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 뜨거운 남자
지구를 다녀간 똘끼
미친 탐미주의자
늙음의 두려움
비틀거리는 여인
사랑의 갈증
금각사
한낮에 택시를 잡았다. 어떤 여자가 달려와 소매를 잡았다.
"이 차 제게 양보해 주시면 안 될까요? 급한 일이 있어서요."
"어디 가시는 길이 신지요?"
" 푸른 아침아파트 입니다."
"저랑 방향이 같네요. 그럼 함께 가시지요."
그렇게 낯선 동행이 시작되었다. 어색한 만남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방 속"금각사"를 꺼내 읽었다.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 1925~1970)는 일본의 소설가, 극작가, 사상가이다. 극우파인 그는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었다. 권력가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단단해 보이는 턱과 이지적인 분위기, 창백한 피부를 가진 잘 생긴 남자였다. (나이가 들어도 난 결국 얼빠였다.) 최고 가문에 명석한 두뇌, 키 빼고 모든 것을 다 가진 남자였다. 작은 체구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극한의 운동으로 몸을 단련했다. (이런 면에서 또라이는 또라이끼리 통한다. 우린 닮았다.) 자기애가 유독 강한 관종의 남자는 왜 자신의 배를 좌에서 우로 갈라 내장을 파냈을까? 부와 명성을 다 얻고 로코코풍의 아름다운 저택에 살면서 갑자기 정치적인 인물로 돌변했다.
미시마 유키오는 45세인 1970년 11월 25일에 일본의 헌법 개정과 자위대 궐기를 주장하며 인질극을 벌였다. 명분은 일본의 평화 헌법에 대한 반대였다. 군국 주의와 자위대를 향한 무한한 사랑과 황실의 명예를 복구하려는 의도였다. 향연은 결국 피바다가 되었다.
"무(武)는 칼이다. 자신의 사명이지………."
"이제 제군이 헌법 개정을 위해 들고일어나지 않겠다는 것을 충분히 알겠다. 이것으로 자위대에게 품은 내 꿈은 사라졌다. 여기서 천황 폐하 만세를 부르겠다."마지막 유언은 "천황 폐하 만세! 천황 폐하 만세! 천황 폐하 만세!"였다. 내가 들어본 유언 중 가장 허망한 망언이었다. 자신의 인생을 살았어야 하는 작가가 시대착오적인 제국주의에 빠져서 스스로의 삶을 망쳤다.
왜소한 체격이 맘에 안 들었는지 자신이 원하는 몸을 만들기 위해 30대부터 가라데와 검도 웨이트 트레이닝 헬쓰로 근육질의 몸을 만들었다. 병약했던 그의 인생은 전반부와 후반부가 완전히 다른 인간이었다. 달밤에 아령 들고 나댔더니 어느 날 배에 11자 복근이 생겼다. 그도 자신의 배 둘레에 햄이 생기는 걸 나처럼 끔찍하게 싫어했나 보다. 언제든 해운대 갈 준비로 배에 튜브 달고 사는 내 동생은 몸에 미친 듯이 집착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평생을 먹는 즐거움을 가진 자들은 몰이해자들이다.
그는 죽음의 미학을 이용한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주려고 발악하다 죽었다. 명예로운 죽음은 그에게 멍에만 주었다. 고통의 한계를 뛰어넘고 인간의 내면에만 관심을 가진 그가 왜 다른 삶을 살다가 발악하며 죽어갔을까? 목에 스프링 달린 인형처럼 하루 종일 머리가 흔들렸다.
사실 자위대를 찬양한 그는 전형적인 Chicken hawk이다. 군대도 안 가고 전쟁에 적극 찬성하는 정치인이나 관료 비웃는 말이다. 매를 흉내 내는 닭이라는 뜻이다. 남들은 죽든 말든 본인들만 잘 살면 된다는 찌질한 면모를 가진 인간들이 많았다. 그에겐 엄청난 빨판이 달려 있으니 난 그를 버리지 못한다. 그도 그런 자신이 미워서 늘 태평양 전쟁 피해자들에게 미안해했다.
가끔은 술이라도 마셔보고 싶은 그런 남자이다. 병약한 몸으로 창자 쏟아내는 뜨거운 금각사를 쓰고 어느 날 갑자기 신념의 인간이 되어 스스로의 열정에 배를 갈랐다. 그의 몸과 영혼을 도려낸 세키노 마고로쿠칼은 어떤 피 맛을 보았을까? 흐르는 생피로 유서를 쓰려고 했으나 고통에 혀를 깨물며 죽어갔다. 웃는 돼지머리가 얼마나 심오한 경지의 예술작품인지를 이제 알았다. 그는 쓰디쓴 표정만 남기고 갔다.
어느 날 날 잡아 솔직하게 의식을 치르고 싶다. 정념의 강에서 머리를 풀고 뇌를 씻고 싶다. 배썰고 오장 육부를 차례차례 꺼내 차례를 치르고 싶다. 사느라 참 애썼다. 습한 장기들에게도 태양빛을 쪼여주고 싶다. 흰 천으로 덮은 다다미 2매를 정갈하게 배에 두르고 머리모양을 가지런하게 정리하고 흰색 옷을 준비해야 한다. 햐얀 종이로 싼 의식용 칼은 절삭력이 좋아야 한다. 골 빈 머리통 속에선 다빈치가 해골 달린 류트를 연주하고 졸음에 겨워 왕관조차 힘겨운 노년의 시간을 버티기 위해 오늘 하루도 미쳐 살고 있다.
인간이 행복하고 불행한 건 추억 때문이지! 추적추적 나를 추적해오는 비리고 질긴 기억에 할복당한다. 할랄 방식으로 도축해 주시길! 와키자시나 단도를 사용해 한 번에 갈라야지! 상의를 벗고 칼날을 종이나 천으로 감싸 쥐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배를 가르면 죽음의 조력자 카이샤쿠(介錯)가 할복자가 고통을 오래 느끼지 않도록 신속하게 목을 잘라줘야 한다. 하지만 그는 운이 없었다. 죽음까지의 시간이 유독 길었다. 여러 번 난도질당했다.
가정용 식칼을 탄토로 바꾸어야겠다. 가운데 복부를 깊이 찌르고 L자로 내리그어야겠다. 나에게 주는 숭고한 예식을 위해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부상당했을때 그리고 그 아들이 자결할 때 쓴 명품 칼인 무라 마사(村正)를 대여라도 해야겠다.
나에게 주는 거룩한 예식은 좌도 우도 아니라 가운데부터 칼을 꽂아야겠다.
패배한 다이묘들이 택하는 가장 명예로운 죽음이 할복이었다.
지나가는 바람에도 마음 털리는 민들레 행복과 불행의 모든 고통을 고추장 위 곰팡이 걷듯이 걷어낸 삶이 있을까? 태평양 전쟁을 피했던 자신이 창피했던지 그는 명예로운 죽음을 꿈꾸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 치욕을 아는 자였다. 나 또한 의도치 않게 코로나를 전파했던 과거가 부끄러웠다.미안하다!
할복 퍼포먼스로 지구를 다녀간 용감한 남자로 남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여인의 고백처럼 쓴 글인 "비틀거리는 여인"은 내 안의 이중성을 파괴하고 식도 깊숙히 그가쓴 피의 글을 느끼게 한다. 그는 내면의 여성성을 가진 남자였을지도 모른다.
"내게 강 같은 평화" 노래가 "내게 도로 아미타불"로 변신한다. 가사가 뭐가 중요한가? 음만 좋으면 되지! 모든 게 다 태어난 죄이다. 내가 지고 가야 할 짐이다. 그의 죽음의 이유에는 늙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고 한다. 살아 무엇이든 남겨야 한다는 고통에 영웅심도 존재했을 것이다. 난 그냥 할복당했다.
탐미주의적인 그의 글들이 깊숙이 12쌍의 늑골(肋骨) 사이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밤이다. 생애에 단 하루쯤은 그의 뇌를 빌려 살아보고 싶다. 장바구니에 일본도를 담아둔다. (칼날이 무뎌 밤마다 숫돌에 갈아야 한다.)
단칼에 동맥을 끊어 버리는 할랄로 죽고 싶다. 죽음이 살금살금 다가와 야금야금 생살을 파고드는 이 순간, 정치와 종교와 모든 게 다 부질없다. 판단하기 전에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 우연히 합승한 택시에서 만난 이름도 모르는 여인이 말했다.
"급해서 먼저 갑니다. 택시비의 절반은 제가 내겠습니다. "천 원짜리 3장을 내밀었다."
"아니에요. 제가 그냥 다 내겠습니다."
"아! 고맙습니다. 선생님은 절 모르지만 전 선생님을 잘 알아요. 한 가지만 기억해 주세요. 코로나때, 선생님을 모르는 자들은 선생님을 욕했지만 선생님을 아는 모든 사람들은 선생님 편에서 싸워주었다는 것을! "
기적의 말이었다. 책에 쓰인 내 이름 때문이었을까? 코로나로 노이즈 마케팅 성공한 셈이다. 누군가를 비판하기보다는 알아보는 게 먼저이다. 작은 배려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좋다. 이제 나도 나를 그만 미워하자. 지독하게 미웠던 날들이여 안녕! 이제서야 나를 알아가는 날마다 할복하는 밤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