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과 패션에 열중하는 커뮤니티가 늘면서 남성들의 비중도 급증하고 있다. 외모가 남성의 사회적 성공을 좌우한다는 믿음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20대는 말할 것도 없고 30대와 40대 남성들까지 외모 가꾸기에 열을 올린다. 여성들 못지 않은 비용과 노력을 투자하기도 한다.
요즘 전국 이발소들이 위기를 맞고 있다. 갈수록 고객이 줄어들어 이발업이 사양화 돼가고 있기 때문이다. 20대의 70% 이상, 30대의 절반 가량이 미용실 고객이다. ‘이발소 머리’는 이제 젊은 세대의 취향이 아니다.
남성들의 ‘미용실 머리’도 개념이 바뀐다. 과거처럼 저렴한 가격으로 단순히 ‘커팅’만 하던 시절은 지났다. ‘두상’을 고려하고 목선을 살리는 ‘디자인 개념’의 미용실 머리가 남성들의 머리 패션으로 정착했다.
남성 ‘퍼머넌트’ 머리의 종류가 다양해지기 시작하더니 요즘엔 ‘탈색’과 ‘코팅’을 시도하는 경우가 급격히 늘고 있다. 30대 샐러리맨이 노랗게 탈색된 머리로 출근해도 별 뉴스거리가 못되는 세태다.
대중문화의 열기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소위 ‘스크린 패션’, ‘모델 패션’은 곧바로 ‘온라인 패션’으로 이어진다. 이미 1천여 개 이상의 커뮤니티 사이트가 생겨났고, 남성 전용 미용동호회도 생겨나 ‘예뻐지려는’ 남성들이 장사진을 친다.
평범한 사람들이 이제 자신만의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있다는 증거다. 용모와 패션의 개성이 강조되면서 누구나 ‘튀지 않으면’ 못 견뎌 하는 ‘사회적 강박관념’이 형성됐다. 그 대열에 이제 남성들이 가세한 것이다.
요즘 남성들은 피부 미용에도 여자들 못지 않게 적극적이다. 면도 후 겨우 ‘스킨로션’이나 바르는 남자들은 이제 ‘구세대’ 소리를 듣게 됐다. 남성 전용 피부 미용실이 들어서는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상당수 피부 미용실은 몇 해 전부터 남성피부 관리실을 설치했고 남성고객만 받는 전용 피부관리실이 여러 개 생겼다.
‘멋있는 남자가 성공한다’는 강박관념
다음넷의 ‘예뻐지는카페’(http://cafe daum.net/makeupsarang) 회원 전영호(30)씨는 “요즘 피부관리 정보와 코디법을 익히러 드나들고 있다”면서 “고교시절 생긴 여드름 흉터가 신경 쓰였고, 신랑감을 판단하는 기준이 직업이나 재산 외 ‘용모’라는 것도 약혼녀의 생각”이라고 말한다. 또 전씨는 “그래서 한 달에 10번, 30만원을 주고 남성 피부관리실에서 전문적인 ‘스킨 케어’를 받고 있다”고 한다.
열성파 남성들의 피부관리는 이보다 더 적극적이다. 여자들의 피부관리법 중 하나인 소위 ‘필링’(peel ing) 시술을 받는 남성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필링시술은 화학 약품이나 레이저를 이용해 얼굴 피부를 한 꺼풀 벗겨내는 것. 화장을 잘 받게 하고 미백효과를 낸다는 이 시술을 받기 위해 시내 각 피부과에는 남성들의 문의가 그치지 않는다.
얼마 전 이 시술을 받았다는 ‘멋진남’이라는 ID 사용자는 “인기스타들도 한 달에 두 번 시술을 받는다”면서 “사귀는 여자친구가 비용의 일부를 대 시술받게 됐다”고 말했다.
남성들만을 위한 전용 화장품들도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다. 대부분 수입품들이지만 국내 화장품 회사에서 개발된 제품도 다양한 편이다. 피지 분비를 조절해준다는 남성용 머드팩에다 남성전용 UV제품(자외선 차단제)에 미백제까지 나와 있다. 요즘 미백 화장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것은 남성미의 개념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을 패션시장으로 끌어들이는 자본 논리
거칠고 투박한 야성미보다 예쁘장한 용모에 흰 피부를 지닌 남성들이‘섹스어필’하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국내 향수시장이 커지면서 남성용 향수가 범람하는 것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화장품 냄새를 풍기면 ‘기생오라비’라는 비난을 면치 못했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알코올 성분이 강한 남성용 향수 사용을 꺼리고 자신의 분위기에 맞는 ‘여성용 향수’만 사용하는 남자들이 나타날 정도다.
20∼30대 남성들의 미의식이 급격히 바뀌면서 그들의 소지품에도 변화가 생겼다. 주머니에 빗을 넣고 다니던 과거의 ‘멋쟁이’들은 이제 손가방에 무스와 젤, 향수를 담고 다니는 ‘신세대 감각파’에 두 손을 들었다.
이들 감각파들의 ‘화장대’에는 머드팩과 클렌징 크림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다.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저녁 세안 후 약 30분 가량의 시간을 피부관리에 투자한다. 남성들의 비만 관리도 예전과는 달라졌다.
‘건강’보다는 ‘미용’을 위한 체중 조절이 성행한다. 서울 백병원 ‘사이버 비만 클리닉’(www.diet-clinic.com) 상담실에는 최근 20∼30대 남성들이 미용을 위해 비만을 상담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쫄티와 짧은 반바지를 입고 싶은데 살이 쪄서 곤란하다는 대학 2년생, 허리 사이즈 28이 마지노선이라는 샐러리맨 등이 이 비만 클리닉의 단골들이다. 물론 이들의 비만 정도는 건강 유지에 전혀 지장이 없다.
요즘 체모 전문 클리닉에서 새로 개발해 인기를 끌고 있는 분야는 소위 ‘이마 확대 시술’이다. 이마가 너무 좁으면 보기도 흉하고 관상학적으로도 좋지 않다는 게 통념.
주로 면접시험을 앞둔 남성 취업희망자들이 앞이마 털을 일일이 뽑고 피부를 꿰매는 고통을 감수하며 이 시술을 받고 있다. 물론 앞이마가 지나치게 넓은 남성들은 머리털 이식 수술을 받아 이마의 면적을 줄인다.
여름철 20대 초반의 남성들은 여자들이 입는 ‘민소매’를 즐겨 입는다. 이 옷을 입을 때 생기는 문제는 흉하게 드러나는 겨드랑이의 체모. 그래서 전문 클리닉에는 체모 제거 수술을 받는 20대 초반의 남성들도 눈에 띈다.
사이버문화연구소 양소연씨는 “사이버 스페이스는 이제 기술적 영역이 아닌 사회의 일부, 사람들이 일상이 이루어지는 사회적 공간이므로 그러한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이런 현상들을 다국적 기업시대, 후기 자본주의의 전형적인 시장 확대 전략으로 진단한다. 전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남성들을 광범위한 의미의 ‘패션시장’으로 끌어들이려는 ‘자본의 논리’라는 해석이다.
‘멋있는 남자가 성공한다’ 따위의 광고 카피는 그래서 남성미용, 패션시장의 확장을 끊임없이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남성들의 미용 열풍을 ‘마마보이’현상과 연결해 설명하는 시각도 있다. 가정 내 어머니의 역할이 강화되면서 남자 아이들의 미의식이 여자들의 것을 닮아간다는 것이다.
최근 패션에서 유난히 ‘유니섹스’모드가 횡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분석이다. 원인이야 어쨌든 용모와 패션은 시대의 중요한 가치 중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여성 패션지 독자 중 상당수가 남성이라는 분석도 나와 있을 정도다.
‘멋있는 남자가 성공한다’는 광고 카피는 달콤한 구매 유혹에 불과 하지만 어찌 보면 가장 정확한 세태의 진단이기도 하다. 미용과 패션에 대한 관심은 이제 여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