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②
* 이순신 장군의 해전
이순신(1545~1598)은 오랜 동안 진급이 늦다 유성룡의 천거로 1591년 2월 전라 좌수사(수영: 여수)로 획기적인 승진을 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포(1592.5)에서 일본 수군과 첫 해전을 벌여 30여 척을 격파하였다(옥포대첩). 이어 사천에서는 거북선을 처음 사용하여 적선 13척을 격파하였다(사천포해전). 또 당포해전과 1차 당항포해전에서 각각 적선 20척과 26척을 격파하는 등 전공을 세워 자헌대부로 품계가 올라갔다. 같은 해 7월 한산도대첩에서는 적선 70척을 대파(학익진 사용)하는 공을 세워 정헌대부에 올랐다. 또 안골포에서 가토 요시아키등이 이끄는 일본 수군을 격파하고(안골포해전), 9월 일본 수군의 근거지인 부산으로 진격하여 적선 100여 척을 무찔렀다(부산포해전). 1593년 장문포해전에서 육군과 합동작전으로 일본군을 격파함으로써 적의 후방을 교란하여 서해안으로 진출하려는 전략에 큰 타격을 가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이후 모함에 걸려 백의종군하다 다시 통제사로 복귀한 뒤, 13척의 함선과 빈약한 병력을 거느리고 명량에서 133척의 적군과 대결, 31척을 격파하는 대승을 거두었다(1597.9, 명량대첩). 이 승리로 조선은 다시 해상권을 회복하였다. 1598년(선조 31) 2월 고금도(古今島)로 진영을 옮긴 뒤, 11월에 명나라 제독 진린과 연합하여 철수하기 위해 노량에 집결한 일본군과 혼전을 벌이다가 유탄에 맞아 전사하였다(노량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