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역 ; 의주를 만나는 몇 가지 방법

[헐랭이]

[서울도시철도 문화유적답사]

충정로역 ; 의주를 만나는 몇 가지 방법

충정로역을 중심으로 하는 서대문구 아현동과 합동 일대는 오래된 집들과 새로 들어서는 고층건물들이 그다지 조화롭지 못하게 뒤섞여있는 곳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구석구석에는 최근 100여년 사이에 한국이 겪어 온 경이로우면서도 씁쓸한 역사의 흔적이 역력히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리고 그 흔적들 가운데 몇 가지는 압록강 변 의주와 연결되어 있었다.

[천주교 동산]

약현성당

충정로역 4번 출구를 나서서 첫 번째로 만나는 오른쪽 골목으로 접어들어 길게 이어지는 성요셉 아파트와 서부중앙의원 건물을 따라 걸으면 곧 한국 최초의 고딕 양식 건물이라는 약현성당 입구에 설 수 있다. 이국적인 성당 본당을 중심으로 많은 가톨릭 관련 건물들이, 예전에는 애오개에서 이어지는 언덕이었을 듯한 동산 하나를 뒤덮고 있다.

약현성당 뒷모습

이 성당은 1893년에 완공되었다. 프랑스 신부인 코스트(Coste)가 설계하였다. 코스트는 파리 외방전교회(外邦傳敎會) 소속으로 1868년 동아시아에 와서 홍콩ㆍ싱가포르ㆍ상해ㆍ만주ㆍ일본 등에서 건축 일에 종사하였고, 1885년 한국에 와서 조선교구 경리부(經理部)에 소속되었다고 한다. 신부이면서도 아시아 각지의 성당 건축을 도맡았던 그의 행적은 가톨릭의 아시아 선교가 얼마나 조직적으로 전개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약현성당 성모자상

약현성당에 있는 순교자 기념관

이 성당은 1801년에서 1866년 사이의 천주교 박해 때 44명의 천주교도들이 순교한 서소문 밖 처형장을 내려다보는 곳에 세워진 것이다.

[처형장]
성당에서 처형장으로 가다보면 약현에 고산자 김정호가 살았음을 기리는 비석을 만날 수 있다. 비석은 교차로 한가운데, 교통 섬에서 매연에 찌들어 있다. 염가로 구두를 파는 가게들도 만날 수 있다. 서울의 명소 가운데 하나로 언론에 자주 소개되는 가게들이다.

교통 섬 속의 김정호 기념비


염천교 옆 구두가게


염천교에서 바라본 서울역

   
구두 가게들의 끝에 있는 염천교 위에 서면 서울역 방향의 철길과 의주 방향의 철길을 볼 수 있다. 100년 가까이 기차 매연에 그을려 묘한 색을 띠게 된 철길 양 옆의 축대들과 철길 좌우로 펼쳐지는 고층 빌딩 숲이 함께 눈에 들어온다.

   
순교 성지 기념탑

   

염천교 아래를 지나가는 철길 바로 옆 서소문 공원 안에 서소문 순교성지 기념탑이 있다. 서소문 밖의 비탈진 언덕길 아래, 이교(泥橋)[흙다리] 남쪽의 모래밭. 이곳은 성내와 칠패(七牌)시장을 이어주는 길가이기에 늘 사람이 붐비는 곳이어서, 사람들의 경각심을 높이기 위한 사형을 집행하기 좋은 곳이었다고 한다. 칠패 지역은 도성의 정문인 남대문 가까이에 있고, 당시 한강을 통하여 생활필수품이 많이 들여지는 용산, 마포, 서강과 바로 이어지는 곳이었다. 성당은 이 처형장을 내려다보는 작은 동산 위에 지어졌던 것이다.

[경의선]
그러나 성당이 내려다보는 것은 처형장만은 아니었다. 프랑스인 신부가 지은 성당은 프랑스 회사에 의하여 건설되기 시작하였던 경의선 철길도 내려다보고 있었다. 1896년 프랑스 피브릴(Fives Lile)사가 처음으로 경의선 부설권을 얻었으나 자금 조달이 어려워 부설권을 상실했다고 한다. 그 이후 조선 정부와 왕실도 이 철길을 닦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다가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일본은 이 철길을 대륙침략노선으로 이용하기 위해 공사를 서둘렀다. 1911년 압록강 철교가 완공되자 이 철길은 용산에서 출발하여 철도 역 때문에 의주 읍 옆에 생긴 신도시 신의주와 중국의 만주를 거쳐 유럽까지 이어지는 국제 철도 노선의 일부가 되었다. 지금은 도라산역까지만 자유로이 갈 수 있다.

윤관 장군 동상

철길 옆 서소문 공원 안에는 윤관 장군의 동상이 서 있었다. 윤관은 고려시대 때 여진족을 물리치고 9성을 쌓은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아쉽게도 의주가 그 9성에 포함되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1979년 이 동상을 세운 사람들은 그의 북방 개척의 의지를 기리는 데 경의선 철길 옆이 적절한 장소라고 생각하였던 듯하다. 동상은 용맹한 장수의 기상을 물씬 풍겼고, 동상 테두리에는 9성을 상징하는 성 모양의 돌조각에 9성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도심 속의 건널목                                          경의선 옆 이발관

  
벽에 갇힌 경의선 

서울역과 도라산역을 왕복하는 기차들이 심심치 않게 다니기에 도심 속의 건널목을 체험할 수 있는 경의선 철도를 따라 걷다보면 경의선 철도와 덕수궁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지어진 프랑스 대사관도 눈에 뜨인다. 이래저래 프랑스는 조선의 수도에 성당과 철도를 건설하였고, 1964년에는 열강의 대사관들이 모여 있는 정동 일대와 철길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 르 꼬르뷔지에의 제자인 김중업이 설계한 독특한 대사관 건물을 지었다.

    

프랑스 대사관 안쪽의 건축물과 조경이 얼핏 보아도 예사롭지않다

철길을 따라, 대사관 건물도 바라보고, 1896년 한성공립소학교로 개교했던 미동 초등학교도 지나치면 아현터널이 바라보이는 충정교 위에 올라서게 된다. 꾀죄죄해 보이는 그 다리 밑과 아현터널을 느릿느릿 통과하는 기차들은 유럽까지 달릴 수 있다. 그 철길 따라 그리 길지 않은 구간 곳곳에 미치고 있는 프랑스의 손길이 예사롭지 않았다.

[기독교 골짜기]

애오개 위 아현성결교회

한국 기독교의 연륜을 보여주는 평화의 집

 

            서남동 선생 묘소                              한때 잘 되었다던 미군상대 요리집 입구

   
충정교에서 종근당 빌딩과 연결되는 충정로역 10번 출구 앞까지 걸어가서 7번 출구 쪽으로 길을 건너면 아현 성결교회를 만나게 된다. 1912년까지 역사가 거슬러 올라가는 이 교회의 석조 예배당은 1955년에 지어졌다. 애오개 언덕 위에 서 있는 이 교회는 기독교 교육시설들이 집결하여있는 아현동으로 들어가는 입구라 할 수 있다. 지금은 사라진 구세군 건물, 이사 간 서울신학 대학, 감리교신학 대학교 등 수많은 기독교 교육시설이 아현동 이 골목에 모여 있었다. 아현 성결교회 옆길을 따라가다 보면 한국기독교장로회 신학연구소 선교교육원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는 기둥 안쪽에 오래 되어 보이는 건물이 있다. 평화의 집이다. 그 마당에는 1970년대 한국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서남동 목사의 묘가 모셔져 있다. 묘소 뒤로 보이는 길을 따라 내려가면 아세아연합신학대학의 이국적 벽돌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다시 한국기독교장로회 신학연구소 앞으로 와서 경기대학교 쪽으로 조금 걸어가다가 인창고등학교 입구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시멘트로 흉내만 내서 세운 한옥 솟을대문이 아주 낡은 채로 서 있는 주차장이 있는데, 1960년대까지만 해도 그곳은 미군들을 상대로 국악 공연을 하는 요리 집으로 유명한 곳이었다고 한다.

[무악 봉수대]

무악 동봉 봉수대 오르는 길


무악 동봉 봉수대

무악 동봉 봉수대에서 바라본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과 독립문

요리 집 앞에서 서대문02 마을버스를 타고 금화장 5거리를 거쳐 신일교회 앞 마을버스 종점에 내리면 안산 등산로가 있다. 개나리가 무성한 산길을 따라 오르면 봉수대가 나온다. 지금은 하나 밖에 없지만 원래는 동서 두 개의 봉수대가 안산에 있었다고 한다. 의주로부터 오는 봉수를 받는 무악 서봉 봉수대는 지금 사라졌지만, 강계로부터 오는 봉수를 받는 무악 동봉 봉수대는 복원되어있다. 봉수대 건너편 인왕산에는 서울 성곽이 선명하게 늘어서 있고, 잘생긴 바위들 틈에 웅크리고 있는 기괴한 모습의 선바위도 보인다.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과 독립문이 내려다보인다. 또한 봉수대에 서면 북한산이 보이고 그 왼쪽으로 황해도를 거쳐 평안도로 뻗어있는 길이 보인다. 중국과 조선의 사신들이 오간 길이다. 그곳에는, 19세기에 프랑스 인들이 만들기 시작하였고 지금도 프랑스 인들이 내려다보고 있는 철길이 아니라, 한국인들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든 불꽃의 길, 봉수가 있었고, 그곳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에는, 지금은 잠시 가로막혀있지만, 장차 한반도와 대륙을 연결하여줄 길이 뻗어 있었다. 그 길 위에 영은문과 독립문이 있었고, 그 길옆에 서대문 형무소가 있었다.

무악 동봉 봉수대에서 바라본 의주방향

오래된 아파트 풍경

의주를 만나는 몇 가지 방법 찾기를 겉으로 내세운 답사 길은 프랑스, 일본, 가톨릭, 기독교, 미국 군대의 손길을 확인하는 길이 되었다. 봉수대에서 마을버스 종점으로 돌아 내려와서 교회 뒤쪽 오래된 아파트 부근을 서성이며 지는 해를 바라보자니 기분이 좋아졌다. 이상한일이다                 

                                                                   [행복미소] 2010-05-01 글/사진 이유진 칼럼니스트

 

[조경바치규백]

저기 구두가게가 지금도 있네! 등산화 사러 갔었죠.

[헐랭이]

거기두 등산화를 파나여~~ 신사화,숙녀화,학생화....그런 걸 파는 줄 아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