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이별엔 비가 내린다.
한 미 정
그날도 비가 내렸지. 어젯밤부터 내리는 비는 강도를 달리하며 줄기차게 내리고 있다. 사람들은 비를 얘기할 때면 슬픔 그리고 눈물에 비유를 하곤 한다. 나 역시 비는 눈물과 같다고 생각 할 때가 많다. 특히 누군가와 이별을 한 후에 비가 내린다면 더욱 그러 하겠지.
5월의 끝자락, 암울의 전조 마냥 그날도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억세게도 내렸다. 어슴프레 새벽이 밝을 때쯤, 어젯밤 내 옆에서 잠이든 그를 더듬거렸다.
‘없다.’ ‘혹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집 구석구석을 뒤지며 그를 불렀다.
“찡!” “찡!”
몇 번을 소리 내어 불러 봤지만 기척이 없다. 아! 오늘이 그날인가. 의사는 찡의 병세가 심각하여 며칠을 넘기지 못할 거라며, 고통을 들어 줄 방법으로 빠른 시일 내 안락사 시킬 것을 권유했다. 그런 찡은 바람 앞에서 흔들리는 등잔불 마냥 위태로이 며칠을 잘 버티며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작은딸과도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오늘 그 의식을 약속한 날이다.
자연의 세계에서 동물들은 죽음을 맞이할 때가되면 식음을 전폐하고 죽음 맞이할 장소를 찾아 동굴로 혹은 후미진 구석을 찾아 생을 마감 한다는데,
‘혹시 찡도?’
불안한 마음에 여기저기를 찾다가 거실의 긴 소파 밑에 웅크린 검은 그림자를 발견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마지막 인사도 없이 이대로 떠나 버린 건가? 찡을 부르며 소파를 앞으로 끌어당겼다. 미동도 없이 웅크려있는 찡의 모습은, 여기저기 구르다 이곳에 안착한 때에 찌더런 솜뭉치마냥 초라하고 애처롭게 보였다.
주인의 울음 섞인 목소리를 눈치 챘는지 사그라져 가는 불씨에 혼을 불어 넣은 듯, 힘없는 작은 목소리로 몇 마디 짧게 응답을 해 주었다. 아! 먼 길 떠나는 날 인사도 없이 혼자 홀연히 떠나 버렸을까 두려웠는데, 가늘고 작은 울음 이였지만 숨을 멈추지 않았음에 안도하며 찡을 품에 안았다.
“찡! 그동안 고마웠어, 많이 힘들지? 이제는 그만 가도 돼. 자는 잠에 갔으면 좋았을 걸, 이제 곧 아프지 않게 해줄 게. 우리가족으로 살면서 즐거웠던 기억, 좋았던 기억만을 간직하고 아픔이 없는 곳에서 행복하게 지내야 해.”
어젯밤 잠들기 전, 찡에게 몇 번이나 되뇌었던 말이다. 오늘 눈 뜨면 하지 못할 줄 알았던 그 말을 또다시 기도처럼 되뇌었다. 12년을 가족으로 살았는데 오늘,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곳으로 보내야 하는 심정 뭐라 형언할 수 없이 슬프다.
남편이 운전하는 승합차 창 밖에는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비가 억수같이 퍼붓고 있다. 5월에 느닷없이 장마처럼 내리는 이 비, 암울의 공간 차 속, 큰딸 그리고 나, 케이지 속의 찡도 저 빗물처럼 모두 하염없이 눈물만 꾸역꾸역 토해내고 있다.
평소 진료보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의사는 찡의 이별 의식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게이지에서 나온 찡은 공기의 흐름이 뭔가 다름을 눈치를 챘는지 집에서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갑자기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선생님 찡 상태가 좋아진 것 같아요, 그냥 데려가면 안 될까요?” 가족 중 누구 보다 찡을 좋아했던 남편이 의사를 향해 마지막 애원을 했다. 딸과 나 역시 그랬으면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의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희망을 갖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상태이고 빨리 보내 주는 것이 찡의 고통을 덜어주는 길이라며, 실낱같은 희망의 끝자락이라도 붙잡아 보려는 우리를 설득했다.
의사는 직업인 양 무심한 어투로 찡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한다. 이 순간 찡에게 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겠는가?
‘미안해, 그리고 또 미안해’ 이 말 말고는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찡의 생전 온기를 마지막으로 쓰다듬으며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했다는 말만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찡! 잘 가!”
의사는 수면 마취주사를 찡의 다리에 놓았다. 그리고 찡은 잠이 들었고, 두 번의 수면 마취로 찡은 깊은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잠시 숨이 막힐 듯 무거운 정적이 흘렀고 의사는 또 다른 주사 바늘을 찡의 혈관에 꽂았다. 순간 찡의 몸뚱이가 짧게 한번 요동을 치더니 더 이상 찡의 심장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12년, 길다하면 길고 짧다면 짧은 묘생 살다가 이승을 떠나는 시간은 짧디 짧은 한 순간이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하염없이 흐르는 이 눈물만으로 너를 보냄을 아쉬워할 뿐이다.
혹자는 고양이 장례를 치른다고 하면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찡은 누가 뭐라든 내 가족의 일원으로 큰 자리 매김하였고 사랑과 교감을 주고받으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왔었다. 그러기에 우리는 가족의 예우를 갖춰 장례를 치러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강아지 펫헤븐’ 성주군에 자리한 동물 장례식장으로 잠든 찡을 옮겼다. 그곳에서 우리는 말로만 듣고 TV에서 만 보았던 반려동물의 장례의식을 엄숙히 치렀다. 또한 그곳 관계자 분들도 사람 못지않게 찡의 주검에 예를 다해 주었다. 마지막 가는 길 꽃길로 걸어가라며 예쁜 꽃으로 찡의 온몸을 감싸고 관에 넣어주었다. 꽃 속에 둘러 싸여 잠들어 있는 찡의 모습은 너무도 편안해 보였다. 우리가족 역시 찡의 마지막 가는 길 정성껏 배웅하고 추모했다.
의식을 치르는 내내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질 않고, 찡을 품은 용광로 굴뚝에서는 사체를 사르는 연기가 빗줄기를 거스르며 길게 피어오른다. 노릿한 찡의 체취는 계속해서 내 코 가까이에서 맴 도는데 먹구름 사이를 가로지르며 찡의 영혼이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며 높이높이 올라가고 있었다.
40분의 시간이 흐르고 찡의 육신은 완전히 우리 곁을 떠났다. 그리고 내 손에는 찡의 생전 온기마냥 따뜻함이 느껴지는 메모리얼 스톤이 담긴 상자 하나와 찡의 영원한 부재를 확인 시켜줄 화장증명서 하나가 주어졌다. 아! 이것으로 찡과 우리의 마지막 이별 의식은 끝이 났다.
화장증명서를 넘겨보았다. 그곳에는 찡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 가장 예쁘고 귀여웠던 모습이 사진으로 담겨져 있었다. 사진속의 찡을 손으로 가만히 쓸어내려 보았다. 온기 없는 서늘함, 건조함에 또 한 번 가슴이 먹먹해온다. 사진 아래에 알알이 박힌 짧은 글귀 한 구절이 눈물로 뿌예 진 내 시야로 들어왔다.
‘만났으니 헤어지는 것이고 왔으니 가는 거란다. 이승에서 맺은 인연 하늘나라에서도 맺기를 바라며 고맙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너를 보낸다. 민들레 꽃잎이 지고 나면 하얀 홀씨가 되어 날아가듯이 훨훨 하늘나라로 날아가거라.’
내가 찡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처럼 구구절절 애절하다.
‘찡 이제 영원히 안녕!’
아! 내리는 비가 눈물처럼 슬픈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