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1.daumcdn.net/cfile/cafe/99DA55455AB9022C2B)
덜 녹은 눈이 하얗게 빛나는 산 정상을 바라보며, 한 낮의 햇빛으로 달궈진 차 안의 더위를 감당하는 기분이란! 장거리 운전을 기피하는 내가 모처럼 의욕을 부려 경북 성주에서 열린 "평화, 종교, 그리고 공공성"이란 주제의 학술대회에 다녀왔다. 얼마나 시의적절한 주제인가. 남북/북미 간 정상 회담 소식이 들려오는 봄, 늘 위 아래, 사방으로 시달리거나 눈치를 봐야 하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운명(!)을, 참외 농사만 짓던 고장에 갑자기 발음도 어려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라는 듣도보도 못한 것이 배치되면서 발생한,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그곳의 사정과 함께 살피고자 하는 기획이라니. 원불교 사상연구원과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이 주관하는 행사라 하였다.
1부는 성주에 있는 원불교 삼동연수원에서, '독일통일과 종교의 역할', '사드배치 반대운동과 평화권', '감폭력으로서의 평화와 공공성'을 소제목으로 한 주제발표가 있었고, 점심을 먹은 후엔, 자동차로 15분 정도 떨어져 있는 '소성리 마을회관' 옆 가설 공간으로 이동해서 2부가 이어졌다.
간략하게 이어진 1부의 주제발표는, 발표의 소략함에도 불구하고 취지와 메시지는 분명하게 간취되었다. 독일통일의 사례를 볼 때, 이제는 북한 정권을 인정하면서 종교활동을 요구해 가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 남북간의 갈등과 상호불신은 너무도 골이 깊어, 종교인들이 아니고선 통일과 평화협력의 동력을 찾기가 어렵다는 점, 같은 맥락으로, 지금까지는 '종교얘기는 가급적 회피한다'는 것이 대북교류시 암묵적인 규약이었지만, 이제는 다르게 접근해서 일상적 접촉에서도 포교/전도의 가능성을 확장해갈 필요성등이 기억에 남는다. 한편, '공공성'의 개념을 끌어와 '평화권'으로 이어간 것도 한동안 사회과학담론에 무심했던 내게는 새롭게 들렸다. '비폭력'이 아닌 '폭력의 감소' 즉, '평화는 폭력을 줄이는 과정(감폭력, minus-violencing)'이라는 개념도 신선했다. "비폭력이 명사이고 낱말이라면, '감폭력'은 동사이고 문장이다"(이찬수,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같은 말들은, 약 20년 전 k선생의 책, <컨텍스트로 패턴으로>를 다른 곳에서 보는 듯한 기시감이 일기도 하였다.
"여러 군데 가봤지만, 이런 가설무대에서 대담을 하기는 또 처음입니다. 전국노래자랑도 아니고..." 2부 대담을 여는, 전 원광대 총장이자, 통일부 장관을 두 번이나 역임했다는 정세현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의 화법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사드는 언제 빼느냐?/정 말씀하시기 어려우시면 카메라 끄고 얘기하자"는 식의 다소 공격적이고 난처한 질문에도 전혀 난색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노골적으로 난색을 '연기'하며 마치 듣는 이로 하여금 화자가 숨김없이 툭 터 놓고 얘기하는 듯 믿게끔하는 발화 방식이었다. 갈등과 협상에 익숙하고 노련한 정치가의 화술이 저런 것인가 싶기도 하였다.
소성리에서 이어진 정세현 이사장, 김성곤 국회사무총장의 대담은 퍽 특이한 풍경이기도 하였다. 비닐가리개만 씌웠다 뿐이지 노상이나 다름없는 곳에, 양 옆에는 "사드 빼라!" "사드 말고 평화!!"등의 구호가 어지럽게 붙어 있고, 비닐 밖을 오가는, "이제 왔능교!""어디 갔다 오는 길인교?" 촌로들의 아무런 거리낌없는 인사말이 고스란히 들리는 상황이었으니. 하기야 그 분들이 눈치를 보고 목소리를 낮춰야 할 이유는 전혀 없었기도 하였다.
세속에서 높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잔뜩 무게를 잡고 주고 받는 대화와, 그 장면을 단숨에 희극으로 만들어 버리는 사투리 짙은 인사말을 '이원생방송'으로 들으며, 이 상황이 대단히 정치적이고 상징적인 행위예술처럼 생각되기도 하였다. 대담의 진행을 맡은 원광대 이재봉 교수(정치학/평화학)의 압축적이고 직설적인 질의와 진행도, 미디어를 통해 보던 시국대담의 답답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반도 모순의 한 상징인 장소에서 대담을 연 기획의도도, 그런 자리가 아니라면 '소성리'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을 사람들(-나를 포함하여)을 불러 모은 것도 의미있는 시도였지만, 아무래도 대담에 집중하기엔 환경이 열악했다. 해가 비치지 않는 그늘은 아직 춥고, 바람도 제법 거세게 불어서 2시간을 넘게 앉아 있다 보니 감기기운이 느껴질 정도였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서서 부산으로 돌아왔다. 2시간이면 족하다고 들었는데, 왕복 6시간이나 걸려 집에 돌아오니 녹초가 되었다.
'성주 소성리'는 소태산 대종사에 이어 원불교 2대 종법사를 지낸 '정산종사'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기독교에 사도 바울이 있다면, 원불교에는 '정산종사'가 있다고 해야 할까. 대종사의 깨달음과 교리, 세상에 남긴 자취가 정산종사가 존재함으로 인하여 정돈되고 정립된 바가 크다. 대종사가 8인 제자를 팔방에 비유하여 배치하고도 끝까지 비워두고 기다렸던 '중앙'의 자리. 어린 나이에 운명적으로 스승을 만나 그 법을 체득하여 스스로 큰 어른이 된 정산종사. 역사가 짧은 종교에, 이 땅에서 난 성자를 모시고 있으니 '성지'라는 말이 다소 과장되고 버겁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사드가 아니었으면 그저 참외 산지로만 유명했을 고장에 '원불교'와 '정산종사'라는 의미의 층이 또렷이 겹치게 되었다. 어딜 가건 참여관찰자가 되고 마는 내 눈에는, 플랭카드에 내걸린 크고 화려한 이름에 비해, 외지고 소외된 곳에 놓인 수련원과 '원불교 성지'라는 안내 표지판이 너무도 작고 쓸쓸하게 보였다. 마을회관을 찾아 헤매다 들어선 '성주 성지'에서, "18년째 수좌로 여기에 있다"는 남자교무님을 뵈었다. (법명도 못 여쭈었다) 인상이 정산종사와 흡사한데다 두 눈에 어린 기상이 곧아 보여서 합장을 하고 넙죽 인사를 했는데, 부산에서 온 신입교도라 소개하는 나에게 "죽을 힘을 다해 공부하십시오. 원불교에 잘 왔습니다"고 격려의 악수를 청하는 것이 아닌가.
첫댓글 광주에서 영광으로 가던 버스 안에서 소성리에서 공권력과 충돌이 있음을 뉴스로 보았다. “...1년 간 시설공사를 못해 화장실 물도 못내린다”는 여론형성용 기사가 뜨는가 하면 사드기지 운영에 국방비를 쓸 수 있다는 소식도 슬그머니 떠돈다. 현명하고 성실한 대통령을 믿고 있지만, 여전히 소성리는 변함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대다수의 외면과 무관심 속에 악화일로에 있다.
2018년 4월 27일. 역사책에 남을 날이다. "문재인을 싫어하건 좋아하건 관심이 있건 없건 우리 모두는 그에게 신세를 졌다"는 댓글이 남북정상회담관련 기사 아래에 달려 있었다. 어찌 이리 일을 잘하는가! 어찌 이리 현명하고 능숙한가! 후보자 시절 '문재인'을 알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오늘날 자신의 안목에 대해 근본적인 점검을 하고 있기는 한가! 사드 문제.....조금만 더 참고 견뎌보면 길이 보일까. 국회의원이었을 때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아프가니스탄 파병' 문제가 다르게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 어째서 지금 떠오르는 것일까. 어쩌면 소성리 주민들의 고통은 한동안 계속 되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