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상단이 부모(쌍분)-父(宋泰)이고 퇴계 이황이 글을 썼다.
아래 묘소가 송순이고, 그 아래는 子인 송해관 이라고 알려져 있다.
조선 중기 문신. 子: 수초(遂初), 號:면앙정(俛仰亭)·기촌(企村). 시호 숙정(肅定). 1519년(중종 14) 별시문과에 급제, 1550년 이조참판 때 죄인의 자제를 기용했다는 이기(李芑 ) 일파의 탄핵으로 유배되었다. 구파의 사림(士林)으로 이황(李滉) 등 신진사류(士類)와 대립하였다. 1569년(선조 2) 대사헌 등을 거쳐 우참찬(右參贊)에 이르러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가 치사(致仕)했다. 강호가도(江湖歌道)의 선구자로 시조에 뛰어났다. 담양(潭陽) 구산서원(龜山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 문집에 《기촌집》 《면앙집》이 있고 작품에 《면앙정가(俛仰亭歌)》가 있다.
생가터 추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