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수록 재미있는 옛날이야기(14) - 세계3대 이별시 “송인”
정지상의 [송인(送人)]입니다.
정지상은 고려의 문인으로 나라의 자주독립 의지가 강해서
칭제건원을 주장하고 금나라를 정벌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지역패권주의 타파를 위해 서경으로 천도할 것을 주장하여
사대주의자이자 지역패권세력의 우두머리인 김부식에 의해
참살된 인물로
어려서부터 천재로 소문났었습니다.
다섯 살 때 물 위에 떠 있는 오리들을 보고 “누가 붓을 들어 물 위에 을(乙) 자(字)를
써 놓았느냐“ 라고 하여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여기서 얘기하는 서경(西京)의 위치를 식민사학에 물든 강단사학자들
은 지금의 평양이라고 어거지를 쓰고 있는데 만일 고려의 수도가
지금의 개성이였다면 개성 바로 북쪽에 있는 평양을 서경이라
했을까요? 고려의 영역에 대해서는 별도의 기회를 갖고 얘기
하기로 하고 본론으로 돌아가보죠.
오늘 소개하는 “송인”은 정지상이 대동강 부벽루에 놀러갔다
부벽루에 써 놓은 칠언절구의 시인데 너무나 아름다워 부벽루에 놀러온
선비들 마다 칭송이 자자하여 그 소문이 중국까지 알려졌다고 합니다.
얼마 있으면 남북합의로 평양관광이 시작될 것이라고 하는데 평양 가게되면
부벽루에서 직접 이 시를 감상해 보시죠
한 번 감상해 볼까요?
雨歇長堤 草色多 우헐장제 초색다
送君南浦 動悲歌 송군남포 동비가
大同江水 何時盡 대동강수 하시진
別淚年年 添綠波 별루년년 첨록파
한시의 정형답게 각운이 딱 들어맞죠?
초장의 ‘多’ , 둘째 장의 ‘歌’ , 종장의 ‘波’
뜻과 아름다움을 잘 표현하면서도 각운까지 맞추는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뜻을 풀이하면,
비 그친 긴 둑에 풀빛이 푸르고
남포에서 님 보내는 슬픈 노래소리 크구나
대동강물은 언제 다 마를고 ?
이별할 때 흘리는 눈물이 해마다 푸른물결에 보태지는데
이 시의 묘미는 참으로 적절한 중의법에 있습니다.
雨歇長堤 草色多
이별하기 전날 떠나지 말라고 애걸하고 협박하고 달래고..........
그래도 결국 떠날 수밖에 없는 슬픈 사연
내 눈물처럼, 내 마음처럼 비는 밤 새 내리고......
마침내 떠나는 날이 밝아,
이제는 떠나보내기로 작정한 내 마음처럼 비는 개이고 ....
빗방울 머금은 대동강변의 풀빛은 햇살에 더욱 빛나고
그 찬란하게 빛나는 풀빛이 더욱 서럽게 다가옵니다.
첫 장은 한 폭의 그림처럼 떠오릅니다. 즉 시각적 표현입니다.
이미 포기한 상태이긴 하나, 님을 떠나보내려 남포로 님을 따라
터벅터벅 뒤따라가며 대동강변의 긴 둑을 쳐다보니
비 그친 아침 햇살은 유난히도 밝고, 그 빛을 받아 빛나는
풀빛은 왜 그리도 푸른지........
그 아름다운 풀빛마저도 원망스럽습니다.
첫 장은 이별하기전의 갈등과 설움을 비를 통해 표현하였습니다.
물론 이별을 아쉬워하며 지난 밤 나눈 운우지정도 함의되어 있구요
맑은 아침은 이제는 떠나보내기로 정리한 마음의 표현입니다.
빛나는 풀빛은 그래도 보내기 싫은 미련을 나타내었습니다.
이 전부를 아울러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냅니다.
단 일곱자의 싯귀에 이 모든 상황을 담아내었습니다.
수 많은 글로 풀어헤쳐놓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얘기를 하고 있지 않나요?
참으로 염화시중의 경지요,
그 절제함이 염화미소의 궁극에 도달한 것 같지 않습니까?
말하지 않음으로 더 많은 말을 담아내는 정지상의 재주가 놀랍지 않습니까?
그러면 저도 이 구절의 풀이를 절제하여 적어보겠습니다.
비 개인 언덕 위 풀빛 푸른데
어떻습니까? 위에 서술한 모든 내용이 다 들어간 것 같죠?
그러면 다음 구절을 볼까요?
送君南浦 動悲歌
첫 째 구절이 시각적 효과를 얻고자 했다면,
둘 째 구절은 청각적 효과를 노린 구절입니다.
이제는 정말 님을 떠나보내야 되는가 봅니다.
님을 태우고 갈 배가 있는 남포로 나왔습니다.
남포나루에는 배가 둥실 떠 있고 오가는 배들에서는
사공들이 부르는 노래가락소리가 흥겹습니다.
비는 그쳤고,
날은 개이고,
어제 온 비로 강물이 불어 노젖기 더욱 편해졌으니
사공들의 뱃노래가 더 크고 흥겨울 수밖에요.
그런데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내 귀에는
신나게 부르는 사공들의 노랫가락조차도
슬프게 들립니다.
사공들의 노래소리 커질수록 내 슬픔도 커집니다.
여기에는 사공들에 대한 원망이 함께 합니다.
님이 떠나지 못하게 사공들이 다 없어지거나
몸이 불편하여 못가게 되길 바랬던 가느다란 희망조차도
뭉개버리는 씩씩한 사공들의 상태가 원망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첫 째 구절에서는 보이는 모든 것들이 내 맘과 달라 원망스럽더니,
둘 째 구절에서는 들리는 모든 소리마저 내 맘을 알아주지 않아 더욱 서럽습니다.
이 모든 상황과 심리상태를 단지 일곱자로 표현한 정지상의 재주가 놀랍지 않습니까?
역시 이 구절을 압축하여 표현해 볼까요?
남포로 님 보내는 구슬픈 노래
어때요? 부족함 없이 번역되었죠?
(* 이 구절 번역은 양주동님의 번역입니다)
이제 셋 째 구절을 봅시다.
大同江水 何時盡
(대동강물이 어찌 마르겠는가?)
이 구절 역시 그 얼마나 많은 얘기를 담고 있습니까?
어제 저녁에는 님에게 직접 사정하고, 을러대고, 달래었으나 결국 실패하고
남은 희망은 내리는 비가 계속 쏟아져 내려 배가 떠날 수 없게 되길 빌었으나,
날이 밝자 언제 그랬냐는 듯 찬란한 햇살, 그 햇살에 빛나는 풀빛마저 원망스러움을
첫 째 구절에 담아내었고,
그나마 남은 희망은 노를 저을 사공들이 병이 나거나 탈이 나서
배가 못 떠나길 빌었는데
야속하게도 사공들은 아무 탈없이 큰 소리로 뱃노래를 불러대니
그 또한 원망스럽기 그지없음을 둘 째 구절에 표현했습니다.
그럼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바랄 것은 무엇이 남았을까요.
간절함은 점점 더 실제 상황에서 일어나기 힘든 쪽으로 바래봅니다.
비가 계속되길 바라는 것은 그나마 현실적인 것이요,
사공들이 탈이 나길 바라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죠.
이제는 그야말로 말이 안되는 상황, 실날처럼 가느다란 희망
즉 대동강물이 말라버려서 배가 뜰 수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대동강물이 마르기는커녕, 어제 내린 비로 물이 불어 배 떠나기
더 좋은 상황이 되버렸군요.
첫 구절에서 지난 밤 비가 내리는 상황을 설정한 이유를 이제 알겠죠?
대동강물이 어찌 마르겠냐마는 님을 보내기 싫은 내 마음의
절절함은 실제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 까지 바라는 절박함이 묻어납니다.
기-승-전-결에서 드디어 클라이막스에 도달했군요.
이제는 포기할 수 밖에 없군요.
그 마음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대동강물이야 언제 마르리
푸른 물결 일렁이며 흘러가는 대동강물에 대한 원망과 이제는 포기할 수 밖에 없는
마음이 다 표현되었죠?
자! 이제 종장입니다.
別淚年年 添綠波
(해마다 이별눈물이 푸른물결에 보태어지나니)
얼러도 보고, 달래기도 하고, 화내어도 보고 그래도 안되어
비가 계속 내려주길 빌기도하고
사공들이 병들어 눕기를 바래보기도 하고
그냥 확! 대동강물이 다 말라버려라~ 하고 어거지를 써 봐도
이 모든 희망이 다 허사가 되어 이제는 정말 떠나보내야 하는데
그래도 보내기 싫은 내 맘을 스스로 달래는 수 밖에....
그래!!
나처럼 이렇게 님을 떠나보내는 사람이 어디 한 둘이겠어??!!
수 많은 사람들이 이 강변에서 이별을 하고, 떠나 보낸 것이 틀림없어.
이 슬픔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냐....
대동강물이 마르지 않고 저렇게 푸르른 것은 다 이유가 있어...
나 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이렇게 이별의 눈물을 대동강에 뿌려댈 것이니
대동강이 마를 시간이 있겠어?
그래! 이 슬픔은 나만 겪는게 아니야~
다들 그렇게 떠나 보내니 나도 이제 떠나 보내자!
그래 그렇게 생각하자.
아니 정말로 그럴거야.
그런데 저 강물은 왜 저렇게 아름답게 푸르른거야?
야속하기도 하지.....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했던가.....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을,
주체하기 힘든 이별의 슬픔을,
이제는 누군가와 공유함으로써 위안을 삼고자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정말로 말도 안되는 과장법으로 슬픔을 감추려고 함으로서
듣는 이들에게 더 큰 감동을 전합니다.
‘대동강물이 마르지 않는 것은 이별할 때 흘리는 눈물들로 채워져 흐르기 때문이다.’
참으로 그 절절함이 가슴 속에 들어와 뜨거워지지 않습니까?
이 가슴아린 슬픔이 이런 어거지를 쓰게 만듭니다.
해마다 이별눈물 보태는 것을.......
자! 이제 정리해 봅시다.
雨歇長堤 草色多
送君南浦 動悲歌
大同江水 何時盡
別淚年年 添綠波
비 개인 언덕 위 풀빛 푸른데
남포로 님 보내는 구슬픈 노래
대동강물이야 언제 마르리
해마다 이별눈물 보태는 것을....
정지상은 사대주의자들을 몰아내고 주체적인 나라를 세우려는 우국지사이기도 했지만
이렇게 뜨거운 가슴을 가진 진정한 시인이기도 했습니다.
올곧은 생각을 가진 냉철한 머리와
조국에 대한 뜨거운 가슴을 가졌던
천 년 전의 한 문인이자 지사였던 정지상을 생각하며
그의 고뇌와 열정을 생각해 보곤 합니다.
오늘은 이별을 노래한 가장 아름다운 시 “송인” 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았습니다.
다음에는 오늘 잠깐 언급된 고려의 서경이 어디에 있었는지,
고려의 위치가 한반도가 맞는지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