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버지~
아버님과 어머님과 형님의 겹친 영상으로 한숨이 나왔습니다.
아버님과 어머님의 눈 빛, 얼굴, 살아 생전의 목소리와 모습들, 형님의 눈 빛, 눈썹, 이마, 오똑한 귀. 휜 팔, 구부정한 어깨...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울었습니다.
한참 지나고 깊은 숨을 몇 번 쉬니 마음이 정해 졌습니다. 그래서 멍하니 천장을 보고 오래 있었습니다.
며칠 전 아내와 앨범을 뒤적이며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얼굴을 오래도록 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버님 살아 계실 때 자주 할아버지, 할머니 이야기 하시며 “나는 이렇게 잘 먹고 사는데 그 분 들은 너무 못 드시고 고생만 하시다가 가셨어” 하시며 육순, 칠순의 나이도 잊으시고 자주 우시더니
이젠 어느 덧 내가 40대 중년이 되어 자주 이분들 상념에 빠져들고 울기도 합니다.
특히 아버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많이 아픕니다.
젊어서는 엄하고 말 없는 아버님보다 어머님에게 더 친근히 하고 살갑게 느껴 가까이 했는데 중년이 된 지금은 어머님보다 형님보다 아버님이 더 보고 싶습니다.
아버님도 두메산골에 수염 기르시며 사시는 전형적인 유교사상에 젖어 사신 분이시라 50넘어 난 막네 아들에게도 사랑 표현을 하실 줄 모르시고
나도 나이만 먹었지 너무 어려서 아버지께 화도 내고 많이 가슴 아프게 해 드렸습니다.
대학 졸업반 가을 학기 도중에 두메산골 고향에 내려와 집 아래 터에 아버님의 전 재산과도 같은 벌통을 억지로 옮기고 그 터에다 예배당 짓고 마을 학생들 청년들 예수믿게 한다면서 아이들과 지내면서
예배당을 지으면서 그리고 짓고 나서도 아버지 마음을 많이 아프게 해 드렸습니다.
[예수가 누구냐?] [300원짜리 새우깡 이름이냐?] [아니면 외국 코쟁이 청년이냐?]할 정도로 두메산골에서 예수란 이름을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칠순 다된 노인이 막 대학 들어가 예수믿고 성령충만(?)한 저를 이해 해 달라는 것은 무리였지요.
끝내 자식 이기는 애비 없다고 이래도 저래도 못이겠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내가 눈에 흙이 들어오기 전에는 이 집에 안들어 온다] 하시면서 두루마리에 모자를 쓰시고 집을 나가셨습니다.
물론 저는 500미터 이상을 따라가 흙 길에 무릎꿇고 울면서 사정도 하고 빌었습니다. {예수님을 학생들에게 믿게 해야 한다고... 어린 영혼들에게 성경 말씀을 암송시켜야 한다고...] 저의 눈물에 아버지도 고개를 떨구시고 다시 집으로 발 걸음을 돌리셨습니다.
정말 아버님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특히 어떻게 새끼줄로 수 십 키로 씩 되는 꿀을 7순 노인이 짊어지고 새벽기차로 서울로 광주로 다니시며, 자존심도 세신 분이 자식교육 일념에 친척 조카들 찾아다니시며 아쉬운 소리 해 가시며 가르친 대학인데
대학 때 예수쟁이가 되더니 직장 잡아 돈 벌 생각은 않고
첩첩산중 고향에 다시 들어와 예배당 짓고 애들하고 소꿉장난 하고 있으니. . . 당신의 마음이나 마을 분들 앞에 체면이 어떠했을지.
나중에 들은 소리지만 새끼줄에 수십키로씩 되는 나무상자 그대로 묽은 꿀통들을 곡성역에, 그리고 서울역 완행열차에서 내려 짊어지고 가다가 어깨는 끊어질 듯 아파도 쉴 곳을 못찾아 가슴 조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갈대처럼 말라 갈비뼈가 드러난 수염난 7순 노인의 앙상한 모습에 나 혼자 더운 눈시울 울기도 했습니다.
특히 돌아가실 때 대학마친 자식 취직하여 월급 받아 호강은 못할 지언정 돈 잘 벌어 장가가 사는 모습 보시는 것이 소원이었건만 (그때까지 마을에서 역사상 두번째로 제가 대학생이 되었음) 그토록 며느리 보고 죽기를 소원하셨건만 돌아가실때까지 서른둘이 넘도록 장가를 가지 못하고 있었으니 세상에 이런 불효가 어디 있습니까?
시골 예배당에 와 있으면서 함께 산 밭에 괭이로 함께 고추 고랑을 메시다가도 앙상한 몸, 허리를 뒤로 제끼며 하늘을 보시면서 [너 장가 가는 것 보고 내가 죽어야 할 텐데...] 를 자주 하셨거든요.
제가 고등학교 때 담배 피워도 호통 한 번 안치시고 말을 아끼시던 분인데
내가 너무 여자를 고른다고 오죽하면 “섬진강에 나가 네 마음에 맞는 예쁜 돌 하나 골라 봐라. 그렇게 많은 자갈밭에서도 마음에 딱 맞는 것은 없는 법이다”
라고 하신 적이 두 어 번 있습니다.
지금 살아 계시면, 지금 살아 계신다면.... 그토록 보기 원했던 며느리 손으로 그 좋아하는 해물하며 맛난 반찬의 밥상, 좋아하시는 여행 마음껏 시켜 드리고 싶고
늘 아버님 곁에서 이야기도 해 드리고 손녀들 커가는 모습 보여 드리고 싶은데...
지금은 아니 계십니다.
전 제 아버님이 이 세상에 안 계신다는 것이 13년 지난 지금도 실감이 안 갈 때가 많습니다.
아버님과 함께 아내와 딸들과 방에 둘러 앉아 식사하고 TV보는, 내 차로 함께 여행하는 상상을 많이도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살아 계신다 해도 아흔 둘, 거동이나 제대로 하실려나에 생각이 미치면
아! 인생이란 이렇게 다들 오래 못살고 가는 것이로구나, 모두가 그러하였고 형수님도 그럴 것이고 누님들도 나도 그럴 것이구나.
내 마음은 20대 초반 청년이되 어느 덧 40 중반을 가고 있듯이
90넘은 인생이 얼마나 있으며 또 그렇게 살면 어떤 몸이 되어 있겠는가 싶어지면서
물의 흐름마냥 이렇게 가는 것이 삶이로구나... 할 때가 여러 번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좋은 사람, 부모님, 형님이 가신 것이 늘 가슴에 걸리고 꼭 살아 계신 것만 같고
또 늘 이분들은 오래도록 항상 살아 계실 것처럼 내 마음이 당연시 되었었은데
지금은 안 계신 것이. 정말 안 계신 것이 믿기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이불 속에서 조용히 혼자 이분들 생각하다가 잠들 때가 많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눈시울이 붉어 옵니다. 젊어서는 연인을 그리며 살아가지만 나이를 들면서는 부모님의 향수 속에 살아가나 봅니다.
가슴 저리도록 그리운... 생각하면 항상 눈시울 적시는 ...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아버님 영전에 꽃 한송이 바칩니다.
무릉도원 까페 - http://cafe.daum.net/gugudanenglish 2005. 3. 9. 무릉도원에서 오 갑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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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께 애틋한 정이 있는 분들을 뵈면 아.... 이런 분들도 계시구나 싶어요.. 저는 그렇게 부모님께 정이 없는 사람이라서요....ㅠ.ㅠ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산속의 야생화 같으신 목사님의 영어 캠프에 꼭 한번 참석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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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새해 인사도 안드렸네요. 한해 마무리 충실히 잘 하셨을 것만 같으신 목사님,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시고요,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샬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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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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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다님... [보고싶은 아버지]라는 팬다님의 글을 읽고 저도 아버님 생각이 나서 저의 지난 해의 글을 조금 다듬어 올려보았습니다. 늘 함께 살아도 그리운 아내와 딸들처럼 다시 가면 안오는 시절들 처럼 부모님이 그립습니다.
저와 21살 차이가 나는 아버지같은 단 한분이던 형님은 첩첩 산중에 드물게 출세(?)하여 우체국에 근무하셧는데 막네인 저를 너무 사랑하시어 초교때 형님댁으로 전학을 시켜 대학 졸업때까지 먹이고 입히셨습니다.
제가 병원에 입원해 식은땀 흘리고 의식을 헤멜때엔 정이 많으신 형님은 병원 복도에 나가 벽에 머릴 기대고 우셨다고 나중에 전해들었습니다.
이 글을 손 보면서 다시 컴 앞에서 눈물이 납니다. 어머님은 2년 전 가셨거든요. 형님과 어머님 두분이 동시에 암을 앓으셨는데
형님은 63세로 어머니 보다 4개월 먼저 가시면서 어머님께 못 할 짓이라며 힘들어 하셨고 저는 형님 병문안하면서 헤어질 때면 둘이 껴안고 울고 울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의례 형수님도, 형님도, 아내도, 나도 울음 바다였었지요.
두메산골 무릉도원에 창밖에 눈이 쌓이고 지금도 흩날리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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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 각시님... 저도 아버님 살아 계실 땐 효도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시골에 예배당 짓고 내려와 18년 정도 함께 살았습니다. 86세로 04년에 가셨지요. 님도 늘 주님의 평강이 가득하시고 세모에 은혜가 있으시길 바랍니다. 우리 집은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이번에 예배당을 신축하면서 손님 맞이 까페와 잠자리, 숙소를 마련했어요.
첩첩산골 무릉도원...저희 [다음까페]에 눈 구경 오세요 그리고 진짜 우리집 시냇물이 흐르는 까페에도 놀러 오세요.
잠수함 님.. 고마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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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아빠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나옵니다.
전 아빠는 계시지만, 그래도 아빠만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찌르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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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잠기고 눈앞이 뿌얘집니다...목사님의 아버지이시지만 이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아버지의 모습이기도 하지요... 시골에 계신 시아버님, 친정아버지...의 영상과 겹쳐집니다 목사님의 애절한 아버지사랑에 이밤 잠이 쉽사리 올것 같지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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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이님... 저도 오늘 아침 들어와 다시 읽으면서 눈시울이 또 더워 오네요. 은이님은 아빠가 계시니 좋겠어요. 부모님이 살아계시는것은 부모님을 모실수 있는 것은 "광영"입니다. 은혜입니다. 행복하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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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스 맘 님. 아버님은 80에 하나 모자란 나이로 소천하셨습니다. 제 나이 서른 둘에. 제가 두메산골에 있는 관계로 장가는 34에 갔지요. 며느리의 밥상을 못 받으시고 돌아가셨어요. 항상 마음에 걸립니다. 부모님의 밥상을 섬기는 것은 은혜입니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 자주 찾아 뵈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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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의 섬김과 수고로 교회가 아름답게 자리잡아 가는 모습이 너무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요즈음 가까이서 보니까 도시민들이 시골로 예배드리러 가는 모습도 심심찮게 보이더라구요.
한국교회에 새 역사를 쓰시는 목사님 사역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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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삭막한 시대를 살면서 부모님만큼 따스한 품이 있을까요... 목사님,따뜻한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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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시, 김 교수님... 반가운 웃음부터 나옵니다. 벌써 뵌지가 일년이 되었네요? 또 한번 테니스 해야지요? 이번엔 운동화 잊지 마시고 챙기시고요^^
항상 따뜻한 마음으로 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사시는 곳이 창원이셨지요? 팬다님은 대구고... 제가 가도 함께 테니스는 못하겠네... 아내와 함께 4명이 복식은 하겠는데... 아내와 팬다님. 그리고 저와 교수님이 한 편이 되어 짬뽕내기...^^
옥합을 깨는 이 님 방가요^^ 창 밖의 눈 쌍인 두메산골 풍경이 곱습니다. 날씨는 다사롭고...한 낮의 정취가 물씬 풍기네요... 늘 주님의 평강을 누리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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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테니스? 내기요? 좀 쭐리지만 환영합니다. 저는 늘 조용하지만 닛시 어른이 형편이 좀 어떠실랑강?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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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다님... 저는 올해들어 테니스를 일주일, 이주일에 한 번 찾아 하기도 힘드네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산골인 관계로 맘 먹고 나가야 한데다 뭔가 일을 시작하곤, 예배당 건축공사로 맘이 여유가 없어 통 못하고 살았어요. 이번 1월 중순 이후엔 여유를 가져 보려고 합니다. 시골 텁수룩한 형님처럼 느껴져서 항상 반갑습니다. 혹 제가 대구가면 꼬옥 테니스 라켙 챙겨 갈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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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요..팬다님 제가 아직 이 해달 사이트에서 글 속에 그림 넣는 법을 모릅니다. 복사해서...해봐도 안되네요? 좀 알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
해 달에서 저의 글을 퍼 이곳에 옮김. 06.12.2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