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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강 가톨릭 교회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열심한 개신교 신자들이 가톨릭 교회에 대하여 비판을 하거나 공격을 해오는 경우를 가톨릭 신자들은 드믈지않게 당하고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성경’에서 벗어난 전통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교회의 정통(正統)을 계승하지 못했다. 오히려 교회의 정통성은 성경에 충실한 기독교가 간직하고 있다.” 프로테스탄트 교파들이 대체로 이런 관점을 취하고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마리아’를 숭배하고, 교황을 신격화하며, 제사를 인정하는 등 우상숭배에 빠져있다. 고로 사탄의 꼭두각시다.” 통일교, 여호와의 증인 등 일부 공격성향의 교파들이 이런 주장을 합니다.
“가톨릭 교회에는 ‘구원’이 없다. ‘선행’ 또는 ‘공로’를 통해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고 ‘믿음’을 등한시하기 때문이다. 구원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주어진다. 따라서 가톨릭 신자는 반드시 개신교로 개종해야 구원받을 수 있다.” 소위 개신교 근본주의자들(fundamentalist)의 목소리입니다.
이런 공세에 대하여 가톨릭 신자들은 맞대응을 자제하는 편입니다. 첫째는 비교적 통이 커서 그런 유치한 토론에 휘말리지 않으려하기 때문이요 둘째는 아는 것이 딸리기 때문, 즉 명쾌하게 반박할 만큼 교리무장이 안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행스럽게도 근래에 종교 간의 대화와 교회일치운동(Ecumenical movement) 바람이 불면서 일부 의식 있는 종교 또는 종파 지도자들 사이에 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들 두 가지 상반된 움직임, 즉 적대적인 태도와 우호적인 접근 사이에 오늘의 주제 ‘가톨릭 교회’가 놓여져 있습니다. 이 주제를 취급하면서 우리가 선택해야할 물음은 분명합니다.
“과연 누가 옳으냐, 가톨릭 교회가 참된 교회냐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참된 교회냐?” 이런 식의 물음을 던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부질없는 싸움만 조장하는 어리석은 물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원했던 교회는 정녕 어떤 모습이냐, 오늘날 우리 교회가 갈 길은 어떤 길이냐?” 이런 식의 물음을 던져야 하겠습니다. 교회의 쇄신을 기약해주는 물음이기 때문입니다.
1.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
그리스도교 종파들
신부님이 로만칼라 복장으로 웬 여자와 고속버스를 탑니다. 저런, 신부가 여자와 놀러가는 모양이군! 스캔들이라도 생기면 어쩔려구! 가만히 보니 여자와 여간 친한 사이가 아닙니다. 자리에 앉은 모습도 어쩌면 그렇게 다정스러워보이는지. 조금 지나서 ‘여보-’ 소리도 들립니다. 이를 어째, 아예 살림을 낸 모양이군!
천주교 신자라면 한두 번쯤은 경험하였을 이런 해프닝은 가톨릭 사제들을 상징하는 ‘로만칼라’를 개신교 목사님들이 입고 다니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습니다. 듣기로는 ‘의장등록법’에 의거한 조치가 이루어져서 개신교 목사님들은 못 입게 되었다고 합니다마는 입고 다니는 걸 억지로 막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물론, 성공회 신부님들은 이 복장을 입도록 되어있습니다.
에피소드 감을 하나 소개했습니다마는, 여기서 언급하고 싶은 점은 가톨릭 교회 외에 수많은 그리스도교 종파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대충은 알면서도 도대체 얼마나 많은 종파들이 있고 그 계보는 어떻게 갈리는지에 대해 궁금해 합니다. 따라서 그 궁금증을 먼저 풀어보기로 하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모든 그리스도교 교파들은 그 기원이 사도시대에 있지 않습니다. 모두 근대에 있으며, 사도들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에서 몇 사람이 갈라져 나가서 독립된 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그리스도교가 가장 먼저 갈라진 것은 1054년에 와서입니다. 그 때 동방교회(정교회)와 서방교회(가톨릭 교회)로 나뉘었습니다. 이 서방교회가 다시 루터의 종교개혁을 통해 갈라져 나가면서 여러 개신교 종파들이 생겼습니다. 개신교 종파는 크게 구분할 때, 루터교, 장로교, 성공회, 감리교 등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개신교 종파는 2001년 2월 28일 각 교단에서 제출한 자료를 근거로 한 통계에 따르면, 예장통합과 예장합동 등 17개 주요 교단에 신자 수는 총 1282만5001명, 교회 수는 3만9412곳, 목사 수는 총 7만3678명으로 집계됩니다.
<그림 1> 그리스도교 종파들 계보
그 연혁과 교세를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정교회: 로마 총 대주교좌의 수위권 문제와 필리오케(Filioque: ‘또한 성자로부터’)논쟁으로 1054년 서방 교회(로마 가톨릭 교회)와 갈라섰습니다. 전세계적으로 2억2천만명의 신자를 확보하고 있으며 그가운데 오늘날 세계 최대의 정교회는 러시아 정교회로 약 7,000만 명의 신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정교회는 1900년 러시아 선교사들에 의해 시작됐으며 오랫동안 간신히 유지해 오던 중 한국전쟁에 참전한 그리스 군대에 의해 그리스 정교회로 대체되었습니다. 지금은 그리스 정교회가 미미하게 명맥을 잇고 있습니다.
루터교회: 가톨릭 사제였던 독일의 루터(1483-1546)에 의해 창설되어 1530년 독립 교파를 이루었습니다. ‘오직 믿음’, ‘오직 은총’, ‘오직 성서’를 내세우고 ‘만인사제론’을 표방하고, 행위보다는 신앙적이고 정신적 측면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전례나 성직자 예복 등 상당부분 가톨릭적 특징을 그대로 유지하였습니다. 전 세계 루터교회 신자는 약 6,200만 명으로 장로교, 성공회와 함께 개신교 3대 종파중 하나에 꼽힙니다. 1958년 한국에 전파되어 초기에는 주로 방송과 문서 선교에 힘을 쏟았으며, 1971년 교단을 조직하였습니다. 현재 한국의 루터교회는 28개 교회, 컨콜디아사, 베델성서연구원 등을 운영하며 루터신학대학교에서 교역자를 길러내고 있으나 교세는 아직 약한 편입니다.
성공회: 1534년 영국 왕 헨리 8세가 재혼 문제로 가톨릭에서 이탈하면서 교황권을 거부하고 영국의 국교로서 ‘성공회’를 세웠습니다. 국왕이 교회의 최고통치자가 된다는 점이 특기할 만합니다. 성공회는‘거룩하고(聖) 공번된(公) 교회’라는 구절을 한자화한 것이고, 이름이 시사하듯이 가톨릭 교회에 가장 가까우면서도 개신교에 속하는 종파입니다. 오늘날 세계 성공회는 160개국에 약 7,000만 명의 신자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1889년 한국에 전파한 이래 성당을 한옥식으로 짓고 선교사들이 한국문화에 대해 연구를 하는 등 토착화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1993년 관구 독립을 이루고 ‘대한성공회’가 되었으며 현재 전국에 100여 개의 교회, 5만여 명의 신자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장로교회: 프랑스의 종교개혁자 칼빙(1509-1564)에 의해 창설되었고 절대 예정설과 신의 뜻을 지상에서 실현하기 위한 적극적인 실천을 강조합니다. 현재 세계개혁교회연맹에 106개국 217개 교단이 가입되어 약 7,500만 명의 신자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장로교는 1885년 전해졌으며, 1907년 독자적인 조직을 구성하였습니다. 해방 후 여러 차례 교단 분열을 거듭하면서 현재 통합, 합동, 기장, 고신 등 100개가 넘는 교단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한국 장로교회는 미국, 영국, 스위스, 네덜란드와 함께 세계 5대 개혁교회 중 하나로 꼽힙니다.
감리교회: 영국 성공회 출신 사제였던 존 웨슬리(1703-1791)가 현세에서의 완전한 성화를 목적으로 신앙, 개인적 회개와 경건을 표방하고 영국 서부의 하층민을 대상으로 펼친 복음주의 운동의 결과로 1795년 영국 국교로부터 정식으로 분리되어 감리교단을 이뤘습니다. 1881년 창설된 ‘세계감리교협의회’에는 전 세계 5,000만 명이 넘는 신자를 갖고 있습니다. 한국 감리교는 1885년 4월 미국의 아펜젤러에 의해 전파되어, 배재학당과 정동제일교회 설립하였습니다. 해방 후에도 장로교가 수많은 교단으로 분열된 것과는 달리 단일 교단을 유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구세군, 성결교 등도 웨슬리의 가르침을 따르는 교파들입니다.
침례교회: 영국의 청교도(퓨리턴)의 여러 파 가운데 하나로 생겨났으며, J.스미스(1554?∼1612)에 의해 1612년 창설되었습니다. 영국에 이어 미국에서도 크게 퍼져서, 현재 미국 최대의 교파를 이루고, 대소 27개의 그룹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으며, 성서원리(聖書原理) ·침례 ·만인사제(萬人司祭), 각 교회의 독립, 교회와 국가의 분리 등을 강조합니다. 한국에는 1890년 캐나다의 M.위크 선교사가 입국하여 함남 원산(元山)에서 선교사업을 시작한 것을 효시로 생겨나서 1976년 '기독교한국침례회'로 명칭을 확정하여 산하 100여개 지회를 두고 있습니다.
오순절교회: 1958년 전도사 조용기(趙鏞基)와 최자실(崔子實)이 5명의 신도와 함께 천막교회로 출발, 2000년 신자 70만명으로 세계적인 신도수와 규모를 갖추었습니다. 방언·예언·신유 등 성령의 은사를 핵심으로 하는 교리를 주장하여 다른 교파로부터 이단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교세는 급속히 확장되어 국내 뿐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30여개국에 200여개의 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텔레비전·라디오 방송망 등을 통하여 세계적으로 다양한 선교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문서를 통한 선교에도 힘을 기울여 1967년부터 월간지 《신앙계》, 1976년부터 주간지 《순복음소식》을 발간하다가 1990년부터 《행복으로의 초대》로 명칭을 바꾸어 계속 발간하고 있습니다. 또 1988년에는 일간지《국민일보》를 창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가톨릭교회
1) 4대 특성
가톨릭 교회는 스스로 ‘참 교회’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티칸 2차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습니다. “신경에서 우리는 하나요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라고 고백한다. 이 교회는 베드로의 후계자와 그와 일치하는 주교들이 다스리는 가톨릭 교회 안에 존속한다”(교회헌장 8항).
주목할 만한 것은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참 교회’(하나요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적인 교회)는 오직 로마 가톨릭 교회“이다”(esse)라고 표현 해 오던 것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참 교회는 로마 가톨릭 교회 안에 “존속한다”(subsistit in)고 표현함으로써 다른 교회도 참 교회일 수 있음을 인정하였다는 점입니다. 타교파에 대한 존중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이루어낸 위대한 업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조직-가톨릭 교회-밖에서도 성화와 진리의 요소가 많이 발견되며, 이 요소들은 본래 그리스도의 교회에 고유한 은혜로서 공번된(가톨릭적) 일치를 촉구하는 것이다.”(교회헌장 8항).
그러면 이제 가톨릭 교회의 트레이드마크였었던 그러나 타교파에게도 함께 유보되어 있는 ‘참 교회’의 요건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참 교회는 ‘하나’입니다.
교회가 하나라는 것은 교회가 ‘한 분 하느님’과 ‘한 분의 중재자 나자렛 예수’(1디모 2,5)에 기인한다는 뜻에서입니다.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는 모든 교파들은 서로 ‘남’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께서 평화의 줄로 여러분을 묶어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신 것을 그대로 보존하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며 성령도 하나입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당신의 백성으로 부르셔서 안겨주시는 희망도 하나입니다. 주님도 한 분이고 믿음도 하나이고 세례도 하나이며 만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 이십니다.”(에페소 4,3-6)
실제에 있어서 우리는 도처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여럿’으로 갈라져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많은 그리스도교 종파와 가톨릭 안에서의 불일치는 한편으로는 ‘다양성’과 ‘풍요’를 드러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분열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교파는 서로 다른 문화와 특성을 가진 채 이 일치에로 불리움을 받았음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생동하는 다양성은 꽃피우되 그것이 서로 반목하고 견제하는, ‘일치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오리게네스의 호소에 귀기울일 줄 알아야 합니다.
“죄가 있는 곳에는 다수가 있고, 이교가 있고, 이단이 있고, 갈등이 있습니다. 덕이 있는 곳에 일치가 있고 모든 믿는 이들이 한 몸, 한 마음을 이루는 일치가 있습니다.”(가톨릭 교리서 1편 317에서 재인용)
둘째, 참 교회는 ‘거룩’합니다.
교회는 스스로를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교회헌장 12항)이라 부르고 그 구성원들을 ‘성도’(사도 9,13)라고 칭합니다. 교회는 정말 거룩한가? 분명한 것은, 하느님 홀로 거룩하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거룩함’을 자인(自認)할 수 있는 것은 그 교회의 설립자요 기초이신 하느님이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거룩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예수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교회를 깨끗하고 거룩하게 하시려고 당신의 몸을 바치셨기”(에페 5,25-26) 때문입니다. 교회의 모든 빛이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것처럼, 교회의 거룩함도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기 때문에 교회는 ‘천상은혜로 충만한 교회’가 될 수 있고, 교회 역시 세상을 거룩하게 할 수 있습니다.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교회가 하는 모든 활동의 목표입니다. 그리하여 교회에 부여된 모든 성화의 도구들, 즉 하느님의 말씀, 성사, 특별한 은사, 직무와 봉사 등은 이러한 목표를 위해서 쓰입니다. 교회가 시성(諡聖)을 하고 성인들을 공경하는 것도 세상을 성화시켜야 하는 교회의 사명을 다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역설이 되겠으나 스스로 거룩하고 세상을 거룩해야 하는 이 사명 때문에 교회는 ‘죄인들의’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자신의 품안에 죄인들을 품어야 합니다. 교회는 죄인들을 품으면서 스스로 죄에 물들지 않도록 회개, 정화, 쇄신의 길을 가야합니다.
셋째, 참 교회는 ‘보편적’(catholic)입니다.
‘보편적’이라는 말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지역, 모든 민족, 모든 이데올로기를 두루 아우룰 수 있을만큼 포용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교회가 스스로 ‘보편되다’고 말할 수 근거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 모든 백성에게 교회를 파견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라”(마태 28,19).
우리가 속한 교회를 ‘가톨릭 교회’라고 부릅니다. 가톨릭교회는 참으로 온전하고 보편적이며 포괄적인 교회를 뜻합니다. 참으로 ‘가톨릭’ 즉 ‘보편’ 교회가 되려면 그 ‘보편성’이 두 가지 차원에서 검증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역사적으로 그 ‘보편타당성’이 검증되어야 합니다. 잠깐 나타났다가 반짝하고는 한 시대도 채 풍미하지 못하고 사라져버리는 영성풍조들은 시간의 심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20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검증된 교회입니다. 숱한 박해와 위기를 극복하고 의연히 서있는 교회입니다.
다음으로 공간적으로 그 보편성이 검증되어야 합니다. 동서양의 쟁쟁한 철학과 종교들에 비견할 때 설득력과 타당성을 인정받아야 합니다. 가톨릭 교회는 전 세계, 모든 대륙에 27억 5천의 신도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보편성’을 인정받았다고 해도 무방하겠습니다. 가톨릭 교회에는 모든 집단·인종·계급을 포괄하는 신앙과 신앙 공동체가 존속하기 때문입니다.
넷째, 참 교회는 ‘사도적’입니다.
‘사도적(使徒的)’이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먼저, 그것은 교회가 ‘파견되었다’는 말입니다. ‘사도’는 ‘파견 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파견은 교회의 본질입니다. 주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한 20,21)고 하시며 제자들을 파견하셨습니다. 파견은 어떤 사명수행을 위해 보냄 받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위임받은 사명이 바로 사도직입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평신도 사도직에 대한 교령에 따르면, 교회의 목표를 지향하는 모든 활동이 사도직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사도적’이라는 것은 특별히 파견된 직무가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사도적 직무는 교회의 근본 요소에 속합니다.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의 부활의 목격자인 사도들의 파견은 양도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사도적’이라는 것은 ‘사도로부터 이어왔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교회는 사도들의 기초 위에 세워졌고, 그 기초 위에서 살아갑니다(에페 2,20). 교회는 사도들의 증거와 가르침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사도적 교회입니다. 사도들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보고들은 것과 그리고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을 전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업적과 말씀은 사도들의 설교를 통하여 우리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사랑하는 스승, 예수님의 반영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위탁하신 세례와 성찬례를 거행하였습니다. 또한 사도들은 그들의 파견을 계속 이행하는 제도를 설정하였습니다. 끝으로 사도들과 그들의 제자들은, 성령의 감도하심에 따라 예수님의 구원의 기쁜 소식을 문자로 기록하였습니다. 사도들은 온전하고 생생하게 복음을 교회 안에 보존하기 위하여 후계자로서 주교들을 두고, 그들에게 가르치는 임무를 맡겼습니다. 여기에 교회는 그 기초를 둡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백성의 목자인 사도들에게 맡기신 위임은 모든 시대에 존속됩니다. 사도들은, 그 후계자인 주교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양떼들을 계속 인도하기 때문에 교회는 사도적입니다.
위의 두가지 의미에서의 ‘사도적’ 특성을 담보해 주는 것이 교계제도입니다. 즉, 교계제도는 한편으로는 사도직 수행을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다양한 성소와 은사, 지위와 직무를 두셨다는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도적 전통을 계승시키는 기간(基幹)이라는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하튼 사도직에 불리움 받은 하느님백성은 평신도, 축성생활 그리고 성직자로 구별이 됩니다. (1)성직자는 교황-주교-사제-부제의 위계로 봉사직분을 위임받아 수행합니다. (2)평신도는 성품과 교회에서 인정된 수도 신분에 속하는 이들 이외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말합니다. 성세로써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고, 하느님 백성 중에 들고, 그들 나름대로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직과 왕직에 참여하여, 교회와 세계 안에서 그리스도의 백성 전체의 사명을 각기 분수대로 수행하는 신자들을 말합니다(교회 헌장 31항). 구체적으로 평신도는 기도와 성사 생활을 통하여 사제직에 동참하며(교회헌장 10항), 정의구현과 복음화 활동을 통하여 예언직에 동참하며, 사회 봉사를 통하여 왕직에 동참합니다. (3)축성생활은 ‘교회의 생명과 성화에 속하는 것’으로서 교회가 주님께 받은 선물입니다. 특히 청빈, 정결, 순명이라는 복음적 권고를 따르는 축성생활은 은수생활, 수도생활, 재속 수도생활 등으로 구분됩니다.
참고적으로, 대부분의 개신교 교회에서는 ‘하나인 교회’와 ‘사도로부터 이어져 온 교회’를 교회의 본질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인 교회’를 부정하는 이유는 개신교가 교회 역사를 통해 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반론과 정치적 이유로 갈라져 나간데 있고, ‘사도로부터 이어온 교회’를 부정하는 것은 가톨릭의 교계제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2. 믿는 이들의 통공(通功)
교회에 대한 고백에 이어지는 것이 ‘모든 성인들의 통공’을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라틴어로 ‘communio sanctorum'인데 이는 두 가지로 해석됩니다. 즉, ‘sanctorum’을 ‘거룩한 것들’(sancta)의로 해석할 수도 있고 ‘거룩한 이들’(sancti)의 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번역상 후자를 택했습니다마는 첫 번째 의미로 알아들을 경우 ‘거룩한 것들의 나눔’을 의미해서 신앙, 성사, 은사 등을 전신자가 공유할 수 있다는 뜻으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현재의 ‘성인들의 통공’으로 번역될 경우, ‘성인들’은 성도들, 믿는이들을 가리키며, 통공은 서로 친교하고 공로를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그 깊은 뜻을 헤아리려면 따로 구분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인들
성인들은 ‘성도들’을 말합니다. 이 성도들은 ‘교회’의 구성원을 말하며, 여기서 ‘교회’는 전통적으로 지상교회, 연옥교회, 천국교회로 구분됩니다. 윤형중 신부의 상해천주교요리를 보면 지상교회를 ‘신전지회’라 일컫고 연옥교회를 ‘단련지회’로, 천국교회를 ‘개선지회’로 부릅니다. (p260-264).
첫째, 지상교회의 옛 표현인 ‘신전지회(神戰之會 Ecclesia militans)’에 속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신자들의 집단으로, 전투하는 교회라는 말입니다. 전투란 이 세상에 살면서 죽을 때까지 마귀와 세속과 육신에 대적하여 싸우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 연옥교회의 다른 표현인 ‘단련지회(鍛鍊之會 Ecclesia patiens)’에 속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이 세상을 떠날 때 소죄만 있거나, 보속할 잠벌이 남아 있는 영혼은 연옥에 들어가 천당에 갈 때까지 단련을 받는다고 합니다.
셋째, 천국교회를 뜻하는 ‘개선지회(凱旋之會 Ecclesia???)’에 속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죽을 때 아무 죄도 없고 보속하여야 할 잠벌도 없는 영혼들은 천국에 들어가고 연옥에서 단련을 다 받은 영혼들도 천당에 들어가 영원한 복락을 누리는 데 이런 영혼들의 집단을 말합니다. 마귀와 세속, 육신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교회라는 뜻입니다.
신전지회와 단련지회, 개선지회는 본질적으로 다른 집단이 아니라 동일한 집단이며 다만 그 상태가 전(戰), 단(鍛), 개(凱)로 다를 뿐입니다. 그리고 어느 것이나 그리스도의 거룩한 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 합치된 이들입니다. 일반적으로 이 세상에 살다가 죽어 연옥을 지나 천국에 들어간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어느 단계에 있건 이들은 “성도로 부르심을 받는 이들”(1고린 1,2) “그리스도 예수 안의 성도들”(필립 1,1), “하느님께 선택된 거룩하고 사랑받는 사람들”(골로 3,12)입니다.
통공
1) 통공의 의미
‘통공’(通功)이란 단어의 원어는 ‘communio'입니다. 이는 ‘친교’를 의미하기도 하고 ‘나눔’이나 ‘교환’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먼저 ‘친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누구든지 나에게서 떠나지 않고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 ”(요한 15,5-6)고 말씀하셨습니다. 포도나무 가지와 잎새들이 줄기와 연결되어 한 생명으로 사는 것처럼, 여러 성도들은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한 생명으로 살고 있습니다. 한 생명체에는 수억의 세포들이 결합되어 한 생명으로 하는 것처럼 세상, 연옥, 천국에 있는 수많은 성도들은 한 그리스도의 생명, 즉 은총으로 살아있음으로써 결합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생명의 친교입니다.
다음으로, 말 그대로 공(功)을 통한다는 뜻을 지닙니다. 즉, 누군가 다른 성도를 위해서 기도, 선공, 희생 등을 통해서 대신 공을 쌓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지상교회의 성도들끼리 육신과 영혼에 필요한 은혜를 받도록 하기 위해 ‘통공’을 행할 수 있고, 지상교회의 성도가 연옥교회의 성도를 위해 공을 쌓음으로 죄로 인하여 당연히 받아야 할 잠벌을 면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달리 말하여 보속은 빚을 갚는 것인데, 이 빚은 당사자가 갚아도 되고 다른 사람이 대신 갚아도 됩니다. 그러므로 생존자가 자기 보속을 다른 생존자에게 사양하여 통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통공의 방법
첫째, 천국교회 성인들의 전구를 통한 통공이 있습니다. 우리는 천상에 있는 성인 성녀들을 공경하며 그들의 전구(轉求)를 청하고, 그들은 우리를 위하여 은총을 빌어 줌으로써 신전지회는 개선지회와 통공합니다.
둘째, 지상교회 성도들이 연옥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와 희생을 드리는 통공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보속을 다 못하고 떠난 영혼들은 연옥에 들어가 보속이 끝날 때까지 단련을 받게 됩니다. 그들은 우리의 부모, 형제, 친척, 친구들이며 우리와 함께 신전지회의 성도들이었습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다른 모든 지체도 함께 아파하지 않겠습니까? 또 한 지체가 영광스럽게 되면 다른 모든 지체도 함께 기뻐하지 않겠습니까?(1고린 12,26). 이 말씀과 같이, 우리는 그들을 동정하게 되고 그들의 형벌이 경감되거나 단축되게 하기 위해 기도합니다. 그래서 연(鍊)미사를 드리고, 교우들은 그 영혼을 위하여 연도(鍊禱)를 드리는 것입니다. 연옥 영혼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을 위해 자주 미사를 드리고, 대사를 자주 얻어 그들에게 공을 넘겨주며, 기도와 고행, 자선을 행하는 것 등이 있습니다.
셋째, 지상교회의 성도들이 서로를 위해 공을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상 교회에서 통공하는 방법은 모든 신자들이 성교회의 은혜를 같이 받고, 기도와 선행으로 서로 도와주는 것입니다. 교우들끼리 서로 통공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1)기도입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성령이 베푸시는 사랑을 믿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부탁합니다. 여러분도 나를 위하여 하느님께 간곡히 기도하여 주십시오”(로마 15,31).
(2) 선행입니다. 선행도 기도의 효력이 있고, 마음으로나 입으로 하는 기도보다 그 효력이 더 큽니다. “ ⋯ 황금을 쌓아두는 것보다는 자선을 행하는 것이 더 좋은 일입니다. 자선은 사람은 죽음에서 건져내고 모든 죄를 깨끗이 없애버립니다. 자선을 행하는 삶은 장수하게 될 것입니다”(토비 12,9). 선행은 그것이 지향하는 일에 효력을 나타낼 뿐 아니라, 그 선행의 근원이 되는 은총으로 말미암아 결합된 다른 교우들에게도, 자기의 손실을 당하지 않은 채, 좋은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나, 공로 중에 최고의 공로는 그리스도의 공로로 인한 공로입니다. 교회로부터 받은 은혜는 미사성제, 성직자들이 날마다 드리는 성무일도, 일곱 가지 성사, 교회에서 제정한 준성사, 교회 전례, 교회에서 베푸는 대사 등이며, 거룩한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바른 대로 믿고 바른 대로 행하는 것도 교회의 은혜입니다.
3. 성교회의 믿음을 보시어
미사경문에 성체를 영하기 직전에 ‘저희의 죄를 보지 마시고 성교회의 믿음을 보시어’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이 대목은 대단히 은혜로운 사실을 나타냅니다.
믿는 이 각자의 허물과 죄와 한계를 가지고는 감히 ‘거룩한 몸’을 영할 수 없으나 ‘거룩한 교회’의 믿음과 서로를 위한 ‘통교’를 통해서 감히 주님을 모실 수 있고, 주님의 도우심을 기대할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실재하는 교회는 잘못을 범하기 쉬운 죄스러운 인간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죄스러운 교회입니다. 통틀어서 볼 때, 교회의 역사는 참으로 인간적인 역사일 뿐 아니라, 깊은 죄악의 역사이기도 합니다.(큉) 그러나, 인간의 성화를 위한 그리스도의 공로 위에 세워진 교회, 성령이 함께하는 교회, 성인들의 통공이 서로를 성화시켜주고 하나로 묶어주는 교회이기에 그 교회의 믿음의 총화는 거룩하고 은혜롭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보충한다’는 고백이 있습니다.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 성도들의 통교가 이루어지는 교회는 ‘서로’ 가진 것을 합하여 ‘서로’의 성화와 구원에 이바지합니다. 일치의 성령으로 가득 채워진 공동체에서는 나와 남, 빈부와 귀천, 성속 등을 가르는 모든 장벽들이 허물어지고 모두가 ‘한 마음 한 영혼’이 됩니다.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 성도들의 통교가 이루어지는 교회를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단어가 “서로”(알랠론;ἀλλῄλων)입니다. 성서학자 로핑크의 연구에 의거하여 ‘서로’의 공동체를 느끼고 확인하여 봅시다.
성령안에 ‘한 마음 한 영혼’인 우리는,
서로 앞장서서 남을 존경합니다(로마 12,10),
서로 합심합니다(로마 12,16),
서로 받아들입니다(로마 15,7),
서로 충고합니다(로마 15,14),
서로 거룩한 입맞춤으로 인사합니다(로마 16,16),
서로 기다립니다(1고린 11,33),
서로를 위하여 같이 걱정합니다(1고린 12,25),
서로 사랑으로 남을 섬깁니다(갈라 5,13),
서로 남의 짐을 져줍니다(갈라 6,2),
서로 위로합니다(1데살 5,11),
서로 건설합니다(1데살 5,11),
서로 화목하게 지냅니다(1데살 5,13),
서로 선을 행합니다(1데살 5,15),
서로 사랑으로 참아줍니다(에페 4,2),
서로 친절하고 자비로운 사람이 됩니다(에페 4,32),
서로 순종합니다(에페 5,21),
서로 용서합니다(골로 3,13),
서로 죄를 고백합니다(야고 5,16),
서로를 위해 기도합니다(야고 5,16),
서로 진심으로 다정하게 사랑합니다(1베드 1,22),
서로 대접합니다(1베드 4,9),
서로 겸손으로 대합니다(1베드 5,5),
서로 친교를 나눕니다(1요한 1,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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