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형제 22편 // 황톳길
조폭계에 발을 들인뒤 영등포 오상사파와의 한판싸움으로 그 존재를 확실하게 각인시킨 수혁은 그후로도 수혁만의 독특한 스타일과 싸움실력으로 그 명성과 진가를 점차 확산시켜가고 있었다. 수혁만의 독특한 스타일중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회칼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조폭계에 잘 알려진바와 같이 이땅의 조폭문화는 70년대 초반 수도권에 일대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쇼킹한 모습으로 등장한 조양근이라는 인물에 의해 조양근 이전세대와 이후세대로 대별되어진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라도지역에서 세력을 키운 조양근이 어느날 갑자기 수하조직을 이끌고 서울로 입성해서 회칼이란 가공할 흉기를 사용하여 수도권의 폭력조직을 단시일내에 초토화시켜버린 이후로 각목과 쇠파이프가 대종을 이루던 조폭조직간의 전통적인 대결구도가 급격히 붕괴되면서 조양근의 등장과 더불어 새로운 조폭문화가 태동하는 계기가 되었기 땀시.....
살짝 스치기만해도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힐수있는 회칼은 그 이미지만으로도 상대를 공포에 질려 전의를 상실케하는 무시무시한 제압효과가 있었기에 조양근 이후세대의 조폭조직간 싸움에서 회칼은 불가결한 필수요건으로 등장한지 이미 오래였다.
그런데....수혁은 스스로뿐만이 아니고 수하조직원들에게 까지도 회칼을 사용하지 말것을 당부했던 것이다. "여러분덜....피치못할 상황이 아니라면 앞으로 절대 회칼은 쓰덜마소.... 회칼은 상대방을 죽일수도 있을뿐더러 자기자신도 신세를 망칠수 있는 무기니까네....주먹세계에서 없애야할 애물단지가 아니겠능교....싸움이라는건 무기로하는게 아니고 누가 먼저 기선을 제압하느냐에 달린깁니더...."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수혁의 진정한 실력에 대해 수하조직원들 사이에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적지 않았던 터에 수혁의 이 한마디는 수하 행동대원들의 불만을 부채질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부산서 뱃일이나하던 무지렁 촌놈이 어쩌다 소 뒷발로 파리잡듯 공을 세워 행동대장을 꿰차고보니 눈에 뵈는게 없나보지? " "누가 아니래~!! 뭐?....회칼을 쓰지 말라고?.... 전쟁터에 총대신 지게작대기를 들고 나가 싸우라는 말이지 뭐야" 드러내고 말은 못하지만 조직원들은 뒷구멍에서 수혁에 대해 이렇게들 수군덕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의 말이 결코 허튼소리가 아니었음을 수혁이 역전파의 전 조직원들에게 실제적으로 입증해 보여준것은 그로부터 석달정도가 지난 어느날 이태원에 새로 들어선 외국인 전용카지노의 관리권을 둘러싼 종로 도식이파와의 한판싸움에서 였다.
종로파의 행동대장 동완이를 비롯해 숫적으로도 우세한 60여명의 종로파 조폭들과 남산공원 뒷편의 한적한 벌판에서 마주하고 선 수혁의 역전파 행동대원들은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바짝 얼어붙어 있었다. 종로파 조폭들의 손아귀마다 시퍼렇게 빛을 발하고 있는 회칼의 살기에 기가 질린 탓이었다. 그뿐만도 아니었다. 종로파 행동대장 동완이의 얼굴모습은 상대를 공포에 질리게할만큼 끔찍했다.
어릴적 화상흔적이라는 동완의 흉측한 얼굴은 예로부터 조폭계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러잖아도 공포스런 얼굴의 동완이 능숙한 손놀림으로 손에 잡은 회칼을 빙글빙글 돌리며 마치 귀신이 울부짖듯 싸늘한 목소리로 역전파 행동대의 전면에 버티고 선 수혁을 비아냥거리고 나선다. "네놈이 수혁이라는 젖비린내나는 어린애냐? 엄마 젖이나 빨고있지 뭣허러 살벌한 조직세계에 뛰어들어 일찍 못뒈져서 안달이냐?" 그런 동완을 보고 기가 질리긴 커녕 수혁은 무기도 없는 맨손으로 팔짱을 낀채 걸쭉한 한마디를 뱉아 놓는다. "에고~~ 쯔쯧~!! 얼굴을 어쩌다 글케 심하게 다쳤소?... 참말로 안됐소.....성치도 않은 몸으로 회칼들고 설치다 얼라한테 망신당하지 말고 조용히 찌그러 지시는게 신상에 이로울 낍니더"
"이 쓰벌 자식이....얼라를 귀여워하면 할애비 수염을 뽑는다더니..." 수혁의 기를 꺽으려다 오히려 조롱을 당한 꼬락서니가 되버린 동완이 화를 참지 못하고 회칼을 휘두르며 수혁에게 사납게 돌진해 들어오는 순간 수혁의 얼굴엔 한줄기 회심의 미소가 얼핏 스쳐 지나간다. 수혁이 던진 미끼에 동완이 제대로 걸려든 것이다. 험악한 액션으로 짓쳐 들어오는 동완의 선제공격을 대비하고 있던 수혁은 전혀 당황한 기색없이 뒷자리의 졸개손에 들려있던 쇠파이프를 빼앗아 들고 가까이 달려들어온 동완의 머리통을 정통으로 내려쳐 꺼꾸러트림과 동시에 두목인 동완이 졸지에 나자빠지는 뜻밖의 상황에 당황하여 우왕좌왕하는 종로파 조폭들 사이를 단신으로 쏜살같이 뛰쳐들어가 현란한 손놀림으로 쇠파이프를 휘두를때마다 종로파 조폭들은 얼굴이며 어깨를 감싸쥔채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뒹굴고...
적진으로 과감히 뛰쳐 들어간 수혁의 예봉에 추풍낙엽처럼 나가 떨어지는 종로파의 모습을 지켜보고 용기를 얻은 역전파 행동대원들은 수혁의 뒤를 따라 일제히 덮쳐 들어가서 갑작스런 상황에 갈팡질팡하는 종로파 조폭들을 작살내기 시작한다.
수혁은 사전에 이미 계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종로파의 주무기인 회칼은 상대를 공포에 질려 싸우기도 전에 전의를 상실케하는 무시무시한 흉기임은 틀림없지만 사정거리는 몽둥이나 쇠파이프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이렇듯 주어진 상황에 따라 능수능란하게 전술을 바꿔 대처하는 수혁의 싸움실력은 가히 독보적인 것이었다. 사전에 상대의 헛점을 치밀하게 분석한 뒤에 그 헛점을 집중공략하여 순식간에 상황을 제압하는 예리한 판단력과 상대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두둑한 배짱....타고난 힘이 뒷받침된 과감한 돌파력..... 누구도 감히 흉내내거나 따를수 없는 수혁만의 천부적 싸움감각이 아닐수 없었다.
종로 도식이파와 맞붙었던 나와바리 싸움에서 거둔 수혁의 일방적 승리는 훗날 조폭계에 "이태원대첩"이라는 전설적인 타이틀로 인구에 회자되며 수혁이 함부로 얕잡아 볼수없는 조폭계의 거물로 단번에 치솟아 오르는 획기적 사건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비로소 수혁의 수하조직원들이 수혁의 실력을 깨끗이 인정하고 충심으로 따르는 계기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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