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冬장군 실종
무너지기 전의 등반 모습(구곡빙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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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모습(구곡빙폭)
부상자 수습
등반자 아래에서 허리가 잘린 대승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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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벽얼음 안 얼어 ‘썰렁해진 겨울’
빙벽등반 철이 찾아 왔다. 초겨울에 들어서면서 장비장에 챙겨 넣어 두었던 빙벽장비들을 하나씩 꺼내어 손질을 하노라면 초겨울 창밖의 바람소리가 빙벽으로 가자고 칭얼댄다. 빙벽에서 손발 구실을 하는 아이스 툴과 크램폰. 빙벽화를 돌봐야 한다. 지난겨울 무디어진 피크는 줄로 갈아 날을 세워주고 녹슨 부분은 닦아내고 앞 발톱도 날을 세워 얼음에 대한 지지력을 높여 주어야 하며 크램폰이 빙벽화에 잘 부착되는지도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이 과연 겨울인가 싶을 정도로 포근한 날씨에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금년 12월 23일 서울의 낮 최고기온은 5.3도. 24일에는 10.6도까지 올랐다. “겨울인지 가을인지 분간하기 힘든 날씨”가 지속되고 있다.
매년 이맘 때 면 가래비 폭포가 한 두 겹씩 두텁게 살찌워져 빙벽을 향한 클라이머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작년 이맘때는 한국최대규모의 인공폭포인 ‘판대리 아이스파크’가 12월 21일 개장식을 하고 많은 클라이머들이 빙벽등반을 즐겼다. 올해 같은 시기의 판대는 빙벽의 결빙커녕 빙벽 아래 강물조차 얼지 않고 있다. 하천의 얼음 두께는 20cm 이상 돼야 사람들이 강을 건너 빙벽에 접근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강원도나 경기북부 주요 하천의 얼음 두께는 5cm에도 못 미친다. 이런 가운데 기뿐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작년에 비해 12일이나 늦게 결빙된 ‘판대 아이스파크’는 오는 2016년 1월 2일에 시빙제(始氷祭)를 연다는 낭보가 전해지고 있으니 산악인들을 위해서는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겨울 특수를 겨냥한 의류업체들의 매출 또한 물 건너간 느낌이다. 방한용 다운제품들이 잔뜩 쌓여 있는 채 의류매장은 썰렁하기만 하다. 의류판매상인들은 “겨울 의류와 방한용품 매출이 지난해의 절반 밑으로 뚝 떨어졌다”고 했다. 유난히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예년과 완연히 다른 겨울 일상이 펼쳐지고 있다. 고산원정대를 연상케 하는 두툼한 기능성의류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은 찾아보기도 힘들다. 아웃도어 상품의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1% 현저하게 하락했다고 상인들은 울상이다.
겨울 속의 봄 같은 날씨는 비단 우리나라 뿐만 아니다. 지구촌이 동시 다발적으로 기상이변을 겪고 있다. 북미대륙에서 가장 추운 지역 중의 하나인 카나다 동부도 15도가 넘는 역대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 남미지역은 폭우가 쏟아지고 호주는 지독한 가뭄현상을 겪고 있다. 특히 슈퍼 급 엘리노가 지구촌 평균기온을 섭씨 3.6도 이상 높여 놓았다고 기상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눈과 얼음으로 상징되는 겨울철 빙벽등반은 직격탄을 맞았다. 보통 이만 때면 웬만한 빙폭들이 결빙되었지만 올해는 말짱 꽝이다. 어느 성급한 산악인은 설악산의 소승폭. 실폭. 매바위 인공폭. 강원도 화천의 딴산 인공 빙폭. 강촌의 구곡폭포를 일삼아 자동차로 순회하면서 결빙 여부를 살펴보고 돌아온 뒤 결빙된 빙벽이 없어서 허전한 마음을 안고 돌아와 우이동 소재 코오롱 등산학교 실내 인공 빙벽장에서 장비를 풀었다. 옥외 빙폭들이 얼지 안차 실내빙장은 아이스 클라이머들의 인파로 과거 어느 때보다 성시를 이루고 있다.
지난 해 12월 야외 빙벽들이 결빙되기 전까지 이곳을 찾은 연인원이 40여명 정도였으나 올해 같은 시기 이곳에 찾아와 빙벽등반을 한 사람은 3주 동안 연인원 250명을 기록하고 있다. 개장시간 전인 8시 이전부터 빙장을 찾아와 입장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빙벽등반 뿐만 아니라 매년 실시하는 각종 겨울 축제는 따듯한 날씨 탓으로 행사 자체가 무산되거나 연기되고 있다. 18일 개막한 강원 평창송어축제는 주 행사인 얼음낚시를 제외한 채 눈썰매 등 일부 놀이시설만 운영 중이다. 평창송어축제위원회는 “매년 이맘때면 오대천이 20cm 이상 꽁꽁 얼어 전국에서 가장 먼저 겨울축제를 열었는데 올해는 얼음이 거의 얼지 않았다”며 “축제 준비자들의 마음만 꽁꽁 얼고 있다. 강원도 영월 동강겨울축제도 강물이 얼지 않아 행사 자체를 취소했다.
겨울답지 않은 날씨는 올 11, 12월 엘니뇨 영향으로 한반도 남쪽에서 따뜻하고 습기 찬 공기가 자주 유입됐기 때문이다. 올해 남한지역 평균 기온은 평년보다 0.9도 높은 13.8도. 1973년 이래 두 번째로 높은 온도다. 12월말 서울의 낮 최고기온은 영하권으로 떨어지면서 반짝 추위가 오고 딴산 빙장이 있는 화천이 11.7도를 기록했지만 그 정도 짧은 기간의 한파로는 빙벽의 얼음을 살찌우기엔 역부족일 것이다. 년 말 마지막 주에 다시 영상 5도 안팎까지 오를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더운 날씨 탓에 올 겨울은 양질의 결빙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설사 1월 중의 한파로 빙벽이 결빙 된다 해도 올 겨울의 빙벽등반 기간은 매우 짧을 것이라 생각된다.
올해도 우려되는 것은 빙벽붕괴사고다. 채 성숙되지 않은 빙벽을 찾아 오르다 빙벽이 붕괴하는 사고를 당할 수 도 있기 때문이다.
국내 빙폭 등반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등반 중 빙폭이 붕괴한 아찔한 상황은 여러 차례 있었다. 1991년 1월 8일 12시 따듯한 기온으로 녹아내리던 대승폭이 후등자 K씨의 3m 아래 부분에서 20-30m가 끊어지면서 무너진 일이 있었다. 이날 K씨는 오버행을 넘어서 3미터 정도 진출했을 때 쩍! 뿌지직! 하면서 널빤지가 쪼개져나가는 파열음과 얼음 조각들이 허공으로 흩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발아래서 대포소리와 흡사한 굉음이 일어나면서 삽시간에 빙벽이 허물어져 내렸다. 돌발적으로 일어난 빙폭의 붕괴였으나 인명 피해는 없었다. 이 사건은 일찍이 국내 빙폭 등반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새로운 유형의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 사건이 남긴 교훈은 빙폭의 붕괴 가능성 유무 판단은 냉정해야한다는 점이다. 요행을 기대하면서 단 1%의 불확실성에 목숨을 거는 성급한 일은 없어야 한다.
1994년 2월 5일 설악산 대승폭에서 또 한 차례 이런 일이 발생했다. 하단 등반 후 철수 중 빙폭이 붕괴하면서 8명이 부상을 입었고 2명이 중상을 입은 사고가 있었다. 한국 최대의 난이도를 지닌 대승폭포는 동향이라서 날씨가 맑은 날 정면으로 햇빛을 받아 상단 중간이 2-3일을 못 버티고 무너지는 결빙기간이 매우 짧은 빙 폭이다.
이런 유형의 사고는 1999년 12월 30일 강촌 소재 구곡 빙폭에서 또 한 번 재현되었다. 사고전날 송년행사를 마친 K등산학교 동문회원 2명은 결빙상태가 채 성숙되지 않은 구곡폭포를 오르기 시작했다. 이들이 우측 벽의 동굴 가까이 접근했을 때 동굴 위쪽 오버행에 매어달려 있던 얼음이 통째로 끊어지면서 무너져 내렸다. 동굴 쪽으로 진입하던 이들은 위쪽에서 우지직! 꽝! 하는 파열음과 함께 얼음파편 사태에 떠밀려 하단까지 쓸려내려 오면서 한 사람은 발목 골절상을 입었고 다른 한 사람은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특히 수도권 주변의 클라이머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경기도 양주의 도락산 가래비 빙 폭에서는 이런 유형의 악순환이 여러 차례 거듭되었다.
창세기 이래 과학문명이 발전해 오면서 인공우를 뿌리고 무한 공간 우주에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 1만 미터 깊이의 해저에 잠수정을 입수시킨다 해도 인류가 자연을 극복하고 지배하려는 것은 티끌만한 성과일 뿐이다. 단 한 번의 쓰나미가 수천의 목숨과 가옥을 앗아가는 것이 자연이 지닌 가공할 위력이다. 얼음이 얼고 안 어는 것은 어길 수 없는 자연현상이다. 사람의 힘으로 해결하기엔 턱 없이 역부족인 일에 속한다.
얼음이 제대로 영글려면 아직 1월 한 달이 남아 있다. 성급한 마음으로 빙벽을 찾는 우(愚)를 범하는 일은 삼가야 할 일이다. 느긋한 마음으로 얼음이 영글기를 기다리는 신중함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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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엘리뇨와 늦은한파로 빙벽은 잘영글엇지만 만에하나 얼음상태 눈으로 살피고 느낌으로 두둘기고 촉감으로 안전등반 해야겠습니다.
건강하세요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