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히말라야 8000m 14좌 BC
히말라야에는 8000m가 넘는 산이 14개가 있고, 이 14개 산을 히말라야 8000m급 14좌라 하고, 간단히 줄여서 14좌라 하기도 한다. 히말라야에는 14좌 외에도 8000m 급 산이 더 있기는 하지만 그 봉우리들은 주봉에 속해 있기 때문에 독립된 봉우리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엄홍길 대장의 16좌는 세계 산악계에서는 공식적으로는 인정되지 않는 기록이다. 히말라야 14좌는 3개 나라에 분포되어 있으며, 네팔에 8개( 에베레스트(Everest, 8848), 캉첸중가(Kangchenjunga, 8586m), 로체(Lhotse, 8,511m), 마칼루(Makalu, 8,463m), 초오유(Cho Oyu, 8,201m), 다울라기리(Dhaulagiri, 8,167m), 마나슬루(Manaslu, 8,163m), 안나푸르나(Annapurna, 8,091m)), 파키스탄에 5개( 케이투(K2, 8,611m), 낭가파르밧(Nanga Parbat8,125m), 가셔브룸1봉(Gasherbrum, 8068m), 브로드피크(Broad Peak, 8,047m), 가셔브룸2봉(Gasherbrum Ⅱ, 8,035m)), 중국에 1개(시샤팡마(Shisha Pangma, 8,012m))가 있다. 2) 히말라야 8000m 14좌 BC 트레킹이란? 히말라야 8000m 14좌 BC는 히말라야 14좌 등반의 전초기지인 베이스캠프를 일컫는다. 사실 전문 등반인이 아닌 일반인이 히말라야 14좌 정상을 등반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히말라야 14좌 BC 트레킹의 목적은 정상 등반이 아닌 베이스캠프까지만 트레킹을 함으로서 전문 산악인들이 등반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히말라야 14좌의 파노라마를 감상하는 데 있다. 2. 히말라야 14좌 등정 자료 3. 히말라야 14좌 개별 산 1) 에베레스트(Everest, 8848m)=초모룽마=사가르마타 에베레스트 산(문화어: 주무랑마봉, 영어: Mt.Everest)은 지구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네팔에서는 사가르마타(산스크리트어: सगरमाथा→하늘의 이마)라 부르고, 티베트어로는 초모룽마(ཇོ་མོ་གླང་མ→세상의 어머니). 중국어에서는 티베트어 '초모랑마'를 그대로 차용해 주무랑마 봉(중국어: 珠穆朗瑪峰, 병음: Zhūmùlǎngmǎ Fēng)이라고 부른다. '에베레스트'는 영국의 조지 에버레스트 경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에베레스트 산은 해발 8,848 m로 가장 높은 산이지만, 지구의 중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산은 아니다. 지구 중심에서 가장 먼 산은 안데스 산맥의 침보라소 산이다. 중국과 네팔의 국경이 에베레스트 산 정상을 지난다. 에베레스트 산괴에는 주위의 로체 산(8,516 m), 눕체 산((7,855 m), 창체 산(7,580 m)이 포함된다. 그 후로 많은 원정대가 도전하였으나 실패하다가 1953년 존 헌트가 이끄는 뉴질랜드 원정대의 에드먼드 힐러리와 셰르파족인 텐징 노르게이가 현지 시각으로 5월 29일 오전 11:30에 정상 등정에 성공하였다. 대한민국에서는 고상돈 원정대가 1977년에 처음으로 등정에 성공했다. 2008년 5월 8일 티베트인 니마 츠런(尼瑪次仁)을 단장으로, 중국인 뤄선(羅申)을 부단장으로 한 19명의 전문 산악인으로 구성된 성화 봉송 주자들은 6시간의 등반을 통해 이날 오전 9시20분(현지시간)에 에베레스트 정상에 성화를 올렸으며 올림픽 성화가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을 등정했다.
높이 8,611m. 발토로 빙하 북쪽에 솟아 있는 고봉으로 에베레스트산에 이은 세계 제2의 고봉이다. 장엄하고 아름다운 회록색을 띤 4각추형(四角錐形)의 산체(山體)는 지질적으로 보면 편마암이라고 불리는 변성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편리면(片理面)이 사방으로 약 30°의 경사로 완만하게 깍이어 보기 좋은 피라미드 모양을 이루고 있다. 1856년 인도 측량국의 몽고메리가 카슈미르에서 바라본 카라코람의 고봉을 순차적으로 K1, K2,…K32까지 기록한 데서 'K2'라는 별칭이 붙었으며, 이는 카라코람의 2호라는 뜻으로, 당시 현지에서 부르는 명칭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이 기호가 그대로 명칭으로 이용되었다. 산의 위치와 높이는 1858년 카슈미르 측후소에 의하여 정확하게 측정되었으며, 그 후 이 산이 토속명(土俗名)으로 답상(Dapsang), 또는 초고리(Chogori)라고 불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1861년 고드윈오스턴이 발토로 빙하를 발견한 후 처음으로 K2에 접근한 업적을 기념하여 고드윈오스틴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1902년 영국의 에켄슈타인 탐험대가 4각추의 북동 능선에서 6,700m 높이까지 도달하였으며, 1909년 이탈리아의 아브루치공이 인솔하는 탐험대가 등반하여, 학술조사와 함께 4개의 능선을 철저하게 조사하였다. 따라서, 남동 능선을 아브루치릉이라고도 한다. 1938년 미국의 하우스톤 탐험대가 남동 능선을 정복하고 7,925m까지 등반하였으며, 이어 1939년 역시 미국의 위스너 탐험대가 8,373m의 높이까지 이르렀으나, 처음으로 4명의 희생자를 냈다. 1953년 제2차 하우스톤 탐험대가 7,925m 지점까지 이르렀으나, 시기(時期)와 날씨 관계로 1명의 희생자를 내고 하산하였다. 1954년 이탈리아의 데시오 탐험대가 원정에 나서 아브루치공이 개척한 아브루치릉을 정복하고, 7월 31일 드디어 첫 등정에 성공하였다.
킨친중가산(Kinchinjunga Mt.) ·캉첸중가산(Kangchenjunga Mt.)이라고도 하며 네팔어로는 쿰브카란룽구르산(Kumbhkaran Lungur Mt.)이라고 한다. 최고봉은 8,586m이다. 에베레스트 K2봉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높다. 5개의 산봉우리가 있는데 그가운데 3개가 8,000m를 넘는 대산괴이다. 일반적으로 옅은 빛의 편마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제무 ·얄룽 ·탈룽 ·칸첸중가 등의 빙하곡으로 둘러싸여 있다. 산의 이름은 ‘광대한 빙하의 5대 보고(寶庫)’를 뜻한다. 인도 북동쪽 다르질링 부근에서 볼 수 있다. 이 산괴는 교통이 편리하여 일찍부터 탐험 ·조사가 실시되었다. 1890년 호와이트가 탈룽 빙하를 통해 입산했으며 1899년 영국의 등반가 D.프레시필드가 산록을 일주하였다. 1905년 스위스 ·영국 ·이탈리아 합동 등반대가 얄룽 빙하 쪽 루트를 공격했으나 눈사태를 만나 조난당한 이후 12차례나 원정대가 투입되었다. 그 중에서도 독일의 P.바우어가 이끄는 탐험대가 1929년과 1932년 2차례에 걸쳐 제무 빙하를 통해 등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였고, 1930년에는 G.O.디렌푸르트가 이끄는 탐험대가 칸첸중가 빙하에서 공격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1955년 5월 25일 영국의 C.에번스가 이끄는 탐험대가 얄룽 빙하를 거쳐 최초의 등정에 성공하였다. ‘산정의 신성(神聖)’을 침범하지 않겠다는 시킴 수상과의 약속 때문에 정상을 눈앞에 두고 되돌아왔지만 사실상 등정에 성공한 것으로 본다.
로체 산은 네팔과 티베트의 접경 지역의 쿰부 히말에 있다. 에베레스트의 바로 남쪽이다. 로체 산은 티베트 어로 '남쪽 봉우리'라는 뜻이다. 8,516미터 높이의 로체 산은 히말라야에서 네 번째로 높은 봉우리이다. 이 산은 동서로 뻗어 있는 수직 능선인 사우스콜을 통해 에베레스트와 이어져 있다. 로체 산의 능선은 8,000미터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다. 그래서 로체 산은 종종 에베레스트 산의 남쪽 능선으로 오인받기도 한다. 1931년에 이루어진 인도 조사에서 이 산은 E1라는 이름을 받았다. 풀이하면 에베레스트 제1봉이다. 에베레스트가 정복된 후 로체 산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닿기 시작했다. 하지만 초기에 로체 산을 찾은 사람들의 목적은 에베레스트 산의 정상으로 가는 새로운 루트를 찾으려는 것이었다. 1956년 5월 18일에 프리츠 루흐징거, 에르네스트 라이스 그리고 스위스 등산가 두 명이 마침내 정상을 정복했다. 로체 산에는 두 개의 봉우리가 더 있다. 하나는 주봉우리의 동쪽에 있는 로체 샤르이고 또 하나는 왼쪽 능선의 눕체이다. 등반에 가장 좋은 시기는 4월에서 5월 사이와 9월 말에서 10월 사이다.
일명 검은 귀신의 산이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마카루펑[马卡鲁峰]이라고 한다. 높이는 8,463m이다. 에베레스트산로부터 남동방향으로 뻗은 히말라야 산줄기에 위치하며, 세계 제5위의 고봉이다. 편마암 및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이 산은 1921년 에베레스트 정복 이후에 알려지게 되었다. 1954년에 미국 ·뉴질랜드 등산대가 등정을 시도하였고, 같은 해 가을에 프랑스 등반대가 북쪽에서 등반하여 북서쪽 4km 지점의 제2봉(7,656m) 첫 등정에 성공했다. 1955년 재차 등반에 나선 프랑스 등반대는 5월 15일부터 3일간에 걸쳐 전원 등정이라는 성공을 거두었다. 한국은 1982년 5월 20일 11번째로 등정에 성공하였다. 6) 초오유(Cho Oyu, 8201m) 중국에서는 줘아오여우펑[卓奥友峰]이라고 한다. 높이는 8,201m이다. 에베레스트산(山) 북서쪽 28km, 히말라야 산맥에 우뚝 서 있다. 산이름의 정확한 의미는 불분명하지만 티베트어로 ‘터키석(石)의 여신’을 뜻한다고 한다. 1921년에 영국의 헤이워드벨리 등반대가 북쪽에서 처음으로 바라보았다. 1951년에 영국의 심프턴 등반대가 이를 정찰하였으며, 1952년에 심프턴 등반대의 힐러리와 로우가 6,800m 부근까지 올라갔다. 그 후 오스트리아의 티치가 동료 2명과 셰르파 1명만을 데리고 서쪽에서 등반하여, 마침내 1958년 첫 등정에 성공하였다. 티치 다음으로 등반한 프랑스-스위스 합동등반대대의 코간 부인은 약 7,500m까지 올라갔다. 한국에서는 1992년 9월 20일 한국초오유원정대의 남선우(南善佑) 등반대장을 비롯한 3명의 대원이 등정에 성공했다. 또한 2007년 5월 8일 오은선씨가 국내 여성산악인 최초로 등정에 성공했다. 7) 다울라기리(Dhaulagiri, 8167m) 어원은 다발라기리(Dhavalagiri)인데, 산스크리트로 흰 산(white mountain)을 뜻하며, 현지에서는 돌라기리라고도 한다. 안나푸르나 제1봉(8,078m)의 북서쪽 약 35km 지점에 위치하며, 제1봉(8,167m) ·제2봉(7,751m) ·제3봉(7,703m) ·제4봉(7,639m) ·제5봉(7,585m)의 다섯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그 주봉(主峰)인 제1봉은 19세기 중엽까지 세계 최고의 산으로 간주되었다. 1905년 프랑스의 에르조그 등반대가 정찰하기까지 이 산군(山群)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것이 없었다. 그들이 정찰한 후 독일 ·스위스 ·아르헨티나의 등반대가 다투어 시도하였으며, 특히 아르헨티나가 줄기찬 노력을 했지만 실패, 이 거대한 암벽은 거의 등반할 수 없는 곳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북동쪽의 산등성이가 유력시된 이후, 1960년 5월 13일 스위스의 M.아이젤린이 이끄는 등반대가 등정하였다. 8) 마나슬루(Manaslu, 8163m) 높이 8,163m. 북쪽에서부터 마나슬루, 피크 29(7,835m), 히말출리(7,864m)를 합하여 마나슬루 3산(三山)이라고 한다. 마나슬루란 산스크리트로 ‘영혼의 땅’을 뜻한다. 마나슬루가 등산가의 주목을 받은 것은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50년으로, 네팔 개국 후 영국의 W.틸만 등반대가 정찰한 이후였다. 첫 등정에 성공한 것은 1956년 봄 마키[槇]가 인솔한 일본 등반대였다. 한편, 1971년과 1972년에 한국 등반대가 조난, 6명이 희생되었으나, 1980년 4월 동국대학 산악반이 등정에 성공했다. 9) 낭가파르밧(Nanga Parbat, 8125m) 낭가파르바트는 산스크리트어로 ‘벌거숭이산’이란 뜻이고, 별칭은 디아미르인데 이는 ‘산의 왕’이라는 뜻이다. 높이 8,125m이며 전 세계 8000m급 고봉 14좌 가운데 9번째 높은 봉우리이다. 산세는 웅대하고 험준한 모습으로 등반사상(登攀史上) 잘 알려진 산의 하나다. 산괴(山塊)는 편마암체(片麻岩體)로 구성되었다. 서쪽에는 디아미르 계곡에서 이어지는 디아미르 벽이 있다. 남동벽(南東壁)인 루팔 벽은 수직으로 4,500m나 깎아지른 절벽을 이루고 있는데 첫 등정(登頂)에 성공할 때까지 7회에 걸친 시도 중 31명의 희생자를 냈다. 낭가파르바트는 한때는 ‘마(魔)의 산’이라고도 하였다. 최초로 등산을 시도한 것은 1895년 영국의 A.F.머머리였으나, 빙하와 눈사태로 조난당했으며, 1953년 독일·오스트리아의 등반대원 헤르만 불이 첫 등정에 성공하였다. 한국에서는 1992년 6월 박희택·김주현·송재득이 최초로 등정에 성공하였다. 10) 안나푸르나(Annapurna, 8091m) 제1봉은 1950년 6월 3일 프랑스 에르조그 등반대가 처음으로 등정하였는데, 이는 세계 최초의 8,000m급의 정복이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후의 히말라야 등산 붐의 출발이었다. 제2봉은 1960년 5월 17일 영국 ·네팔 공동팀인 로버츠 등반대가 등정하였고, 제3봉은 1961년 인도의 코리 등반대, 제4봉은 55년 5월 30일 독일의 슈타인메츠 등반대가 각각 등정에 성공하였다. 1970년에는 전원이 여성으로 짜여진 일본의 등반대가 등반에 성공했으며, 한국에서는 영남산악회가 최초로 제2봉 등정에 성공했다. 84년에는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한국의 김영자가 제1봉 등정에 성공했다. 11) 가셔브룸1봉(Gasherbrum, 8068m) 세계 11위 가셔브룸Ⅰ은 발티어와 서부 티베트 사투리로 ‘아름다운 산’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아름답다’라는 뜻을 가진 가샤(Rgasha)와 ‘산’이라는 의미를 가진 브룸(Brum)의 합성어이다. 또한 이 산은 영어로 히든피크(Hidden Peak)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다. 1892년 카라코룸 일대를 최초로 답사했던 영국의 콘웨이가 브로드피크와 함께 지은 산 이름이다. 오늘날 널리 쓰이고 있는 히든피크는 글자 그대로 ‘숨어 있는 봉’이란 의미이며, 가셔브룸 산군의 여러 고봉들이 앞을 가리고 있어 발토로 빙하 깊숙이 거슬러 올라가야만 볼 수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12) 브로드피크(Broad Peak, 8047m) 브로드피크(Broad Peak, 8,047m)는 중국과 파키스탄의 국경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세계 제12봉으로 세계 제2봉인 K2로부터 불과 8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 처음에는 K3로 불렸었다. 1957년 6월 9일 오스트리아 등반대가 등정에 성공하였다. 세계 12위 고봉 브로드피크(Broad Peak)는 히든피크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콘웨이가 지은 산 이름이다. 문자 그대로 ‘폭이 넓은 봉우리’를 의미하며, 알프스의 브라이트호른(Breithorn)과 산의 생김새가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독일어의 브라이트호른은 ‘폭이 넓은 봉우리’란 뜻이다. 발티어로 팔첸캉리(Phalchankangri)가 브로드피크의 원래 이름이다. 13) 가셔브룸2봉(Gasherbrum Ⅱ, 8035m) 가셔브룸 2봉(Gasherbrum II, 일명 K4)은 중국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와 파키스탄과의 경계에 있다. 높이 8,035 미터의 세계에서 13번째 높은 산이다. 카라코람의 측량번호는 K4다. 그레이트 카라코람, 발토로 산맥의 가셔브룸( ‘아름답다’라는 뜻을 가진 가샤(Rgasha)와 ‘산’이라는 의미를 가진 브룸(Brum)의 합성어임) 봉우리 여러 개가 모여 있는 산의 무리로 최고봉인 가셔브룸 1봉(히든피크)의 북서 5.5 킬로미터에 있으며, 이 두 봉우리는 가셔브룸 새들(약 6500 미터)로 가로막혀 있다. 1956년 7월 8일 오스트리아 프리츠 모라벡(Fritz Moravec)의 지휘 아래 6명으로 구성된 원정대가 직접 정상으로 연결되는 남서 언덕을 경로로 처음으로 등정에 성공했다. 대한민국은 1991년 7월 19일과 20일 성균관대OB산악회와 울산산악연맹 원정대가 연달아 등반에 성공했다. 14) 시샤팡마(Shisha Pangma, 8012m) 1964년 5월 2일 중국 등반대가 등정에 성공하여 14좌 중에서는 가장 늦게 인간의 등반을 허락하였다. 자료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
|
첫댓글 좋은 산행정보에 감사드립니다.
멋지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