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우리는 사피엔스와 다른 인간 종의 합병을 이야기하기는 불가능하다.
이들 간의 차이가 번식 가능한 성관계를 완전히 차단할 정도로 크지는 않았다고 해도
그런 접촉을 매우 드물게 만들 정도이기는 했다.
그러면 우리는 사피엔스,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의 생물학적 연관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들이 말과 당나귀처럼 완전히 다른 종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불도그와 스패니얼처럼 동일 종의 각기 다른 집단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생물학적 실체는 혹과 백이 아니다. 회색 지대들도 중요하다.
예컨대말과 당나귀처럼 하나의 공통 조상에서 진화한 두 종이라면
다들 어느 시기에는 불도그와 스패니얼 같은 종의 두 집단이었다.
그러다가 두 집단이 이미 확연히 달라진 시점,
그러면서도 드물게 서로 성관계를 해서 번식 가능한 후손을 낳을 수 있는 시점이 있었을 것이다.
그후 또 다른 돌연변이가 일어나서 최후의 연결선은 끊어졌고,
집단들은 각기 다른 진화적 경로를 밟게 되었다.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은 약 5만 년 전 이런 경계선에 섰던 것 같다.
그들은 완전히 다른 종은 아니지만 대체로 별개의 종이었다.
다음 장에서 살펴보듯 사피엔스와 네안델탈인, 데니소바인은
유전부호나 신체 특징만 달랐던 것이 아니라 인지능력, 사회적 능력에서도 차이가 났다.
하지만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이 번식 가능한 후손을 낳는 일이
드물게 나마 여전히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들 집단이 합병한 것은 아니고
일부 운 좋은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사피엔스 특급에 편승한 것이었다.
우리 사피엔스가 과거 언젠가 다른 종의 동물과 성관계를 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는 생각은 심란하다.
그러나 한편 짜릿하기도 하다.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이 사피엔스에 합병된 것이 아니라면
이들이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의 가능성은 사피엔스가 이들을 멸종으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상상해보자, 사피엔스의 한 무리가 발칸 반도의 어느 계곡에 도착했는데,
네안데르탈인이 이곳에서 수십만 년 전부터 살고 있었다.
새로 도착한 사피엔스들은 사슴을 사냥하고 견과류와 장과류를 채취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네안데르탈인의 주식이기도 했다.
사피엔스는 기술과 사회적 기능이 우수한 덕분에 사냥과 채취에 더 능숙햇다.
이들은 번식하고 퍼져나갔다.
이들보다 재주가 떨어지는 네안데르탈인은 먹고 살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집단의 크기는 줄어들고 서서히 모두 죽어갔다.
이웃의 사피엔스 집단에 합류한 한두 명의 에외를 제외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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