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윤회輪廻
1) 윤회는 문화다.
지구 생명의 역사를 보면, 분명 생명은 태어나고 죽고를 반복하면서 계속 진화 발전해 왔다. 그런데 물질적으로는 화석을 통해서 알 수 있겠지만, 눈으로 볼 수 없는 의식은 언제 생겨서 어떤 방식으로 이어졌는지 알기가 쉽지 않다.
확실한 것은 생명과 함께 같이 존재했을 것이라는 설에서 보듯(처음에는 저급한 수준이었다가 차차 진화했다.) 의식 또한 생명진화의 한 과정에 포함 된다는 것을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다. 700여 년 전 페르시아에 살았던 이슬람 신비주의 시인이자 법학자인 루미는 이렇게 읊었다.
나는 돌로 죽었다. 그리고 꽃이 되었다.
나는 꽃으로 죽었다. 그리고 짐승이 되었다.
나는 짐승으로 죽었다. 그리고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왜 죽음을 두려워하나.
죽음을 통해서 내가 더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변한 적이 있는가.
죽음이 나에게 나쁜 짓을 한 적이 있는가.
내가 사람으로 죽을 때 그 다음에 내가 될 것은 한 줄기 빛이나 천사이리라.
그리고 그 후는 어떻게 될까.
그 후에 존재하는 건 신뿐이니 다른 모든 것은 사라진다.
나는 누구도 보지 못한, 누구도 듣지 못한 것이 되리라.
나는 별 속의 별이 되리라.
삶과 죽음을 비추는 별이 되리라.
(이 시는 700여 년 전인 중세 페르시아중동 지방 페르시아에 살았던 이슬람 신비주의 시인이자 법학자인 루미 (Jalalud-din Muhammad Rumi, 1207-1273)의 시이다.
그렇다면 그 의식이란 것이 현재의 ‘나’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길게 보면 계속 진화 할 것이기 때문에, ‘나’라는 사람에게 한정짓는 것이 그리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짧게는 한 달이면 우리 몸 대부분의 세포가 새로운 세포로 바뀌니, 진화까지 운운할 필요조차 없을 지도 모르겠다.
윤회의 주체를 인간전체로 보아서 그렇지 생명의 하나로 보면, 세포 하나하나가 모두 생명이고, 그 생명들이 끊임없이 윤회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말해 변하지 않는 것이 없고, 모든 것은 돌고 돌기 때문에, 어디로 가든 어떻게 되든, 확실한 것은 윤회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분명 윤회하는 것은 맞는 것 같은데, 나라는 존재로 한정해서 보면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의식이란 그렇게 독립적인 것이 아니다. 뇌로 보면 뇌는 양파껍질처럼 진화의 과정을 통해 쌓여진 결과이다. 즉 우리 뇌는 파충류 시대부터의 뇌를 그대로 간직하면서, 그 위에 조류 포유류 등의 뇌 구조를 구축한 것으로, 뇌 차체가 고고학인 것이다. 그리고 생각 혹은 의식이란 것도 자신을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창의인재 프로젝트 생각의 집.E02.150414.나는 무엇인가)
수행자의 입장에서는 수행 자체가 자기를 잊는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에[無我], ‘나’라는 존재에 집착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 되어 왔다. 역설적이게도 나를 떠나는 것이, 나를 잊는 것이 수행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심은 여전히 ‘나’를 괴롭힌다. 자신의 앞날[死後]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영혼은 자연세계에서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가? 아니면 죽음과 더불어 의미를 상실하는 것일까? 흔히 사람이 죽으면 다시 태어난다고 하는데 과연 그것이 사실일까? 또 우리 일생은 누군가가 정해 놓은 운명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은 어린이의 물음처럼 소박하고 유치하다고 말할 수 있다.
<삶의 끝>에 관해 묻는 것은 담배연기의 행방을 따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이 물음의 내용은 인간이 처음 지성을 갖추게 된 때부터 긴 인류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되풀이 되어 왔다. (김용운 지음,『0(零)에서 0(空)의 세계로』(고려원, 1991) pp. 117-118.)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이 있다. 라틴어로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옛날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면 의례히 노예들을 시켜 이 말을 큰소리로 외치게 했다고 한다.
이는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라는 의미에서 생겨난 풍습이다. 카르페디엠(carpe diem, 지금을 즐겨라)과도 통한다고 할 수 있는데, 개선장군에게 수여되는 관에는 이런 경고문구들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Memento mori
그대는 죽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Memento te hominem esse
그대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Respice post te, hominem te esse memento
뒤를 돌아보라, 지금은 여기 있지만 그대 역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어쨌든 인간은 죽는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살아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미국의 문화 인류학자 어니스트 베커(Ernest Becker, 1924~1974)는 이런 인간의 ‘문화culture’는 죽음의 부정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퓰리처상(Pulitzer Prize)을 수상한 책『죽음의 부정(The Denial of Death)』에서 그는 문명 비판적 차원에서 죽음을 분석하였다. 인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동력으로 해서 발전을 이끌어 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죽음에 대한 거부, 죽음에 대한 공포가 문명과 문화의 시발점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굶어죽지 않기 위해 농업을 일으키고, 얼어 죽지 않기 위해 옷과 집을 만들고, 산업을 발전시켰으며, 병들어 죽지 않기 위해 의술과 약품을 개발했다는 것이다. 요컨대 인류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문명을 일으켰다는 취지이다. 하지만 문명의 비약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안타깝게도 아직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인간은 차선책으로 영원히 살고자 하는 욕망을 담아 자신들만의 문화를 발전시킨다.
공포관리이론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공포에 직면할 때 나타나는 정서적 반응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이론은 우리의 행동과 믿음의 대부분이 죽음에 대한 공포에 의해 유발된다고 전제하면서, 인간은 그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문화를 발전시켰다고 말한다. 이 이론의 창시자, 셸던 솔로몬(Sheldon Solomon, 미국 스키드모어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말한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과 언제든지 죽을 수 있음을 깨닫는 순간 당신은 공포에 사로잡힙니다. 죽음의 공포에 대처할 방법이 필요하죠.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인류학자들이 소위 말하는 ‘문화’를 생각해냈습니다.
요컨대 사람들은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면, 그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죽음 자체를 부정하려든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무의식적으로 방어자세를 취하는데, 그 방어가 바로 문화라는 것이다. 극복할 수 없으니 대안으로 발명한 것이 문화인 것이다.
공포관리이론에서 인간은 죽음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죽음을 수용하면서 살아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어떻게든 죽음을 부정해야 하죠. 따라서 죽음을 부정하기 위해 문화에 기초한 상징적인 세계관 안에서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것입니다. (제프 그린버그, 미국 애리조나대 심리학과 교수)
이렇게 인간은 문화가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신을 방어해준다고 보고, 문화를 통해 스스로에 대한 불멸과 영속을 실현하려 한다는 것이다. 미국 애리조나대학 심리학과 제프 그린버그 교수는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육체적으로 사망한 후에도 존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게 믿도록 문화가 조성되었죠. 나의 사회적 위치, 후손,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들, 내가 세상에 남긴 업적 등이 내가 사망한 후에도 여전히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합니다. 따라서 인간은 죽음을 초월한 상징적 세계에 살아남아 있기 위해 문화를 만들었죠.
인간은 죽음을 초월한 상징적 세계에서라도 살아남아 있기 위해 문화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그렇게 믿도록 문화(?)를 조성해 왔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자존감과 죽음의 공포 사이의 인과 관계에 있어서도 나타나는데, 자존감 증진이 죽음 공포의 감소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즉, 권력을 남용하거나 사치를 유발하고, 과시하려고 하는 일련의 행동들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공포관리이론에서 말하는 죽음은 떠올리는 것 자체가 우리 현실에 대한 믿음과 자존감을 위협하는 일입니다. 돈이나 일류 브랜드는 위협받은 심리에 대한 보상과도 같습니다. 이 때문에 돈은 죽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죠. (셸던 솔로몬Sheldon Solomon, 미국 스키드모어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그러나 죽음에 대한 맹목적인 두려움은 극단적인 판단과 행동을 불러오기도 하지만, 죽음에 대한 인식을 살짝만 바꾸면 삶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아름다운 죽음을 바라는 마음에 이타심을 이끌어 내기도 하고,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운동량을 늘리게 된다는 것이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우리 생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많은 철학자들은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이(이상적인)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 더 긍정적으로 변했기 때문이죠. (제프 그린버그, 미국 애리조나대 심리학과 교수)
그리고 주목할 것은 종교 또한 다른 문화적인 산물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죽음 공포에 대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죽음 뒤의 삶의 존재를 지지하는 주장들을 읽거나, 단순히 종교를 가지는 것만으로도 죽음에 대한 공포를 줄이고, 반대로 죽음에 대한 생각은 종교적 신념을 강화시키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무의식적인 수준에서는 무신론자들에서도 관찰되었다. 죽음은 현재 우리가 당연시하는 문화를 만들고, 문명을 일으켰으며, 현재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 장본인인 것이다. 죽음 자체는 없어서는 안 될 우리 삶의 긍정적인 요소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에게 있어 죽음은 ‘A to Z’라고 할 수 있다. 윤회 또한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으로 만들어 낸 일종의 문화일 수 있는 것이다. 윤회나 영혼의 문제는 인간에게서 뗄 레야 뗄 수 없는 그림자 같은 존재인 것이다. 이미 너무 오래 추구해 왔기 때문에 우리의 DNA 속에 녹아들어 있어, 설명할 수도 없고 증명 될 수도 없지만, 어쩐지 그럴 것 같은 일종의 확신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윤회는 떨치기 어려운 어떤 끈끈한 집착일지도 모르겠다. 피할 수 없으면 채찍을 휘두를 일이다.
2) 무엇이 윤회하는가? 영혼의 문제
무엇이 윤회하는가?
이 문제는 오늘날에도 자주 논의되고 있으나 아무리 논의해 보아도 잘 모르는 문제이다. 우리들은 사후 지옥에 떨어지거나 혹은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거나 아니면 축생계에 태어난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그렇게 가르치고 있지만 우리들의 무엇이 어떻게 해서 지옥 · 축생 · 인간계에 태어나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영(靈)’, ‘영혼(靈魂)’이라는 것일까? ‘영혼’은 어떠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어느 정도의 크기일까? 그렇지 않으면 ‘영혼’이 아닌 별다른 그 무엇이 있을까? 별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히로사찌야 지음, 권영택 옮김,『인도불교 사상사 上』 pp. 210~211.)
붓다가 침묵하였다면, 붓다가 활동과 가까운 시기, 미린다 왕과 나아가세나 존자 사이에 있었던 대화에서 찾는다면, 윤회와 영혼에 대한 문답인「배다구우(靈的인 것)에 관하여」가 있다.
왕은 물었다.
『존자여, 베다구우는 있습니까.』
존자는 반문했다.
『대왕이여, 베다구우란 대체 무엇입니까.』
왕은 말했다.
『안에 있는 생명의 원리(個我)는 눈으로 형상(色)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보고, 몸(身)으로 촉감을 느끼고, 마음(意)으로 사상(事象·法)을 식별합니다. 마치 이 궁전에 앉아 있는 우리가 동·서·남·북 어느 창문으로든 내다보고 싶은 창문으로 내다볼 수 있는 것처럼, 안에 있는 생명의 원리는 내다보고 싶은 어느 문으로든지 내다볼 수 있습니다.』
왕은 배다구우, 즉 영혼靈魂이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당시도 영혼의 문제는 “뜨거운 감자”로 논란의 한 가운데에 있었던 모양이다. 존자는 그것이 무엇이냐고 되묻는데, 이에 왕은 그것은 다섯 개의 창문을 통해 ‘형상을 보고,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고, 맛을 보고, 촉감을 느끼고, 사상을 식별하는’, 몸 안에 있는 개인으로서의 자아自我[個我]라고 답한다. 왕은 몸에 배다구우라는 또 다른 나[我]가 있어 오관을 통해 밖과 소통하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인도의 상캬(Sāmkhya, 數論)나 요가Yoga 학파에서는 정신과 물질을 분리해서 인간의 참 자아를 ‘푸루샤(purusa, 精神)’, 그리고 물질적 현상세계의 궁극적 실체는 ‘프라크르티(prakrti, 物質)’라고 규정한다. 왕의 대답은 이들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물질과 정신을 분리하여 이원론의 입장에서 영혼을 말한 것이다. 당시 영혼에 대한 보편적인 정서라고 할 수 있겠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게 이해하고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기도 하다. 그러자 존자는 그것이 옳지 않음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대왕이여, 다섯 가지 문에 관해서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만일 안에 있는 생명의 원리가 대왕이 말씀한 것처럼, 창문을 마음대로 고르듯이 눈으로 형상을 볼 수 있다면 눈 뿐 아니라 다섯의 감관으로도 형상을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소리를 듣는 것 냄새를 맡는 것, 맛을 보는 것, 촉감을 느끼는 것, 대상(法)을 식별하는 것에 있어서도 다섯의 감관(感官)중 어느 것에 의해서나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즉 한 경우만 아니라 모든 경우를 지적해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대가 말한 것은 앞뒤가 잘 맞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여기 딘나[사람이름]가 밖에 나가 문간에 서 있다고 합시다. 대왕은 딘나가 밖에 나가 문간에 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알 수 있습니다.』
존자는 왕이 말한 정신, 즉 영혼을 하나의 사람에 비유하여, 영혼이라는 것이 있어 문간(감관)에 서서 대상을 식별한다면, 다섯 가지 문이 아닌 하나의 감관, 즉 하나의 문으로도 충분할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 속에 영혼이라는 것이 따로 분리되어 있다면 구지 다섯 개의 문(감관)이 있을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어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어떤 맛을 지닌 것이 혀 위에 놓여 졌을 때 식별하는 생명의 원리(個我)는 그것이 시다든가 짜다든가 쓰다든가 맵다든가 달다는 맛을 알 수 있습니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맛을 지닌 것이 위(胃)속으로 들어갔을 때도 생명의 원리는 맛을 알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그대의 말은 앞뒤가 잘 들어맞지 않습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백 개의 꿀 접시를 꿀통에 쏟은 다음, 입이 틀어 막힌 사람이 꿀통 속에 들어갔다고 합시다. 통 속에서 그 사람은 단맛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습니까.』
『존자여, 그는 꿀맛을 모릅니다.』
『어째서 모릅니까.』
『꿀이 그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그대의 말은 앞뒤가 들어맞지 않습니다.』
『존자여, 나는 그대와 같은 존자에게는 대적할 수 없습니다. 그 도리를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서 장로는 아비달마론으로부터 끌어내어진 이론으로 미린다 왕을 설득시켰다.
『대왕이여, 눈과 형상(色)에 의하여 눈의 식별작용이 생기고, 그 밖에 접촉(觸)과 감수(感受)와 표상(表象)과 의사(思)와 통일 작용(作意), 즉 추상과 생명감과 주의력 등이 함께 생겨납니다. 그리고 이것들과 유사한 인과(因果)의 연속은 감각기관이 작용하게 될 때 일어납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사상(思象·法)은 연(緣)을 따라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베다구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徐景洙 譯, 現代佛敎新書 3,『미린다 팡하』「14, 영혼과 정신 작용의 구별」 pp. 100~103.)
요약하면 이렇다. 우리 몸속에 영혼이라는 것이 따로 있다면, 구지 다섯 가지 다른 감관을 통하지 않고도 사물을 식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관에 따라 식별이 다르다는 것은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감관이 따로 따로 존재하는 것은, 몸과 정신을 따로 분리할 수 없기 때문이며, 그렇기 때문에 몸이 없어지면 정신(영혼) 또한 함께 없어진다는 주장이다. 정신과 육체는 한 덩어리라는 것이다. 즉, 모든 것은 연緣을 따라 일어날 뿐, 거기에 영혼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에 왕은 아직 확실하게 가슴에 와 닿지 않았는지 질문을 이어간다.
『존자여, 식별(識)과 지혜(慧)와 생명체의 정신(命)(정신적 자아 또는 영혼)등 세 가지는 본질(義)과 말(語)이 각기 다른 것입니까, 아니면 본질은 같고 말만이 다릅니까.』
『대왕이여, 식별은 분별해 아는 지각을 특징으로 하고, 지혜는 이성으로 식별해 아는 것을 특징으로 하지만, 생명체의 정신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정신과 같은 것이 없다면, 무엇이 눈으로 형상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보고, 몸으로 촉감을 느끼고, 마음(意)으로 사물(法)을 식별합니까.』
『만일 정신 같은 것이 있어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하고, 식별한다면, 눈의 문이 제거 될 때 정신(個我)은 머리를 밖으로 뻗고, 더 큰 큰 공간을 통하여 전보다 훨씬 더 똑똑하게 형상을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또 귀나 코나 혀나 피부가 제거될 때에도 마찬가지로 그 전보다 훨씬 더 똑똑하게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고, 맛을 알고, 감촉을 느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육신 안에 정신 같은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존자여.』(徐景洙 譯, 現代佛敎新書 3,『미린다 팡하』 pp. 165~166.)
왕은 식별과 지혜와 정신의 차이를 묻고 있다. 영혼이라는 존재가 없다면 어떻게 식별하고 판단하느냐는 의문을 풀기하기 위해서다. 이에 그 차이를 설명하면서도 정신적 자아나 영혼 같은 것은 없다고 다시 한 번 부정한다. 그러자 왕은 정신과 같은 것이 없다면, 누가 눈으로 형상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보고, 몸으로 촉감을 느끼고, 마음으로 사물을 식별하느냐고 묻는다.
이에 존자는 우리 속에 영혼이라는 것이 따로 있다면 감관을 통하지 않고도 사물을 식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재차 강조하면서, ‘만일 정신 같은 것이 있어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하고, 식별한다면, 눈의 문이 제거 될 때 정신은 머리를 밖으로 뻗고, 더 큰 큰 공간을 통하여 전보다 훨씬 더 똑똑하게 형상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영혼이라는 것이 따로 있다면 영혼이 몸 밖으로 나와 사물을 식별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논리적 설명이다. 먼 옛날이지만 지금 보아도 지극히 과학적이다.
앞 장에서 이미 논의하였지만, ‘십이처설’은 일체존재를 인간의 마음과 마음작용으로 보고, 그것을 12가지 처로 분류 분석한 것이다. 거기에 정신적인 면을 강조한 것이 ‘오온설’인데, 육체와 정신의 관계를 생명활동의 측면에서 나타낸 것으로, 십이처설에 비해 물질보다는 정신 쪽에 중점을 두고 있다. 간단하게 말해 이들 불교 법칙들은 상캬나 요가학파와 같이 물질적인 부분과 정신적인 부분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불교 이론이 상캬나 요가학파와 다른 점은, 정신적인 부분을 인정하고는 있지만 정신 또한 무상하다고 본 점이다. 일체는 원래 무상한 것이어서 모든 일은 연기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에, 정신이나 영혼이라는 것 또한 연기의 법칙을 따른다는 것이다.
바라문들이 말하는 자아나 사문들이 말하는 영혼도 마땅히 무상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오취온에서 맨 처음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색온인데, 색온을 구성하고 있는 사대요소가 이미 무상한 것이니, 오취온의 무상성은 재언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색을 발생시키는 인(因)과 연(緣)이 벌써 무상(無常)하니, 무상한 인과 무상한 연으로 발생한 색(色)이 어찌 유상(有常)하겠는가. 수(受)·상(想)·행(行)·식(識) 또한 그러하다.”<잡아함 卷1> (고익진 지음,『불교의 체계적 이해』 pp. 29~30.)
부연하자면 붓다는 오온설을 제시하고 그것의 무상함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우파니샤드 철학의 자아(自我, atman)나 생활파의 명(命, jiva), 이계파의 영혼(靈魂, jiva) 등은 모두가 아직 오온설의 차원에 머무르고 있다. 그런 이유로 오온이 무상함을 주장하는 붓다의 눈에는 자아니 정신이니 영혼이니 하는 것은 한낱 뜬 구름과 같은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이들 또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곧 사라지는 무상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신과 육체는 밀접하게 서로 관계하기 때문에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영혼과 육체를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보는 생활파의 견해는 심신의 밀접한 상호관계성을 설명할 수가 없으며, 영혼과 육체는 대립한다는 이계파(離繫派)의 이원론 또한 그 두 부분이 불일불이(不一不異)의 관계로 상관하고 있는 현상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고익진 지음,『불교의 체계적 이해』 pp. 27~28.)
나아가세나 존자 또한 붓다와 같이 모든 식별과 지혜를 인정하면서도, 생명체의 정신이라고 하는 영혼은 육체의 소멸과 같이 사라지는 무상한 존재라고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왕을 설득하였던 것이다.
정통 바라문의 사상을 전변설轉變說이라 하고 새로운 사문들의 사상을 적취설績聚說이라고 한다면, 불교철학은 연기설緣起說이라고 할 수 있다. 연기라는 것은 우리의 현실세계를 각자의 무지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는 세계관을 의미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부처님은 전변설의 ‘아트만(我)’을 부정하고, 적취설의 단견斷見을 부정하여 그러한 두 끝을 지양한 중도적 ‘무아’를 종교적 실천의 원리로 제시한 것이다.
이와 같이 불교의 모든 법칙은 연기로 집약되고 있으며 모든 법칙은 일종의 연기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해탈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인 윤회는 물 건너간 것일까? 그렇다면 결국 윤회는 없는 것이고, 그러므로 해탈도 없고 열반 또한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앞서「무아」장에서 살펴 본 바 있어 낯설지 않은데, 그 보다 먼저 살펴 볼 것이 있다.
3) 윤회에 대한 논란, 신통 I
윤회가 불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다. 윤회를 부정하면 경전은 의미가 없어지고 붓다의 가르침들은 무용지물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교의 궁극적 목표인 열반 또한 무의미해지기 때문에 불교의 존립에도 문제가 생긴다. 윤회는 열반과 함께 불교의 중추를 이루는 중요한 교리인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것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일까?
이렇게 윤회가 부정되면 불교 전체가 무너짐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많은 불교인들이 윤회의 사실성을 의심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티베트나 몽고의 불교인들은 윤회에 대한 확신을 갖고 살아가는데, 한국이나 일본의 불교인들이, 같은 불교권임에도 불구하고 윤회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원인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현대불교학’에 있다고 생각된다. 합리주의와 과학주의의 기치를 걸고 문헌학을 도구로 삼아 서구인들에 의해 시작된 현대의 ‘인문학적 불교학’이 전 세계 불교연구의 주류를 이루는 과정에서, 서구인들의 세계관과 부합되지 않는 윤회의 가르침은 하나 둘 폐기되었고 불교의 신앙성은 말살되고 말았다. (김성철, madhyama@chol.com,「윤회는 사실인가, 믿음인가?」)
논자는 그 이유를 현대불교학으로 보고 그 원인을 서구인들에게서 찾았다. 그러나 그들보다 먼저 인텔리 불교를 표방하며 불교를 인문학의 반열에 끌어 올려놓은 장본인은 일본인이다.
1867년 명치유신이 일어나자 국왕을 중심으로 한 국수주의가 대두되고, 이에 따라 일본의 국학자들은 신도神道에 의한 교육추진을 선포하고 신불神佛을 분리分離하는 정책을 편다. 신도와 불교를 분리되면서 불교를 배격하는 운동이 전개되었는데, 불교는 하루아침에 오래도록 유지하던 국교적 위치를 상실하게 된다. 오랜 세월 편안하게 안주하고 있던 불교는 배불론자들에 의해 ‘폐불훼석廢佛毁釋’의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정치권력으로부터 외면을 받게 된 불교는 살아남기 위하여 ‘신불일치神佛一致’를 강조하는 한편, 천황과 군국주의에 대한 충성에 매진한다. 천황에게 신권神權을 부여하고, 불교의 전륜성왕과 동일시하여 ‘대동아大東亞 전쟁’을 성전聖戰으로 찬양하였는가 하면, 정복전쟁을 정당화하는데도 앞장섰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한편으로는 신앙쇄신운동이 일어나 불교정신 회복을 꾀하였는데, 서유럽의 근대적 연구 방법을 불교에 도입하여 불전에 대한 연구와 불교사 연구에 새 장을 연 것이다. 선각자들에 의해 불교 대학이 서고 불교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것이다. 인문학의 과제로 상정하다보니 불합리하거나 과학적이지 않은 부분은 연구대상에서 제외되기도 하였는데, 일본 불교가 서구 사회에 전해지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더 심화된 측면이 있다. 논자는 이를 지적하여 윤회를 의심하게 된 원인을 ‘현대불교학’에서 찾았고, 이들이 지나치게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그런 폐해가 생겼다고 진단한 것이다.
예를 들어, 아비달마 논서는 물론이고 초기불전 도처에서는 십이연기설을 소위 ‘귀신’인 중음신(中陰身)의 수태(受胎) 및 윤회와 연관시켜 설명하는데 {{이를 태생학적 연기설이라고 부른다.}} 서구의 불교학 연구자들은 이를 후대에 조작된 교리라고 비판하며 폐기시킨다. 인문학적 불교학에서는 합리적이고 철학적이고 논리적인 가르침만을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으로 간주하려 한다. 오관에 의해 감각되지 않거나 신비스러운 가르침, 자신들의 종교관과 부합되지 않는 가르침은 무시하거나 비판하며 폐기시킨다. 그 결과 급기야 그들의 연구물에 의지하여 신행생활을 하는 불교인들조차 불교의 핵심 교리인 윤회에 대해서조차, ‘긴가, 민가?’하고 의심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김성철, madhyama@chol.com,「윤회는 사실인가, 믿음인가?」. )
불교를 학문적으로만 연구하는 학자들은 윤회를 부정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는데, 한편 붓다의 깨달음은 열반의 깨달음이기도 하지만 윤회의 깨달음이기도 하다. 윤회를 깨달았기 때문에 정각 또한 가능했다는 것이다. 윤회는 학문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사항이 아닌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깨달음은 열반의 깨달음이기도 하지만, 윤회의 깨달음이기도 하다. 열반의 깨달음이 궁극적 깨달음이긴 하지만 이는 그 이전에 윤회를 깨달았기에 가능했다. {사분율} {{ 대정장22, p.781b}}과 {잡아함경} {{ 대정장2, p.223b 등.}}을 위시한 초기불전 도처에서는, ‘숙명통(宿命通) 천안통(天眼通) 누진통(漏盡通)’이라는 세 단계의 신통력이 열리면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었다고 설명한다. 이런 세 가지 신통력을 삼명(三明)이라고 부르는데, 이 가운데 숙명통이란 ‘자신의 전생을 모두를 하나하나 기억해 내는 신통력’이고, 천안통이란 ‘다른 생명체들의 전생과 현생, 현생과 내생의 윤회를 모두 기억하거나 추측하는 신통력’이며, 누진통이란 ‘모든 번뇌가 사라지는 신통력’이다.
성도의 과정은 ‘윤회에 대한 직관’과 ‘열반의 체득’의 두 단계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중 전자에 해당하는 것이 ‘숙명통과 천안통’이며, 후자에 해당하는 것이 ‘누진통’이다. 붓다는 숙명통을 통해 다른 모든 생명체의 무수한 전생은 물론 자신의 무수한 전생을 보았고, 천안통을 통해 우주와 생명을 지배하는 유일무이의 보편적 법칙인 연기를 알았으며, 누진통을 통해 번뇌가 사라져 열반을 얻었다는 것이다. (흔히 우리가 깨달음이라고 부르는 ‘유여열반有餘涅槃’은 이 중 누진통에 해당한다.)
이 과정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넓게는 연기의 법칙, 좁게는 십이연기의 법칙, 더 좁게는 인과응보의 법칙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자신의 무수한 전생도 이런 연기의 법칙에 의해 영위되어왔고[숙명통], 다른 모든 생명체의 무수한 전생은 물론이고 그들의 내생 역시 연기의 법칙의 지배를 받을 것이기에 이는 우주와 생명을 지배하는 유일무이의 보편적 법칙이며[천안통], 궁극적 행복은 이런 연기의 세계, 윤회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번뇌가 사라진 ‘열반’을 얻는 일이다[누진통]. (김성철, madhyama@chol.com,「윤회는 사실인가, 믿음인가?」. )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지만, 붓다는 지난한 수행 끝에 신통력을 얻었고, 신통력으로 모든 생명체가 윤회한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윤회를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의심하지 않았고, 윤회를 증명하려고 시도하지도 않았다는 견해이다. 윤회를 과학적으로 검증하지 못한다고 해서 윤회의 사실성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며, 윤회를 부정하는 것 역시 또 다른 믿음일 뿐이라고 논자는 말한다. 불합리한 부분도 있지만 윤회를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윤회의 사실성을 증명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윤회의 사실성을 입증하는 가장 비근한 예가 티베트 불교일 것이다. 티베트의 종교적, 정치적 수장인 제14대 달라이라마의 중국 탈출기를 그린 영화 ‘쿤둔’에는, 어린 달라이라마가 갑자기 ‘내 틀니!’라고 외치며 작은 방으로 뛰어 들어가 틀니를 찾아내는 장면이 나온다. 일반 관객들은 그 사건의 의미를 놓치기 쉽다.
달라이라마의 전기를 보면 그 장면이, ‘어린 달라이라마가 갑자기 자신의 전생을 기억하며 자신이 전생에 쓰던 틀니를 찾아내었던 일화’를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티베트에서는 비단 달라이라마뿐만 아니라, 모든 종파의 수많은 종교지도자들이 환생을 통해 다시 각 종단이나 사찰의 종교지도자로 양육된다. 이 이외에도 윤회를 증명하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자신의 전생을 기억할 수 있었고, 그 제자들에게도 전생 회상법을 수련시켰다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피타고라스, 세계 각국의 민담 속에 전해오는 수많은 환생 이야기, 최면술을 통해 자신의 전생을 회상케 하는 것, 전생 직관을 통해 수많은 환자를 치료했다는 미국인 에드가 케이시,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윤회의 사례를 수집하여 이를 증명했던 영국의 심리학자 스티븐슨 등등. 또 앞에서 설명했던 석가모니 부처님의 성도 과정에서 보듯이 불전에서는 색계 제4선의 경지가 되면 누구나 전생을 기억해 낼 수 있다고 가르친다. (김성철, madhyama@chol.com,「윤회는 사실인가, 믿음인가?」.)
요사이는 윤회에 대한 다큐멘터리나 영화 혹은 학술연구의 사례들이 많아져 윤회는 이제 우리 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은 느낌이다. ‘쿤둔’ 뿐 아니라 ‘티벳에서의 7년’ 등 많은 영화에서 윤회를 소재로 활용하고 있는데, 예를 하나 더 들자면 2008년 환생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그린 이스라엘 감독 나티 바라츠의 “환생을 찾아서 (Unmistaken Child, The Baby And The Buddha)”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티베트의 텐진 조파라는 승려가, 7세 때부터 스승으로 모셔온 콘촉 라마가 2001년 84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스승의 환생을 찾아 길을 떠난다는 내용이다. 티베트의 곳곳을 누비는 4년의 여정 끝에 마침내 텐진 조파는 스승의 환생으로 여겨지는 아이를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감독은 이 긴 여정을 따라가며, 스승과 제자 그리고 그 제자가 다시 환생한 스승의 새로운 스승이 되는 윤회의 법도를 가감 없이 앵글에 담았다.
이와 같이 티베트에서는 환생을 당연시하고 있고, 이런 사례들을 접하면서 우리는 윤회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축척될 것이라는 것도 예측 가능하다. 과학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다 보니 그냥 무시해 버릴 수 있는 수준을 넘어버린 것이다.
반면에 아직 확실한 결론에 이르지 못하였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게 받아들이고 넘어가기에는 또 다른 의문이 남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통을 금기시하였던 붓다의 설법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4) 윤회에 대한 논란, 신통 II
한 경전에서 붓다는 한 바라문에게 ‘신통력’이라는 말은 기적의 뜻이라고 하면서, 여느 사람으로서는 생각조차 못할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신통에는 “신통신변神通神變”, “기설신변記設神變”, “교계신변敎誡神變” 등이 있다고 하면서 그 하나하나에 대해 논하는데 요약하면 이렇다.
먼저 신통 신변이란 문자 그대로 기적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공중을 간다든지, 물위를 걷는다든지, 허공에 앉는다든지 하는 기술을 말한다.
(중략)
다음으로 기설 신변이라 함은 예언을 이름이다. 이를테면 점을 쳐서 미래를 예언한다든지, 신의 계시에 따라 닥쳐 올 일을 말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중략)
마지막의 교계 신변이란 경전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너희는 이렇게 탐구하라. 이렇게는 탐구하지 말아라. 이렇게 사색하라. 이렇게는 사색하지 말아라. 이것을 끊어라. 그리고 이것을 체득하라.”는 식으로 이렇게 가르치는 것이다. 그것은 구태여 신통이니 신변이니 할 필요도 없겠고, 붓다가 평소에 그 제자나 신자를 상대로 살아 온 생활이야말로 바로 그것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增谷文雄 著/李元燮 譯,『阿含經 이야기』 pp. 281~282.)
이어 붓다는 신통신변의 기적, 기설신변의 예언과 함께 교계신변의 평소생활 중 어느 쪽이 옳은지를 바라문으로 하여금 판단하게 하는데, 붓다의 설법에 대해 바라문은 ‘신통신변’이나 ‘기설신변’은 “환상 비슷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소감을 밝힌다. 그런 일들은 환상 같은 것이어서 그 당사자에게만 통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교계신변’에 대해서는 “아 고타마여, 나는 마지막 신변을 가장 위대하다고 봅니다. 세 가지 신통력 중에서 가장 뛰어나고 가장 묘하고 희유한 것은 그것입니다.”라고 하면서 감탄을 연발한다. 신기하게도 이 이야기는 천년의 시공을 넘어 ‘평상심시도’가 바로 신통! 이라는 선종 선사들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불교는 중국에서 “평상심이 그대로 도[平常心是道]”라는 선종의 가르침으로 발전한다. 앞의 신통에 대한 내용을 고려한다면 발전이 아니라 회귀라고 할 수 있는데, 도道도 어디까지나 인간사人間事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평상의 행위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죽을 먹었으면 발우를 씻어야 하듯이 ‘신통과 묘용이란 물 긷고 땔나무 하는 것’이고, ‘밭 갈고 주먹밥 먹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예는 선종서에 무수히 등장하는데, 임제종을 일으킨 임제臨濟 선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저 부처님의 육신통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물질의 경계에 들어가지만 물질의 미혹함을 받지 않고, 소리의 경계에 들어가지만 소리의 미혹함을 받지 않으며, 냄새의 경계에 들어가지만 냄새의 미혹함을 받지 않고, 맛의 경계에 들어가지만 맛의 미혹함을 받지 않는다. 감촉의 경계에 들어가지만 감촉에 미혹함을 받지 않고, 법의 경계에 들어가지만 법의 경계의 미혹을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색․성․향․미․촉․법 이 여섯 가지가 모두 텅 비었음을 통달하고 있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무의도인을 속박할 수 없다. 비록 오온의 번뇌로 이루어진 몸이지만 바로 이것이 땅으로 걸어 다니는 신통[地行神通]이니라.” (무비스님,『임제록 강설』「14-11 땅으로 걸어 다니는 신통」)
우리는 어떤 일을 보고 “참! 신통방통하다!”는 말을 가끔 쓰는데, 육신통六神通이란 ‘땅으로 걸어 다니는’ 것이라는 돌 직구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아마도 선종의 주장(붓다의 견해도 마찬가지)과 비교하여 인도의 선정사상禪定思想에 있어 가장 큰 차이점은 이 같은 신통사상일 것이다. 중국선종사中國禪宗史는 선을 익히면서 수반하는 초현실적인 신통신앙에 대한 ‘파괴의 기록’이라고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래 중국선종의 주장과 인도의 선정사상禪定思想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선을 익히는데 수반하는 초현실적인 신통신앙神通信仰과 그것으로부터의 벗어남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중국선종사中國禪宗史의 흐름은 이러한 신비한 신통사상의 극복과 인간의 것으로서의 선사상禪思想의 역사적 형성에 지나지 않는다. (야나기다 세이잔/추만호, 안영길 엮음,『선의 사상과 역사』 p. 160.)
요즘은 사라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가끔 매체를 통해 수십 년 수련 끝에 주먹으로 못을 박는 사람들이나 공중 부양한다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을 것인가는 불을 보듯 뻔하지만, 그 효용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남긴다. 예컨대 우리는 망치로 손쉽게 못을 박을 수 있으니 말이다. 신통에 현혹되어 일생을 보내는 것 또한 이와 같으리라. 붓다가 당시 유행하던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 같은 삼매의 수련을 접고 사색에 들어간 이유도 그런 것이 아닐까?
어느 말이 붓다의 친설이냐? 라는 문제가 중요할 것이지만, 대기설법의 달인인 붓다가 상대방에 맞추어 둘 다를 말했다고 해도 별로 이상해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사실이야 어떻든 선종 선사들을 스승으로 하여 수행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붓다의 신통력은 그대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리고 윤회하면 어떻고 하지 않으면 어떤가! 결론도 나지 않을 명제에 매달리느니 현실에 충실 하라는 것이 붓다가 행한 침묵의 의미일 것이다. 한중일 수행자들이 윤회를 받아들이는 것을 꺼려하는 이유 또한 바로 여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제자의 질문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해소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마치 악몽을 꾸다가 갑자기 깨어나는 것과 같다. (오경웅吳經熊 지음, 류시화 옮김,『선의 황금시대』 p. 126.)
질문이 해소 된다는 것은 몰랐던 것을 알게 된다는 뜻이지만, 선적인 표현을 하자면 “의심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난 그날 이후로 모든 의문이 사라져 버렸어. 그 순간 내가 안 것은 내가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 죽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언제나 생사에 자유롭다는 것’과 같은 체험이다. (천진 쓰고 현현 엮다,『지리산 스님들의 못 말리는 수행이야기』 p. 218.)
혹자는 이런 말을 들으면 과연 그럴까 의심이 들 것이다. 똑같은 결론에 이르게 되는지는 의문이지만(개인차가 존재할 것이다.) 소위 깨달으면 그런 의심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갑자기 깨어나 아무 의심도 없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