 문화대혁명으로 중국의 문화는 많이 붕괴되었지만 80년대 이후 문화를 다시 세우고 창조하기 위한 노력이 다방면으로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경극과 같은 전통극이 다시 부활하고 있고 다양한 현대음악, 현대영화, 현대연극, 현대미술이 조금씩 꽃피고 있습니다.
중국 과 관계
1950년 정치적 적대관계와 경제적 단절
1970년 간접교역의 형식으로 양국은 경제 분야에서 교류 시작
1980년 중국의 개방이 더욱 확대되면서 양국 경제교류도 점차 늘어남
1983년 5월 중국 민항기가 춘천에 착륙하는 사건이 나자 중국은 처음으로 대한민 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하였고, 이후 비정치적인 부문에서 양국 교류가 활 기를 띠었다. 같은 해 8월에는 중국 민항기가 한국의 비행정보구역(飛行情 報區域)을 통과할 수 있도록 합의가 이루어짐
1984년 3월에는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의 모국 방문과 한국인들의 중국 친지 방문이허용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10월에 한국인들의 중국 관광금지가 해제
1991년 10월과 11월에 1·2차 한·중 외무장관 회담
1992년 2월에 양국 무역협정이, 그리고 7월에는 투자보장협정(投資保障協定)이 발 효되었다. 그해 4월에는 3차 외무장관 회담이 이루어졌고 8월 24일 양국은 수교의정서(修交議 定書)를 교환하고 정식 수교를 이루고 민간 차원의 교류 에서 정식적 국가 간의 교류로 바뀌었다.
1992년 9월 27일 노태우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양상쿤[楊尙昆] 국가주석, 리펑 총리, 장 쩌민 총서기와 회담
1993년 5월에는 첸치전[錢其針] 외교부장이 방한
1994년 3월 김영삼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여 북한 핵문제의 대화를 통한 해결과 긴밀한 협의, 한반도 비핵화 실현 지지를 논의하고 이중과세(二重課稅) 방지 협정 및 문화협 정을 체결하고 통신협력양해각서(NTER>교환
1995년 10월 장쩌민 국가주석이 방한
1998년 11월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였다.
2000년 6월의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한 화해·교류 및 협력
1)중국의 지리적 위치 및 특징
지리적 위치 : 태평양에 접해있고 유라시아 대륙의 동부에 위치
특징 : 서고 동저의 지형 [서부-산지와 고원,동부-하천과 평야]
2)중국의 역사와 문화
역사와 문화 : 화북지방의 황하에서 문명이 발생, 동아시아 문화권 형성
3)중국의 산업
산업 : 지하자원-석유(다칭, 보하이만), 석탄(푸순, 다퉁),철광석(안산, 번시)
※주요공업지역 : 둥베이지방(중국 최대의 중화학 공업 지역), 베이징, 상하이(중국 최대의 도시, 홍콩(중국에 반환됨)
2.중국과 우리나라와의 관계 알아보기
1)일본의 지리적 위치 및 특징
지리적 위치 : 태평양에 접해있고 유라시아 대륙의 동부에 위치
툭징 : 국토의 70%이상이 산지, 4개의 큰섬(훗카이도, 혼슈, 시코쿠, 규슈)
2)일본의 역사와 문화
역사와 문화 : 대륙 뮨화 수용(중국, 우리나라), 근대화의 선두(우리나라와 중국 침략)
3)일본의 산업
산업 : 주요 공업지역(태평양 연안에 집중)-게이힌(일본 최대의 공업 지역), 한신(일본 제 2의 공업지역), 주쿄(자동차 공업의 중심지), 기타큐슈(금속공업-최근쇠퇴)
4.일본과 우리나라와의 관계조사하기
관계 : 서로 무역을 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국가에 대해 무역 흑자를 기록하여 많은 국가들과 무역 마찰을 빚고 있다(우리나라 역시).
5.미국의 역사적 배경 자연환경 산업에 대하여 조사
역사적 배경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유럽인의 진출-영국으로부터 미국 독립
자연 환경 : 기후(온대기후) 서경100도선(연 강수량 500mm선) : 동부는 습윤, 서부는 건조
산업 : 지하자원-석유, 천연가스(멕시코 만 연안, 알래스카), 철광석(오대호 연안), 석탄(애팔래치아, 로키 산지)
6.미국과 우리나라와의 관계 조사하기
관계 : 서로 무역을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으로 이민을 많이 간다
7.러시아의 역사적 배경 자연환경 산업에 대하여조사
역사적 배경 : 대부분 슬라브족, 그리스 정교
자연환경 : 대부분 냉대기후, 침엽수림 분포
산업 : 지하 자원 풍부(석탄, 철광석, 석유 천연가스), 중화학 공업 중심, 콤비나트(원료 산지와 동력 산지를 결합시킨 종합 공업 지역)
8.러시와와 우리나라와의 관계 조사하기
관계 : 국교 수립(1990년 러시아와 국교 수립 후 경제, 문화 교류 확대)
중국의 특색
수천 년 동안 끊임없이 이어져 온 중국문명은 특유의 정치적 성격을 띠며 오늘날까지 계승되고 있다. <천자(天子)> 즉 황제가 군림하는 중앙정부 아래에서 지방을 통괄하는 중앙집권적 관료제사회는 2000년 이상의 오랜 역사를 통하여 법률과 관료가 지배하는 독자적 사회형태를 형성해 왔다. 1949년 중국의 성립으로 과거의 악폐와 인습이 급속하게 배제되고 사회생활면에서도 인민 전체의 신분적 평등과 노동생활권이 처음으로 보장되는 등 전통사회의 모순을 해결하려 하였다. 그러나 중국 사회가 정치노선의 방향에 따라 심하게 영향을 받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정치체제가 실현되었으나 중국의 현실사회에는 여전히 관료제사회의 전통이 이어지고, 1958년 <대약진>정책의 실패, 1966년부터 10년 동안 <프롤레타리아문화대혁명>에 의한 사회·경제적 파탄, 마오쩌둥시대의 종언에 따른 급격한 현대화 경제정책의 추진 등 중국 성립 이후 38년 동안 끊임없이 흔들린 정치노선투쟁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은 계층은 인민이었다. 사회경제적 측면만을 보면 아직 개발도상국 수준에 놓여 있지만, 새로운 중국이 성립된 지 40여 년 밖에 되지 않았고 폭발적인 인구문제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건설이 쉽지 않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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