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하 노인회장이 전해주는 설촌 유래는 이러하다. 옛날 명월이라는 큰 마을 위쪽 지명 중에 '느(니)지리'라는 곳이 있었다. 1891년까지는 명월리라 부르다가 구역이 넓고 광범위해 불편한 점이 많아 분리하였다. 명월리의 윗동네라는 뜻을 가지고 쓰던 상명월에서 따와 상명리라고 마을 이름을 정했다고 한다. 대대로 농경과 목축으로 살아온 제주섬 북서쪽 중산간 마을이다. 그 아름다운 마을이 4·3 광풍 속에서 마을 전체가 불타버렸다. 해안 마을로 이주하여 살다가 돌아와 재건하여 이룩해낸 조상들의 터전. 곳곳을 다니다보면 4·3 이전에 주민들이 살았던 집터들을 발견하게 된다. 가슴이 저며 온다. 취락구조는 그 원형을 대부분 유지하고 있지만 작은 밭이 되어버린 집터들. 집을 잃은 올레는 어디로 향하나.
상명리 주민들의 공동체 정신이 강렬한 이미지를 뿌리며 세상에 등장한 것은 2007년이다. 그 모습은 대문 없는 정낭마을. 다른 마을들이 제주섬 외부에 대한 선망 의식에서 오는 모방과 답습에 탐닉할 때, 제주인들이 지녀온 마을 공동체의 힘에서 브랜드 가치를 찾고자 했다. 서로 믿고 살았던 정낭정신의 부활을 주장하며 모든 집에 대문을 없애고 거기에 정낭을 설치한 것이다. "마을공동체 복원이 미래지향적 발전의 가장 중요한 토대지요.
" 정낭마을은 수준높은 의식 변화가 이끌어낸 외적 표현이라고 안익주 상명리장은 이야기한다. 가시적 성과는 마을 주민들의 공동체 의식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으며 다양한 도전과제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불과 7년 만에 이룩한 거대한 자신감이 아름답다. 유명한 관광지도 없고 평범한 중산간마을로 보이지만 인적자원과 문화적 전통을 통하여 시대적 도약을 꿈꾸는 마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첫댓글 용수리를 가느라 한림을 지나갈 때도 많았는데 상명리는 못 들어 본 것 같네요. 참, 이번 겨울 나들이 땐 한림 금능리에서 1박을 하니 상명리도 한 번 휘 둘러볼까 싶네요. 상명리 주민분들, 몸은 힘들지만 넉넉한 살림에 단합도 잘 되는 모습, 참 보기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