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난 박건호 시인은 스물 한 살이 되던 1969년에 첫시집 「영원의 디딤돌」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시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그로부터 3년 후인 1972년에 노랫말 「모닥불」을 발표하면서부터 대중가요 작사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 「내곁에 있어주(1975)」, 「잊혀진 계절(1982)」, 「아! 대한민국(1983)」, 「풀잎 이슬(1983)」 등 히트곡을 포함한 3천여 곡의 노래말을 창작 발표하여 1984년에는 국무총리 표창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대중가요 작사가로 탄탄대로를 걷던 중 그는 불행하게도 지난 1989년 뇌졸중으로 시작된 언어장애와 수족마비, 시신경 장애라는 병마와 싸워야 했고, 그 끝에는 만성신부전 말기 증세로 신장이식 수술을 받지 않으면 안될 만큼 사경을 헤매기도 했다. 마침내 그는 1994년 5월 신장이식 수술을 받았고, 그후 다행스럽게 건강이 회복되어 새 생명을 얻은 각별한 심정으로 시작(詩作)에만 몰두해 오고 있고, 또한 적지 아니한 문학인들과 교류를 해오고 있는 터이다. 이런 생활 5년이 흐르는 동안 600여 편의 시를 창작, 「타다가 남은 것들(1989)」, 「물의 언어로 쓴 불의 시(1994)」, 「추억의 아랫목이 그립다(1996)」, 「고독은 하나의 사치였다(1996)」, 「기다림이야 천년을 간들 어떠랴(1997」, 「나비전설(1998)」 등 6권이란 시집을 펴내기도 했다. 이런 다작(多作)은 그만이 처한 현실성, 곧 남은 인생을 시작(詩作)에만 바치겠다는 새로운 각오와 그만의 독특한 시작법과도 무관하지 않겠지만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시도 대중에게 읽힐 수 있고, 읽혀져야 한다고 믿는 박 시인은 그것을 확인해 보기라도 하듯 그동안 창작한 600여 편의 시 가운데 200여 편을 골라 시선집을 펴내고자 함에 있다. 이에 우둔한 필자에게까지 평설을 부탁해 왔지만 필자로서는 난감하기 그지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그의 시세계와 인품에 대해 이미 글을 남기고 있는 서정주, 마광수, 송수권, 김대규, 장인성, 박영웅, 박영우, 신동춘, 이규형 외 적지 아니한 문필가들처럼 글솜씨가 뛰어나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 만큼 시에 대해 너그럽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이 그렇지, 그들이 남긴 글만을 읽어도 박 시인의 시 세계를 일단은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지 않은가. 여기에 필자가 무엇을 덧붙일 수 있으며, 혹 덧 붙인다 해도 자칫 사족이 될까 망설여 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말할 수 없었거나 피했던 점(?)들에 대해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느끼고 생각할 수 있었던 바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한다면 필자 개인의 시관에 비추어 내용과 형식에 대해 한 마디 하고자 한다. 이것이 내게 청탁을 한 박 시인의 진정한 바람이자 필자에게 부여된 최소한의 책임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2. 사랑·현실·생명
박건호 시인의 작품을 분석해 보면, 내용상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곧 ①사랑 ②현실비판 ③자신만의 리얼리티 등이 그것이다.
사랑은, 대체로 현재의 사랑이라기보다는 과거의 것이며, 자기 희생을 전제로 하는 아가페적 사랑이라기보다는 보통의 남·여들이 느끼고 갖는 에로스적 운우지정이다. 그리고 사랑의 기쁨과 희열을 서로 공유하는 온전한 것이라기보다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갖는 그리움이라든가, 이미 추억이 되어 버린 과거지사를 회상하거나, 현실로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불완전한 것이다. 바로 이런 점들이, 시인 개인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사랑시가 아니라 만인이 공유하는 대중적 정서를 표현하고 있지않나 싶은, 그리고 그래서 다작이 가능했으리라는 판단을 가능케 하고 있다.
전라남도 어느 들판을 달리는 목포행 버스에서 갑자기 외로워지는 나의 전신은 너의 것이었다 한낮이 퍼붓는 햇살의 무게 속에는 네가 숨어있는 것일까 차창으로 밀려드는 더운 바람은 승객들을 지치게 하는데 추억 속으로 맴도는 나의 방황으로 전 국토는 사랑의 땅이 된다 낯선 이곳이 동대문 근처나 종묘로 탈바꿈한 것은 아니지만 전라남도 어느 들판을 달리는 목포행 버스에서 나는 너의 눈망울을 본다 잊을 수 있는 곳으로 도피한 내가 머리카락을 나부껴 오는 너를 본다 나의 전신은 역시 너의 것이었다 ─ 「목포행」 전문
이 시의 핵심은 화자인 「나」와 「너」 사이에 있었던 사랑의 빛깔과 농도를 표현해 내는 일에 있었던 것 같다. 바로 그것이 「나의 전신(全身)은 너의 것이었다」라는 한 마디 말로 표현되고 있지만 시적 상황을 부연 설명하자면 이렇다. 곧, 나는 너를 잊기 위해 목포행 버스를 타고 가지만 오히려 머리카락을 나부끼며 내게로 오는, 혹은 생각나는 너를 통해서 「나의 전신이 너의 것이었다「」라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너와 나 사이의 사랑이란 잊기는 쉽지 않지만 잊어야 하는 운우지정인 셈이다.
현실비판은, 주로 사람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시장에서 만나 볼 수 있는 동태장수 아줌마라든가, 길 거리의 택시운전기사라든가, 오랜 만에 만났지만 대화가 통하지 않는 친구라든가, 속과 겉이 같지 않는 위선적인 주위 사람이라든가,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엄청난 사고가 터져도 무감각해 하는 대다수의 동시대 사람들을 안타깝게, 혹은 조소, 조롱하며 비판하고 있다. 대체로 우리들의 불친절과 지나친 이해타산, 위선적 언행, 남을 이해하고 인정하려는 노력과 아량이 없는 자기 중심주의, 동포애가 없는 무국적인 사람들이 시인의 주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시로 쓰는 것보다 일상적인 대화로 주고 받는 것이 더 편리할 뿐 아니라 효과적이다. 실제로 이런 류의 시를 보면 구체적인 상황 설명으로 끝나 있을 뿐 아니라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각 또한 곱지 않아, 독자에게 심미감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말을 흘리는 일본인들을 향한 시인의 독설은 대단히 유우머러스하고 재치가 있어 보인다.
내가 동해 바다에 섬 하나 만들어 너희에게 주노라. 그것을 독도라고 하라 차후 일본이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거든 그를 긍휼히 여겨 노하거나 성내는 일이 없도록 하라. 아직 지옥에 가지 못한 전쟁의 망령들이, 일본열도를 휩쓰는 사탄의 무리들이 정치적 계산으로 선량한 국민들을 선동하고 있노니
너희는 그들과 이웃하는 나라의 뜨거운 우정으로 그들이 어서 빨리 정신병에서 깨어나 그들 나라가 멸망하지 않도록 기도하라. ─ 「하나님 말씀(독도 통신 5)」 전문
「독도 통신」이라는 부제가 딸린 10편 가운데 한 수다.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말하는 일본인들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을 짓누르며 시인은 상당한 여유를 부리고 있다. 일본인들을 지옥에 가지 못한 망령들이자 사탄의 무리로 여기면서 한국인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으로 그 관계를 설정하고 있다. 하나님이란 존재의 절대적 권위와 성경어법에 의지하고 있긴 하지만 진지함 보다는 「재미」라는 기능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 자신만의 리얼리티는 병마와 싸우며 사경을 헤매는 과정과 신장이식 수술을 받고난 후 건강을 회복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가 새롭게 가질 수 있었던 인간 존재의 「생명」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가 모티브가 되고 있다. 곧, 죽음에 직면한 상태에서의 절대고독을 체험하고 나서 평소의 「고독하다」는 말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이였던가를 말할 수 있었듯이, 병마와 싸우며 살 수밖에 없는 자신의 운명적인 삶을 받아들이고 나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귀양살이를 하던 선대들의 아픔을 받아들일 수 있었듯이, 남은 생명의 불꽃을 시로, 사랑으로 태워보리라 다짐할 수 있는 새 삶에의 희망이 그만의 리얼리티인 것이다. 연작시인 귀양지 30편은 바로 박 시인만의 그런 리얼리티를 반영하고 있는, 매우 진솔하고 생동감 넘치는 수작이자 그의 한 시기의 역사인 셈이다.
여기는 귀양지 죄인 아닌 사람 어디 있으랴. ─ 「죄인(귀양지 17)」 전문
병마에 시달리는 자신의 삶을 귀양살이로 받아들이고 있듯, 자신을 죄인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죄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판단을 가능케 한다. 그리하여 시인은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지만 말이다. 곧,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자신의 불안했던 삶에 대해 「인생이 너무 달다」‘라고 회고할 수 있고, 남은 생명의 불꽃으로 「진공의 시간을 화장하는 시인이 되리라」고 다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새 생명에 대한 희망이요, 기쁨이요, 속박으로부터의 진정한 행복이리라.
3. 대중적 정서와 모방의 창조
시인이 무엇과 가까이 있느냐에 따라 작품의 소재가 결정되고, 무엇에 관심을 가지느냐에 따라 주제가 결정된다. 박건호 시인은 일찌기 대중가요 노랫말을 지으면서 「대중적 정서」에 눈을 뜨고, 자신 보다는 남을 통해서 인생을 성찰해 온 듯싶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친 탓에 많은 사랑시들을 쓸 수 있었고, 또 그 사랑시들이 애퍼리스틱(aphoristic)한 면들을 지닐 수가 있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그의 사랑시들은, 어떻게 하면 사랑의 감정과 농도를 극적으로 표현해 낼 수 있을까를 고민한 작위성(作爲性)이 적지 않다. 예를 들면 「나의 전신은 너의 것이었다(목포행)」라든가 「오직 한 사람을 사랑하기는 오히려 인류를 사랑하기보다 어려운 것(오직 한 사람)」이라든가, 「기다림이야 천년을 간들 어떠랴/목숨이 도달할 수 없을 뿐(박제)」이라든가, 「차라리 가슴을 태워 재로 만들 수 있다면 당신께 보내드리고 싶습니다(꽃을 바치지는 않겠습니다」라든가, 「이별은 이미 너의 시간표에 있었다」 등이 그것이다. 물론, 이런 작위적 표현이 가능한 것도 「모방적 창조」와 「대중적 정서」 읽기에 남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의 시는 대단히 친절하게도 「설명적」이다. 아니, 설명적이어서 친절하다. 친절하게도 구구절절히 설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해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독자들이 나름대로 생각하고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없어져 버린다. 첫행부터 마지막 행까지에서 시인이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진술해 놓음으로써 자신의 의중과 감정을 다 보여주고 있고, 또 그래서 두고두고 음미해 볼 거리가 사라져 버리고 만다. 다만, 사랑의 구체적인 정황을 통해서 그 빛깔을 체감할 수 있고, 그 결과 얻어진 경구 한 구절을 새길 수는 있다.
사랑은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외로움 자체였다 나는 너를 위해 종이 될 수 있었지만 만날 때마다 가슴에 구멍이 생겼다 구멍마다 밀려드는 바람 씻어낼 수 없는 젊은 날의 비애를 추억이라 부르지 말자 우리는 르네상스에서 베토벤을 만났다 드볼작을 만나 보헤미안의 집시처럼 떠돌았다 거리에서 비틀즈를 만났고 죤 바에스, 폴 사이먼과 함께 방황하던 어느 날 나는 갑자기 너의 발등에서 추락했다 그러나 이별은 이미 너의 시간표에 있었다 너의 표정마다 숨겨진 불길한 예감들을 애써 외면했지만 이별은 첫사랑 교과서 마지막 페이지에 들어 있었다 그해 겨울 군장수의 외투깃으로 파고드는 바람보다 더 차가운 시선을 남긴 채 너는 떠났다 나는 베트남의 패전을 지켜보듯 너를 바라보며 황량한 구세군의 자선남비 옆에서 방울소리를 딸랑이고 있었다 ─ 「이별은 너의 시간표에 있었다」 전문
이 작품은 전체 19행으로 짜여 있다. 첫행에서 「사랑은/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외로움 자체였다」라고 한 표현은 「사랑」이란 관념어에 대한 설명이요, 진술일 뿐이다. 바로 이 부분이 사랑을 통해서 깨달은 대중적 정서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단적인 예이다. 나머지는 화자인 나와 너 사이에 남겨진 이별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말들이다. 이처럼 한편의 시가 특정의 상황을 설명하거나 묘사하는 이야기 중심으로 쓰여지다 보니까 대체로 시가 설명적이 되고 만다. 이같은 현상은 비단 박 시인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오늘 날 대다수의 시인들에게서도 나타난다. 그것은 시가 근본적으로 시인 개인의 주관적 정서의 표현임엔 틀림없지만 그것의 객관화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시를 쓰기 때문이다. 개개인마다 달리 가지고, 달리 느끼고, 달리 생각할 수 있는, 복잡다단한 경험들이 이루어진 특정 상황을 설명하는 솔직한 시들은, 마광수의 격찬처럼 「솔직한 감성의 노출이나 배설이 되는」 순졸미의 훌륭함으로 그 의미가 부여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느낀 그대로 순수하게 감정과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 시작(詩作)의 기본이긴 하지만 그 감정과 생각들에도 격이 있는 법이고, 그것을 담아내는 모양새와 빛깔에서도 엄청난 질적 차이가 생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박 시인의 그 많은, 구구절절한 사랑시보다 불과 30편밖에 안 되는 「귀양지」라는 연작시가 더 큰 파장을 일으키며 다가오는 이유는 그같은 사실을 잘 입증해 주리라 믿는다.
4. 빠져 나오며
좋은 시를 쓰고자 하는 박건호 시인의 바람과 의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 좋은 시는 널리 읽히고, 사람들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교감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 교감은 대중적 정서의 반영으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쉬이 공감할 수 있는 것과는 사실 다른 차원의 일이다. 모든 인간이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배설을 한다고 해서 이 말처럼 순수하고 솔직한 말이 없다고 한다면 어이없는 일이다. 진실하고, 아름다운 것이라 할지라도 무엇에 대한 진실이고, 어떻게 아름다우냐이지, 그저 솔직하고 진실하다 해서 모두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면 오판이다. 200여 편의 시를 다시 읽으며, 필자는 새롭게 느낀 사실이 있다. 박 시인이 건강을 회복하면서부터 5, 6년이 흐르는 동안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문학인들과 교류하고, 얼마나 많은 시집들을 섭렵해 왔는가. 실로 많은 시집들을 읽으면서, 흔히 말하는 「좋은」 표현들에 대해서 새기고 충분히 연습해 왔던 것 같다. 이를 필자는 「모방적 창조」라는 말로 표현했지만, 그의 많은 시들에서 나는 바로 그것을 느꼈다. 특히, 몇 편의 패로디는 그의 재치와 문학적 습작 노력이 얼마나 집요하고 절실했는가를 말해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시는 설명이나 진술 그 자체만은 아니다. 진실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정서적 표현이지만 심미적 판단가치를 보장해야 한다. 그래서 수많은 시인들은 다이아몬드를 가공하듯 시상을 다듬고 다듬는다. 그런 일련의 노력을 위선적으로 말할지 모르겠지만 몇 줄 안 되는 언어에 갖힌 그 의미의 세계가 존재 가능한 순도 100%가 되기를 지향하는 시인의 바람이요, 노력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시는 겉으로 드러난 의미보다 속으로 숨은 의미가 더 커 독자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케 하고,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은 미적 세계에 대해서도 재음미 할 수 있도록 여지가 마련되어야 한다. 시는 단순히 인간사적 진리나 진실만을 기술하는, 혹 그래서 그것으로 누군가를 가르치려는 기술이나 설명이 아니다. 거기엔 반드시 상상의 여지가 구축되어 있어 심미감이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박건호 시인의 시는 지나칠 정도로 친절할 뿐 아니라 겉으로 드러난 의미가 너무 뜨겁다. 그러나, 누가 뭐라하든 그 친절과 그 뜨거움 때문에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그의 시를 부담없이 받아들이고, 부담없이 공감할 수 있으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