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집총거부권'
: 병역기피의 빌미인가 '양심의 자유'의 구성요소인가?
Conscientious Objection to Military Service as a Right
曺 國 Kuk Cho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조교수
I. 머리말
II. 우리나라에서의 '양심의 자유'의 정의와 그 보장의 현황
III. '양심적 집총거부권'에 대한 국제적 보장의 현재
1. 각국별 법적 보장의 현재와 근거
2. 국제법적으로 승인되어 가고 있는 인권
3. 각국별 '양심적 집총거부권' 보장의 현황
VI.. '양심적 병역거부'는 '이단' 종파의 교리?
V. 한국에서 '양심적 집총거부권' 실현을 위한 몇 가지 점검사안
VI. 맺음말
각주
I. 머리말
근래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양심의 자유는 주로 현재는 폐지된 '사회안
전법'에 따른 '전향' 및 '보안감호처분' 제도, 그리고 그 후신인 '준법서약
서' 제도 및 '보안관찰법'에 따른 '보안관찰' 제도 등과 관련하여 논의되
어 왔다. 그리하여 양심의 자유는 '장기좌익수'이나 체 제에 도전하는 국가
보안법 위반자의 전유물인 것처럼 오해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최근 수많은 '여호와의 증인'(Jehovah's Witnesses) 신도들이 집총
거부를 이유로 수형생활을 하고 '전과자'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
에 새삼스레 보도되면서 양심의 자 유 문제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과거 반
공과 냉전의 논리만이 허락되었던 권위주의 체제하 에 '이단' 종교에 빠
진 '병역기피자' 라는 이중의 낙인 아래 외면되었던 양심적 집총거부자들
의 인권문제가 드디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양심적 집총거부'(conscientious objection to military service)란 양심
적 이유로 징집 등 병역의무를 거부하거나 전쟁 또는 무장충돌에의 직·간
접적 참여를 거부하는 것으로, 양심 의 자유와 관련하여 핵심적으로 다루어
져야 할 내용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병역문제가 갖는 민감성 때문에 학계에
서나 비학계에서나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 운 문
제였다. 과거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민주화운동가들이 군입대를 거부하고 활
동을 계속 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이러한 입대거부는 양심의 자유를 실현한
다는 차원에서 목적의식적 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에서 양심적 집총거부권의 문제는 수십 년간 거의 특정
종교인들의 부담으로만 방치되었던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91년 이후 총 4
천 243명이 종교적 이유로 집총을 거부하여 이중 3천 736명이 항명죄로 유
죄판결을 받았던 바, 한 해 평균 400여명의 집총거부자가 생겨나고 있으
며, 현재 전국의 민·군 교도소에 약 1천 6백명이 수형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1) 이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존경하는 판사님과 검사님. 저는 여호와를 숭배하는 백성으로서 성서적 양
심을 지키고자 입영을 하지 않고 자수하여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저는 국
가적 관점에서 보면 처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이웃을 내 자신처럼 사랑하
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의를 행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2)
양심의 자유는 양심에 반하는 '작위의무로부터의 해방'을 포함하는데, 집총
이라는 작위의 무가 자신의 양심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경우 무조건적으로
전자의 우월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인가를 심각하게 논의할 때가 되었다. 양
심적 집총거부권의 문제는 국방부 외에도 '정통' 기독교계의 반발을 야기
할 것으로 충분히 예상되지만, 우리는 이를 '인권'이라는 관점에 서 서 바
라볼 필요가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민주화로
는 불충분하며 사회·경제·문화적 민주화를 위한 노력이 필수적으로 요구
되며, '정치적 민주화' 이후에 도 억압받거나 차별받는 '소수자'(the
minority) 집단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 글은 먼저 양심의 자유의 내용에 대한 우리나라의 법원의 태도를 살펴보
면서 시작한 다. 이어 이 글은 외국의 경우 양심적 집총거부권은 어떻게 보
장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 나 아가 이 권리는 이제 국제법적인 인권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마지막으 로 우리나라에서 양심적 집
총거부권 보장과 대체복무도입 문제를 둘러싸고 예상되는 몇 가 지 쟁점을
정리한다.
II. 우리나라에서의 '양심의 자유'의 정의와 그 보장의 현황
서구의 역사에서 양심의 자유는 원래는 신앙의 자유의 일환으로 보장되었
다. 양심의 자유는 서구에서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의 피비린내 나
는 대립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지배적 종교 하에서 자신의 종교를 지키려
는 투쟁에 의하여 정립된 자유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조선시대 말 천주
교도의 순교, 일제치하에서 기독교도의 신사참배 거부 등 양심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가 동시에 침해되는 사건도 있었다. 미국의 1776년 버지니아 헌
법, 독일의 1818년 바이에른 헌법, 1850년 프로이센 헌법, 1919년 바이마
르 헌법 등은 두 자유를 한 틀 에 묶어 보장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국가와 교회의 분리가 이루어진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양심의
자유는 종교의 자유와는 구별되는 정신적 기본권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우
리 헌법 제19조 역시 양심의 자유를 종교의 자유와 별도로 규정하고 있
다. 그리고 헌법의 규정방식이 어떠한가와 관계없이, 현대 민주주의국가에
서 양심의 자유가 시민의 기본적 인권임은 이론의 여지없이 받아들여지 고
있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양심의 자유를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
서 그렇게 행동 하지 아니하고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 의 소리"3)로 정의하고 있으며, 이는 "세계
관, 인생관, 주의, 신조 등은 물론 이에 이르지 아 니하여도 보다 널리 개
인의 인격형성에 관계되는 내심에 있어서의 가치적, 윤리적 판단도 포함"4)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서 양심의 자유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를 유지하 기 위해서 그 외의 어떠한 정신적 자유보다도 제1차적으로 보장
되어야 할 정신적 기본권이 며, 또한 민주주의 체제의 존속과 발전을 최후
에 담보하는 정신적 기본권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양심의 자유는 다른 각
종의 정신적 자유, 예컨대 학문, 학문, 예술의 자유 등과 긴밀 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중첩되어 발현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양심의 자유는 양심을 형성하고 결정하는 '내심의 자유'(forum
internum)는 물론 이고, 양심과 사상을 소극적으로 지킬 수 있는 자유, 즉
ⓐ자신의 양심과 사상을 언어 또는 행동으로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제되지
않는 자유, ⓑ 양심과 사상에 어긋나는 작위(作爲)를 강요당하지 않는 자
유 등이 포함된다(양심의 자유에 양심을 적극적으로 실현하는 자유가 포 함
되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뉜다).5)
그런데 '내심의 자유'의 경우는 절대적으로 보장되는 것으로 국가가 개입
할 수 없다는 점 에는 이견이 없다.6) 그러나 '양심실현의 자유'(forum
externum)는―소극적으로 양심을 지키 는 침묵의 자유이건, 적극적으로 자
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자유이건―"타인의 기본권이 나 다른 헌법적 질
서와 저촉되는 경우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
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법률에 의하여 제한될 수 있는 상대적 자유"로 파악
되고 있다.7) 요 컨대 우리 법원은 양심의 자유가 내심에 그치는 한에서만
제약을 받지 않을 뿐이지, 양심이 소극적으로건 적극적으로건 외부로 표출
될 때는 제약을 받을 수 있다는 견해를 취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 몇 가지를 보면, 국기에 대한 경례를 우상숭배라는 이유로
거부한 여고생 에 대한 제적처분은 양심의 자유에 반하지 않는다는 판
결,8) (구)국가보안법 제10조의 '불고 지죄'가 '양심의 자유'에 반하지 않
는다는 결정,9) (구)사회안전법이 '전향' 여부를 보안처분 면제요건 또는
보안처분기간의 갱신여부 판단기준으로 삼는 것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아니라는 판결,10) 보안관찰법상의 보호관찰처분은 피보안관찰자의 재
범방지를 위해 내려지는 특별예방적 처분이므로 양심의 자유에 반하지 않는
다는 결정11) 등이 있다.
이러한 판결에 대한 본격적 비판은 차후로 미루기로 하겠으나, 여기서는 양
심의 자유라 는 것이 그 실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인지, 그리고 '양심실현 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는 상대적 자유라
하더라도 그 제한의 방법과 정도가 타당한 것인 지 등은 철저히 따져보아
야 한다는 점만 짚어두기로 한다. 이 글의 주제인 양심적 집총거부 권 역
시 법원에 의하여 일관되게 부인되어 왔다.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가진다고 되어 있어
서 병역법은 위 헌법의 규정에 따라 제정된 것으로서 같은 법의 규정에는
특단의 사정이 없는 이상 모든 국민은 다같이 이에 따라야 하며, 피고인
이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종교를 신봉하고 그 교리에 크리스토인의 '양심
상의 결정'으로 군복무를 거부한 행위는 응당 병역법의 규 정에 따른 처벌
을 받아야 하며 ... 논지에서 말하는 소위 '양심상의 결정'은 헌법 제17조
에서 보장한 양심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12)
그리하여 우리 사회에서 양심적 집총거부자는 입영 자체를 거부하면 병역
법 제88조의 '입영기피죄'로, 입영 후 집총을 거부하면 군형법 제44조
의 '항명죄'로 단호하게 처벌되고 있 다. 시민의 양심이나 그가 신봉하는
종교의 교리가 어떠한 것이건 간에 병역법은 개의치 않 으므로, 시민은 병
역법 앞에서는 자신의 신조와 양심을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
는 것이다.
법률의 평등한 집행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주장이 가능하겠으나, '양
심의 자유'는 그 어떠한 자유보다도 가장 근본적인 자유이며, 국가의 존재
보다 근원적인 자유이 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응당"이라는 표현을 쉽게 쓸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조선시대 말 천주교도의 종교를 지키기 위한 순
교, 일제치하에서 기독교도의 신사참배 거부와 이에 따른 순교 등 양심·종
교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이 선조들을 향하
여 당시 국교가 유교이므로 응당 처벌을 받아 마땅했다고, 신사참배는 당
시 국가의 방침이 므로 응당 따랐어야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여호와의 증인'의 교리에 동의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그들이 히틀러 치하
에서 '보라색' 딱지를 가슴에 달고 강제수용되어 목숨을 버려가면서도 양심
적 집총거부의 신조를 지켰다는 점, 최근까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음에
도 우리나라의 수많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일관 되게 집총보다는 감옥을
선택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신의 이름에 부들부 들 떠
는 자"들인 퀘이커(the Quakers) 들은 제1차 세계대전 중 양심적 집총거부
자들을 도와 선택적 군복무 형태의 일환으로 구제사업과 구급차 부대에서
일하도록 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정신병원을 비롯한 인도적인 부
문에서 일하는 것도 선택적 군복무 범위에 포함 되도록 노력했다.
이후 1947년 미국 퀘이커 봉사협회(Friends Service Committee)는 영국의
퀘이커 봉사협회와 함께 공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바 있다. 이렇듯 양
심적 집총거부자 들의 집총거부에 대한 신념의 진지함과 철저함은 이미 역
사적으로 검증된 사실이라고 할 때, 국가가 병역법이라는 실정법률을 이유
로 무조건 이들의 종교적· 양심적 신념을 포기하 라고 강제하는 것이 정당
한가에 대해서는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양심적 집총거부자에게 집총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양심 또는 종교의 근본을 뒤흔들고 인격의 자기동일성
을 파괴하는 것이다.
징병을 통한 국가의 이익 역시 중요하지만 이것이 양심적 집총거부자에게
집총을 강제해야 할만큼 근본적이고 절박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양심적
집총거부자는 전투행위에 애초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며, 징병제에 대한 국
가의 이익 은 양심적 집총거부자에 대한 처벌이나 강제징집을 하지 않고서
도 충족될 수 있기 때문이 다.13) '소수자' 집단의 상황을 무시하며 법률
을 기계적으로 집행하기보다는, 그들의 종교와 양심을 존중하면서도 그들
이 다른 방식으로 사회에 봉사할 기회를 주는 제도는 마련하는 것 이 국가
의 '의무'가 아닐까?
그렇다면 이하에서는 전세계적으로 양심적 집총거부권은 어떻게 보장되고
있는가, 그리 고 국제법적으로는 어떠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하여 살
펴보기로 하자.
III. '양심적 집총거부권'에 대한 국제적 보장의 현재
아직 우리에게는 양심적 집총거부권이라는 개념은 여전히 낯설며, 자칫하
면 병역기피를 위한 빌미라고 매도당하기 십상이다. 따라서 먼저 양심적 집
총거부권은 전세계 민주주의 국 가에서는 법적으로 보장되고 있는 기본권
의 일환이며, 국제법적으로도 승인되고 가고 있는 인권임을 살펴보기로 하
자.
1. 각국별 법적 보장의 현재와 근거
양심적 집총거부권이 헌법상의 권리로 보장된 최초의 사례는 1776년 미국
펜실바니아주 헌법이다. 동 헌법 제8조는 "집총을 하는 것에 대하여 양심
적 가책을 느끼는(conscientiously scrupulous) 어떠한 사람도 그가 대체복
무를 하려 한다면(if he will pay such equivalent) 집총하도록 강제될 수
없다"라고 선언한다.14) 이러한 입장은 1777년 버몬트주 헌법(제9조), 1776
년 데라웨어주 헌법(제10조), 1784년 뉴햄프셔주 헌법(제13조) 등에서 동일
하게 반복된다.
유럽의 경우 제1차 세계대전의 참상에 자극받은 영국 평화주의자의 투쟁의
결과 1916년 유럽 최초의 대체복무법이 영국에서 제정된 이후 1920-30년대
에 걸쳐 덴마크, 네덜란드, 노 르웨이 등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는 최초의 법안이 의회에 서 제정된다. 당시부터 "대
다수의 유럽 민주국가에서 '유럽적 민주주의'와 '병역거부권 인정' 은 동의
어로 통하기 시작했던 것"이다.15)
현대에 들어서 이러한 양심적 집총거부권은 유럽 여러 나라에 걸쳐 헌법에
명문화되기에 이른다.16) 유럽에서는 독일 헌법이 선구자인데, 1949년의 독
일 헌법 제3조는 유럽에서 "누 구도 자신의 양심에 반하여 무장투쟁을 포함
하는 군복무를 강제당하지 않는다"라고 규정하 였으며, 이어 1976년 포르투
갈 헌법(제41조 5항), 1978년 스페인 헌법(제30조 2항) 등도 동 일한 내용
을 선언하였다. '국가사회주의' 체제를 취하고 있던 동구 여러 나라도 체
제 붕괴 이후에는 양심적 집총거부권을 헌법에서 명문화하고 있다. 예컨대
크로아티아 헌법(제47조), 슬로베니아 헌법(제123조), 에스토니아 헌법(제
124조), 슬로바키아 헌법(제25조 2항), 체크 공화국 헌법(제15조 3항), 그
리고 러시아 헌법(제28조)등이 있다. 한편, 유럽 외에는 브라질, 우루과
이, 수리남, 잠비아 등에서 양심적 집총거부권이 헌법에서 인정되고 있다.
이상과 같은 '양심적 집총거부권'의 헌법적 보장은 어떠한 사상에서 도출
된 것인가? 이와 관련하여 1940년 'Minersville School District v.
Gobitis 판결'17)의 다수의견이 국기경례의식이 합헌이라는 결론을 내렸
을 때, 외로이 소수의견을 제출한 스톤 대법관의 주장을 경청 할 필요가 있
다. 그는 국기경례의식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이루어진 '여호와의 증인' 신
자에 대한 제척처분이 합헌이라는 보는 다수의견은 "소수자의 자유에 대한
헌법적 보호를 대중적 의지(popular will) 앞에 굴복시킨 것에 다름 아니
다"라고 강력히 비판하였다.18) 민주주의란 다수의 지배이지만, 다수의 지
배의 이름 하에 소수자의 양심과 신념을 무시하는 것은 또한 민주주의에 대
한 부정임을 그는 감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톤 대법관의 이러한 입장은 이후 1943년 'West Virginia State Bd. of
Education v. Barnette 판결'19)에서 다수의견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 판결
도 '여호와의 증인'의 국기경례 거부와 관련된 것인데, 다수의견은 어떠한
방식으로건 국가가 시민에게 말 또는 행동으로 자신의 신념을 고백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 다.
그러나 다를 수 있는 자유(freedom to differ)는 사소한 사안에 제한되지
않는다. 다를 수 있는 자유는 단순히 자유의 그림자로 생각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를 수 있는 자유의 실체는 기존 질서의 심장을 건드리는 사안에
대하여 다를 수 있는 권리가 있는가 여부 로 검증되는 것이다.20)
요컨대 양심적 집총거부권의 헌법적 보장은 병역의무라는 국가존립을 위한
핵심적 사안 에 대하여도 이를 거부하는 소수자집단의 양심을 존중하는 것
이 민주주의라는 선언이다. 이 는 소수자의 양심이 아무리 국가질서에 위협
을 주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 양심을 헌법적 차 원에서 용인·보호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이는 소수자에 대한 관용이 민주주의의 핵심 임을 분명
히 한 것이라 하겠다. 양심의 문제는 결코 다수결로 결정짓는 사안이 아닌
것이다.
2. 국제법적으로 승인되어 가고 있는 인권
(1) 유엔
이상과 같은 양심적 집총거부권은 국제법적으로도 수용되어 가고 있다. 먼
저 '시민·정치 적 권리에 대한 국제규약'(ICCPR) 제18조 1항은 '양심·사
상·종교의 자유'를 선언하고 있는 데,21) 여기서 양심적 집총거부권이 명
시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 규약초안 작성시에 필 리핀 대표가 '양심적
집총거부권'을 포함시키는 제안을 하였다가 철회한 바 있다.22) 과거 전통
적 견해는 이 조항이 양심적 집총거부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었
으나, 근래 의 국제사회에서는 제18조가 양심적 집총거부권을 포괄하는 것
이라고 해석하는 흐름이 강력 하게 자리잡고 있다.
양심적 집총거부권에 대한 최초의 유엔 차원의 결의는 1987년 'United
Nations Commission on Human Rights'의 '46호 결의'인데,23) 이 결의는
각 국가에게 "종교적, 윤리 적, 도덕적 또는 이와 유사한 동기에서 발생하
는 심오한 신념"에 기초한 양심적 집총거부권 을 인정하라고 호소하였다.
단, 이 결의는 해당 국가에서 최종적 재량을 남겨두는 조언적 성격을 갖
고 있었다.24)
이후 동 위원회는 1989, 1993, 1995, 1998년의 네 차례에 걸친 결의에서 양
심적 집총거부 권을 '세계인권선언' 제18조와 ICCPR 제18조 속에서 근거지
웠다.
1989년 '59호 결의'는 호소 수준을 넘어서 세계인권선언 제3조, 제18조 및
ICCPR 제18조 에 기초하여 양심적 집총거부권 자체를 인정하고, 양심적 집
총거부권의 문제를 유엔헌장상 의 국가의 의무와 연결시켰으며, 각국이 이
권리를 인정하고 이 권리를 행사하는 개인을 위 한 의사결정체제를 수립할
것을 호소하였다.25) 그리고 1993년 '84호 결의'는 이전의 결의내 용을 재
확인하면서, 양심적 집총거부권을 인정하지 않은 국가에 대하여 특정 사안
에서 양심 적 집총거부가 유효한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하여 국내법체계 속
에 "독립적이고 불편부당한 의사결정기구"를 만들 것을 호소하였다.26)
또한 1995년 '83호 결의'는 1993년 '84호 결의'의 내용을 재확인하고, 양심
적 집총거부로 자신의 모국을 떠나야만 했던 사람에서 세계인권선언 제18조
상의 망명권이 있음을 상기시킨 다.27) 그리고 동 결의는 새로운 내용을 추
가하는데, 즉 각 국가가 법과 관행에 의하여 "양 심적 집총거부자들이 가
진 특정신념의 본성을 이유로 그들을 구별하지 말 것, 또는 양심적 집총거
부자가 병역을 거부하였다는 이유로 그들을 차별하지 말 것"을 강력히 주장
하였 다.28) 이는 ICCPR 제18조에 대한 'United Nations Human Rights
Committee'의 1993년 '22 호 총평'의 결론을 수용한 것이었다.29) 동 '총
평'은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규약[ICCPR]은 양심적 집총거부권을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러
나 동 위원회 는 살상무기를 사용해야 하는 의무가 양심의 자유 및 자신의
종교 및 신념을 표현할 권 리와 심각하게 충돌할 수 있으므로, 양심적 집총
거부권이 규약 제18조에서 도출될 수 있 다고 믿는다. ... 양심적 집총거부
자들을 그들이 가진 특정신념의 본성을 이유로 구별해서 는 안되며, 또한
마찬가지로 양심적 집총거부자가 병역을 거부하였다는 이유로 그들을 차별
해서는 안된다.30)
1998년 '77호 결의'는 이전의 모든 결의를 총괄하는 중요한 결의로서, 그
내용을 요약하 면 다음과 같다.
동 결의는 먼저 서문에서 양심적 집총거부권은 "종교적, 도덕적, 윤리적,
인도주의적 또 는 이와 유사한 동기에서 발생하는 심오한 신념 또는 양
심"에서 유래하는 것이며, 이미 군 복무를 하고 있는 사람도 양심적 병역거
부를 할 수 있음은 밝힌다.31) 이어 동 결의는 양심 적 집총거부권은 세계
인권선언 제18조 및 ICCPR 제18조에 기초한 정당한 권리행사라는 점 을 분
명히 하고,32) 이 권리를 인정하지 않은 국가는 양심적 집총거부자의 신념
의 본성을 차별하지 말고, 특정 사안에서 양심적 집총거부가 진지하게 이루
어졌는지를 결정하기 위한 독립적이고 불편부당한 의사결정기구를 만들 것
을 호소하고 있으며,33) 또한 징병제를 채택 하고 있는 국가의 경우 비전투
적 또는 민간적 임무를 수행하며, 징벌적 성격을 띄지 않는 대체복부제를
실시하라는 권고하고 있다.34)
그리고 동 결의는 각국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투옥하지 않도록 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강조하고,35)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경제·사회·문 화·시민 또
는 정치적 권리 등의 측면에서 차별해서는 안된다고 부언하고 있으며,36)
양심 적 병거부권에 대한 정보가 이용가능해야 함을 적시하였다.37)
(2) 유럽38)
한편 유럽의 경우 1967년 '유럽회의'의 '자문의회'(the Consultative
Assembly of the Council of Europe)는 '결의 337'를 통하여 양심적 집총거
부권을 인정하였다. 이는 사상, 양 심 및 종교의 자유를 선언하는 '유럽인
권규약' 제9조에 의거한다. 이후 이 결의에 기초하여 1987년에는 '유럽회
의'의 '장관위원회'(the Committee of Ministers)가 양심적 집총거부권을
인정하지 않는 각국에 국내법과 관행을 변경하도록 요청하는 '추천 87
(8)'을 채택하였다. 한 편 '유럽의회'(European Parliament)는 1983,
1989, 1993, 1994년의 결의를 통하여 이상의 점 을 재확인한다. 특히 1994
년 결의는 'United Nations Commission on Human Rights'의 1989년 '제59
호 결의'에 의해 승인된 양심적 집총거부권은 "진정한 주관적 권리"임을 재
강조 한 바 있다. 이상의 '결의'와 '추천' 내용은 상술한 유엔의 '결의' 내
용과 큰 차이가 없다.
3. 각국별 '양심적 집총거부권' 보장의 현황
한편 전세계 국가에서 양심적 집총거부권의 보장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
가에 대해서 는 1997년의 유엔 사무총장의 보고서가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
다.39)
먼저 1997년 현재로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징병제가 없는 국가로는 영국, 미
국,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벨기에, 호주, 뉴질랜드, 카나다, 일본, 말레이
시아, 사우디 아라비아, 인도, 파키 스탄, 방글라데시, 남아프리카 공화
국, 우루과이 등 69개국이고,40) 징병제가 있으나 군복무 는 원칙적으로 임
의적인 것으로 하는 나라로는 아르헨티나, 인도네시아, 온두라스, 나이지
리 아, 세네갈 등 13개국이며,41) 징병제가 있으나 실시되지 않는 국가로
는 엘살바도르와 나미 비아의 2개국이다.42)
한편 징병제가 있으나 양심적 집총거부를 하는 사람에게 민간에서의 대체봉
사 또는 군내 에서의 비무장복무를 국가로는 독일, 덴마크, 프랑스, 오스트
리아,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 갈, 노르웨이, 스페인, 핀란드, 라트비
아, 리투아니아, 벨라루스, 불가리아, 슬로바키아, 슬로 베니아, 우크라이
나, 에스토니아, 폴란드, 체크 공화국, 헝가리, 케이프 베르드, 사이프러
스 등 25개국이다.43) 그리고 양심적 집총거부자에게 무장한 군부대 내에
서 비전투임무를 부여 하는 것을 법률로 허용하는 2개의 국가가 있으며, 법
률로는 이를 허용하지 않고 사안별로 임시적으로 이러한 조치를 하는 3개
의 국가가 있다.44)
이상의 나라들은 대부분 헌법과 하위 법률에 따라 대체복무가 인정되는데,
대체복무의 내용은 구제활동, 환자수송, 소방업무, 장애인을 위한 봉사, 환
경미화, 조경·농업, 난민보호, 청소년보호센터 근무, 문화유산의 유지 및
보호, 감옥 및 갱생기관 근무 등이며, 기간은 현 역복무기간의 1-1.4배 정
도이다. 네덜란드와 핀란드의 경우 '여호와의 증인'을 위한 특별규 정을 두
고 있다.45)
그리고 양심적 집총거부나 대체복무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국가로는 남북한
을 포함하여, 중국, 싱가포르, 캄보디아, 타일랜드, 필리핀, 베트남, 그리
스, 터키, 소말리아, 수단, 에티오피 아, 예멘, 이집트, 아프가니스탄, 이
란, 이라크, 이스라엘, 알바니아, 그루지아, 알제리아, 과테 말라, 도미니
카, 볼리비아, 에쿠아도르, 베네주엘라, 칠레, 콜롬비아, 쿠바, 페루, 혼두
라스 등 48개국이 있다.46)
VI.. '양심적 병역거부'는 '이단' 종파의 교리?
양심적 집총거부자의 인권이 사회문제화는 와중에 일부 국회의원을 중심으
로 양심적 집총거부자의 대체복무를 인정하는 법안이 추진되자, 보수적 기
독교단체에서 강한 반발이 제기되었다. 대표적으로 '한국기독교총연합
회'(이하 한기총)의 성명서의 내용을 보자.
여호와의 증인은 미국에서 발생한 기독교의 탈을 쓴 이단으로서 '집총거부
(병역기피)', ' 수혈거부', '국기배례거부' 등으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해왔
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호와 의 증인이 집총을 거부하고 병역을 기피는
이유는 국가와 정부를 사탄의 조직으로 보기 때문이다. ... 종교의 자유와
소수의 인권 보장을 내세워 여호와의 증인이 끼치는 폐해는 간과하고 마치
양심적인 종교인으로 포장하고 미화하는 발상은 위험한 것이다. 이 법안
은 부작용이 클 것이다. 왜냐하면 살생을 금하는 종교도 있고 어느 종교든
전쟁이나 군 입대를 거부할 수 있는 논리를 만들 수 있는 개연성이 있을 뿐
만 아니라 이를 특화하는 새로운 종교의 출현도 예견해 볼 수 있을 것이
다. 또 종교의 자유에는 개종의 자유가 있 는 만큼 중간에 종교를 바꾸는
것을 강제로 막을 수 없는 문제점도 안고 있기 때문에 병 역기피자의 도피
처로 악용될 수 있을 것이다.47)
즉, 병역거부는 '이단' 종파들이나 하는 것으로, 대체복무제는 '이단'종파
를 위한 특혜라는 주장으로, 이 주장에는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면 "병역기
피 풍조가 만연한 상황에서 여호와의 증인의 집중전도 대상이 되는 기독교
인들 중 일부가 대체복무제에 귀가 솔깃해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48)
기독교신자가 아닌 필자로는 기독교의 '정통'과 '이단'에 대한 논쟁에 대해
서는 과문(寡 聞)하다. 그러나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문제가 단지 '정통' 기
독교와 '여호와의 증인' 간의 대 립구도 속에서 그 본래의 취지가 왜곡될
까 우려스럽다. 양심의 자유와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인
권'과 관련된 문제인 것이다. '이단'의 양심도 양심이며, '이단'의 인권
도 인권인 것이다.
한편 기독교 내에도 '한기총'과 다른 입장이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기독교
계에서 '한국기 독교연합회'와 다른 한 축을 이루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
회'(KNCC)가 전국 150여명의 위원 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는 복무기
간을 길게 잡아야 한다는 등 단서조항을 달고 있기 는 하지만 70% 정도의
위원들이 인권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시하였 다고
보도되고 있다.49)
그리고 기독교신자인 김두식 교수의 지적처럼, 양심에 의한 병역거부권
은 '여호와의 증 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50) 기독교인으로 최초의 병역
거부 순교자였던 막시밀리안은 서 기 295년 징집을 거부했다가 총독의 명
에 의해 즉각 처형되었고, 그는 훗날 성인 칭호를 받 았고, 이후 '종교개
혁' 그룹 중 '재세례파'(Anabaptists), 이 입장을 이어받은 '모라비안 형
제 단'(Moravian Brethren), '메노나이트 교도'(Mennonite), 그리고 영국
의 '퀘이커 교도'들도 ' 기독교 평화주의'(Christian Pacificism)의 입장에
서 병역을 거부하였고, 이들은 기독교 내에 서 '이단'으로 취급되지 않고
있다. 김 교수는 말한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존재하기 훨씬 전부터 기독교인들 중 일부는 양심에 의
한 거부권을 행사해왔고, 현재 존경받고 있는 기독교 지도자들 중에도 이
를 실천한 분들이 많이 있다. 기독교 내부에서는 언제나 성경의 가르침을
이런 식으로 받아들여온 입장이 있어왔고, 이러한 평화주의자들의 입장은
정의로운 전쟁 이론을 받아들인 주류의 입장과 함께 기독 교 내부의 균형
을 이루어왔다. 우리나라에서 오직 여호와의 증인들만이 병역거부의 주체
인 것처럼 오해받아 온 것은 세계사적으로 매우 특이한 일이다. 병역거부
가 여호와의 증 인들뿐만 아니라 기독교 내부에서도 있을 수 있는 입장이라
는 상식을 받아들이고 나면 문제해결은 한결 쉬워진다. 대체복무가 이단들
을 위한 특혜라는 주장도, 기독교인들 중 일부가 여호와의 증인으로 넘어
갈 수 있다는 우려도 모두 근거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51)
요컨대, 양심적 병역거부는 초기 기독교 시절부터 행사되었으며, 1872
년 '여호와의 증인' 이 미국에서 등장하기 이전에도 '정통' 기독교 내에서
철저한 평화주의의 입장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실행하는 교파가 존재하였
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기 독교와 이단간의 대립
구도로 끌고 가는 것은 분명한 오류이다.
V. 한국에서 '양심적 집총거부권' 실현을 위한 몇 가지 점검사안
이상에서 우리는 양심적 집총거부권이 세계 민주주의국가의 국내법과 국제
인권법에서 더 이상 주변적 관심사항이 아니라, 양심·사상·종교의 자유
의 기본적 구성요소로 간주되고 있으며, 기독교 내에서도 이를 신앙의 구성
요소로 수용하는 흐름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러 한 맥락에서 우리 정부
는 "양심의 자유가 위협받는 생활영역이 발견될 때마다 양심의 갈등 이 감
소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거나 아니면 양심의 자유가 신장될 수 있는 적
극적 가능성 을 모색해서 실천에 옮기는 적극적인 성의를 보여야 할 헌법
적 의무"52)를 방기해왔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양심적 집총거부권을 한국에 실현하기 위해서 점검해야 할 몇 가
지 사안을 검 토해보기로 하자. 첫째, 양심적 집총거부권은 특정 종교신자
에게만 특혜를 주는 사안인가 하 는 문제이다. 우리나라에서 양심적 집총거
부는 주로 '여호와의 증인', '제칠안식일예수재림교' 신자들에 의해 이루어
져 왔음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권리의 명칭에서도 드러나듯이 이 권 리
는 '종교의 자유'에서만 도출되는 것은 아니며, 종교와 무관한 '양심의 자
유'에서도 도출되 는 것이다. 따라서 위의 두 종교의 신자가 아니더라도 철
저한 평화주의자―'불살생'과 '불축 살생구'의 계를 철저히 관철하는 불교
승려 또는 신도이건, 종교는 없지만 국가가 수행하는 모든 전쟁은 악이라
믿는 자이건―라고 한다면 양심적 집총거부권은 인정된다. 대만의 경우 불
교 승려에게 대체복무가 인정되고 있으며, 노르웨이의 경우 핵전쟁반대 운
동가들에게도 대체복무가 인정되고 있다.
실제 미국 연방대법원의 1965년 'United States v. Seeger 판결'53)은 양심
적 집총거부는 종교적 신념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며 "신에 대한 정통적
믿음으로 꽉 차 있는 신념에 비 견되는 정도로 그 신념의 소유자의 삶에서
자리잡고 있는" "진지하고 유의미한"(sincere and meaningful) 신념에서도
가능하다고 판시하였다.54) 그리고 상술한 'United Nations Commission on
Human Rights'의 1995년 '83호 결의'와 1998년의 '77호 결의'도 양심적 집
총거부의 근거를 "종교적, 도덕적, 윤리적, 인도주의적 또는 이와 유사한
동기"로 설정하면 서, 양심적 집총거부의 신념를 그 내용에 따라 차별해서
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또한 엠네스티 인터내셔널도 양심적 집
총거부권은 "종교적, 윤리적, 도덕적, 인도주의적, 철 학적, 정치적 또는
이와 유사한 동기"에서 도출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55)
둘째, 양심적 집총거부권을 인정될 수 있는 집총거부의 정도이다. 미국의
경우 양심적 집 총거부는 특정 전쟁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일체의 전쟁에
대한 거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 고 있다.56) 이 입장에 따르면 (가상
의) '대일본전' 참전은 거부하는데 (가상의) '남북한전쟁' 은 참전하겠다
고 하면 양심적 집총거부자가 아니다. 반면 엠네스티 인터내셔널은 특정 전
쟁 에 국한된 집총거부―이른바 "선택적"(selective) 집총거부―도 그것이
양심에 기초한 것이 라면 인정하고 있다.57) 양심의 자유의 철저한 보장이
라는 관점에 서자면 후자가 타당하겠 으나, 현 단계 한국의 현실을 고려할
때 "선택적" 집총거부도 인정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수 용되기 힘들다고 생
각한다.
셋째, 양심적 집총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의 구체적 양태와 기간 문제이
다. 먼저 양태 와 관련하여 여러 방안을 모색해보아야 한다. 양심적 집총거
부자를 군부대 내에서 배치하되 군사훈련을 면제하고 비군사적 임무를 수행
하는 방안도 있을 수 있으나 이는 군대내에서 위 화감 조성 등 부작용이 생
길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양심적 집총거부자를 군대 바깥에서 시 민적 통
제하에 놓고 비군사적 일을 시키는 방안이 더 타당하다고 본다.
그리고 상술한 'United Nations Commission on Human Rights'의 1998년 '77
호 결의'가 권고한 것처럼, 대체복무의 양태와 기간은 징벌적 성격을 띄어
서는 안된다. 양심적 집총거부 권 인정은 형평성에 어긋나고 이는 군복무
회피의 수단으로 사용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 에, 양심적 집총거부를 인
정하면서도 대체복무의 기간을 군복무기간 보다 과도하게 늘려 잡는다거
나, 대체복무의 직종을 이른바 '3D직종' 등에 국한한다면 양심적 집총거부
를 인정하는 근본취지가 무색해지기 때문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대체복
무를 인정하는 나라의 경우 그 복무분야는 주로 사회복지와 치안분야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넷째, 양심적 집총거부자의 집총거부의 양심에 대한 판단절차의 문제이다.
신체검사나 징 집통지를 받았을 때 양심적 집총거부를 선택한 사람은 집총
거부이유서를 작성해야 할 것이고―종교인이라면 신도라는 증명서와 종교보
증서가 첨부되어야할 것이다―, 양심적 집총거 부와 대체복무 인정여부를
심사하기 위하여 군관계자, 종교인, 윤리학자, 법학자 등으로 구 성된 가
칭 '양심적 집총거부자 심사위원회'가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United Nations Commission on Human Rights'의 1995년 '83호 결
의'와 1998년 '77호 결의'가 요청한 것처럼, 이미 입대하여 병역의무를 수
행하고 있는 사람이 새로이 양심 적 집총거부를 신청하는 절차가 제도화되
어야 할 것이며,58) 양심적 집총거부로 유죄판결을 받고 투옥된 사람들에
대한 특별사면 등의 구제절차 역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체복무제가 도입되기 이전이라도 현재 재판을 받고 있거나 투
옥되어 있는 양심적 집총거부자에 대한 관대한 조치가 필요하다. 징병제를
실시하면서 대체복무제를 인 정하지 않는 나라 중에서 집총거부자에 대하
여 우리나라 만큼 중형을 선고하는 나라는 드물 다. 전과자가 되어 사회적
불이익을 받는 것도 모자라 현역 복무기간 보다도 장기간의 형량 을 선고하
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유죄판결을 받
고 투옥 되어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감형·사면조치 등이 적극
적으로 고려될 필요가 있 을 것이다.
VI. 맺음말
'민주화' 이후에도 사회 곳곳에 침윤(浸潤)된 '군사문화'는 여전하고, 한편
으로는 병역비리 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어떠한 이유이건
간에 집총을 거부한다는 것은 엄 청난 비난을 자초하는 일이며, 게다가 그
러한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것 역시 황당한 주장 으로 간주될 지도 모른
다. 그러나 이상에 보았듯이 양심적 집총거부는 단지 소수파 종교집 단의
반사회적 행동으로 간단히 치부될 사안이 아니다. 이는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헌법상의 권리로 인정되고 있으며, 국제법적으로도 승인되어가고
있는 인권의 하나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양심적 집총거부를 이유로 투옥된
사람은 새로운 유형의 '양심수'(prisoners of conscience)로 파악되어야 한
다.
양심의 자유도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
복리를 위하 여 법률에 의하여 제한될 수 있다, 또는 헌법 제39조 1항이 병
역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이상 양심의 자유도 이 테두리 안에서만 허용
될 뿐이다라는 식의 논리는 양심적 집총거부자 가 처하는 심각한 상황을 너
무도 안이하게 파악하는 결과이다. "양심의 자유를 최대한으로 보장하기 위
하여, 입법자는 양심의 충돌이 예상되는 법률에 대해 그 충돌을 회피시킬
수 있는 법적 대안을 마련해주어야"59) 하지 않을까? 민주주의는 단지 다수
의 지배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소수자의 인권을 배척하고 그들의 고민
과 신조를 무시하는 다수의 지배는 다수의 전제(專制)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양심적 집총거부권의 보장이 되면 혹여 병역기피풍조가 조장되
는 것이 아닌 가 또는 모든 남성이 군복무를 거부하고 대거 대체복무를 택
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 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은 분
단국가인 대만이 대체복무법을 제정·실시하고 있으나, 그러한 부작용은 보
고되지 않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 경우 집총거부 외에도 수혈거 부를 신
조로 삼고 실천하고 있는데, 단지 병역기피를 위하여 평생 수혈거부를 실천
할 사람 은 '여호와의 증인' 신자 외에는 찾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양심
적 집총거부 여부에 대한 1 차 판정 이후에도 수년에 걸친 계속된 심사과정
을 의무화하고, 또한 집총거부신념이 허위로 판명될 경우 처벌하는 조항을
마련한다면 이 권리가 단순한 병역기피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각주
1) 『한겨레신문』, 2001.4.18(수).
2) 『한겨레21』제345호 (2000. 2. 15), 28면.
3) 헌재 1996.3.27, 96헌가11.
4) 헌재 1991.4.1, 89헌마160. 이 결정은 '사죄광고'의 강제가 '양심의 자
유'에 반한다는 취지 의 결정이다.
5) 김철수 교수는 '양심실현의 자유'를 양심의 자유의 내용이 아니라 표현
의 자유의 일환으 로 보며[김철수, 『헌법학개론』 (제11전정신판, 1999),
567면], 허영 교수는 '양심실현의 자 유'를 양심의 자유에 포함시킨다[허
영, 『한국헌법론』(신판, 2001), 383면].
6) 대판 1984.1.24, 82누163.
7) 헌재 1998.7.16, 96헌바35.
8) 대판 1976.4.27, 75누249.
9) 헌재 1998.7.16, 96헌바35.
10) 대판 1997.6.13, 96다56115.
11) 헌재 1997.11.27, 92헌바28.
12) 대판 1969.7.22, 69도934 (강조는 인용자). 동지의 판결로는 대판
1955.12.21, 65도894; 대 판 1976.4.27, 75누249; 대판 1985.7.23, 85도
1094 등을 참조하라.
13) 양건, 『헌법연구』 (법문사, 1995), 326면.
14) Pa. Const. of 1776, art. 8.
15) 박노자, "양심의 권리가 더 신성하다", 『한겨레 21』제349호 (2001.
3. 15), 88-89면.
16) Honorable Jose de Sousa e Brito, "Political Minorities and the
Right to Tolerance: The Development of a Right to Conscientious
Objection in Constitutional Law", 1999 B.Y.U. L. Rev. 607, 611-12.
17) 310 U.S. 586 (1940) (Stone, J., dissenting).
18) Id. at 606.
19) 319 U.S. 624 (1943). 20) Id. at 641-642 (강조는 인용자).
21) 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 art. 18(1).
22) Marie-France Major, "Conscientious Objection and International
Law: A Human Right?", 24 Case W. Res. J. Int'l L. 349, 357 (1992).
23) E.S.C. Res. 1987/46, 43 U.N. ESCOR Supp. No. 5, at 108-109, U.N.
Doc. E/1987/18; E/CN.4/1987/60 (1987).
24) Matthew Lippman, "The Recognition of Conscientious Objection to
Military Service as an International Human Right", 21 Cal. W. Int'l
L.J. 31, 51 (1990-91).
25) Hum. Rts. Comm. Res. 1989/59, U.N. Doc. E/CN.4/1989/59, Preamble,
Para. 1.
26) Hum. Rts. Comm. Res. 1993/84, U.N. Doc. E/CN.4/1993/122, Para. 7.
27) Hum. Rts. Comm. Res. 1995/83, U.N. Doc. E/CN.4/1995/176,
Preamble, Para. 1.
28) Id. at Para. 4.
29) U.N. Hum. Rts. Comm., General Comment 22 [48] (art. 18) Para. 11.
30) Id.
31) Hum. Rts. Comm. Res. 1999/77, U.N.Doc. E/CN.4/RES/1998/77,
Preamble.
32) Id. at Para. 1.
33) Id. at Para. 3.
34) Id. at Para. 4.
35) Id. at Para. 5.
36) Id. at Para. 6.
37) Id. at Para. 8.
38) Amnesty International, Out of the Margins: The Right to
Conscientious Objection to Military Service in Europe (15 April
1997); Lippman, supra note 24, at 46-47; Major, supra note 21, at 359-
361 참조.
39) The Question of Conscientious Objection to Military Service:
Report of the Secretary-General prepared pursuant the Commission
resolution 1995/83, U.N. ESCOR, 53rd Sess., Provisional Agenda Item
23, U.N. Doc. E/CN.4/1997/99.
40) Id. at Annex II (1).
41) Id. at Annex II (2).
42) Id. at Annex II, Table II.
43) Id. at Annex II (4).
44) Id. at Annex II(5)(a)(b).
45) 보다 상세한 점은 오종권, "대체복무의 근거와 입법방안", 『인권과 정
의』 제298호 (2000/6)의 말미에 수록된 자료(81-99면)를 참조하라.
46) Id. at Annex II(6). 이와 관련하여 이스라엘의 경우는 대체복무제를
여성에게만 인정하 지만, 집총거부를 한 남성에 대한 형량은 30일 정도의
유기징역에 불과함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Amnesty International, ISRAEL,
The Price of Principles: Imprisonment of Conscientious Objectors
(Sep. 2, 1999) 참조].
47)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병역을 거부하는 '여호와의 증인'을 위한 대체복
무제 입법을 반대 한다"(2001.6.1)(http://www.cck.or.kr 수록)
48) 정연택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사무총장 인터뷰, 『한겨레 21』 제367호
(2001.7.11).
49) "입법추진은 계속된다", 『한겨레 21』 제369호(2001.7.25).
50) 김두식, "기독교도도 양심적 병역거부했다", 『한겨레 21』 제369호
(2001.7.25).
51) Id.
52) 허영, 전게서, 380면. 단, 허 교수는 양심적 집총거부는 국방의 의무와
의 규범조화적 해 석의 결과 인정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Id. 384면).
53) 380 U.S. 163 (1965).
54) Id. at 166. 같은 취지의 판결로는 'Welsh v. United States 판
결'[398 U.S. 333 (1970)]이 있다.
55) Amnesty International, Out of the Margins: The Right to
Conscientious Objection to Military Service in Europe (15 April 1997).
56) Gillette v. United States, 401 U.S. 437 (1971). 단 더글라스 대법관
은 특정전쟁에 대한 반대도 '양심적 집총거부'로 포함시킨다 [Id. at 463-
475 (Douglas, J., dissenting)].
57) Id.
58) 영국의 경우 신병이 군대에 입대한 지 6개월이 지나기 전에는 양심적
집총거부자로서 제대 하는 것이 허용된다.
59) 손동권, "양심범 처벌의 법이론적 기초", 『형사법연구』제4호
(1991), 4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