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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括地志》는 당 태종 이세민의 4남인 魏王 李泰가 다스리던 땅에 관한 地理志 입니다.
즉, 魏王 李泰가 唐朝의 모든 땅을 다스리지는 못했다 라는 것을 전제하면 《括地志》의 기록에 나타나는 땅이
지금의 감숙성에서 부터 지금의 요녕성 일대와 광동성 까지 기록될 구 없는 것은 분명한 것입니다.
魏王 李泰가 다스리던 땅의 저왁한 위치는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정황적으로
唐朝의 長安과 西域 일대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중공 역사는 唐朝 때의 각 州들을 대부분 산서성 일대로 비정하고 역사를 해석합니다.
《括地志》 기록의 并州는 太原 일대의 땅에 관한 기록 입니다.
현재 중공 역사는 唐朝 때의 并州를 특정 하지 못합니다.
중공 위키 백과는 唐朝 때의 并州에 속한 縣들을 다음과 같이 설명 합니다.
太原县、晋阳县、榆次县、寿阳县、抚城县、盂县、石艾县、乐平县、
和顺县、辽山县、平城县、太谷县、祁县、文水县、阳直县、交城县
《括地志》 原本에 기록된 太原縣, 晉陽縣, 楡次縣, 淸源縣, 祁縣, 文水縣, 孟縣, 樂平縣, 石艾縣과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寿阳县、抚城县、乐平县、和顺县、辽山县、平城县、太谷县、阳直县、交城县은 原本에 없고
楡次縣, 淸源縣은 중공 위키 백과에는 설명에서 빠져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원본에는 누락되고 중공 위키백과에는 있는 辽山县 즉, 遼山縣이라는 땅이 눈에 들어 옵니다.
다음은 遼山에 관한 기록들입니다.
"遼州,隋太原郡之遼山縣。"
요주, 수나라 태원군의 요산현이다.
隋改遼山縣,屬并州。
수나라 때 요산현으로 고쳤으며, 병주에 속하게 했다.
又玄菟髙句麗縣有遼山小遼水所出
縣故高句麗胡之國也 漢武帝元封二年平右渠 置元菟郡於此 王莽之下句麗水出遼山
西南流逕遼陽縣 與大梁水㑹 水出北塞外 西南流注遼水.
또 현도 고구려현은 요산이 있는데 소요수가 나온다
요양현, 옛 고구리는 胡의 나라이며 기원전 109년 한무제가 우거를 평정하고, 이 곳에 현도를 설치 했으며,
왕망의 하구려 물은 요산에서 나오며, 서남으로 흘러 요양현을 지나고 인접한 대량수와 만나
새외의 북쪽에서 나와 서남으로 흘러 요수에서 모인다.
又玄菟髙句麗縣有遼山小遼水所出
또한, 소요수가 나오는 곳은 요산이며 고구려현의 현도이다.
즉, 전체적인 맥락은 遼山=玄菟 髙句麗縣有=太原郡이라는 것입니다.
太原縣
并州太原,地名大明城,卽古晉陽城,智伯輿韓、魏攻趙襄子於晉陽,卽此城也。
병주 태원, 땅이름은 대명성이다, 즉 옛 진양성이며,
지백은 처음 한나라와 위나라를 조양자의 진양을 공격했던 그 성이다.
智伯(晉 世族)이 晉陽城을 공격한 이후 趙襄子(? ~기원전 443년:趙나라의 趙氏宗主)가
智伯을 사로 잡아 처형함으로서 晉나라는 三晉, 즉 趙, 魏, 韓으로 분리 되는 것입니다.
※ 필자는 춘추시대 晉나라의 위치가 雍州(冀州 : 隴西)라는 것을 수 없이 밝혀 왔습니다.
《史記·梁孝王世家》「以參爲太原王」《正義》引。
晉陽縣
大夏,今并州晉陽及汾、絳等州是。
대하는 지금의 병주 진양현 및 汾이며, 강등의 州다.
다음은 중공 위키백과가 설명하는 大夏 입니다.
大夏,又稱巴克特里亞(英語:Bactria),是一個中亚古国,位于古希腊人所说的巴克特里亚地区(縛喝羅)。
바크트리아(Bactria)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바크트리아 지역이라고 부르는 중앙아시아의 고대 국가이다.
主要疆域在阿姆河以南,興都庫什山脈(古希腊称Paropamisus)以北,西边与安息接壤。
에미넴강 남쪽, 바두니시산맥(고대 그리스어로 팔로파미수스) 북쪽, 서쪽은 안식과 접해 있다
目前学术界就大夏位于巴克特里亚地区这一点达成了共识,但是大夏是否就是希腊-巴克特里亚王国,尚未达成共识。
현재 학계에서는 바크트리아 지역에 여름이 위치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그 대하가 그리스-바크트리아 왕국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
그러나 대한민국 위키 백과는 다음과 같이 설명 합니다.
대하(大夏)는 한나라에서 박트리아를 부르던 이름이라고 전해지지만 확실치 않다.
대하는 중국문헌에 기원전 3세기부터 나온다.
그 후 기원전 126년 장건은 박트리아를 대하로 기록했다는 설이 있다.
"대하는 중국문헌에 기원전 3세기부터 나온다. "?
《山海經》 卷六 海內西經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在昆侖虛東南。一曰海內之郡,不為郡縣,在流沙中。
곤륜의허 동남쪽이다. 해내의 무리이며, 군현은 없으며, 사막 가운데에 있다.
國在流沙外者,大夏、豎沙、居繇、月支之國。
나라는 모래가 흐르는 바깥 무리이며, 대하, 수사, 거요, 월지국이 있다.
《山海經》 은 중국 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이며 夏, 商, 周 疆域을 기록한 지리지 입니다.
대한민국 위키 백과는 도데체 무슨 근거로 대하는 중국문헌에 기원전 3세기부터 나온다. 라고 하는 건지 알수가 없습니다.
현재 중공 역사는 月支國과 大夏國 그리고 昆侖虛, 流沙의 위치를 지금의 중앙 아시아 일대로 비정하고 있습니다.
위와 같이 비정되는 역사가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月支國이 지금의 중아 아시아 파미르고원 일대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즉, 이 지역의 나라이름과 지명에서 夏가 들어 가는 이유가 이 땅이 禹 임금의 夏나라와 湯王의 商나라
그리고 周文王의 岐山이 존재 하는 땅이라는 것만은 분명 합니다.
따라서 并州=大夏를 의미하는 것이며 汾水와 晉陽의 위치 역시 지금의 중앙 아시아에 존재 한다 라는 의미 입니다.
太原이라는 땅 이름은 禹 임금이 도읍한 곳이며 平陽의 동북쪽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唐朝 때의 幷州는 지금의 중앙 아시아 일대를 의미 하는 것입니다.
昔髙辛氏實沈居之,西近河。
옛 고신씨는 실심에 살았으며 서하 근처이다.
다음은 중공 위키 백과가 설명하는 髙辛氏에 대한 설명입니다.
喾kù(?—?),中国历史中的传说人物,为五帝之一,号高辛氏。
父亲为蟜极。
곡(? ~?)은 중국 역사 속의 전설적 인물로 五帝 중 한 사람이며 고신씨라고 불린다.
조부는 현악이고, 少昊金天氏씨는 황제와 정조의 장자이다.
아버지가 교극이다.
임금 전욱은(황제와 래조의 차남인 창의의 아들) 제곡의 큰 아버지이다.
帝嚳은 黃帝의 증손자 이며 堯 임금의 할아버지 입니다.
少昊金天氏는 경주김씨의 시조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현재 거짓으로 해석되는 西河는 섬서성 동쪽일대 입니다.
그러나 西河라는 땅의 실제 위치는 黑水의 서쪽, 즉 冀州를 의미 하는 것입니다.
《史記·秦始皇本紀》「禹鑿龍門通大夏」《正義》引。
《史記·秦始皇本紀》 「우임금은 용문과 대하를 뚫어 통하게 하였다」《正義》引
현재 동아시아 역사 해석으로의 龍門은 四川盆地 북부 일대 즉, 隴西의 남쪽 일대로 비정 합니다.
즉, 禹 임금이 隴西와 大夏를 통하게 하였다 라는 것입니다.
《禹貢錐指》는 龍門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龍門之河在冀州西。』
「용문의 하는 기주의 서쪽에 있다.」
다시 말하지만 冀州는 지금의 隴西 입니다.
따라서 龍門은 隴西의 서쪽입니다.
☞현재 중공은 역사 공정에 따라서 고대 중국의 疆域을 온 사방으로 확대하여 역사를 해석하지만
유독 서쪽 疆域만은 필사적으로 축소하는 역사 공정을 진행 합니다.
이렇게 지금의 중공이 逆史 공정을 해야 하는 이유는 지금의 중공은
"周나라로 부터 중공 역사가 비롯된 것"으로 역사를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즉, 周 왕조는 漢族이라는 역사 프레임 입니다.
따라서 周 왕조는 隴山의 서쪽(隴西)에 존재 하면 안되며 반드시 隴山의 동쪽에 존재 해야 하는
역사 프레임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 입니다.
왜냐하면 隴西는 유목민족의 땅이며 胡의 땅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지금의 중공은 隴西에 존재 했던 모든 땅이름들을 지금의 산서성 남부 일대와
하남성 북부 일대로 해석하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周 왕조는 隴西에 존재 했던 나라이며 종족적으로는 유목민족이며 胡 입니다.
만약 周 왕조가 隴山의 동쪽에 존재 했다 라거나, 周 왕조가 漢族이라면 필자의 역사 글은 모두 거짓입니다.
晉水源出并州晉陽縣西懸甕山。
晉水의 발원지는 병주 진양현 서쪽에 떨어진 옹산에서 나온다.
현재 중공은 晉水가 나온다 라는 甕山에 관하여 설명을 하지 못합니다.
《水經注》는 晉水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出晉陽縣西懸甕山』
분명하게 晉水는 晉陽縣 서쪽에 있는 甕山에서 나온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 지도에서 보듯이 현재 고대 晉陽縣으로 비정한 晉中市 서쪽에는
그 어떤 하천도 존재 하지 않는다 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山海經》云:「懸甕之山,晉水出焉,東南流注於汾水。」
《山海經》云:「현옹산은 진수가 나오는 곳이며 동남으로 흘러 분수에서 모인다.」
현재 중공 역사는 懸甕山에 관한 설명이 없습니다.
위 지도에서 보듯이 晉陽縣으로 비정한 晉中市에서 흐르는 하천은 汾水의 동쪽에 존재 하기 때문에
절대로 동남쪽으로 흐를수 없는 것이며 반드시 서쪽으로 흘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한 《山海經》은 先秦時代의 기록물이기 때문에 관중 평원의 밖(塞外)에 관한 기록이 등장 할 수 없습니다.
※즉, 현재 동아시아 역사는 완전히 날조된 역사인 것입니다.
晉趙襄子保晉陽,智氏芳山以水灌之,不沒者三版。
진나라 조양자는 진양을 지키기 위해 지씨 방산의 물을 흘려 보냈는데 삼판의 무리가 매몰되지 않았다.
其瀆乘髙西入晉陽城以周溉灌,東南出城注於汾也。
그 도랑은 승고 서쪽 진양성 주나라가 관개한 권수이며, 동남쪽에서 나와 성에서 모이는데 분수다.
《史記·魏世家》「決晉水以灌晉陽之城」《正義》引。
按「壅」誤,當作「甕」,懸甕山以山腹有巨石如甕而得名。
「陽」字衍,據《水經》晉水《注》刪。
故唐城在并州晉陽縣北二里。
옛 당성은 병주 진양현 북쪽 2리에 있다.
唐이라는 땅은 堯 임금이 도읍한 곳을 의미 합니다.
즉, 唐=太原=冀州를 의미하는 것이며, 이 때문에 지금의 중공은 唐이라는 땅을 太原 일대로 비정하는 것입니다.
《城記》云堯築也。
《城記》가 云하기를 "堯임금이 축조 했다."
徐才宗《國都城記》云:「唐叔虞之手燮父徒居晉水傍,今并州故唐城。
徐才宗《國都城記》云:「」당숙우의 수섭부도는 진수로 부터 인접한 곳에 살았으며, 지금의 병주 옛 당성이다.
唐者卽燮父所徒之處,其城南半入州城,中削爲坊,城牆北半見在」
당의 무리 즉, 섭부의 무리가 있는 곳이며, 그 성의 남쪽은 반은 들어온 성이며,
가운데 삭을 방이라 하였고 성벽의 북쪽 반은 지금도 남아 있다.
※ 坊이라는 漢字는 당나라 때에 신라가 있던 곳을 新羅坊이라고 했다 라는 그 글자 입니다.
坊이라는 글자의 의미는 신라 언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은 분명하지만 묵=슨 의미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毛詩譜》云:「叔虞子燮父以堯虚南有晉水,故曰晉侯」
《毛詩譜》云:「숙우의 아들 섭부는 요허의 남쪽에 진수가 있으며, 예전에는 진후라고 불렀다.
※ 虚라는 漢字는 평지의 가운데에 솥아 있는 언덕 또는 얕으막한 산으로 보입니다.
《[[史記]]》「晉世家子燮是爲晉侯」《正義》引,又《通鑑·巻一·周安王紀》「孝公頃立」注引。
按唐初并州太原、晉陽兩縣倶在州城,故晉陽亦可稱并州,此「理」字當作「州」。
당초에 병주 태원은, 진양의 양쪽 현 모두가 주성이며, 옛 진양 또한병주라 일컽으며 그 「理」字는 州가 맞는 것이다.
楡次縣
楡次,并州縣,卽古楡次也。
유차는 병주현이다 즉, 옛 유차다.
※ 고쳐지지 않은 유목민족의 본래 땅 이름은 거의가 풀 이름이거나 들짐승 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楡는 드릅나무 라는 의미 입니다.
《史記·秦本紀》「攻趙楡次」《正義》引。
淸源縣
梗陽故城在并州淸源縣南百二十歩。
경양의 옛 성은 병주 청원현 남쪽 20 걸음의 거리에 있다.
淸源,唐分晉陽縣置,本漢楡次縣地,春秋時晉大夫祁氏邑也。
청원은 당을 나누어 진양현에 설치 했는데, 본래 한나라 유차현의 땅이며, 춘추때 진나라 대부 지씨읍 이다.
《史記·趙世家》「秦取梗陽」《正義》引。
按隋於梗陽故城置淸源縣,後廢入晉陽縣,唐初又於梗陽故城北重置淸源縣,故云「分晉陽置」,今增「淸源唐」三字方合。
祁縣
并州祁縣城,晉大夫祁奚之邑。
병주 지현성은 , 진나라 대부 지해의 읍이다.
《史記·孝文本紀》「祁侯賀爲將軍」《正義》引。
文水縣
大陵城在并州文水縣北十三里,漢大陵縣城。
대륙성은 병주 문수현 북쪽 13리에 있으며, 한나라 대륙현성이다.
《史記·趙世家》「肅侯遊大陵」《正義》引。
陽曲縣
狼孟故城在并州陽曲縣東北二十六里。
랑맹의 옛성은 병주 양곡현 동북 26리에 있다.
《史記·秦本紀》「攻趙新城楡次狼孟」《正義》引, 又《通鑑·巻六·秦莊襄王紀》「取楡次狼孟等三十七城」注引。
《史記·秦本紀》「신성 유차 랑맹을 공격했다」《正義》引, 又《通鑑·巻六·秦莊襄王紀》「유차 랑맹등 37성을 취했다.」注引。
춘추전국 때인 秦莊襄王(前281年—前247年7月6日)에 지금의 태원 일대를 취했다?
孟縣
并州盂縣外城,俗名原仇城,亦名仇猶城,夷狄之國也。
병주 유현외성은 속명으로는 원구성이며, 또 다른 이름은 구유성이며, 이적의 나라다.
현재 동아시아 역사 프레임 대로라면 지금의 晉陽 일대는 中原의 한 가운데 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晉陽 일대가 夷狄의 나라다?
《韓子》云:「智伯欲伐仇猶,道險難不通,乃鑄大鍾遺之,載以廣車。
仇猶大悅,除塗内之。
赤章曼支諫曰:『不可。此所以小事大;而今以大遺小,卒必隨,不可。』不聽,遂内之。
曼支因斷殼而馳,至十九日而仇猶亡。」
《史記·樗里子甘茂列傳》 「智伯之伐仇猶」《正義》引。按「山」當作「城」,又脱「城」字,據《元和郡縣志》增改。此引《韓非子説林》,有脱誤,今據改。
樂平縣
昔陽故城一名陽城,在并州樂平縣東。
석양의 옛성은 일명 양성이며, 병주락평현 동쪽에 있다.
《春秋釋地名》云:「昔陽,肥國所都也,樂平沾縣東有昔陽城。」
《春秋釋地名》云:「석양은 비국의 도읍지가 있는 곳이며, 락평 점현동쪽에 석양성이 있다.」
다음은 중공 위키백과가 설명하는 肥國 입니다.
肥國(春秋):先秦小型诸侯国,在今河北省石家庄市藁城区一带。
비국은 선진 시대 때의 소형제후국이며 지금의 하북성 석가장시 교성구 일대에 있다.
현재 중공의 河北省 石家庄市의 위치는 위 지도입니다.
거짓으로 해석되는 현재 동아시아 역사 해석으로도 河北省 石家庄市는 幷州의 밖 입니다.
肥國,白狄別種也。
비국은 백적의 별종이다.
다음은 중공 위키 백과의 肥國에 관한 설명입니다.
다음은 중공 위키백과의
白狄,亦作「白翟」,姬姓。
是中國春秋時期的一個部落,屬於由華夏人群分裂出來的戎狄人群的一支,被列為北狄之一,因尚白而得名,主要活動於今中華人民共和國陝西省北部一帶,有鮮虞氏、肥氏、鼓氏、仇由氏4個氏族。
백적은 白翟이라고도 하며, 희성이다.
춘추시기의 일개 부락이며, 화하의 무리가 분열되어 나온 북적의 하나로서, 상백이라는 이름에서 비롯되었으며,
주로 현재의 중공과 섬서성 북부 일대에서 환씨·비씨·고씨가 활동하였다.
白狄의 白은 四神 중의 서쪽을 관장하는 白虎를 의미하는 것이며 "서쪽"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서쪽이란 長安의 서쪽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현재 동아시아 역사는 역사 용어 부터 모조리 왜곡된 것입니다.
☞추정 컨데은 서양 사람에 가까운 중앙아시아 사람들을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樂平縣城,漢沾縣城也。
락평현성은 한나라 점현성이다.
《史記·趙世家》「廉頗將攻齊昔陽」《正義》引。
按「城」字衍,晉沾縣屬樂平郡,據《左傳》昭公十二年杜預注刪。
「城」字는 널리 쓰이며 진나라 점현은 락평구에 속하며,
《左傳》 : 魯 소공12년에 편찬한 것을 두예가 주석을 단 책에 의거 했다.
石艾縣
井陘故關在并州石艾縣東八十里,卽井陘口。
정형의 옛 관문은 병주 석애현 동쪽 80리에 있다. 즉, 정형구다.
※ 陘은 陘水를 의미하는 글자이며, 현재 중공은 陘水에 관한 그 어떤 설명도 하지 않습니다.
중공 역사 해석의 특징은 곤란하면 입을 닫는다 라는 것입니다.
艾라는 글자는 "쑥"을 의미합니다.
《史記·淮陰侯列傳》「聚兵井陘口」《正義》。
按「八十」兩字誤倒爲「十八」,據《元和郡縣志》巻十三太原府廣陽縣及《讀史方輿紀要》巻四十山西平定州井陘條改。
按此當是引《括地志》,張守節時石艾已更名廣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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