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사치 / 이미경
1.친구를 따라나선다. 바다 전망이 아름다운 카페로 간다고 한다. 그녀는 커피를 정말 좋아한다. 커피 맛은 다 평등하단다. 연유가 들어가서 부드럽게 달달한 커피, 설탕만 넣어서 깔끔하게 단 커피, 진하게 내려서 깊은 맛이 도는 에스프레소, 커피 베이스에 초콜릿, 말차, 캐러멜 등 넣는 재료에 따라 맛이 다른데 커피만 들어 가면 다 좋아하니 커피 사랑이 남다르긴 하다. 친구의 커피 사랑이 진화했는지 언제부턴가는 카페 전망과 분위기를 세트로 묶어 커피를 즐긴다. 처음에는 분위기 좋은 동네 카페를 찾더니 지금은 전국으로 뷰 맛집을 찾아다니며 커피를 마신다. 가끔 해외 탐방을 하기도 하면서 배보다 배꼽이 커지고 있다.
나는 친구만큼은 아니지만, 커피 향이 좋아 커피 곁을 맴돈다. 과일 향이나 꽃 향이 나며 고소한 맛이 도는 핸드드립커피를 좋아해서 가끔 마시기도 한다. 어쩌다. 이런 맛을 내는 카페를 행운처럼 만나기도 했는데 여행 중 우연히 들린 작은 카페였다. 내 입맛에 맞는 커피를 마시고 싶어 원두 종류에 따라 양과 물의 온도, 시간을 달리하며 맛을 찾아가는 중이다. 오래 추출할수록 쓰다는 것과 온도에 따라 맛이 다르다는 것만 알아낸 상태다. 그동안 버린 원둣값이 적지 않았고 앞으로 들어갈 원두값도 쏠쏠할 것이다.
바흐의 ‘커피칸타타’가 흐른다. 커피는 천 번의 키스보다도 사랑스럽고 머스카텔 와인보다 달콤하고 부드러워서 참을 수 없단다. 즐거움을 주려거든 커피 한 잔을 달라한다. 간간이 들리는 플루트의 선율이 상큼 명랑하다. 강한 욕망을 표현한 듯 커피라는 말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모두 열 곡인 커피칸타타는 혼기가 꽉 찬 딸이 시집갈 생각은 안 하고 커피에 빠져 있다는 내용이다. 커피를 작작 마시라는 아버지와 절대 그럴 수 없다는 딸의 실랑이가 재미있다. 아버지는 커피를 끊지 않으면 경제적 지원을 중단하고 신랑감도 구해주지 않겠다고 말한다. 딸은 신랑감을 구해오는 날만 커피를 멈추고 언제든지 커피를 마시겠다는 혼인서약서를 쓸 거라고 한다. 커피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말이다.
재미있다. 바흐가 살던 18세기에도 커피에 심취한 사람이 있었다니. 3세기의 갭이 무척 가깝게 여겨진다. 그때에는 커피값이 비싸서 부자가 아니면 마시기 힘든 음료였다. 아버지가 딸에게 커피를 작작 마시라 한 것은 비싸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친구가 말한 대로 전망이 아름답다. 환상적으로 펼쳐진 바닷가에 피아노와 의자가 놓여 있는 곳도 있고 반쯤 누울 수 있는 침대가 있는 곳도 있다. 그네에 앉아서 마실 수도 있고 예쁜 탁자나 의자에 앉아서 마셔도 된다. 다양한 소품이 있는 곳은 모두 다 포토존이다. 바닷가로 내려가서 산책하거나 바닷물에 발을 담그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뷰 천국인 카페다. 우리는 이승의 풍경을 나갈 때까지 이렇게 살자며 깔깔웃는다. 커피는 워킹맘인 친구에게는 도피처이며 나에게는 엔도르핀이 솟는 즐거운 놀이다. 이것이 ‘우리의 커피칸타타’다.
A가 생각난다. 알뜰살뜰한 전업주부인 A는 카페의 커피값이 너무 비싸다며 인스턴트커피만 마신다. 그래도 분위기는 무시할 수 없다며 집안을 카페처럼 꾸민다. 실내장식으로 드는 비용이 꽤 든다. 카페가 주일까? 실내장식이 주일까? 여전히 헷갈린다. 소품을 업그레이드할 때마다 ‘카페 A’에 초대하기도 한다. 영리성(營利性) 없는 카페 주인이다.
세상을 살면서 무언가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딱히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그냥 즐거워서 각자의 방법으로 좋아할 따름이다. 단순하게 마시던 커피에서 분위기를 찾아 멀리 떠나고 가구를 바꾸고 입맛에 맞는 커피를 위해 원두를 헤프게 쓰면서 향유하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가치 없는 소비라 할 것이다. 사치스럽다 나무라기도 하리라. 하지만 그 즐거움을 위해 친구와 나는 열심히 경제활동을 한다. 하고 싶은 다른 것들을 기꺼이 참으며 양보하기도 해서 인내의 열매는 항상 싱싱하고 토실하다.
보이는 것과 달리 열심히 사는 삶이 있는 한 사치란 분에 넘치는 생활이 아니다. 삶의 원동력이며 신산한 삶을 달콤한 향기로 바꾸는 마법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