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루누보의 발생배경 아루누보의 발생배경을 보면 당시 아루누보는 역사주의와 근대주의의 사이에서 발생된 것으로 기존의 건축은 귀족중심의 건축성향을 보이던 것이 산업혁명과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대량생산으로 제품의 외관과 예술성의 결여에 대한 반발로 시작되었다. 세기말이라는 사회적불안으로 인하여 점차 계급이라는 것이 없어지고 산업혁명으로 부상한 부르조아계급들이 주 건축주로 등장하게 되었고, 최초 아루누보 건축가들은 기존의 틀을 벗어나려 건축주를 부르조아로 삼게 되었고, 이로 하여금 새로운 건축. 즉, 아르누보가 생기게 된것이다.또한, 아르누보 이전의 '미술 수공예 운동(Art & Crafts Movement)'이 아르누보의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새로운 재료(철, 유리, 세라믹타일, 알루미늄)개발과 구조적 기술의 발달로 표현상의 자유를 얻었으며 이 새로운 재료를 가지고 아르누보라는 건축양식을 표현하였다. 하지만, 새로운 재료를 쓰기 위해 쓴것이 아니라 신재료가 아르누보 양식을 표현하기 가장 좋은 재료이기에 그것을 쓴것이다.
2. 아르누보의 어원 최초의 아르누보라는 말은 반드벨드가 'Masion De L`Art Nouveau'라는 미술상의 실내장식을 함으로써 그 시초라 말할수 있고, 호르타는 솔베이 저택으로서 아르누보양식을 정립시켰다고 할수 있다. 또한, 아르누보는 러스틴과 모리스가 주가된 '미술수공예운동'(Art & Crafts Movement)에 그 기원을 둔 일종의 가치관의 변화를 둔 근대 예술 건축운동이라 말할수 있고 세기말이라는 불안 요소를 이겨나가려는 인간의 주관적인 감성을 다룬 모던 휴머니즘계열의 운동이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각나라별로 아르누보 운동을 보면 영국/프랑스는 아르누보(Art Nouveau)라고 하였고, 독일은 유겐트 스틸(Jugendstil), 이탈리아는 스틸레 리베르티(Stile Liverty)라는 각나라별로 다른 이름을 같게되었는데 그 이유는 모든 나라가 추구하려던 경향은 같았지만 역사주의와 합리주의 중간에서 시대성을 갖지못하고 국가와 개인적인 특성으로 인해 서로 다른 이름들을 사용하게 되었다. 또한, 지역의 특성과 아르누보가 세계적인 흐름의 건축양식이 되지를 못했다는 것을 알수가 있고, 각나라들의 아르누보라는 건축사조의 이름을 갖는 건축물들이 서로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은 각나라들의 산업혁명의 발달정도로 차이를 보이고 있다.
3. 아르누보 건축양식의 특징 아르누보의 건축에서 주로 표현하려고 했던 것은 선형어휘(소용돌이 치는 곡선, 자연의 곡선, 동식물의 선 등...)를 기본매개로 하여 소용돌이 치는 모양과 일상적인 주제. 또한 작가의 꿈과 환상을 표현하기 위해 이용되었는데 이 선형어휘라는 것은 인상파 화가들이 종전에 사용되던 인상파 그림들의 표현기법으로는 부족하여 선형어휘라는 방법으로 사용하면서 이것이 시대전반적으로 확산되면서 건축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이러한 곡선과 입면성을 주로 사용함으로써 대칭에 의한 균형보다는 비대칭에 의한 균형을 추구하였고 이런장식들을 단순히 사용한 것이 아니라 벽, 바닥, 난간등이 연속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모든 면이 하나의 면으로 보이는 2차원적인 평면성을 가지는 특성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철을 사용한 곡선이라는 것 자체가 한쪽면에서 보면 곡선모양이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직선적인 모양을 볼수 있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안토니 가우디의 밀라저택은 어느면에서 보거나 볼륨을 갖는 3차원적인 면을 보여 주고 있다.
4. 아르누보 건축의 한계 초기의 아르누보건축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정체된 역사관을 기초에 두면서 새로운 예술/미술/철학관을 합쳐 건축적으로 수용해 나가려하였고 이와 동시에 산업혁명으로 인한 대량생산의 단순주의로 인하여 심미적 가치의 황폐화에 맞서 장식을 통해 건축의 질을 높이려고 하였으나 후기에 와서는 최초의 대중들의 '삶의 질적고양'이라는 슬로건아래 귀족지배층에 맞서서 새로운 건축양식을 건립하자는 개념이었지만 값비싼 재료와 세기말이라는 불안을 단지 건축가와 당시의 산업혁명으로 인하여 생긴 부르조아계급(건축주)의 주관적이고 과다한 장식표현을 사용함으로서 대중에게 호응 할수 없었다. 또한 아르누보건축은 과거의 양식을 직설적인 복사경향으로 보면서 역사성(양식간의 대립경향을 나타내던 역사주의 건축에 합리주의를 도입하여 모더니즘에 적합한 건축체계를 찾으려는 움직임. - 역사라는 것은 역사를 배움으로서 현재의 나의 위치를 알기 위한 것인데 아르누보건축은 철저히 역사를 배제한 새로운 것은 추구하였기 때문에 이전의 어느것에서도 그 뿌리를 찾을수 없기에 역사주의에서 제외 되었다.)을 단절 시킴으로해서 사회에 대한 전통성을 잃게 되었고 철이라는 신소재를 사용하여 보기에는 합리주의(관찰, 증명, 실험, 논리성과 같은 과학적인 방법론에 의해 건축구성 체게의 효율적 운용을 추구하는 방법론)와 유사하지만, 너무나 새로운 문명체계에 발전시키고 변형시키다가 극단적인 장식의 사용과 주관적인 표현으로 승화하여 스스로 붕괴하는 모순을 낳게되었다. 그리고 기계물질 문명이 주도적인 세계관으로 등장하면서 근대성이 결여 되었다. 5. 미술/ 수공예품 최초의 아루누보양식그림 : Mackmurco가 그린 '랜의 도시교회들(1883)'의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